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감성으로 가득 찬 둘째 이모가 근 2년만에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교사인 이모는 학교에서 마련한 현장연수 참가차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의 교육 시설들을 돌아보며 미국 교육의 현황과 실태에 대해 둘러봤고, 이런 연수가 끝나자마자 우리 식구들을 보려 시애틀로 날아온 것입니다. 만일 미국에 오게 되면 늘 이모부와 함께였는데, 이모만 이렇게 따로 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마침 마틴 루터 킹 데이를 낀 연휴여서, 이모가 도착한 날 공항에도 마중나갈 수 있었고, 일요일엔 성당에 함께 갔다가 긴 드라이브도 해 봤고, 어제는 시애틀 다운타운을 거쳐 제가 일하고 있는 브로드웨이에 들러 식사를 하고, 또 제 책에도 소개된 바 있는 커피하우스 '에스프레소 비바체 로스테리아'에 들러 커피를 한 잔 함께 마시고, 코스트코의 탄생지이기도 한 '커클랜드'에 들러 사진 몇 장 찍고 나서, 워싱턴주 와인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우딘빌에 들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자리잡은 '샤토 생 미셸' 와이너리에 들러 모처럼 와이너리에서만 판매하는 와인도 몇 병 집어오고, 저녁엔 올리브 가든이라는 편안한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날 구입한 와인 한 병과, 미리 가져갔던 와인 한 병을 뜯어 즐거운 만찬을 가졌습니다.
모처럼 방문했던 우딘빌... 정말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샤토 생 미셸 와이너리를 들른 것이 몇년 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캐나다 다녀왔을 때였으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셈입니다. 예전엔 테이스팅비를 따로 받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1인당 5달러씩의 테이스팅 비용을 낸다는 것이 틀렸고, 좀 특별한 와인들을 시음할 경우 10달러를 받고 있었습니다. 테이스팅을 할 경우, 해당 와인의 가격에서 10%인가를 빼주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그냥 와인을 맛볼 수 있게 해 주던 인심과 낭만은 옛날 이야기가 된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토 생 미셸이 거저 만들어진 와이너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도 계속해 이노베이션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날 맛본 와인들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모와 어머니는 5달러씩의 비용을 내고 달콤한 리즐링 와인을 시리즈로 시음하셨고, 저는 10 달러를 내고 이날 준비된 와인들을 마셨습니다. 재밌는 건, 샤토 생 미셸에서 만들어낸 생소와 아우스트랄이라고 하는 샤토 생 미셸의 샤토뇌프뒤파프 스타일의 와인이었는데, 100% 생소 와인은 프랑스라면 전혀 나오지 않을 스타일이었고, 꽤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와인은 '리미티드 시리즈'라는 이름을 달고, 이곳에서 만드는 무스캇 카넬리나 혹은 에토스 시리즈처럼 일반 마켓들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오로지 와이너리 안에서만 판매되는 와인입니다. 그만큼 와이너리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내놓았다는 이야기지요. 이 두 와인은 그럴 만 했습니다. 가격은 30달러 선이어서 조금 부담은 갔지만, 그래도 맛을 보고 나선 사지 않을 수 없을 듯 했습니다.
샤토 생 미셸은 그 정원이 참 예쁘지요. 여름이면 각종 공연을 유치해 와인 애호가는 물론 음악애호가들도 여기의 주말 음악회에 찾아오곤 합니다. 와이너리 안에서는 이 밖에도 이 와이너리는 많은 개인 행사들도 유치하고 있는데, 저는 혹시 나중에 지호의 결혼식을 이곳에서 치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샤토 생 미셸은 명실공히 워싱턴주에서 최고로 오래 된 와이너리이자, 그 자매 와이너리들인 콜럼비아 크레스트, 스노퀄미 등을 포함하고 있는 스팀슨 레인(지금은 생 미셸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아예 바꿨습니다) 컴퍼니의 기함 같은 곳입니다. 이들은 일종의 네고시앙 개념으로서 자사가 소유한 와인들을 세계로 널리 알리고 있고, 한국에도 꽤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후 한 때 와이너리의 정원을 거닐며 그 정취를 만끽한 우리는 그 길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미리 준비했던 로버트 몬다비의 나파밸리 카버네 소비뇽, 그리고 샤토 생 미셸 와이너리에서 산 무스캇 카넬리 한 병을 들고서 '올리브 가든'이라는 대중 이태리 식당을 찾았습니다. 제가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일단 코키지가 병당 7달러 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지간한 다운타운의 식당들은 모두 15-20 달러를 받는지라 부담이 큰데, 이곳만큼은 변함없이 계속 7달러를 받고 있어서 가져간 와인을 열기에 부담이 적습니다. 게다가 음식도 당연히 와인과 잘 어울리는 것들이어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요.
아무튼, 와이너리와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낭만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오래 전 이곳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의 기분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또 결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아내와 이 와이너리를 함께 찾았을 때의 기쁨이나, 혹은 아이들과 캐나다에 여행을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잠깐 들렀던 이 와이너리에서 가졌던 소소한 낭만들은 어머니와 이모와 함게 이곳을 찾자마자 다시 가슴 속에서 되살아옵니다. 가끔 우리가 시간 속에 묻어둔 것들을 어떤 계기로 꺼낼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적지 않은 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시금 되돌이키는 것은 삶의 에너지가 되고, 와인은 마치 마법의 포션처럼 우리로 하여금 미소짓도록 만듭니다.
아내가 일 나가는 바람에 함께 하진 못했지만, 다음 연휴때는 꼭 아내와 함께 다시 샤토 생 미셸을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공유한 추억들을 함께 꺼내볼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세상 살아가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일테니까요.
시애틀에서...
|
출처: Seattle Story 원문보기 글쓴이: 권종상
첫댓글 어머니도 선생님이셨고, 그 동생분인 이모님도 같은 교육자 집안이시네요.
근데 사진으로 뵙는 이모님이 마치 영화 배우에다가 새댁 같아요.
혼자 다니시면 매우 위험하시겠는 걸
권 형도 멋지시지만 두 분 인물이 매우 출중하십니다 그려
네...저도 같은 생각을 했네요
참 멋지고 아름다우신 분들이시란 느낌이네요...
샤로니 온냐요
온냐도 아름다우신 분이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