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초희(1563~1589) 여류 시인>
玲瓏花影覆瑤碁(영롱화영복요기) 영롱한 매화꽃 옥 바둑판에 흩어져 있고
日午松蔭花子遲(일오송음화자지) 대낮 소나무 그늘에서 꽃 바둑돌 놓아보네
溪畔白龍新賭得(계반백룡신도득) 시냇가 백룡을 내기바둑으로 새로 얻었으니
夕陽騎出向天池(석양기출향천지) 노을 지면 올라타고 하늘연못 향해 가리라*
허난설헌은 동양 삼국을 통틀어 최고의 여류시인이라 할 수 있다.
바둑을 두며 시를 읊는 여인이라...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지 않은가 !
햇볕이 쨍쨍 내려쬐이는 한여름 시원한 소나무 그늘에 모시적삼을 곱게 차려 입은 아리따운 여인이 앉아 있다.
왼 손엔 부채를 들고, 가늘고 긴 하얀 오른손엔 꽃무늬가 새겨진 바둑돌이 들려있다.
17개(당시는 17줄 바둑판으로 생각)의 매화무늬가 새겨진 바둑판은 이따금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한 빛을 발한다.
여인은 간혹 긴 한 숨을 내쉰다.
15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왔지만 청상과부가 따로 없다.
수려한 외모에다 주색잡기에 능한 서방은 아내 따윈 관심 밖이고 주야장창 기생집에 파고 살다시피 하니,
부부간에 雲雨之情을 나눠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달 전 한양에서 내려온 백도령은 초희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개울가에 움막을 짓고 과거 공부를 하고 있는 수려한 외모의 도령이다.
나이는 18세 정도 되려나.
한여름 밤 더위를 피해 개울가로 멱을 감으러 갔다가, 초희는 기겁을 하며 몸을 숨긴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개울에서 흰 물체가 어른 거렸기 때문이다.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백도령이다.
하얀 裸身이 달빛을 받아 번득거렸다.
다부진 체격은 앉아서 공부만 하는 서생이 아니었다.
큰 키에 넓은 어깨, 복부에 뚜렷한 식스팩은 택견으로 단련된 몸이 분명하다.
숨을 죽이며 쳐다보는 초희 입에선 가녀린 신음 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온다.
이내 초희는 깜작 놀라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다.
한적한 오후, 이글거리는 땡볕을 피해 초희는 소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대나무 돗자리 위에는 매화문향이 선명한 옥 바둑판이 놓여 있다.
초희는 며칠째 매화문향 바둑판위에 바둑돌을 놓아보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같다.
그 누구와도 바둑을 두지 않고 오직 혼자서 가만히 바둑돌을 놓아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침내 백도령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내 바둑판에 관심을 보인다.
“정말 좋은 바둑판이군요.” “이런 바둑판은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네, 집안 보물로 대대로 내려온 바둑판입니다.”
“이건 바둑돌이네요.” “바둑돌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네요.”
“네, 최고급 백합 바둑돌입니다.”
“이런 바둑판에서 바둑둬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한 수 둘 수 있을까요 ?”
“그냥은 아니 됩니다.”
“그러면, 돈을 드릴까요?”
“어찌 돈을 받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그럼, 어찌 해야 되지요.”
“내기를 하셔야 됩니다.”
“내~내기라구요”
▲<영화 "황진이"중에서>
백도령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다.
“그러하옵니다.”
“그럼, 무슨 내기를 원하시는지, 어디 말씀해 보시지요.”
“도령님이 이기시면 이 바둑판과 바둑돌을 드리지요.”
“제가 지면 어찌해야 하는지요.”
“제 소원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무슨 소원인지는 몰라도 전 그저 과거 공부하는 가난한 백면서생일 뿐입니다.”
“도령님은 능히 제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내기를 하죠.”
두 사람은 대낮부터 바둑을 두기 시작하여 서쪽 하늘에 노을이 깔려서야 끝났다.
초희의 한 집 승이다.
“실력이 대단하시군요. 제가 졌으니 이제 어떡해야 되지요.”
“제 소원은 칠월칠석날 해가 지면 말씀드리지요.”
칠월 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백도령과 초희는 약속대로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며 나란히 서있다.
“이젠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보시죠.”
“제 소원은 배를 타고 함께 바다로 나갔다가 다음날 해가 뜨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음, 알겠습니다.”
“거문고와 술은 이미 준비해두었습니다. 바둑판과 바둑돌두요.”
백도령과 초희는 밤새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두며 달빛아래에서 거문고를 탔다.
넘실대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鏡浦湖에서 그렇게 새벽까지 놀았다.
첫댓글 초희와 백도령의 진진한 이야기 재미나고 의미깊게 읽었습니다
잠시 이런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대낮부터 서쪽 하늘에 노을이 깔릴때까지 두었다 하니....
바둑을 두면서 충분히 생각하고 두어야 재미난 바둑이 되고 후회없는 내용이 될 것인데....
중급이하의 바둑을 두신분들 대부분 너무 많이 생각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한판에 30분 내지 1시간정도의 바둑을 두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물님 멋들어진 음악과 이야기 고맙고 감사합니다
젊은 남녀가 바둑으로 대화를 하고 서로를 탐색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결렸는가 보네요.
상대에게 제촉보다는 충분히 수를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심이 좋을 듯...
아름다운 동양화가 연상되는, 그리고 한편의 드라마 같은 - 멋진 이야기입니다,,
바둑이 함께하여, 깊이를 더합니다 ~ 감사합니다 ~
기예를 사랑하시는 총무님~~
행사 진행에 항상 고생이 많으십니다.
허초희가 허난설헌이던가?
26살에 세상을 떠나?
그 젊은 나이에..........그 천재시인이..
생몰일은 꽃다운 26살이 맞는군요.
문답은 허구인듯....
동생도 글재주가 천재였고 큰벼슬까지했는데
나중에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죽었지
그 유명한 홍길동전 의 허균..
천재의 한, 조선에서 태어난 것-여자로 태어난 것-결혼 잘못한 것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인가요. 사범님?
영롱한 매화꽃 옥 바둑판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표현이 너무도 멋진 표현입니다
다물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샛별사랑님 ~ 보고싶어요 ~~
바쁘시지만, 컴에서나마 자주 뵈어요 ~~
샛별사랑님! 반갑습니다.
용기를 주시는 댓글에 감사를 드리며
온라인에서라도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샛별사랑님 요즘 오데가계세요?
매번두리번 살펴도 샛별사랑님 안보여..목빼고 보다가 목길어졌어요.^ ^
으음~~~
바둑을 손으로 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둔 것같은 기분입니다.
갑자기 경포호에 가고 싶네요,,,
경포호!
뭇 시인 묵객이 다녀갔을 그곳에서 막걸리 한사발.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