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보공을 잘못 사용하여 터널 붕괴사고가 일어난 경위는 이렇다.
2001년 7월 그러니까 월드컵 대회를 위해 공기를 6개월 단축하기로 하고 하루에 3.0m 이상씩 터널을 굴착 하여 공기를 맞추기로 공정계획을 수립하고 난지, 4개월이 지난 후로 이즈음 하행선의 굴착공사가 입구 측에서는 1,300여 미터를 굴착 하고 출구 측에서는 약 550여 미터의 굴착공사를 마친 상태로 미 굴착 구간이 약 650여 미터 남아 12월에 굴착공사를 맞추기에 빠듯한 때 일이다.
그날은 금요일 어제저녁 터널 굴착 발파 중 설계 당시에는 암반이 경암이어서 굴착 타입이 A-type으로 지보공 간격이 1.50m이었는데 버럭을 처리하고 난 후 막장을 보니 노출된 암이 경암이 아니고 연암 정도인 것 같아 암 판정을 의뢰하였다.
감리단과 국토관리청에서도 공사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있어 아침에 출근과 동시에 암판정 위원들이 현장에 도착하여 막장을 보고 연암으로 판정하고 굴착 타입을 B-type으로 하여 지보공 간격을 1.35m 로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리곤 오랜만에 암판정 위원들이 만났으니, 광주 시내에서 점심 식사나 같이하자고 하여 모두 시내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그런데 이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감리단의 터널 담당자가 아무래도 암판정을 다시 하여야 하겠다고 건의가 왔다.
이유인즉슨 터널 막장의 암이 물을 먹지 않았을 때는 연암 정도의 경도를 가지는데 물을 먹으면 토사같이 연약해 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막장 상태로는 잘 모르겠는데 막장 발파 시 떨어져 나온 암 중에 남아 있는 잔돌들이 있는데 그 돌 중의 물에 젖은 돌들이 이상하게 연약해 보여 발로 문질러보니 너무 쉽게 부서져 막장의 암을 자세히 보니 대부분의 암이 잔돌들과 같은 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무래도 이 구간에 단층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마침 같이 모여 점심을 먹느라고 모든 암 판정 위원이 돌아가지 않고 있어서 점심을 끝내고 현장으로 돌아온 위원들이 도면을 보고 터널이 지나가고 있는 산 위에도 올라가 지금 굴착 중인 터널이 지나는 위치가 계곡 부위로 정말 단층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판명되어 다시 막장에 들어가 굴착 할 막장의 암 물의 먹여 확인해 보고는 풍화대로 판정 감리단 터널 담당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터널 굴착 타입을 D-type으로 바꾸어 지보공의 간격을 0.80m로 하고 그래도 용수 관계로 위험이 따른다고 판명되면 파이프 루핑공법을 사용하도록 지시를 했다.
그날 오후 공사가 계속 진행되었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일이 그렇게 되느라고 암반을 뚫는 잠보드릴이 고장이 나서 공사를 계속하지 못했다.
다음 토요일 아침부터 하려던 굴착 작업이 부품 조달 관계로 잠보드릴에 보수가 늦어지면서 오후 늦게 저녁이 다 돼서야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고향이 광주광역시인 대영의 터널 시공담당자인 조 차장이 잠보드릴 고장으로 곧바로 굴착공사도 할 수 없고 또 일요일 오전에 있을 조카의 결혼 때문에 부득불 토요일 오후에 광주광역시를 가게 되어 다른 사람인 양차장에게 터널 공사 인계를 하고 갔다.
감리단은 원칙적으로 주말에는 근무를 안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현장에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경우에는 담당자가 나오게 되어 있고 이렇게 휴일의 근무로 발생하는 특근 감리비는 시공사에서 지불하게 된다.
그래서 감리단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감리단 자체에서도 시공사에서도 주말의 근무를 피한다.
공기 단축 초기에는 이러한 형편에도 공사의 시급성 때문에 시공사와 감리단이 협조해서 같이 주말 근무를 하다가 이제 4개월 정도 지나서 어느 정도 작업에 익숙해져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주말을 대비해 감리단이 해야할 일을 평일에 미리 챙겨 앞당겨 하면서 감리단의 주말 근무가 잠정적으로 거의 없어졌다.
