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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갑절의 영력을 주옵소서(김영호)
열왕기하 2장 7절-14절
7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로되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우리는 영감이라고 이렇게 설명을 해서 표현을 했는데 사실은 영감의 갑절을 받는다는 거는 무슨 소리인지 뜻이 분명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됐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선지자들이 받아서 쓴 것이 성경책이다. 그러니까 이게 다 영감으로 쓴 책이다 그런 얘기인데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가면서 원하는 거는 무슨 성경을 쓰려고 지금 그러는 거는 아니고 이분은 영역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영역을 받으려고 이렇게 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거는 선지자란 누구냐 갑절의 영역을 받은 사람 또는 갑절의 영역을 사모하는 사람 이렇게 해서 엘리사와 같이 자기 스승이 받은 은혜의 갑절을 사모하면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라야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된다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되느냐. 왜 갑절의 영역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 왜 이것이 복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우리가 알아야죠. 첫째는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첫째는 권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받으면 권능을 받는다.
우리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엘리야 엘리사가 이렇게 갑절의 영역을 간과한 거는 그거는 자기의 스승 엘리야 선지자가 과연 무엇이 위대한 것이냐 하는 거를 알았어요. 그래서 그가 세상 승천할 때에도 땅에 서 있으면서 그를 우러러 바라보면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거는 이 갑질의 영역을 받아야 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거 뭐 받아도 좋고 안받아도 좋고 그냥 이렇게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일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깨달음이 없이 사모하는 마음 없이 긴장된 마음이 없이 사는 거는 나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큰 심판받는다고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이런 경각심을 가지고 깨달아 돌이켜야 하는데 오늘날 그런 게 너무나 없어요. 그래서 교회들이 다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의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눈물 흘리고 <하나님~>하고 애통하여 부르짖는 이런 것이 좀 있어야 되겠는데 이런 게 없잖아요. 그런 속에서 하나님 나 하나만이라도 정말로 하나님께 은혜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하기를 원합니다.
산골짝마다 밤중에는 사람들이 산에 가서 밤새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고, 은혜 달라고 하고 이런 사람들 많았구요. 우리 교회들도 성령 받아라 하는 부흥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서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은사를 맛보는 사람이 더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 가지고 더 충만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막 몸부림치고 금식하고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렸는데 지금은 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한 그래서 영역이 얼마나 중요한 건가, 성령 충만이 얼마나 중요한 건가 이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또 우리 성경에서 가치를 알아야 될 것을 연구하는 게 장자권이라고 하는 거죠. 이 장자권을 받아야 되는데 장자권에 대해서 오늘날 사람들은 감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빼앗기고 야곱을 죽이려고까지 했어요.
장자권 빼앗긴 거를 이렇게 애통해하고 이것을 어떻게든지 다시 찾으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현대인들은 장자권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알지 못하고 그런 거 뭐 있어도 고만 없어도 고만 하는 마음도 전혀 없고 이러니까 뭐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너에게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 청년은 재물이 많은 거로 예수님 말씀 듣고도 결국은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되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늘의 보화가 무엇인지를 몰랐던 거예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보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거를 깨달아야 되는데 그걸 깨달으면 이걸 다 버리고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보화를 받지 않겠습니까? 그랬으면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보화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인간은 결국 다 실패자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 믿노라고 하면서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교회에 백날 다니면 구하겠어요. 하늘의 부활을 받지 못했는데 장자권을 받지 못했는데 그리고 이 신령한 하늘의 영역을 받지 못하는데 그런 것 가지고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주님을 따라가겠습니까? 환난이 오고, 시험이 오면,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 팽개치고 도망가버릴 이 무가치한 인간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지 하겠습니다. 첫째는 가치를 알고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이렇게 사모하는 사람은 둘째로, 철저히 회개하는 거죠. 회개하지 않으면 이 귀하고 신령한 것이 오지를 못합니다. 회개하지 않은 더러운 마음에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깨끗한 은사가 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더욱 정렬하게 만들고 거룩하게 만들고 이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지만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해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요. <회개하면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 이 세례받는 게 회개한 거 아닙니까? 이렇게 하면은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우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거기에 여러 가지 은사들이 나타나고 성령께서 능력으로 나를 이끄셔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아름다운 일꾼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엘리사처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잘 따라가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에게는 엘리야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위대한 스승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분을 따라가려고 할 때에는 우리 앞에 여러 가지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여 잠깐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살려내고 우리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큰 역사의 일꾼으로 세워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6) 말라가는 시냇가에서
