뜬물개떡 - 김용만
확돌에 보리쌀 갈고 나면 뜬물 한방울도 아까워
어머니는 주둥이 큰 너럭지에 모았다
몇날 모인 뜬물이 고이고 가라앉으면 웃물은 버리고
보자기 깔고 재를 얹어 물기를 잡았다
강낭콩 돈부콩 뿌려 쟁반 가득 쩌내었다
가난도 고이면 힘이 되듯 네모반듯 김 나는 뜬물개떡
비 내리는 여름날 마루에 둘러앉아 입이 궁한 우리는
거침없는 어머니 손끝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지나는 이웃들 불러 한입씩 나눠 물고 뜬물개떡 하나에 행복했으니
스스로 가라앉는 힘이 다시 일어서는 힘이었음을
*시집/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창비/ 2025
이 시를 읽다가 개떡이란 단어에 어릴 적 추억이 저절로 떠올랐다. 시인은 뜬물개떡이란 음식을 놀랍도록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김용만 시인이 1956년 출생이니까 보릿고개를 경험했을 나이다.
내가 뜬물개떡을 먹어보진 않았지만 시인에겐 여름날 허기진 배를 채워준 요긴한 먹거리였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지나는 이웃들 불러 한입씩 나눠 물고 뜬물개떡 하나에 행복했으니>.
가라앉는 힘이 다시 일어서는 힘이었다지 않는가. 시인한테는 가난이 더욱 살고 싶게 만드는 원천이었음을 알게 한다.
시인의 뜬물개떡처럼 내게도 비슷한 추억이 있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라서 나는 도시락을 싸지 못했다.
동무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킨 후에 운동장 한쪽에 앉아 책을 읽었다.
비록 가난했어도 부지런한 엄니 덕에 굶지는 않았다. 그래서 굳이 도시락을 싸겠다면 못 가져갈 것도 없었다.
꽁보리밥에 신김치 뿐인 초라한 도시락을 동무들 앞에 꺼내놓기가 부끄러웠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때는 왜 그렇게 가난이 부끄러웠을까.
일찍 혼자가 된 엄니는 새끼들 먹여 살리기 위해 날마다 품팔이를 했다. 농촌에서는 비가 오는 날이 휴일이었다.
그럼에도 엄니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형편이라 비가 오면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엄니는 쉬는 것보다 양식 떨어질 일이 더 걱정이었던 것이다. 비 오는 아침이면 엄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을 것이다.
비가 자주 내리는 이맘때쯤이다. 엄니는 입이 궁금할 자식들을 위해 개떡을 만들었다. 개떡을 따로 만드는 도구는 없고 가마솥이다.
밥을 앉히고 나서 엄니는 아궁이에 불을 때기 전에 양푼에 밀가루 반죽을 만들었다.
밥물이 넘칠 때쯤 엄니는 솥뚜껑을 열고 걸쭉한 반죽을 밥 위에 얇게 부었다. 얼른 솥뚜껑을 닫고 아궁이 불을 껐다.
20분쯤 후려나? 뜸을 들이기 위해 아궁이에 다시 불을 붙여야 한다.
이것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 엄니의 뜸 기술, 너무 오래 뜸을 들여도 밥이 탄다. 누룽지 냄새가 풍기기 전에 얼른 불을 꺼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10분쯤 후, 솥뚜껑을 열면 확 풍겨오던 밥 냄새와 개떡 냄새, 엄니는 칼로 요즘 피자 자르듯이 조각을 내어 개떡을 하나씩 걷어 냈다.
냄새만으로도 내 입안에서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밑바닥에 보리밥알이 묻어 있던 개떡에서 살짝 소다 냄새가 났다.
빵도 아니고 떡도 아닌 애매한 음식이지만 긴 여름날의 간식 거리로 이만한 것이 있었으랴.
밥을 하던 중에 뚝딱 이런 음식을 만들어내던 엄니였다. 금손도 그런 금손이 없다.
이때쯤이면 우리집 처마 밑에는 제비가 집을 짓고 한참 새끼를 기르고 있을 시기다.
어미가 먹이를 물어 오면 새끼 제비들은 일제히 입을 벌리고 짹짹거리며 자기에게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엄니는 제비똥이 마루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제비집 아래에 받침대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새끼 제비처럼 엄니가 만들어준 개떡을 입에 물고 먹이를 물어 나르는 제비 구경을 했다. 당시 내게는 이 밀가루 개떡이 가장 호사스런 간식이었다.
언젠가 전통시장을 갔더니 만두 가게에서 개떡과 비슷하게 생긴 술빵을 팔고 있었다.
