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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 및 연극 무대 활동
| 어릴 때는 ‘김해시’에서 자랐는데 시골에서 자란 것이 연기의 밑거름이 된 듯하다. 서민적인 분위기, 정겨운 인물들을 연출하는 것이 아무래도 수월하다. - 97.08 씨네21 인터뷰 中 - |
송강호는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면 죽림리에서 태어나 김해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워낙 남의 흉내를 잘내 친구들을 자주 웃기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면서 스스로도 연기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게 되었지만, 영화를 접할 극장도 없었던 성장 환경에서 배우가 되는 길을 찾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자 입시 면접을 보러 갔고, 연기를 하고자 뜻은 품었으나 막상 배우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던 터라 “가장 존경하는 배우가 누구인가”라는 교수의 질문에 “아, 홍금보...”라고 며칠 전 영화에서 본 배우 이름을 별 생각 없이 말했고 아니나 다를까 떨어지고 말았다고. 그렇게 시험에서 두 번 낙방의 고배를 마신 송강호는 부산경상대학교 방송연예학과로 진학하여 사물놀이와 마당극을 접했지만 이내 영장이 나와 한 학기 만에 군인 신분이 되었다고.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는 집안형편이 나빠져 복학생의 길을 접어두고 학업을 그만두고 말았다. 이후 3개월간 막노동 일을 전전하면서 생활비를 모아 부산의 한 지역극단에 입단했다고 한다.
그러던 1990년 겨울, 극단 연우무대가 부산 무대에 올린 연극 《최선생》을 본 것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렇게 당시 연우극단 극장장이던 류태호를 찾아와 청소부라도 시켜 달라며 입단을 희망했지만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후에도 네 차례나 방문했고, 이때 연출가 이상우를 만나 단원으로 받아 들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송강호는 이후 이상우가 연출한 연극 작품에 단골 배우가 된다.
| 당시엔 정말 연극 밖에 몰랐어요. 영화는 불현듯 갑작스레 다가온 거예요. - 02.01 영화월간지 키노 인터뷰 中 - |
1991년 극단 여우무대에 입단하게 된 송강호의 첫 데뷔작이자 배역은 ‘한국 현대희곡의 재발견’이라는 옴니버스 연극 중 단막극 《동승》으로 노인 역을 맡게 된다. 《박첨지》에서도 내정된 배우가 빠지게 되자 대타로 자리를 매웠다고 한다. 이후 5년간 송강호는 《날아라 새들아》, 《국물 있사옵니다》, 《지젤》, 《심수일과 이순애》등의 10여편의 작품을 공연하면서 연극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고, 당시 송강호에게 영향을 끼친 배우가 김윤석이라고 한다.
<연우 30년>이라는 책에서 송강호는 “연우무대는 내가 지행하던 점을 정확히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연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집어준 기회이자 새로운 용기와 목표를 가지게 한 계기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영화배우로 데뷔 및 활동
연극배우로 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영화 현장도 경험하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송강호에 연우무대 선배 였던 김의성은 자신이 주연을 맡은 한 영화에 단역을 맡아주길 요청하게 되고, 당시 한 달 후면 결혼식을 올려야 하던 터라 급전이 필요했던 송강호는 사나흘 정도만 촬영하면 200만 원을 준다는 제안을 받아 들이게 된다. 이 영화가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극 중 주인공의 동창인 속물 사업가(단역)로 출연해 상업 영화에 데뷔하게 되었다. 서민이나 밑바닥 인생인 주인공 역할을 많이 한 그이지만, 데뷔작에서는 돈 좀 번 껄렁껄렁한 속물인 주인공 동창 역할로 나왔다. 참고로 이때 장선우의 괴작 《나쁜 영화》에도 노숙인 역할로 출연했었다. 그러나 사실상 두 영화 모두 대사가 있는 엑스트라 수준의 비중이었고, 영화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출연했던 아르바이트 정도였던 터라 본인 스스로 실질적인 데뷔작으로도 후술할 영화《초록물고기》를 뽑고 있다.
1996년 연극 《비언소》 첫날 공연 때 이창동 감독의 눈에 띄어 《초록물고기》에 출연하게 되었고, 이 작품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야비한 깡패 판수 역을 연기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주목을 받았다. 연기가 얼마나 리얼했는지 당시 관객들이 “어디서 진짜로 깡패를 섭외해 찍은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문성근, 명계남, 한석규 같은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역은 송강호라는 평이 많다.
