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의 위기**
" 나는 먼저 이 글을 쓰는 시간이 마치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두드리는 시간과도 같다!"
한국 시가 그 위기를 맞이한 위치는 결코 오늘과 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벌써 예고된 위치로 최초 최남선이 "해에게 소년에게" 를 발표한 그 싯점부터
이미 싹트기 시작한 단계이다. 그러나 그 최초 과정부터 현재를 비쳐준다는 점은 너무 광대하여
한국의 100년의 시 역사를 다시 써야하며 그로 인해 가장 민감한 부분만을 여기서 비춰주고자 한다.
우선 현재 한국시의 대가로 손꼽히는 고은씨의 2006년 12월 13일 자신이 쓴 글에 [나의 시가 걸어온 글]에
"저는 미국으로 초빙받아가 동부의 하버드 대와 서부의 버클리 대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저는 '시는 책 속에 들어 있지 않다. 시는 이론 속에 들어 있지 않다. 시는 여러분의 가슴속에 들어 있다."- 이렇게
당시 미국의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말은 곧 고은씨가 진정한 고도의 시세계를 아직 깨닫지 못한
싯점입니다. 한마디로 고은씨는 한국시가 낳은 정서적 감정에 치우친 탓인데, 이것은 한국의 자유시가 최초 들어온 그 싯점에
이미 한국은 일본인들에게 매수되어가는 과정이었고, 특히 그 업압된 실체를 당시 시인들은 보다 뛰어난 관점에서 판단하여
그 미래적 실체를 밝혀주지 못한 점입니다.(나는 여기서 미국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시인인 롱펠로우를 떠올립니다) 어느 시대나 시인은 가난하며 또한 그 시대에 정작 희생적 가치에 해당합니다.
만약 그 반대의 인물이라면 그것은 극소수의 인물이며 특히 남다른 비결을 갖춘 고독한 방랑자 일것입니다.
그에 이어 당시 고은씨는 이런 얘길 뒤에 털어놓았는데-
학문적인 것 혹은 과학적인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만,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울음이 속 깊게 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새가 노래한다'라고 하지 않고, '새가 운다'고 하지요. 돼지도 꿀꿀꿀 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봄밤의 소쩍새, 여름날의 뻐꾸기, 겨울날 기러기 들이 지나가면서 저 하늘 높이 떨어뜨리는 것, 우리는 그것을 '노래한다'든지 '소리를 낸다'고 표현하지 않고 '운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두고 1950년대의 전후 모더니스트들은 한국말은 왜 노래한다 하지 않고 왜 운다고 하느냐면서 문제를 제기했지요. 모더니즘의 시각에서 보면, 모국어의 이런 표현 형식은 엉터리이고 진부했겠지요.
- 위 내용은 앞에서 내가 지적한 그 감상주의적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 광경에 해당합니다. (역자)
3년 전에 불란서에 가서 시 낭송을 할 때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노래한다는 말 대신 운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운다. 따라서 나도 울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 내 시도 울음이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그 말을 들은 청중들이 뭔가 무중력 상태로 떨어진 것 같은 충격을 받더군요. 특히 불란서 시인들은 그 말에 미쳐서 한국에서는 '운다고 하느냐. 운다고 하느냐'면서 크게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모두 잘 알다시피 불란서 시인 하면 폴 발레리 등 아주 지적인 시를 쓰는 사람들인데, 운다는 말에 크게 감명을 받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고은)
- 여기서 폴 발레리를 그 예로 끌어들인 점은 이미 시인의 시각이 마지막 퇴락한 길목임을 명백히 제시한 위치입니다. 폴 발레리는 누구보다 그의 시에 철학적 명제가 가장 또렷한 인물입니다. 그의 장시-"해변의 묘지" 가 그것을 잘 대변해주는 장면입니다.
