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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봇(bot), 육아AI글쓴이 강명관 / 등록일 2018-11-09 10: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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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임신이 확인되자 우리 부부는 ‘엄마봇(bot)’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할부대금을 갚아나갈 것이 적잖이 걱정되었지만, 그만한 값은 충분히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아내는 천신만고 끝에 얻은 직장을 그만두었다(사실은 쫓겨난 것이다!). 좁은 아파트에 갇혀 24시간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몸과 마음은 피폐해진 아내는 입에 ‘엄마봇’을 달고 살았다. 다른 사람 다 있는 엄마봇을 왜 사지 않고 이렇게 사람을 고생시키느냐고 나를 나무랐다. 정말이지 첫째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나날이 전쟁터의 뻘구덩이 참호에서 뒹구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둘째의 임신이 확인되자 엄마봇을 구입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육아문제는 해결되었는데
출산을 한 달 쯤 남기고 아내와 나는 서둘러 서울에서 가장 큰 엄마봇 제작회사를 찾아갔다. 엄마봇은 남성과 여성의 형태로, 또는 중성의 형태로 만들 수 있는데, 우리 부부는 30대 초반 중성의 모습을 주문했다. 거의 일주일이 걸린 조사와 검사 끝에 우리 두 사람의 유전자 정보와 체형과 음성, 행동의 특징, 개인사(個人史)가 남김없이 엄마봇에 입력되었다. 이런 까닭에 엄마봇은 생김새도, 말도, 행동도 우리 부부와 거의 같다.
엄마봇은 최신 ‘육아AI’를 장착하고 있다. 사람 엄마와는 달리 엄마봇은 육아에 관한 방대한 최신의 지식을 갖고 있다. 아이의 신체, 지능, 정서의 발달 상황을 정확하게 체크하고 교정할 수 있다. 소아과의 의료지식, 아동심리학 등을 충분히 갖춘 것은 물론이다. 아이의 병은 물론이고, 울면 왜 우는지 원인을 찾아내어 다독이고 재운다. 밥투정에도 훌륭하게 대처해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가 결핍되지 않도록 한다. 아이를 위해 수천 가지 요리를 할 수도 있는 것은 불문가지다. 엄마봇은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귀찮아하지 않는다. 짜증을 내는 법도 없고 소리를 지르는 법도 없다. 언제나 상냥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노래, 춤은 언제라도 들려줄 수 있고 보여줄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 엄마봇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째 아이의 공부를 돌보기도 한다. 엄마봇이 21세기 후반 최고의 히트상품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출산 후 약간의 조리기간을 거쳐 병원에서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 날부터 엄마봇은 아이를 안고 키우기 시작했다. 엄마봇은 자신이 특별히 조제한 젖을 젖가슴에 넣어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는 엄마봇의 품속에서 엄마봇과 눈을 맞추며 자라고 있다. 엄마봇은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유모차를 끌고 정확한 시간에 산책을 나간다. 엄마봇이 집에 온 뒤로 우리 부부는 육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다. 첫째를 키울 때는 엄두도 못 내던 공연과 전시회는 물론이고, 짧은 해외여행도 갈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엄마봇은 아이를 아무 탈 없이 잘 키우고 있었다. 아이도 우리 부부의 부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눈치였다.
엄마봇이 남긴 문제는
엄마봇을 구입한 뒤로 첫째를 키울 때 육아로 인한 부부 사이의 갈등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할부로 구입한 엄마봇의 대금 상환 문제다. 엄마봇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돈도 적지 않다(정기적으로 업그레드 해 줘야 한다). 사실 엄마봇의 할부대금만이 아니다. 집도 자동자도 모두 할부로 구입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나 역시 비정규직이다. 아내는 얼마 전 전에 다니던 직장에 파트타임 자리를 얻었다. 주위를 돌아보면 다들 그렇게 산다. 실업수당을 받거나 아니면 파트타임이거나, 좀 괜찮다는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알아보면 임시직이다. 모두들 정규직을 찾으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얼마 전 아내와 돈 문제로 약간의 다툼이 있었는데, 확실한 정규직을 얻기 전에는 해결 방법이 막연하다. 이게 가장 큰 걱정거리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둘째 문제다. 며칠 전 아내가 한 번 안으려 했더니, 둘째는 악을 쓰면서 엄마봇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엄마봇이 달래어 아내에게 건네주기는 했지만, 아내는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 첫째도 요즘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엄마봇에게로 달려간다. 우리 부부에게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세상은 나날이 발전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정말 사는 것이 편리해졌다데, 요즘 마음이 왜 이리 팍팍한지 모르겠다.
- 글쓴이 : 강 명 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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