이날도 주말에 감리단에서 해야 할 일을 전날 미리 하였고 그래서 감리단의 터널 담당자는 주말에 쉬었다.
대영의 터널 담당자 조차장이 양차장에게 확실한 인계를 하고 갔으면 좋았을 테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됐다.
토요일 오후 늦게 장비를 정비하고 터널 굴착을 시작하려던 인계자 양차장이 터널 굴착을 시작하려다 어제 암 판정한 것이 생각나 암판정 결과 공문을 찾았더니 조차장의 책상에서 처음에 판정한 굴착 타입을 연암으로 보고 B-type으로 결정한 공문이 보인다.
날자가 어제 날짜이고 암 판정위원회들의 서명이 들어간 감리단 공문이므로 양차장은 의심 없이 굴착 타입이 지보공의 간격이 1.35m인 B-type으로 하여 그대로 시공을 시켰다.
터널을 직접 굴착 시공하는 하도 업체 기능공이 그 타입이 아닐 것이라고 의견을 말했지만 암 판정 때면 언제나 같이하던 작업반장이 1차 B-type으로 판정 때는 그 자리에 같이 있었지만 암 판정 위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을 보고 암판정이 끝난 줄 알고 손님을 만나러 나가 2차 D-type으로 암 판정이 변경될 때는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2차로 암 판정이 변경된 것을 몰랐다.
그래서 기능공의 말을 듣고 혹시 하는 마음에 광주에 간 터널 담당자 조차장에게 전화했으나 어쩐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양차장 딴에는 확실히 한다고 다시 조차장 책상을 뒤졌지만, 다른 공문을 찾을 수 없어 이 공문이 맞는 것이라고 확신했고 더욱이 하루 하루의 진도를 따지는 판에 이틀간이나 일을 못해 공정이 많이 늦어 있는데 일을 않고 그대로 조차장이 출근하는 월요일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B-type 공문에 맞추어 시공을 했다.
터널 막장도 물을 먹으면 약해지지만, 시공 시에는 대부분의 막장이 물을 먹지 않아 연암과 같은 강도를 나타내어 무리 없이 일이 진행되었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 시간이 되었을 때는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 낮 동안까지 작업을 못해 늦어진 공정을 만회하기 위해 작업 조를 3교대로 하여 10.0여 미터의 굴착을 하고 숏크리트까지 모두가 완료하고 지금 막장에 나타난 암은 경암으로 바뀌어 다시 암 판정을 받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와 밤 그리고 일요일 낮과 밤 사이에 굴착한 그 구간은 단층이 일어나며 진흙층 토사가 암반 사이에 쨈처럼 끼었고 쨈은 오랜 세월 동안 굳어져 암반처럼 된 구간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굴착이 순조로워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어 계획량보다 일을 많이 한 양차장은 소장인 기철의 칭찬을 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월요일을 맞았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대영의 터널 담당자 조차장이 출근해서 양차장에게서 다시 인계를 받으면서 터널 시공이 D-type으로 하여야 할 구간이 B-type으로 잘 못 된 것을 알았고 나중에 한 암 판정 공문은 기철의 책상 위에 결재를 받기 위해 올라가 있었다.
굴착이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질 때 다시 한번 검토를 했어도 좋았을 텐데 양차장은 전문적인 터널 담당자가 아니라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 이다.
두 사람은 사건이 커진 것을 알았다.
암 판정대로 다시 시공하려면 이틀 동안 시공한 10.0m 나 되는 구간을 모두 헐어내고 다시 시공해야 하는데 암반에 뿜어 붙인 숏크리트 콘크리트는 굳어 철거하기도 어렵고 잘못하면 철거 도중에 낙반과 붕괴의 위험도 있고 추가로 발생하는 공사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려면 드릴 고장으로 공사 못 한 기간과 철거하고 다시 시공하려면 장비 고장으로 인한 공기 지연과 합쳐 전체 공기가 이십일 이상(철거에는 낙반에 우려가 있어 급하게 철거할 수가 없어 시일이 많이 소요)돼 공기가 늦어져 현재도 2002년 5월 준공에 문제가 생길까 염려인데 십 여일의 공기가 늦어지면 그 책임이 클 것 같다.