과연 고은씨는 그 시를 올바로 읽어본 경험이 있었던지? 특히 한국어의 모호점이 단순한 그 감정적 이완법칙인지, 아님 아직도 개인이 그 순환작용을 올바로 익히지못해 나타난 위치인지 그것도 역시 의심스럽군요? 한국어를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쉽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모두 가장 어려운 언어라고 얘길하지요- 바로 그 안에 전체 숨은 답이 있습니다. 한국어의 장. 단점을 문학자가 올바로 파악하여 사용할 때 비로소 그 문학적 가치가 높아진다는 점이며, 더 중요한 점은 언어적 형식놀음에 그쳐 그 내용이 없는 글이나 시는 결국 그 사치성만 눈부실 뿐이다. 결국 한국시의 100년의 전체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언어적 형식인 감정적 시의 차원에 머문 싯점이며, 일제 강정기의 저항시인들과 김소월, 또한 60년대 박인환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시의 전체적 맥락이 모두 같은 방향임을 일깨울 수 있다. 다행스레 그 중 단 한사람의 예외적 인물은 곧 조병화 시인이다. 그 인물은 무엇보다 시의 깊이성은 도달치못하지만 나름대로 시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았단 평가이다-
아래 글은 과거 써둔 어느 분의 글을 실어드립니다..
**한국문학의 과대평가
문학의 편에서 고은, 서 정주가 과대 평가 되었다고 하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스스로 시에 대해 최고 일인자를 자청하는 시의 전문가라서 소설가는 논하고 싶지 않다.
이 상 시의 난해성을 들어 과대 평가 되었다는 내용에는 전혀 동의 하지 못한다. 왜냐면 "오감도1"을 예로 든다면 "오감도1"이 바로 영국 시인들이 수 백년 전부터 시는 구어체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던 바로 그 구어체 시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구어체 시에 대한 뜻이 왜곡 되어 있다. 구어체 시란 口語와 전혀 연관성도 없는데 우리나라 교육자들은 동일시해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이 얼마나 무지한 소치인가.
고은을 문단에 추천한 서 정주의 시를 보면 그가 진정 시인의 경지에 오른 시인일까 의구심마저 든다. 고은은 미당의 언저리도 못 밑친다. 헌데 그들의 명성이나 문단의 위치는 어떤가.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미당의 시들 비교적 잘 알려지고 최근엔 고은씨가 미당을 폄하하는 내용 중에 포함 된 "자화상"을 보면 아주 잘 나타난다.
결론 부터 밝히면 이런 문장을 시라고 발표 한다는 것은 시인으로 창피한 일이다. 시상 포착은 훌륭한데 작법부터 일그러져 결국 운율을 형상화하는 실패 했다.
윤 동주님이 쓴 같은 제목의 시"자화상"을 아시는 분들은 아실것이다.
유명한 두명의 시인이 쓴 같은 제목의 시를 놓고 평가해 보면 미당의 "자화상" 윤 동주님의 "자화상"과 엄청난 수준 차가 들어 난다. 그러므로 미당의 수준은 의심스렁루 수밖에 없다. 더구나 "푸르른 날" 같은 시는 아마추어도 탈피 하지못한 수준이라 더더욱 의심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단적으로 제시한다면 시란 운율로 모든 것이 들어나는 문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율이란 우리 교육에서 배우는 3.4 조니 4.4. 조니하는 시조적 음률(리듬)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왜냐면 현대시의 장르상 현대 시의 운율은 시조적 음률(리듬)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시의 운율이란 시의 구체성을 파악했을 때 들어나는 내포성에서 확인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육에서는 추상적 상징적 시의 대명사처럼 가르치는 이 상님의 "오감도"가 영국 시인들이 말하는 구어체 시라는 것이 밝혀 진다. 더불어 어렵다 난해 하다는 김 수영님의 시 중 "공자의 생활 난" 같은 시도 구어체 시라는 사실이 들어난다.
운율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미개한 대한민국의 문학 수준이라서 잘 쓴 구어체 시가 추상적 상징적 시로 왜곡 된다는 말이다.
구어체 시로 예를 든 "오감도1"의 율격은 풍자 시류이고 내재율은 운율 시라고 할 수 있다.
윤 동주님의 "자화상"도 구어체 시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미당의 "자화상"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중 구어체 시는 극히 찾기 힘들다.