이후 송능한 감독은 이 《초록물고기》에서의 송강호의 연기를 인상깊게 보아 자신의 영화 《넘버 3》에 송강호를 캐스팅한다. 《넘버 3》에서 불사파 보스 조필 역을 맡았는데, 무대뽀 정신과 헝그리 정신으로 대표되는 장면에서 그가 늘어놓은 일장 연설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그해 최고의 유행어가 됐다. 영화 등급은 청소년 관람불가지만 웬만한 중고등학생들이 다 따라했을 정도며 방송에서 송강호의 성대모사를 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대사 또한 이 부분이다. 이 작품을 통해 송강호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다. 그러나 송강호의 이미지가 한동안 코믹하게 고착되었다는 점에서 흑역사 아닌 흑역사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어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 강제규 감독의 《쉬리》를 통해 조연급 배우로 올라섰다. 조용한 가족에서는 무대포 큰아들 영민 역할로 출연해 상현, 조필 못지않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다만 쉬리에서 연기한 이장길은 전작들에 비해 송강호답지 않은 무난한 연기였다고 다소 박하게 평가받았다. 원래 제작진은 이장길 역에 차인표를 염두에 뒀으나 차인표가 거절해 그 대타로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넘버 3》에서의 코믹했던 이미지가 워낙 강해 대중들은 송강호를 거의 코미디언 비슷하게 취급할 정도였고 관객들이 쉬리에 나온 송강호의 모습을 굉장히 어색하게 여겼다.
평론가들도 미스캐스팅이라는 평가를 했다. 당시 이장길 역을 송강호가 맡은 것에 대해 하도 말이 많아서 모 언론사에서 송강호 말고 어느 배우가 이장길을 연기했으면 좋겠냐는 주제로 PC통신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1위가 압도적으로 신현준으로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장길은 지적이고 샤프한 느낌이 드는 캐릭터고, 최민식이 연기한 박무영 캐릭터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주인공 한석규가 맡은 유중원 캐릭터를 움직여 주는 캐릭터다. 하지만 송강호가 이 역할을 연기해 안 그래도 박무영 캐릭터에 눌린 유중원 캐릭터가 더욱 죽어보이는 역효과가 나버렸다. 게다가 신현준은 강제규의 전작 《은행나무 침대》에 출연해 악역 조연이지만 영화 자체를 살린 전적이 있는 데다 지금의 이미지와 달리 당시엔 지적이고도 존재감이 강한 배우라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된 것. 참고로 2위는 이성재, 3위는 박신양 순이었다.
이후 《반칙왕)으로 첫 주연을 맡으면서 원톱 주연의 가능성을 입증했고,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역할로 진중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임으로써 마침내 코미디 배우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게 된다. 뒤이어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등을 거쳐, 2006년 《괴물》로 천만 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시점에서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섭렵한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이후에도 짧은 전환기를 거쳐 2010년대에도 불세출의 연기력과 작품 선구안으로 명성을 떨치는 배우로 자리잡게 된다. 2007년 5월 14일 미국 버라이어티 지가 뽑은 칸 영화제 미래를 책임질 60인에 선정됐다. 버라이어티 지는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괴물 등 다수의 영화들을 통해 한국 배우들 중 가장 다재다능하고 완벽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며 찬사를 보냈다.
2007년에는 송강호가 출연한 《우아한 세계》와 《밀양》이 개봉했다. 《우아한 세계》는 개봉 당시에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으나 시간이 흘러 송강호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밀양》에서도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밀양》 코멘터리를 들어보면 전도연에 대한 칭찬보다 송강호에 대한 칭찬이 더 많다. 전도연은 온전히 몸으로, 직관으로 연기하는 배우라면 송강호는 몸과 머리 둘 다 사용해 계산하며 연기하는 배우라는 것. 이창동 감독은 송강호는 극 중 종찬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 같지 않은데 사실은 굉장히 머리가 좋고, 배려를 많이 하고, 전체를 다 본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전도연이 크게 공감하면서 진짜 그렇다며 머리가 좋고 영화의 앞을 볼 줄 안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27일 샌프란시스코 베이 가디언 지가 뽑은 올해의 영화 6위에 송강호가 선정됐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배우는 누구일까?라고 물으며 영화 《밀양》의 "송강호"라고 소개했다. 이어 《살인의 추억》과 《괴물》 등을 포함해 완벽한 전혀 다른 세 가지 모습을 보여줬다며 극찬했다.
2008년 2월 16일에는 네티즌이 뽑은 한국 최고의 영화인으로 선정됐다. 영상 기사 2008년에는 《반칙왕》 이후 8년 만에 김지운과 재회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간만에 특유의 코믹 연기를 펼쳤다.
2009년 4월,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서 흡혈귀가 된 신부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러나 영화 평은 갈리는 편. 또한 장률의 《이리》(2008년) 이후 남자 배우가 성기를 노출해 논란을 야기했다. 박찬욱과 하루 꼬박 의견을 나눈 결과 꼭 필요한 장면이기에 응했다고 한다. 이 떡밥에 의해 사람들은 '진정한 배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사회 다녀오고) 실망이다' 등의 의견을 냈다. 유명 배우의 성기 노출이라 더 이슈가 됐다.