[왕상 17:1-7]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오늘 17장 1절에 보면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아합 왕을 만나 <내가 말하기 전에는 이 땅에 비도 오지 않고 이슬도 내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됐잖아요. 구약성경에는 얼마라고 하는 기간이 없어요.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3년 6개월 얘기를 하셨고 그다음에 야고보서에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게 했다>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지만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다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비를 내려 주셨고, 엘리야의 기도가 이렇게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하는 거를 말씀하면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의인들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용사들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엘리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 왕을 만나서 이렇게 선포해라>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는 엘리야를 숨겨주십니다. 이 그릿 시내가로 가서 거기에서 숨어있게 하셨습니다. 진짜로 비가 안 내리고 이슬도 안 내리잖아요. 그러니까 아합 왕은 어떻겠습니까? <아, 내가 하나님께 벌을 받는구나 하나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세요. 내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못된 짓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회개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완악한 인간들은 절대로 자기의 행위를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냇물도 다 말라서 점점 엘리야가 마실 수 있는 물조차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엘리야를 사렙다 과부의 집으로 보내시죠. 그래서 거기에서 계속 있었는데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말씀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겨뒀어요. 아합 왕이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는 거를 보고 화가 잔뜩 났습니다. 회개는 하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가죠. <엘리야를 잡아라> 포고를 내렸잖아요. 아마 이스라엘 나라의 군병들이 전부 엘리야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서 찾고 있었을 거예요. 집집마다 수색을 하고 어느 집에 이 엘리야가 숨어있지는 않나 전부 수색을 하고, 그리고 나라를 다 샅샅이 뒤지구 이렇게 했을 텐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다가 딱 숨겨 놓으시고 거기 살게 하시니까 찾는 게 헛수고한 거죠.
그러니까 이번에는 아마 아합이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아하! 엘리야가 외국으로 도망갔구나> 그래 가지고 이번에는 주변에 있는 나라 왕들에게 전부 공문을 보내가지고 혹시 당신 나라에 엘리야가 있거든 잡아서 보내주소. 그 주변에 있는 나라 왕들이 전부 자기 나라를 수색해 가지고 엘리야가 어디 있나 다 찾아보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속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숨겨 놓으셨습니다.
말라가는 시냇가에서 엘리야가 배우고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이런 훈련을 통해 능력을 주시고 이 능력을 받은 그 위에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믿음의 새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그리 시냇가에 엘리야를 숨겨 놓으시고 이 땅에는 계속 재앙을 내리십니다. 비가 오지 않고 이슬이 내리지 않아요. 이 말은 이슬이라고 하는 거는 하늘의 보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이런 속에서 엘리야는 뭐를 느껴요? 하나님의 기적을 자꾸 체험하는 거잖아요. 날은 가물어서 햇볕이 쌩쌩 내려 쬐고 물은 바싹바싹 말라 들어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행하셔서 당신의 종을 지켜주시오. 아무도 붙잡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 혹시 그 인근에 군인들이 찾으러 왔을지도 모르죠. 또는 와서 엘리야를 보았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저들의 눈을 멀게 하시면 그 사람이 엘리야인 줄 알아보지도 못하고 웬 거지가 와서 그러고 있나 그러고는 그냥 지나쳐 버렸을 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아무도 건드릴 사람이 없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면 누구든지 배부르게 그리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갈 수가 있다. 여하간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님의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면서 살았어요. 그런 가운데서 엘리야는 어떻게 기도하겠어요.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분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이렇게 지켜주시는구나 하는 그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것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종들을 부르실 때 또는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첫째로 나타나는 게 기적입니다. 하나님 살아계신 기적을 보여요. 모세 때에도 10가지 재앙을 쏟아내리셨어요. 그리고 유월절에 애굽 집은 장자가 다 죽지만 이스라엘 집은 장자가 다 죽지 않았어요.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 건너듯이 건너가게 만들어 주셨고 뒤쫓아오던 애굽의 군사는 철병거와 함께 바닷속에 다 수장되어 멸망당하고 말았고 이런 놀라운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는데 첫째 기적이 이렇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거란 말이에요.
