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콩밭에
사실 처음부터 자원봉사라는 것을 그리 크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 자신이 어린시절 캠프활동같은 걸 해본적이 없는지라, 경치좋은 물가나, 풀밭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유유히 구경하며, 나무밑에서 바람이나 쐬는게 어린이 캠프의 자원봉사 선생님이거니 했다.
신청서를 낼 당시 나는 지겨운 일상 생활이며, 괜한 자기 설움에 내 한 몸 추스르지 못해, 내장과 뇌수가 몸 밖으로 비질비질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그때 연수원에서 행사를 한다는 글을 보자마자 연수원 운동장의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떠오른 것이다. 솔직히 신청서를 내며 나는 연수원 뒤의 솔밭, 큰 미루나무 아래 평상, 한아름이 넘는 플라타너스와 밑둥의 베치, ‘아주 정치적인 오줌’을 싸는 개들 이런데 마음을 팔고 있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크는 거야’ 이런 생각과 함께 말이다.
▲연수원의 이름
강상국 국장과 영등포에서 신청서를 낸 자원봉사 선생님과 함께 곡성역에 내렸다. 뒷자리에 거만하게 몸을 던지며 ‘중앙 연수원’하니 택시 기사가 알아서 연수원 앞마당까지 데려다준다. 시골 구석에 있는 폐교를 ‘연수원’이란 세 글자만으로도 알아차리는걸 보니 지난 봄, 민주노동당 총선 당선자들이 이곳에서 생활한게 동네를 어지간히도 뒤집어 놓았나 보다. 왜 안그러겠나. 국회의원 열명과 수십명의 기자들이 몰려오고 뉴스며 신문에 그곳이 계속 나왔으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매일 폐교에서 슬리퍼 끌고 다니던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을 탄생시킨 정당의 실무자들이라니 놀랍기도 했을 것 같고. 게다가 ‘민주노동당’이라.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조선대 자원봉사자 5명은 미리 도착해 있었고, 조금 늦게 대구에서 자원봉사자 한분이 합류했다. 부산에서 내려온 자원봉사자는 하루 전에 도착했다는데 한바탕 사람들과 판을 벌이고 있었던 것 같다. 모두들 어지간히도 친숙해 보였다.
‘저녁을 먹자 마자 미루나무 밑에 누워버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상구 국장이 소집령을 때렸다. 쓰레빠를 끌고 미적미적 교실로 들어갔다.
내일부터 시작될 3박4일의 일정을 점검하고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하는 자리다. 대부분 모둠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놀아줘야 하는 프로그램인데 걱정이 소록소록 밀려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2학년은 옷갈아 입기나, 용변보기, 샤워같은 걸 모둠 선생님이 모두 챙겨줘야 한단다. 이럴수가. 내 우아한 꿈은 어찌 되는 걸까. 참가자 명단을 훑어보니 반 이상이 1,2학년 아이들이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게다가 생활지도에 대해 2시간 정도 강의를 해주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해 끝도 없이 열거하셨다. 밤에 화장실 가다 사라진 아이, 모기향 불이 큰불로 번진 일. 개울에서 수영하다 아이가 떠오르지 않은 사건, 벌에 쏘여 병원에 실려가거나, 장난치다 머리가 찢어지거나, 대열을 이탈해 실종되거나, 식중독에 지병에 싸움질 똥싸기. 아,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다. 내가 이 캠프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점점 커졌다.
▲게임의 법칙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아이들과 할 놀이들을 조금씩 해보기로 했다. 까먹었을지도 모르니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비석치기’ ‘얼음땡’ ‘땅따먹기’ ‘망까기’ ‘큰집 작은집’ ‘돼지 씨름’ 대부분 아는 놀이들이었다. 책자를 넘기며 옛이름들이 나올때마다 조금씩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직 살아있었구나, 비석치기. 반갑다, 망까기. 또 만나네, 그림자 밟기. 하지만 이 나이에 그 반가운 놀이들을 다시 하는건 그닥 쉬운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게임의 법칙’
우리 선생님들은 전남 5명, 경북 1명, 경남 1명, 서울 1명, 경기 1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지역마다 놀이 방식이 다른 것이었다.
가령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경우 우리 동네에서는 1. 술래에게 걸린 사람은 술래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한쪽으로 늘어선다. 2. 누군가 줄을 끊어주면 열나게 도망간다. 3. 술래에게 등을 채이면 술래가 된다.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데
경상도- 술래의 양쪽에 늘어선다.
전라도-손을 끊어주면 술래가 10을 세는 동안만 도망간다. 멈춘 상태에서 술래가 세발을 뛰어 손이 닿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
같은 복잡한 규칙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느것이 진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인지에 대해 우리들은 의견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
▲좌익 우선주의
우리들의 지역별 이전투구를 바라보던 강상구 국장이 협상을 내일로 미루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모두 일시에 자기지역 놀이를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음 순서 - 아침 체조용으로 준비한 올챙이송 배우기. 이게 보기에는 쉬워보여도, 막상 혼자 해볼라치면 여간 헛갈리는게 아니다.(못믿겠음 직접 해 보던가.)팔을 휘젓거나 발 동작등의 오른쪽 왼쪽이 조금씩 엇갈리고 있는데 강상구 국장이 이를 또 일거에 해소햇다.
“뭐든지 좌익이 좋은 것이니 모든 동작은 왼쪽 먼저로 통일합시다.”
우리는 좌익 우선주의를 적용해가면 밤 12시까지 뻣뻣한 몸으로 올챙이 체조를 연습했다.
“팔딸팔딱 개구리됐네” 사실 나야말로 “팔딱팔딱” 뛰고 싶은 밤이었다. 이 나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