한참을 고민하던 두 사람은 같이 터널에 올라가 다시 자세히 현장을 둘러보고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
현장을 둘러본 결과 터널 굴착이 완료된 면에 아무 이상이 없고 몇 군데 숏크리트를 깨고 암상태를 보니 암이 단단하고 견고하여 연암으로 취급하여도 문제가 없을 것 같고 특히 터널 굴착 깊이에 따라 일정 간격으로 묻어 놓는 계측기에서도 아무런 징후가 없어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둘이만 알고 넘어가기로 했다.
이들이 조금만 더 생각을 해서 숏크리트를 모두 제거하지 않고 먼저 세워진 지보공들 중간에 새로 지보공을 세우도록 하고 새로 지보공을 세워야 할 곳에 숏크리트만 부분적으로 제거하고 지보공을 추가로 세우고 그 부분만 숏크리트를 다시 치는 것으로 하여 지보공만 더 세웠으면 그 간격이 0.7m 정도이므로 풍화대나 토사 구간의 0.8m 보다 지보공 간격이 좁아져 안전했을 테고 그래도 불안하면 나중에 라이닝 콘크리트를 칠 때 그 부분을 철근으로 보강하는 것으로 했으면 공기도 많이 뺏기지 않고 추가 공사비도 조금들이고 보강이 가능했을 터인데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 한 모양이다.
아니 사태를 윗사람들에게 보고했으면 어떻게든 보강 방법이 나와 보강이 되었을 텐데 이들은 공기 지연과 공사비 증가에 대한 책임 문제로 문책을 받을까 봐 그냥 넘어간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큰 불행이 될 줄 모르고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장비 고장으로 이틀이나 공사가 지연됐는데 시공된 구간을 제거하고 재시공하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공기가 이십 일이나 늦어지면 하는 공기에 대한 절박한 생각 그리고 추가로 발생할 공사비 등의 생각이 그렇게 안이한 생각을 하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금이라도 계획된 공기를 놓치면 준공을 못 맞추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그들을 그렇게 몰아간 것이다.
이렇게 B-type으로 그곳에 굴착이 완료된 후 다음에 연속적으로 진행된 굴착 발파로 단층대와 암반사이에 틈이 생기고 우기에 단층대가 지나는 계곡으로 흐르는 물 중의 일부가 침투하여 만들어진 지하수가 그 틈으로 스며들어 굳어있던 쨈을 녹여 단층과 암반과의 마찰력을 떨어뜨려면서 미끄러지는 단층대의 하중이 모두 터널구조에 가해지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한 터널이 붕괴가 된 것이다.
산으로 올라가 붕괴된 곳을 조사해 보니 직경 7.0〜8.m 정도가 사각 원추형으로 밑으로 빠졌고 단층대가 빠진 암반에는 물이 흐르고 미끄려진 표시를 내는 토사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00도로 건설공사 1공구 준공 시에는 각각 동탑 산업훈장과 석탑 산업훈장을 받으며 각광 받았던 대영건설과 기철은 하루아침에 사고로 사람을 죽인 죄인이 되고 방송과 신문에서는 건설공사에 늘 있는 안전 불감증에 의한 대형 사고라고 연일 떠들어 대는 바람에 또다시 전 건설인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점을 더욱 분석해 보면 건설공사 자체에서 사업이 축소되든지 공사 물량이 줄어들어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된 공사 기간 단축이 더 문제가 크다.
결론적인 이야기지만 2002 월드컵에 맞추어 6개월간의 공기를 단축시키느라 서둘지 않았어도 사고가 발생하였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유 있는 공사 기간을 가지고 시공을 했더라면 시공자가 하루 반 만에 10.0m 여를 굴착하는 그런 무리한 시공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월요일 출근한 시공사나 감리단 터널 담당자에게 문제점이 발견되어 어떤 방법으로든지 보완을 했을 것이고, 공기에 쫓기는 공사가 아니었으면 시공사 터널 담당자도 책임이 그렇게 크지 않아 터널 시공 상황을 보고하여 보완하도록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논리다. 그러나 세상의 비난에는 묻혀버리는 논리
그래서 사고가 나서 세상이 떠들썩해도 누구 하나 나서서 이런 논리를 펴는 사람이 없다.