강낭콩이 박혀 있는 노르스름한 술빵, 집에 와서 먹어 보니 옛날 엄니가 해준 맛이 아니다.
내 입맛이 변한 탓일 것이다. 어쩌면 내 추억 속 그 밀가루 개떡은 몸이 기억하는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 들면서 식성도 변했다. 안 먹던 야채도 좋아하게 되었고 자극적인 음식보다 담백한 맛을 더 선호하게 된다.
요즘엔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인데다 개도 고급 사료를 먹기에 쳐다도 안 볼 개떡이다.
음식이든 사랑이든, 엄니한테 새끼 제비처럼 받아 먹기만 했지 나는 준 게 없었다. 이렇게 불공평한 관계가 있을까.
개떡이란 음식 이름은 무척 저렴하지만 엄니의 정성이 담긴 맛의 추억은 저렴하지가 않다. 종일 내리는 비와 함께 이래저래 옛 추억에 젖어 보는 여름날이다.
첫댓글 스스로 가라앉는 힘이 다시 일어서는 힘이었음을..
올려주신 시의 마지막 구절이 큰 울림으로 다가 오네요.
비 오는 날에는 쉬시는 것보다 일 못해서 벌이가 없음이 걱정스러우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글을 통해 아릿하게 다가옵니다.
그런 궁핍 속에서도 자식 거두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던 과거 어머니들의 희생과 헌신의 토양 위에 현재의 번영이 이뤄졌네요.
비내리는 목요일, 현덕님 글을 읽으며 그 시절로 다녀왔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히 읽습니다. ^^
저도 달항아리님처럼 그 대목에서 오래 눈길이 머물렀답니다. 시집 제목만 보면 무지 어려운 시를 쓸 것 같은데 공감이 가는 구절이 많더라구요.
달님 말씀 대로 옛날 어머니들의 생활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제 엄니만 보더라도 비오는 날이 더 바빴지 싶네요.
부엌으로 광으로 분주히 드나들며 종일 집안 일을 했고 밀린 바느질에다 자식들을 위해 개떡까지 만들어야 했으니 어디 쉴 틈이나 있었겠는지요.
순하게 공감해주신 달님 감사합니다.ㅎ
유현덕님 글을 쭈우욱 읽고나니..
퇴근후 부추전과 김치전 호박전을 해서
저녁에 먹어야 겠어요,,
창가에 부딪치는 빗방울이 제법
신나 보입니다..
저녁시간 가족과 함께 옹기종기 앉아서
맛나게 저녁식사 하세요~~!!
와우~ 칼라풀님이 퇴근 후에 만든다는 음식이 전부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입니다.
비오는 날에 더 어울리는 삼총사 전,,
종일 내리던 비로 인해 오늘 잠시 추억에 젖었는데 지금은 개었습니다. 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르겠으나 우산 쓰지 않고 퇴근할 수가 있겠네요.
제가 좋아하는 식탁이 바로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밥상이랍니다. 부지런한 칼라풀님도 행복한 저녁상 되세요.ㅎ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이죠
엄마가 최고죠
가난한 살림에 ....자식들만을 위해 한평생 살아오신 어머니 ㅠㅜ
그런 따스한 엄마가 있었기에 반듯하게 잘 성장하신 현덕님
글 잘 읽었습니다
ㅎ 둥근해님 안녕하세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이고 최고죠라는 둥근해님 댓글에서 그만 코끝이 찡해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맨날 엄니한테 투정을 부리고 받기만을 원했으니 후회 막급할 따름입니다.
비록 가난하게 자랐지만 저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해준 것만으로도 엄마는 제게 충분한 것을 주셨습니다.
둥근해님 편안한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개떡도
귀한 음식입니다.
어릴적 너무 배고파서
점심도
못먹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개떡도 귀한 음식이었다는 신미주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신선생님이 지독한 가난을 겪었기에 더 그러실 겁니다.
제 경우 개떡 밑에 박혀있던 밥알까지 남기지 않고 먹었답니다. 그 시절이 그립긴 해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항상 좋은 날들 되셨으면 합니다.
저는 서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도시락을 못싸가던날이 많았지요
그럴땐 점심시간에 운동장구석에 홀로 앉아
수도물로 억지로 배를 채우곤 했었답니다
차도 안다니는 두메산골이 고향인 제아내는
개떡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아침을 먹기 싫어하는 저에게 야채셀러드에
꼭 개떡한개를 얹어서 줍니다
허걱~ 그산님은 너무 반듯하셔서 배고픔을 모르고 산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수돗물로 배를 채운 것이 어쩌면 저와 꼭 같은지 놀라움과 함께 동질감이 생깁니다.