언젠가 문창과를 졸업한 4촌 여동생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제까지 본 미당의 시 중 구어체 시는 오직 한 편 "국화 옆에서"라고 한적이 있다. 그리고 설명을 추가 하기를 만약 시인이 시를 쓸 때 "국화 옆에서"가 국화에 관한 시로 작품을 완성 한 것이라면 구어체 시가 아니라고 하며, 미당 작품의 대체적 수준 상 구어체 시로 보기에 의문스러운 점이 많아 꿈 보다 해몽이 좋은 것 아닌가 싶다고도 했다.
기형도가 실제 보다 과대 평가된다는 내용에는 동의한다기 보다 아마추어 수준도 탈피 하지못한 수준이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오히려 실망스럽고, 백석의 작품은 별로 접하지 못해 단언하기 힘들지만 내가 본 몇편의 작품은 시인의 시로는 수준이하라 기형도 수준이나 다름 없다고 본다.
위에 거론 된 인물 들 중 진정 시인의 경지에 오른 훌륭한 시인은 김 수영님과 이 상님이다. 물론 윤 동주님도 싱니의 반열에 오른 분이다 그러나 애써 서열을 정한다면 김 수영님이나 이 상님 보다 아래 단계다.
위와 같이 결론을 낼 수 있는 근거는 시에서 가장 중요한 운율을 파악해 본 결과에서다.
시인이라는 직업은 운율을 형상화하는 작업인이다. 미당이나 고은의 문장처럼 묘사나 서술로 일관된 문장 완성은 습작 단계에서나 하는 짓이라서 시인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걸면 창피한 것이다.
시란 [운율 중심의 문맥으로 완성 된 문장]을 말하는 것이지 그저 시의 형식만 빌어다 시 같은 문장을 양상하는 형태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 때는 운문이라고도 햇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문단이 오늘 날처럼 미개하고 시에 대한 지식이 왜곡 되도록 이끈 원흉들이 실제 보다 과대 평가 되는 명성을 누리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 지면 그 실체가 밝혀 질 텐데, 운율이 뭔지 구어체 시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무지한 수구 세력들이 원로라는 위치에서 문단의 궤도를 장악한 채 활개를 치고 있다. 그러므로
발전적 도모는 고사하고 퇴보를 거듭하며 아사직전에 몰려 있다.
국민 정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 제대로 알아야 한다.
글쓴이- 로버트 김
- 끝으로 여기서 내가 로버트 김에게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곧 한국 시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 중 김수영과 이상. 그리고 또 윤동주를 꼽았는데, 전혀 그 깊이에의 타당성이 없다. 한마디로 김수영은 풀이 쓰러진 장면이요, 이상은 고립주의자의 이상체요, 윤동주는 처절한 패배주의자의 실체이다. 오직 단 한사람을 꼽으라면 그 100년의 역사에 만해 한용운 시인이다. 그 분은 특히 禪시조를 최초 한글로 쓴 인물이며, (그러나 님의 침묵과 몇몇 작품은 비평가에 의해 개인적 연애시가 훗날 국가의 거룩한 시처럼 빛난 위치이다) 특히 만해 선생의 사상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지만 전혀 그 근거성을 찾기 어렵다.( 비평가의 과대 평가에 불과하다) , 만약 그 깊은 영향을 받았다면 만해선생은 분명 그 깊이로 타고르의 "기탄잘리" (1913년 동양인으로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상적 작품에 대한 보다 깊고 심오한 연작시가 탄생했을 것이다. 난 그 시의 답시로 약 100년 후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철학을 융합시킨 사상시집 "거룩한 송가" 를 발간했다. 물론 그 후에 발간된 철학시집 "환희의 송가" 는 먼저 서구 철학시를 연구한 단계에서 탄생했으나 순위는 뒤에 책으로 발간된 상태이다.)
시인. 철학자- 손홍집
첫댓글 이경자샘 자료 올려 주신 것 감사합니다. 카페가 풍요로와 지겠읍니다. ^^* 시를 단지 운율만으로 평하는 로버트 김의 시각은 편협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형도와 백석을 같은 수준이리라 생각하는 것도 무지의 소산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잘 깨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영미 문학과 한국문학의 역사를 비교하면 한글의 역사자체가 짧은 것을 고려하게 될 것 입니다. 아마 우리에게 그 숙제가 남겨져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