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첫날밤, 풀어헤친 새색시의 옷고름 같다'던 섬진강은 전북 진안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그 긴긴 옷고름을 풀어헤치며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河東이란 이름에서 큰 강의 동쪽 마을이라는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사이를 가르며 남해로 들어간다.
보통 강의 발원지에 대해 여러 이견이 있으며, 섬진강도 마찬가지여서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진안 마이산 설이 우세했다. 아직도 약간의 논란이 있는것 같긴 하지만 현재는 천상데미('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란 뜻이다) 아래 데미샘으로 얼추 낙찰되어진 것 같다.
발원지는 통상적으로 하류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서 가장 긴 지류를 형성하는 물의 첫 출발주자를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대략 낙찰된 우리나라 강의 발원지를 보면 한강은 태백 검룡소이고, 낙동강도 역시 태백 황지이고, 금강은 전북 진안과 맞붙은 장수군 뜬봉샘이라 한다. 즉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이웃사촌이고 금강과 섬진강 또한 겨의 형제간이나 진배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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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샘 섬진강 발원지인 천상데미 아래 데미샘, 천상데미란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란 뜻이다. 다른 사람이 우기지 못하게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
ⓒ 한봉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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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전북 장수군에 가면 수분리란 마을이 있고, 그 동네에 수분재라는 고개가 있다. 水分이라 하면 당연히 물을 나눈다는 말인데 수분재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즉 고개 이쪽으로 빗물이 떨어지면 그 물은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고개 저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금강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더 극적으로 얘기하자면 수분재 한가운데에 양철지붕을 한 집이 한 채 있는데, 빗물이 지붕 이쪽으로 토독~하고 떨어지면 섬진강, 저쪽으로 투둑~하고 떨어지면 금강이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서는 사이좋게 벗하며 아옹다옹 내려온 이웃 빗물들이 단 몇 센티 차이로 영영 생이별을 한다는 것이다.
섬진강의 섬은 두꺼비 섬(蟾)자 이다. 여기에는 이런 유래가 전해진다. 고려 말, 왜구가 섬진강을 따라 거슬러 쳐들어왔단다. 그 때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장~~하고 나타나는 무리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두꺼비떼였다. 두꺼비가 떼로 지어서 허벌나게 울어대니, 간이 콩알만한 왜구놈들이 기겁을 하고는 허천나게 도망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때부터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 해서 섬진강이라 불렀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야기의 진위를 따질 필요도 없지만 한 가지 추측해 볼 수 있는 건,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그만큼 섬진강에 두꺼비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전남 광양 다압면에 있는 섬진마을에 가면 이러한 섬진강 유래비와 두꺼비상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그러면 그 이전부터 몇 천 년 흘러온 섬진강의 본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몇 해 전에,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데미샘을 직접 두발 딛고 올라선 적이 있었다. 갈만한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그곳에도 푯말 하나 서 있는데, 이렇게 적혀있다. '섬진강은 단군시대에는 모래내, 백제시대에는 다사강, 고려초에는 두치강으로 불리우다가...'.
이름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모래내나 다사강이라는 이름은 그만큼 모래가 많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 숨겨진 이 강을 처음 발견한다면 분명히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그만큼 여전히 많은 모래를 품고 있는 것이 섬진강이다. 바닷가 해수욕장 같은 모래사장을 볼 수 있는 강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이것도 마냥 기쁘게 기억할 수가 없게 됐다. 이 땅의 모든 강이 4대강 개발이라는 어이없는 삽질로 난도질당하고 있으니, 강에서 모래를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심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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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섬진강에 가면 한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볼 수 있다. |
ⓒ 한봉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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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모래가 아니라 두꺼비로 정했으니, 그곳에 적혀있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기록에서 보이는 달래강으로 이야기를 풀어야겠다.
섬진강의 원래 이름은 달래강이었다고도 한다. 달래강은 원래 달나루강이었고, 달나루가 변해서 달래가 되었단다(굳이 문법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달나루를 수천 번 읽어보시라.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달래로 읊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암튼 그렇게 해서 섬진의 '진'에 해당하는 '나루'는 '래'와 관계를 가지는데, 그렇다면 '섬'에 해당되는 '달'은 무슨 관계가 있어서 거기에 붙었을까?
달? 누구나 쉽게 생각하듯이 하늘에 떠 있는 그 달이다. 지금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언젠가 국문학적으로 달이 섬으로 읽히는 무슨 법칙인가를 읽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전설 따라 삼천리를 따라가면 달에는 두꺼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그럼 해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옛사람들은 해에는 까마귀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혹시 고구려 벽화를 본 적이 있는가? 해 속에 삼족오가 있는 벽화,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주몽'이 판을 친 적이 있는데 그 드라마에서 시작을 알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삼족오였다(삼족오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 논할 성질이 아니므로, 이 정도만 언급하는 것으로 한다).