2010년에는 장훈 감독의 《의형제》에서 이한규 역을 맡아 북한 암살자 그림자를 쫓는 인물을 연기했다. 이후, 2011년에 개봉한 《푸른소금》이 흥행에 실패해 대쪽박을 차고 2012년에는 《하울링》이 본전치기를 하면서 주춤하자 2013년 동아일보에서는 한석규를 거론하며 송강호, 김윤석 몰락론과 류승룡, 최민식 대세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2013년 《설국열차》가 934만 관객, 《관상》이 913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흥행, 2편으로 한 해에 약 1,847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한 대기록을 세우며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어서 12월 18일 영화 《변호인》이 개봉했다. 배역의 모티프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투, 화법, 몸 동작 등을 재현했는데, 인터뷰에 따르면 감독의 주문도 아니고 본인도 따로 계산한 것이 아닌 '송강호표 노무현'을 추구한 결과라고 한다. 12월 22일 관객 175만을 돌파하면서 한 해에 2,000만 명 관객을 돌파한 최초의 배우가 되었다. 그중 앞의 두 영화는 2013년 흥행 2위작과 3위작이다. 12월 30일 500만 명 관객을 돌파하면서 2013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이어서 2014년 1월 1일에는 600만, 1월 12일자로 900만 명 관객을 돌파하면서 2013년에 개봉한 본인의 세 작품이 모두 900만 명을 돌파했다. 1월 13일 937만을 돌파하면서 두 작품의 기록을 깨뜨리고 당시 한국 영화 역대 관객수 9위에 등극했다. 2014년 1월 18일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해 《괴물》에 이어 두 번째 마일스톤을 달성했다.
2016년 영화 《밀정》의 흥행으로 1996년 단역으로 데뷔 후 20여 년 만에 누적 관객수 1억 명을 돌파했다. 이와 동시에 국내 배우로는 최초로 오직 주연작의 관객수만으로 누적 1억 명을 돌파 했다. 1999년 영화 쉬리로 첫 주연을 꿰찬 이후로 약 17여 년 만에 달성한 대업.
2017년 3월 30일 미국의 영화 전문 매체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남자 배우 25인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배우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2017년에는 영화 《의형제》 이후 7년 만에 장훈 감독과 재회, 5.18 민주화운동이 배경인 《택시운전사》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대통령 문재인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2018년 말에는 《마약왕》이 개봉했다. 이 작품에서 송강호는 이두삼 역을 맡아 마약에 타락해가는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이며 역대급 연기라는 극찬을 받았으나, 영화 자체는 각본의 허술함으로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2019년 3월 20일 스포츠동아가 주관하고 영화인·전문가 100인이 뽑은 한국 영화 100년사 최고의 남자 배우로 선정됐다. “최고의 배우로서 지닌 인기와 신뢰, 연기력”과 “한국 영화의 질적 도약과 함께 성장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2019년 5월 말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또다시 작품성을 입증했으며, 극의 중심을 잡고 클라이막스에서 펼친 송강호의 연기력도 호평을 받았다. 이로써 택시운전사, 기생충의 흥행으로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네 편을 필모그래피에 올리게 되었다.
2019년 7월 말에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역사왜곡 논란과 작품성에 대한 아쉬움을 남겨 흥행에 실패했다.
2019년 12월 11일 미국 대표 영화 매체 인디와이어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남자 배우 15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아시아 배우로는 유일하게 송강호가 지명됐다.
2020년 2월 9일,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석권하는 한국 영화사에 남을 쾌거를 이루었다.
2020년 11월 26일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배우 25인에 이름을 올렸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20년 동안 대형 스크린에서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한 연기자들을 모아 순위를 선정했다고 한다.
2022년 6월 24일 영화 브로커의 일본 개봉 이후 언론과 관객들은 송강호의 연기에 호평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홋카이도 신문은 “송강호의 자연스럽고 쾌활하고 호감 가는 인상은 호소력이 매우 짙다”, 하이비는 “송강호는 교활함 뒤에 있는 온화함을 전달하는 데 능하다”고 칭찬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송강호는 '브로커'에서 인간미로 관객을 유혹한다”고 호평했다.
2022년 12월 20일 베니티 페어의 커리어 타임라인 비디오 시리즈 시즌1의 104번째 인물로 선정됐다. 15분으로 요약된 영상에서 자신의 대표작들을 회고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2023년 1월 25일 영화 《1승》이 제52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빅스크린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었고, 27일 영화제를 통해 전세계 최초로 상영한 이후 해외 언론 매체와 현지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2025년 1월 1일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배우 60인에 이름을 올렸다. 인디펜던트는 “그의 진정한 매력은 봉준호 감독과 처음 함께한 <살인의 추억>에서 드러난다”며 초기작에 주목했다. 특히 깊은 여운을 남긴 마지막 장면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았다. 무기력함을 완벽한 정교함과 통제력으로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