산님 아내분도 두메산골 출신에다 개떡을 좋아한다니 그것 또한 두메산골 태생인 저와 비슷하네요.
저는 아침을 거르지 않고 꼭 먹는데 아내의 수고로움이 싫어서 국 끓이고 생선 굽는 밥상은 아닙니다.
삶은달걀과 함께 사과, 토마토, 요거트 등 아주 간단하게 먹는 편입니다.
우리집 냉동실에도 쑥개떡이 있는 것 같던데 내일 아침에는 저도 개떡을 함 먹어봐야겠습니다.ㅎ
추억이 저와 닮은꼴인 그산님 감사합니다.
아련한 옛추억~~~
조용 하렵니다
ㅎ 골드훅님 잘 지내시지요?
추억이 너무 맛있으면 딱히 할 말이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한테는 이런 아련한 추억이 저를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하네요. 언제나 건강하시길요.
가라 앉힌것들도 모이니 떡이되고
가난도 모이니 힘이되고
그 힘으로 이겨낸 지난시간 비에 추억소환하셨네요
저는 어려움 모르고자라
뜬개물떡도 개떡도 모르지만
그시절 거의가 여려웠던시절이죠
나는 감자를 좋아하는데
어릴때 지겹게 먹었다고
싫어하는 사람이랑 살아요 ㅎ
간만에 오셨네요
자주 오셔요
ㅎ 정아님 반갑습니다.
제가 직장일과 집안일 등으로 조금 분주했던 탓에 잠시 카페 나들이가 뜸했습니다.
비가 오면 첫사랑이 생각난다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오늘 저는 개떡이 생각나더라구요.
사람도 모이면 힘이 되는 것처럼 가라앉힌 것들도 모이면 떡이 된다는 시인의 문장 구사가 참 좋았습니다.
감자는 저도 어릴 때 질리게 먹은 탓에 별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지만 요즘 고구마는 가끔 먹네요.
제가 소식을 실천하다 보니 아침 대용으로 삶은 달걀과 함께 고구마가 유용하더군요.
항상 평화로운 날들 되셨으면 합니다.
개떡이고 소떡이고 그거나마 못 먹었던 것은 차가운 인심만 반질한 아스팔트 도시에 살았기에 대구 동인동 역전 앞 푸성귀 한 오래기도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는 도시 빈민들
꼼짝없이 굶어야 했던 나날들 어찌 어찌 강원도 오니 밥 대신 생선 파치도 얻어 삶아 먹고 파도 친 다음 날 바다 풀 뒤져 해초도 줘다 먹고 그러고 살아내었지요 당시 대구에 더 머물렀다면 굶주림으로 막내는 죽었던가 사람구실 못했을 수도, 영양실조로 말이져
그래서 흉년에 도시나 촌락 보다 바닷가 근처에 살면 뭐든 줏어 먹을 수있어 곱다시 굶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지금도 ㅎㅎ
묵호 와서 생선은 실컷 먹었다오 아참, 개떡도 묵호와서 먹어 봤어요 보리개떡 그런데 없이 살다 보니 보리찧고 난 뒤 고운 가루 빼고 거친 무거리 가루에 사카린 넣어 밥 위에 쪄낸거라 보리껍질 점점이 박혀 까끌까끌 혀의 느낌이 아직도 나네요 그 거친 가루 원래 구정물에 타서 돼지 줘야는데 사람이 먹느라고 에휴 😭
운선님 다녀가셨군요.
댓글에서 운선님의 생존기와 연명기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옵니다. 제가 겪은 가난은 운선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도시빈민에서 풍족한(?) 해안가로 와서 무사히 살아낸 운선님의 행적 또한 존중받아야 할 삶의 이력입니다.
원래 개떡이란 쌀겨나 보릿겨로 만든 것이라고 하데요. 저는 먹어보지 못했으나 운선님 말씀처럼 꺼끌거렸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 개떡에 비하면 제 어미가 해준 밀가루 개떡은 고급음식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엄니가 그걸 개떡이라 부르니 저도 그런 줄 알고 먹었습니다.
소금, 사카린, 소다만 들어간 밀가루 개떡이었지만 게눈 감추듯 맛나게 먹었네요. 그것도 없어서 못 먹을 만큼 귀한 음식이었으니,,
운선님,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이제 우리 웃으면서 살아요. 운선님한테 웃는 일이 자주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