그러면 여기서 일단 한 가지는 정리된다. 해에는 까마귀, 달에는 두꺼비가 그 안방마님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뭔가 좀 허전하다. 그래서 쥐어짠 머리로 하나 더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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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볕 좋은 날, 섬진강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방법. |
ⓒ 한봉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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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두꺼비가 살게 된 이야기다. 중국 역사책 십팔사략을 만화로 본적이 있는데, 거기에 예와 항아란 부부의 얘기가 나온다.
혹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을 것이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이 땅에 해 열개가 한꺼번에 뜬 일이 있다. 해가 하나만 떠도 더운데 열 개가 뜨니 얼마나 더울 것인가? 원래 열 개의 해는 모두 천신의 아들로서 서로 돌아가면서 하나씩 뜨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이 작당하고 한꺼번에 뜬 것이다. 그러니 땅 위의 모든 생명체는 다 말라죽게 생겨버렸다.
이것을 보다 못한 천신은 활의 명수 '예'를 해결사로 내려 보낸다. 역시 예는 활의 명수답게 공중의 해를 하나씩 쏴서 떨어뜨린다. 드디어 마지막 하나의 해가 남아서 활시위를 당기려는데 이 땅의 왕이 사정을 한다. 마지막 하나마저 떨어뜨리면 이 땅에 해가 모두 사라지니 제발 하나만은 남겨두라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 뜨고 있는 해가 그 때 목숨을 부지한 마지막 그 하나란다. 역시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이다.
암튼, 이 지경이 되니 아무래도 천신이 화가 난다. 자기가 시켜놓고도 예가 자기 자식을 9명이나 죽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벌로써 아내인 항아와 함께 지상으로 내쫓고 만다. 나쁜 천신이다.
지상으로 내쫓긴 예와 항아에게 당장 닥친 걱정거리는 시한부 목숨이라는데 있었다. 좋게 하늘에 살았으면 평생 죽을 걱정이 없는데 땅위로 쫓겨나니 땅위의 인간들처럼 때가 되면 죽어야 될 팔자가 되어버린 거다.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던 예와 항아는 마침내 땅위에 살면서도 죽지 않는 알약을 가지고 있다는 서왕모를 찾아가 사정을 한다.
그래서 어렵사리 알약 두 알을 받아온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한 알씩 먹으면 둘이 평생 죽지 않고 살지만, 한 사람이 두 알을 먹으면 그 사람은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늘 그렇듯 인간은 이런 시험에 들게 마련이다).
집으로 돌아온 예는 좋은 날 택일하여 함께 약을 먹자고 항아하고 약조를 하는데, 항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옛날에 살던 천상이 그리운 것이다. 항아가 이선희의 '아~~옛날이여'란 노래를 불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 그리움에 사무쳐 알약 두 알을 혼자 먹어버린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혼자 천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천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항아가 괘씸한 것이다. 그래서 괘씸죄에 걸린 항아를 천상에서 받아주질 않고 대신 달에 가서 평생 두꺼비 모습으로 살게 만들었다나 어쨌다나. 뭐 그런 이야기다.
그러니 달래강이 섬진강이 되고 거기에 두꺼비가 엮이게 된 건 이렇듯 다 얼기설기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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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암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과 구례벌판 섬진강에 가면 사성암에 올라가 보자. 그곳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과 구례벌판, 저 강을 시멘트로 발라서 직선으로 만들면 느낌이 어떻겠는가? |
ⓒ 한봉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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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쓸려고 했을 때 허접한 여행기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려다 보니, 이야기가 오히려 전설을 따라간 듯하다. 하지만 이 글이 어떤 식으로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진'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입안에서 옹알거리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요즘 이 땅의 많은 강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몸살 정도가 아니다. 무면허 의사에게 강제로 전신 성형수술을 당하고 있다. 단순한 몸살이라면 조금 휴식을 취하거나, 약간의 처방만으로도 원래 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잘못한 성형수술은 여간해선 원 상태로 회복할 수가 없다. 하물며, 무면허 의사가 원하지도 않는 환자에게 제멋대로 칼질을 해댄다면, 이후에 아무리 용한 의사가 오더라도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건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어느 강인들 흐르지 않는 강이 없듯이, 사연 한 두개쯤 가지지 않은 강이 있겠는가마는, 몇 십년 후, 우리의 후세대들이 시멘트로 발라버린 이 땅의 모든 강을 똑같은 모습과 사연으로 기억할 것 같아 그것이 걱정스럽다. 따라서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가 좀 더 우리 강에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주어야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섬진강은 어떤 글이나 사진으로서도 그 말을 다하지 못한다는 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섬진강은 직접 만나서 눈보다는 가슴의 조리개를 좀 더 열고 빨아들여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사적인 얘기이지만, 매년 찾는 섬진강은 만날 때마다 나에게 속삭이며 유혹한다. '그대의 삶의 가치를 전복시켜라' 라고 말이다. 사람들도 기회가 되면 섬진강이 은밀하게 속삭이는 말 하나쯤 간직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