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총구는 결코 식지 않을 것이다
- 홍범도 장군의 경고
짐승 잡는 일을 멈추고
인간 탈을 쓴 짐승의 사냥을 시작했을 때도
나는 이 일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줄 알았다
머지않아 다시 사냥터로 돌아가
짐승 잡는 일을 즐기리라 여겼었다.
인간 탈을 쓴 짐승이 그리 많을 줄 진정 몰랐었다.
내 평생 사냥터를 돌아다녔건만
그날들은 정말 잊을 수 없었다
봉오동 청산리
표적 안으로 들어온 짐승들 짐승들
피가 솟구치는 것에 전율을 느끼며
나는 이제 포수로 다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인간 탈을 쓴 짐승들의 무자비한 보복
그 속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느끼며
나는 비로소 이 일이 쉬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무지막지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원수들
더욱이 내 눈을 의심하게 한 건
동족 중에서도 원수들에 빌붙은 자들이 그리도 많았던 것이었다.
나는 그 뒤 원수보다 매국노를 잡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원수에 빌붙은 자들
제 동족을 팔아먹는 짐승보다 못한 놈들
그런 놈들이 있는 한
해방도 안 되고, 되어도 소용없다는 깨달음
이역만리에서 편안히 잠자던 나를
굳이 고향도 아닌 고국 땅으로 옮겨 온 건
고마운 일이지만 내가 바라던 바는 아니었다
원수들 앞잡이 하던 놈들이 설쳐대던
군사학교에 내 흉상을 세운 건 좋은 일이지만
그놈들이 살아 있는 한 그까짓 흉상이 대수이더냐
그래도 나는 믿는다
나를 이어서 싸우는 이들
인간의 탈을 쓴 원수와 그 앞잡이 매국노들
이 땅에서 쓸어버리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음에
내 총구는 결코 식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놈이라도 이 땅에 남기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