둘째로, 엘리야가 깨달은 것은 숨어 있는 생활의 가치를 알아야 된다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엘리야를 드러내지 않고 숨겨두셨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종들을 숨겨두세요. 하나님은 <너는 더 숨어 있어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제일 가까이에서 모시는 스랍천사들 이사야 6장 시작에 그런 말씀을 하고 있죠. <스랍천사는 날개가 6개인데 앞에 있는 두 날개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고 뒤에 있는 두 날개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고 실제로 날아다니는 데 쓰는 거는 가운데 있는 두 날개 밖에는 아니하더라>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일수록 자기 얼굴을 가려라, 자기 발을 가려라, 숨어 있어야 된다는 말이죠.
셋째로 하나님은 한 걸음씩만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니까 <앞으로 될 일까지 다 알려고 애쓰지 마라> 하는 말씀이에요. 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냇가에 숨겨두실 때 <너 여기 한 달만 있어라. 그러면 내가 그다음에 너를 어디 어디로 옮겨주겠다> 이런 말씀 하시지 않았어요. <너 여기에 1년만 있어라. 그다음엔 내가 어떻게 하겠다> 이런 말씀도 안 하셨어요. <그릿 시냇가에 숨어있어라> 그냥 거기 가서 있는 거예요. 이게 기한도 없어요. 언제 이것이 끝날지도 몰라요. 이 다음에 내가 어디로 가야 되는지 그런 것도 몰라요. 하나님은 딱 고것만 가르쳐 주셨지 그다음에 얼마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 된다 이거를 가르쳐주시지 않는단 말이에요.
넷째로, 엘리야가 또 여기에서 배운 거는 이 시냇물이 말라갑니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지금 말라가고 있는 게 있어요. 엘리야는 날마다 시냇물을 봅니다. 물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엘리야에게 어떤 마음이 생겼을까? 여기서 물이 다 말라져 없어지면 하나님은 또 다른 방법을 택해서 나에게 물을 주실 것이다. 땅에서 샘물이 솟아나서 그 물을 마시고 살 수도 있게 하실 거고, 하나님은 방법이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까 사실 내가 물 마시느냐 못 마시느냐 그런 거는 중요한 게 아니죠. 우리 선지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거예요. 날마다 까마귀가 양식을 물어다 주는데 그것만 봐도 우리에게 먹을 거 마실 거 입을 거 그거 안 주시겠어요.
다섯째로, 자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엘리야는 낙심했을까요? 아무리 기도하고, 기도해도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신다는 약속을 안 해. 이 기간이 3년 6개월이라는 거를 우리는 알아요. 그렇지만 엘리야는 3년 6개월 만에 가뭄을 그치고 비를 내려주겠다, 이런 약속을 엘리야에게는 안 가르쳐 주셨으니까 엘리야는 몰라요. 그냥 기도만 하는 것뿐이지.
