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97
[묘한 예의를 지키며]
글의 제목을 이렇게 정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다른 제목이 생각나지 않으니 ‘묘한 예의를 지키며’
라고 정해놓고 이 글을 쓰고자 한다.
나는 술을 즐긴다. 그렇다고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그저 몸에서 이만하면 즐겁다는 신호를 주면 그 정도까
지인데, 혼자 마실 때는 소주 한 병이 정량이다. 즉 소주 한 병이면 내 몸이 즐거워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혼 술도 잘 하는 편이다. 때로는 내가 술에 중독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술을
일부러 찾는 편은 아니니 중독은 아닐 것이다.
다만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서는 술을 핑계 대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자신하는 것은 아직 내 가족들이 내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나 스스로도 어떨
때에는 취한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고 싶을 때가 있지만 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서울 모임에서 적당
히 마시고 집에 오면 술이 다 깨고, 그래서 서운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또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느 모임을 가든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그것도 술 때문이다. 차를 핑계로 술을 안 마신다
는 것, 즉 다른 말로 하면 술안주 감이 있는데 술을 포기한다는 것은 안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이상한
생각 때문이다.
어떨 때 아내와 함께 차를 끌고 항구에 가면 그곳에서는 칼국수 정도를 먹고 회를 매운탕거리와 함께 싸서
집에 오고, 그리고 집에서 회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는데, 한 병에서 한 잔 정도는 남겨 둔 후 매운탕의 생선
대가리를 안주로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생선 대가리는 가족 중 누구도 손을 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술을 마실 때의 안주는 무엇일까? 무엇이든 안주 거리가 되면 안주인 것이고. 따라서 순댓국,
육개장, 등 탕 종류나 육류종류나 그저 안주 감이면 술을 마시는데, 그 이유는 안주에 대한 나름의 배려(?)를
하느라 하는 짓이다. 분명 안주거리인데 술을 안 마신다는 것은 그 안주거리를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고집(?), 그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먹는가? 탕이든 국이든 숟가락으로 그 내용의 양을 대충 가늠한 후 그 양에 따라서 술과 안주를 먹는
데 안주를 건져 먹는 양과 술을 한 잔 남은 양까지를 맞춰 마시고, 국물에 밥을 말은 후 그 밥으로 남은 한 잔
의 술을 마시는 것, 그것이 내가 술을 마시는 방식인데, 그렇게 마시고 나면 괜히 안주에게 떳떳하다는 생각
을 하게 되는 것이다.
조치원에 이사 온 후 ‘수구레 국밥’을 알게 되었다. 처음 그 국물의 향을 맞으면서 떠오른 것이 ‘어머니’였다.
그래서 수구레 국밥이라는 시를 썼고 식당에 선물을 했는데, 그 식당에 그 시가 소개되고 있다. 수구레, 가난
한 백성들이 솟증 돋을 때 소의 가죽에 붙어 있는 질긴 부위를 끓여서 먹은 음식, 그 음식에서 어머니를 생각
한 것이다.
지금은 한 달에 두세 번 그 식당에 가서 수구레 국밥에 술을 한 병 마시고 나오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의 국밥
생각이 나고. 어머니의 손대중 눈대중으로 간을 맞춰 끓여내시는 국을 먹는 기분이 들고 시골의 향기를 기억
하곤 하는 것이다.
여러 지방에 여행을 가면 그 지방의 토속음식이나 그 지방에서 많이 먹는 음식을 찾아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
인데, 내가 사는 지역에 이런 음식이 있다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이유가 되었기에 이 글을 쓰는 오늘
도 국밥을 한 그릇 먹고 쓰는 것이다. (2021. 1. 30)
아! 혹 나를 만나러 조치원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이 국밥을 대접해 드리고 싶다.
*여행은 1. 시간 있을 때 떠나라. 2. 가용 가능한 돈으로만 하라. 3. 가장 싸고 느리게 하라. 그러면 만 원으
로도 가능하고, 어제 갔던 곳에서도 또 다른 글을 만날 수 있다.
첫댓글 취기가 확 달아난다니..신기해요.. 술에 대한 예의가 바르(?)십니다..ㅎㅎ 전 집에 들어오는 순간 넋 다운 되던데...ㅎㅎ
댁으로 돌아오시면 넋 다운되시는 것은
술 드시는 동안 실수하면 안된 다는 긴장이
자신도 모르게 몸이 알아서 대처하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술을 드셔도 바르게 드시는 분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