그러면 처음부터 공사 단축에 동의하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 시절 우리나라 현실이 공공 공사에서 공사시행자가 요구하는 사항을 시공사가 반대할 수 있는 풍토인지
특히 국가에서 발주한 공사일 경우
기철이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자기의 책임을 통감하나 위와 같은 즉 정치적인 논리에 밀리어 공기를 단축하느라 공사를 서두르다 보니 이런 안전사고가 생기는데 하나의 커다란 원인이 됐다는 말을 했을 때 검사나 판사는 웃음으로 답을 했는데 그 웃음엔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기철은 상으로 받은 동탑 산업훈장도 있고 대영에서 고문변호사를 통해 많은 애를 쓰며 노력했으나 사람이 7명이나 죽은 대형 안전사고로 해서 재판에서 2년간 실형이 떨어졌고 대영은 1년간 건설부 공사를 수주할 수 없게 되었다.
수의를 입고 구치소에서 법원을 몇 번 오가며 재판을 받는 동안 기철의 마음은 상당히 피폐해졌다.
별 탈 없이 사회생활을 하며 굴지 회사의 임원이 되고 대개는 주위로부터 잘한다는 칭찬만 들으며 소위 말하는 성공 가도를 달려온 사람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에 처하면 일반 사람들 보다 더 심한 충격을 받는다고 하는데 지금 기철이 그런 상태인가 보다.
할 수만 있다면 재판이고 무엇이고 다 떨쳐버리고 어디론지 훌쩍 떠나버렸으면 좋겠다.
아무도 자기를 모르는 곳으로 그러나 마음뿐 부실 공사로 사람을 죽인 죄인이 되어 영어의 몸이 된 지금의 입장에서는 어림없는 희망 사항.
터널복구 공사는 물론 대영에서 자비를 들여하였다.
먼저 붕괴된 암석을 제거할 때 추가로 생길지 모를 암반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붕괴된 둘레에서 3.0m 정도 떨어져 5.0m 간격으로 붕괴된 둘레를 따라 경암까지 달하는 깊이로 보링을 하고 그곳에 급결제를 넣은 그라우팅을 하고 다시 그 열에서 바깥쪽으로 3.0m 떨어져서 붕괴된 둘레를 따라 5.0m 간격으로 보링을 하고 급결제를 넣은 그라우팅을 하였다.
그래서 붕괴선 둘레에 3.0 떨어져 5.0m 간격으로, 첫 번째 줄에서 다시 3.0m 떨어져서 5.0m 간격으로 두 줄의 그라우팅을 하였으며 나중 한 그라우팅 홀은 먼저 한 그라우팅 홀에 중간에 놓이게 하여 그라우팅 홀이 지그재그로 놓이게 배치하였다.
이렇게 그라우팅으로 추가 붕괴를 막은 후 붕괴된 암석을 들어내고 다시 파손된 라이닝 콘크리트와 지보공을 제거하고 터널굴착 D-type의 지보공을 0.8m 간격으로 세우고 지보공 뒤쪽으로 일회용 매설 거푸집을 세우고 숏크리트를 치고 방수공사를 했다.
방수공사는 방수쉬트를 붙이어 물을 차단하는 쉬트방수를 하고 방수공사 후 붕괴 면을 따라 흘러드는 물을 유도하기 위해 지름 10.0Cm정도의 유공관 맹암거를 묻어 배수로로 연결하고 철근을 조립하고 라이닝 콘크리트를 쳐서 터널내부 공사를 끝내고 터널 위 붕괴된 구명은 터널 위에서 3.0m까지 자갈로 채우고 그 위에 투수성 부직포를 깔고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마무리 하였다.
사고 수습을 하고, 기철의 재판을 뒷바라지하고, 터널복구 공사를 하며 또 그 사고로 1년간이나 건설부 발주공사를 수주할 수 없게 돼 심적 경제적 손해를 생각하며 대영 사장은 기철이 그렇게 공기 단축을 반대할 때 그 의견을 받아드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 터널에 대하여 너무 세밀히 설명하여 지루한 감이 없지 낳으나
사건 경위를 설멸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 지금은 모란이 피는 시기입니다. 남은 봄 즐기시길
잘읽었습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