그렇지만 엘리야와 저 일반 백성들하고 크게 다른 점이 하나가 있어요. 하나님 모르는 저 백성들은 거기에 낙심해요. 좌절해요. 그런 속에서 엘리야는 말라가는 강물을 보면서 자기의 모습을 보는 거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것은 우리를 향한 시련이다. 이건 재앙이다. 요것은 잠깐 있다가 지나갈 것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시대가 열린다. 지금은 이렇게 가난하고 어렵게 구차하게 살아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새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겠어요.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죠. 여기서 3년 6개월 동안 밤낮으로 기도하고 애쓰고 몸부림치던 그런 가운데서 능력을 받아 갈멜산에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큰 능력으로 무장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똑바로 깨닫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나가는 놀라운 새역사를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7) 말라가는 시냇가에서
[왕상 17:1-7]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오늘 17장 1절에 보면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아합 왕을 만나 <내가 말하기 전에는 이 땅에 비도 오지 않고 이슬도 내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됐잖아요. 구약성경에는 얼마라고 하는 기간이 없어요.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3년 6개월 얘기를 하셨고 그다음에 야고보서에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게 했다>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사람이지만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다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비를 내려 주셨고, 엘리야의 기도가 이렇게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하는 거를 말씀하면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의인들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용사들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엘리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 왕을 만나서 이렇게 선포해라>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는 엘리야를 숨겨주십니다. 이 그릿 시내가로 가서 거기에서 숨어있게 하셨습니다. 진짜로 비가 안 내리고 이슬도 안 내리잖아요. 그러니까 아합 왕은 어떻겠습니까? <아, 내가 하나님께 벌을 받는구나 하나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세요. 내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못된 짓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회개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완악한 인간들은 절대로 자기의 행위를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냇물도 다 말라서 점점 엘리야가 마실 수 있는 물조차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엘리야를 사렙다 과부의 집으로 보내시죠. 그래서 거기에서 계속 있었는데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말씀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겨뒀어요. 아합 왕이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는 거를 보고 화가 잔뜩 났습니다. 회개는 하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가죠. <엘리야를 잡아라> 포고를 내렸잖아요. 아마 이스라엘 나라의 군병들이 전부 엘리야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서 찾고 있었을 거예요. 집집마다 수색을 하고 어느 집에 이 엘리야가 숨어있지는 않나 전부 수색을 하고, 그리고 나라를 다 샅샅이 뒤지구 이렇게 했을 텐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다가 딱 숨겨 놓으시고 거기 살게 하시니까 찾는 게 헛수고한 거죠.
그러니까 이번에는 아마 아합이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아하! 엘리야가 외국으로 도망갔구나> 그래 가지고 이번에는 주변에 있는 나라 왕들에게 전부 공문을 보내가지고 혹시 당신 나라에 엘리야가 있거든 잡아서 보내주소. 그 주변에 있는 나라 왕들이 전부 자기 나라를 수색해 가지고 엘리야가 어디 있나 다 찾아보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속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숨겨 놓으셨습니다.
말라가는 시냇가에서 엘리야가 배우고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이런 훈련을 통해 능력을 주시고 이 능력을 받은 그 위에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믿음의 새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그리 시냇가에 엘리야를 숨겨 놓으시고 이 땅에는 계속 재앙을 내리십니다. 비가 오지 않고 이슬이 내리지 않아요. 이 말은 이슬이라고 하는 거는 하늘의 보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이런 속에서 엘리야는 뭐를 느껴요? 하나님의 기적을 자꾸 체험하는 거잖아요. 날은 가물어서 햇볕이 쌩쌩 내려 쬐고 물은 바싹바싹 말라 들어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행하셔서 당신의 종을 지켜주시오. 아무도 붙잡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 혹시 그 인근에 군인들이 찾으러 왔을지도 모르죠. 또는 와서 엘리야를 보았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저들의 눈을 멀게 하시면 그 사람이 엘리야인 줄 알아보지도 못하고 웬 거지가 와서 그러고 있나 그러고는 그냥 지나쳐 버렸을 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아무도 건드릴 사람이 없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면 누구든지 배부르게 그리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갈 수가 있다. 여하간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님의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면서 살았어요. 그런 가운데서 엘리야는 어떻게 기도하겠어요.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분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이렇게 지켜주시는구나 하는 그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것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종들을 부르실 때 또는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첫째로 나타나는 게 기적입니다. 하나님 살아계신 기적을 보여요. 모세 때에도 10가지 재앙을 쏟아내리셨어요. 그리고 유월절에 애굽 집은 장자가 다 죽지만 이스라엘 집은 장자가 다 죽지 않았어요.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 건너듯이 건너가게 만들어 주셨고 뒤쫓아오던 애굽의 군사는 철병거와 함께 바닷속에 다 수장되어 멸망당하고 말았고 이런 놀라운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는데 첫째 기적이 이렇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거란 말이에요.
둘째로, 엘리야가 깨달은 것은 숨어 있는 생활의 가치를 알아야 된다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엘리야를 드러내지 않고 숨겨두셨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종들을 숨겨두세요. 하나님은 <너는 더 숨어 있어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제일 가까이에서 모시는 스랍천사들 이사야 6장 시작에 그런 말씀을 하고 있죠. <스랍천사는 날개가 6개인데 앞에 있는 두 날개로 자기의 얼굴을 가렸고 뒤에 있는 두 날개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고 실제로 날아다니는 데 쓰는 거는 가운데 있는 두 날개 밖에는 아니하더라>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일수록 자기 얼굴을 가려라, 자기 발을 가려라, 숨어 있어야 된다는 말이죠.
