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해 첫날 진해로 가서 호젓한 산길을 좀 걸었다. 자은초등학교에서 시루봉으로 오르는 산길로 들어섰다. 해맞이 겸해 시루봉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길섶에는 차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봄날에 시민들이 채집해 가도록 하는 모양이었다. 상록 잎은 불이 잘 붙지 않아 방화림 역할까지 하는 차나무였다. 산허리 안민고갯길에서 오는 임도와 만나게 되었다.
나는 시루봉으로 오르질 않고 임도 따라 계속 걸었다. 길 위로 천자봉과 만장대가 우뚝했다. 대발령 근처에 이르니 stx조선소가 눈에 들어왔다. 거가대교 구조물도 나타났다. 장목에서 저도 사이 사장교 부분이었다. 신항만의 거대한 타워크레인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만장대 아래서 백일 고요아침 산길로 접어들었다. 만장대 아래까지는 산행객이 보였으나 백일 고요아침 산길은 호젓했다.
만장대 아래서 백일마을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려 걸었다. 멀리 시루봉이 아스라이 보였다. 건너편 산허리는 소사 생태길이었다. 나는 이태 전 겨울 진해시민회관에서 안민고개를 지나 대발령까지 왔다. 대발령에서 백일마을을 돌아 소사 생태길을 걸어 웅동까지 갔다. 꼬박 하루해가 걸렸다. 그날 진해 드림로드 전 구간을 걸었던 셈이다. 자은동에서 백일마을까지는 아주 짧은 구간이다.
세밑부터 정초까지 날씨가 차가웠다. 만장대 아래서 보온병에 담아간 따뜻한 물로 컵라면을 끓여 요기했다. 산중에 있는 백일마을은 참 아늑했다. 아침 해가 밝게 떠오르는 마을임이 분명했다. 노인이라도 한 분 만나면 마을 이름의 유래를 물어보고 싶었다만 만나지 못했다. 마을 거의 따 빠져나간 개울가에 큰 당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웅천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창원으로 되돌아왔다.
초이튿날, 아침나절 낙동강 강가로 나가보려다 그냥 집에서 책을 몇 줄 읽었다. 날씨도 추웠지만 4대강사업으로 살풍경이 된 강가라 나서길 머뭇거렸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가 되어야 강변이 제대로 정비되지 싶다. 나는 그간 낙동강을 강둑 따라 많이 걸었다. 다대포와 을숙도에서 구포와 물금을 거쳤다. 삼랑진에서 생림을 건넜다. 수산과 본포를 지나 남지와 박진나루까지도 걸었다.
나는 점심을 일찍 먹고 강가 대신 냇가를 걷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굴현고개를 넘어 화천리에 내렸다. 감계 시내를 따라 둑길을 걸었다. 감계지구 택지조성으로 쏟아져 내린 토사가 강바닥을 채웠다. 시든 갈대와 물억새가 바람에 흔들렸다. 남국으로 내려가질 않은 왜가리 한 마리가 큰 날개를 훠이훠이 저으며 날았다. 눈앞에 백월산 바위봉우리가 우뚝했다. 텅 빈 논바닥이었다.
개울가 갯버들은 한겨울이라도 가지에 수액이 오르는 듯 했다. 월촌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개울 따라 계속 걸었다. 텃밭에는 못다 거둔 푸성귀가 듬성듬성했다. 겨울에도 파란 이파리였다. 매실나무는 꽃눈이 볼록볼록했다. 얼음이 얼지 않은 늪에 고방오리 가족이 평화로이 헤엄쳤다. 누군가 가꾸는 길가 텃밭에는 지난가을 심어둔 마늘 싹이 돋아 파릇했다. 완두콩 싹도 마찬가지였다.
인적 드문 농막에는 방사시킨 닭들이 모이를 찾고 있었다. 누렁이 한 마리가 나를 보더니만 컹컹거려댔다. 나는 바삐 걸어 둑을 건너갔다. 대부분 논은 일모작지대였다만 일부는 보리를 심어두었다. 보리는 삼동에도 시들지 않고 파란 싹을 보여주었다. 겨우내 뻗친 서릿발도 아랑곳 않고 꿋꿋이 이겨내는 보리다. 나는 겨울 들녘 보리를 볼 때마다 다시 깨친다. 인내심을 보리한테 배운다.
산모롱이를 돌자 유료 낚시터가 나왔다. 연못이 빙판이라 낚시꾼은 없었다. 내가 화천리부터 개울 따라 걸은 지 두 시간 남짓 지나자 마금산 온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신리 못에서 둑을 내려서 들길을 걸었다. 온천장 앞 들판은 낙동강 준설토로 농지를 돋우고 있었다. 홍수 피해를 예방하고 토질을 바꾸는 농지개량사업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온천을 본 김에 몸을 담갔다. 1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