셋째로 하나님은 한 걸음씩만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니까 <앞으로 될 일까지 다 알려고 애쓰지 마라> 하는 말씀이에요. 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냇가에 숨겨두실 때 <너 여기 한 달만 있어라. 그러면 내가 그다음에 너를 어디 어디로 옮겨주겠다> 이런 말씀 하시지 않았어요. <너 여기에 1년만 있어라. 그다음엔 내가 어떻게 하겠다> 이런 말씀도 안 하셨어요. <그릿 시냇가에 숨어있어라> 그냥 거기 가서 있는 거예요. 이게 기한도 없어요. 언제 이것이 끝날지도 몰라요. 이 다음에 내가 어디로 가야 되는지 그런 것도 몰라요. 하나님은 딱 고것만 가르쳐 주셨지 그다음에 얼마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 된다 이거를 가르쳐주시지 않는단 말이에요.
넷째로, 엘리야가 또 여기에서 배운 거는 이 시냇물이 말라갑니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지금 말라가고 있는 게 있어요. 엘리야는 날마다 시냇물을 봅니다. 물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엘리야에게 어떤 마음이 생겼을까? 여기서 물이 다 말라져 없어지면 하나님은 또 다른 방법을 택해서 나에게 물을 주실 것이다. 땅에서 샘물이 솟아나서 그 물을 마시고 살 수도 있게 하실 거고, 하나님은 방법이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까 사실 내가 물 마시느냐 못 마시느냐 그런 거는 중요한 게 아니죠. 우리 선지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거예요. 날마다 까마귀가 양식을 물어다 주는데 그것만 봐도 우리에게 먹을 거 마실 거 입을 거 그거 안 주시겠어요.
다섯째로, 자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엘리야는 낙심했을까요? 아무리 기도하고, 기도해도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신다는 약속을 안 해. 이 기간이 3년 6개월이라는 거를 우리는 알아요. 그렇지만 엘리야는 3년 6개월 만에 가뭄을 그치고 비를 내려주겠다, 이런 약속을 엘리야에게는 안 가르쳐 주셨으니까 엘리야는 몰라요. 그냥 기도만 하는 것뿐이지.
그렇지만 엘리야와 저 일반 백성들하고 크게 다른 점이 하나가 있어요. 하나님 모르는 저 백성들은 거기에 낙심해요. 좌절해요. 그런 속에서 엘리야는 말라가는 강물을 보면서 자기의 모습을 보는 거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것은 우리를 향한 시련이다. 이건 재앙이다. 요것은 잠깐 있다가 지나갈 것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시대가 열린다. 지금은 이렇게 가난하고 어렵게 구차하게 살아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새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겠어요.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죠. 여기서 3년 6개월 동안 밤낮으로 기도하고 애쓰고 몸부림치던 그런 가운데서 능력을 받아 갈멜산에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큰 능력으로 무장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똑바로 깨닫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나가는 놀라운 새역사를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8) 너희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던 줄을 알라
에스겔 33장
30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2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에스겔 2장 5절에도 똑같이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었음을 알리다> 이제 그런 말씀이에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었던 것을 알 것이라> 나아만 장군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알아야 합니다. 이방 사람들도 다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약 성경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대결입니다. 그리고 참 선지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괴로움은 뭐냐, 이거는 거짓 선지자들이 참 선지자들을 박해하는 거예요. <나도 선지자다> 하는 자들이 사실은 참 선지자를 괴롭히고 대적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일반적으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거를 우리가 살펴봐야지 하겠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다른가 참 선지자는 항상 그 외치는 메시지가 똑같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너희가 돌아오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 외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하는 거를 외쳤어요.
둘째로 참 선지자들은 너희가 죄를 회개하지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 하는 거를 가르쳐요. 그렇지만 거짓 선지자는 아무리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고 우리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또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에서도 보면 그는 자기의 조국이 멸망당한다고 선포할 때 얼마나 싫었겠습니까? 그거 좋아서 외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백성들에게 <여러분 죄를 회개하세요.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망합니다> 이렇게 외치고 다닐 때 보세요. 그냥 자기만 괴로운 것만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도 전부 예레미야를 미워하고 그를 공격하고, 매국노라고 하고, 역적이라고 하고, 이렇게 하면서 예레미야만 없애버리면 아무 일도 없이 없게 되는 것처럼 이런 착각 속에서 이 사람들이 참 선지자들을 박해했습니다.
셋째 특징은 참 선지자는 많은 박해를 받았고, 반대로 거짓 선지자는 참 선지자들을 박해하는 사람이었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 마지막 때에도 똑같습니다. 지금도 바른 소리 외치면 이 거짓 선지자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요. 정말 바르게 외치면 반드시 박해받고 사람들 귀에 듣기 좋은 소리 하면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이래서 선지자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는 뭐가 다르냐 참 선지자는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당한 사람들이고 거짓 선지자는 참 선지자를 박해한 사람이고 그래서 사람들 듣기 좋은 소리 잘하고 세상적으로 인기를 얻고 권세와 결탁해가지고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선생 노릇도 하고 기도해 주는 사람이 되고 이런 식으로 인간에게 아첨해가지고 영접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졌더라 하는 것입니다.
자 또 우리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는 어떻게 다른가? 참 선지자는 인간들에게 고난을 받고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더욱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애통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러잖아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사람의 말을 따를 것인가 사람의 지혜로 일할 것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일할 것인가. 사람의 지혜로 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 일하면 잘될 것을 알아요. 박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그거는 지옥 가는 지름길이고 정말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면 박해가 많고 고난이 많고 어려움이 끝없이 찾아오지만, 그것이 바로 생명길이고 그것이 바른 길이라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만난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 선지자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위에 서야 하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공부합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그대로예요. 시편 1편 2절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죠. 그건 시편 19편에도 마찬가지, 시편 119편에도 마찬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그저 눈만 뜨면 하나님 말씀 이게 신명기 6장 쉐마라고 하는 거기에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아 들어라> 이게 쉐마인데요. <쉐마 이스라엘아 들어라. 여호와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니 너희가 그의 율법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라. 길을 갈 때도 눈을 감았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항상, 그래서 이 단에도 전부 성경 써놓고 집에도 문설주에도 붙여놓고 벽에도 붙여놓고 천장에도 붙여놓고 이렇게 다 해놓으라>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날마다 열심히 읽는 사람 못 깨달아도 괜찮아요. 우리 옛날 어른들도 그랬어요. 우리 옛날 우리 조상들이 배운 책들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천자문 하나 떼기도 쉽지가 않은 이야기인데 거기에다가 이제 명심보감이라는 것도 배우고 수학이라는 것도 배우고 또 이제 공자의 가슴 대학이라고 하는 거, 논어라고 하는 거 이런 거 있잖아요. 맹자도 있고 이런 그 어려운 책들을 읽으려면 그게 공부가 되겠습니까? 얼마나 어려워요. 그게 한자 하나하나를 전부 익혀야 되는데 그런데 옛날에는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렇게 하면서 이해가 안 된다고 모른다고 하니까 천 번을 읽어라, 그렇게 하면 뜻은 저절로 우러난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도 천번을 읽으래요. 그러면 한자로 써놓은 것도 더듬더듬거려가면서 천번을 읽어도 뜻이 드러난다는데 하물며 우리가 한글로 된 이 성경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이건 얼마나 더 쉽습니까? 한자 하나도 몰라도 얼마든지 우리 성경은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그냥 나도 성경을 천독을 해야 되겠다, 이런 결심을 굳게 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거죠.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네가 내 말씀을 사랑하는구나, 내가 너에게 복을 줘야 되겠다> 하면 말씀을 깨닫는 복을 주시고 말씀에 약속하신 복을 내려주시고 이렇게 해서 모든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참 선지자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습니다. 말씀 받는 게 그저 세상 일하고 놀고 살다가 받은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고 다윗처럼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 말씀에 서서 이렇게 하나님 잘 섬겼더니 하나님께서 말씀도 주시고 계시도 주시고 별별 희한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이러면서 한량없는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큰 복을 받아가지고 살아야지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 놀라우신 은총을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혜롭고 충성된 종이 되어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힘입어 영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마음에 새기면서 잠자지 않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새롭게 변화받는 복된 성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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