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한가위 보름달 대신에 밤새 비가 내리는 밤을 보내고..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당 아니면 지옥에 간다고 한다. 천국 가서 얼마나 오래 사는지 잘모르지만 영원이란 말을 사용한다.
한 번 태어나 기독교 잘 믿어서 선택받으면 죽어서 천국에 영원히 산다.. 이게 가능한가?.
기독교와 앙숙인 이슬람교도 천국설은 마찬가지 교리다.
사람에겐 확률이 거의 없어도 '나는 뽑힐거야' 라고 믿는 신성한 디엔에이가 있는가.
이성적인 자는 종교보다 과학을 따른다.
과학은 인생은 단 한 번뿐임을 아직 견지하고 있다.
윤회 또는 천국이 과학적으로 증명된다면 그들은 그것을 따른다는 전제 아래..
그런데 10년 후 또는 백년 후 천국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 단멸론을 믿다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평소 심은대로 업보를 받으니.. 윤회되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으리라.
기독교의 영원한 천국을 전하는 영혼설은.. 영혼은 항상 한다는 주장으로 항상론이고,
과학의 단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주장은 단멸론이라 한다.
당신은 무엇이 맞다고 여기는지?.
이렇듯 정 반대처럼 보이는 양 극단인 항상론과 단멸론임에도 놀랍게도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 그게 무언가?.
모두 자아[나]라는 자를 중심으로 자아가 항상 한다 또는 자아가 단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곧 두 극단인 항상론이나 단멸론이지만 둘 다 '자아'라는 존재가 중심에 있다.
여기에 이르면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챘을 것 같다.
그렇다. 석가세존이 가르치는 무아는 항상론과 단멸론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경험 이전인 선험적 자아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선험적 자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기억하시길.().
자아설을 부정하는 내용이 나오는 <잡. 300. 타경>을 보면..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왜 제가 '제 자신이 짓고 제 자신이 깨닫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제 자신이 짓고 제 자신이 깨닫는다고 하면 곧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짓고 다른 사람이 깨닫는다고 하면 곧 단견(斷見)에 떨어진다.
의설법설(12연기법)은 이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 처하여 설법하는 것이니라. 말하자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잡. 300경> 근본교설의 핵심 내용인 무기와 단상중도, 12연기법이 잘 정리되어 있는 경이다.
경에 나오는 질문자인 바라문은 매우 현명한 자이지만 상견과 단견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기에 석가세존을 찾아와 질문을 한다.
첫 질문 할 때 그는 석가 당신이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 하는 오만한 마음으로 질문했는데..
세존은 무기.. 말로 답을 주지 않으셨다. 그는 뜨금했으리라 왜 내 질문을 무시하지?..
하여 다시 찾아와 간곡한 심정으로 물으니 그때서야 일반인들이 자아의 핵심으로 알고 있는 영혼[아트만, 지바]이나 원소설의 무지를 설하시고.. 이어서 바른 견해[정견]까지 설하셨다.
바른 견해인 단상중도를 조금 다 살펴보면..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는 것은 몸이 사라져도 자아는 이어지고 있어 윤회하거나 천국에 가는 것을 설명하는 자아가 항상있다는 것이요,
다른 자가 짓고 다른 자가 받는 것은 단견으로 나는 죽으면 더 이상 없으니, 내가 이룬 업의 결과는 다른 자가 받는다는 현대 과학이나 지식인이 주장하는 자아의 단멸론이 된다.
오늘 대한민국 위상이 한껏 높아져 누리는 우리 뿌듯함은 우리 선배님들의 땀고 노고의 결실이 아닌지.. 그것은 다른 자가 짓고 다른 자가 받는 다는 단멸론이 맞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여러분은 둘 가운데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혹시 '죽은 후를 어찌 알리요!'.. 하는 불가지론은 아닌지..
불가지론이라 하니 세상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자를 연상할지 모르나.. 공자님은 죽은 후를 말하기 전에 삶에 대해 더욱 집중하자고 했다.
조선조 선배님들은 죽은 후 생각을 별 의미없는 생각으로 여기고 오직 삶에 충실하자는 공자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우리 전통은 추석이면 제사를 지내듯 돌아가신 분은 단멸론 주장처럼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후손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영원한 영혼설과는 또 다른 것 같다.
이럴 경우 좋아하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여기 삶에 충실하는 게 현명한 길이 아닌지..
내 주위 사람들은 현명하기에 친구 따라 여행 간다고.. 누구는 기독교인으로, 누구는 공맹 후인으로, 누구는 자신만 믿는 자로 자기 생활을 갖고..
삶의 현장에서 오늘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불교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행복한 삶이 되려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 출생지와 출생 신분이 다르다는 것으로 불평등을 강요한다.
미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아이스에 의한 이민자에 대한 만행을 기득권자는 박수를 칠지 모르나 더 많은 자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유엔에서 자기가 잘하고 있다며 큰소리치는 이스라엘 대통령의 뻔뻔함에 누가 주먹질을 할 것인가..
이미 불평등한 사회에서 그나마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어떤 마음 가짐이어야 할까?.
소승이란 이런 조건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기 행복을 찾는 자요,
대승은 불의에 대항해 맞서며 행복을 찾는 자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대승적 보다 소승적인 방향으로 움직인다.
중도 설명을 보면 양 극단이 아니라는 것을 찰나생찰나멸로 설명하는 곳이 있다. 곧
찰나생이지만 이어지니 단멸이 아니고, 찰나멸이니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럴듯한데.. 이때 질문은 찰나생찰나멸이 중도인가? 하는 것이다.
중도를 두 극단을 떠나는 것으로 알면.. 찰나생찰나멸은 양 극단을 부정하는 것으로 중도처럼 보인다.
그런 것이 중도라면 우리 전통이랄 수 있는 돌아가신 영이 어디선가 보고 있다는 것도 양 극단은 아니니 중도 아닌가?
그런데 중도는 우리 전통 관습 역시 부정한다.
부정으로 보면 중도는 우리가 믿거나 아는 것 모두를 부정한다.
왜 우리가 믿거나 아는 것을 부정할까?
존재로 전제하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을 보면 공은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라 하여 모두를 부정하는 처럼 보인다.
우리는 삶은 태어남과 죽음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공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고,
우리는 삶은 추하고 더러워 깨끗한 천국이나 정토에 가기를 바라는데.. 공은 그렇지 않다며 부정하고,
우리는 삶은 괴로움이 늘어나거나 즐거움은 즐어든다고 아는데.. 공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한다.
중도는 부정의 논리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아니다. <잡. 300경> 중도 설명으로 나오는 12연기법을 보면 중도는 양 극단을 또는 모두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자석은 양 극단에 +와 -가 있는데.. 중도는 양 극만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자석 전체를 부정한다.
그러니 중도는 부정이요 또 부정처럼 보이지만..
중도인 12연기법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300경>에 나오는 12연기법 설명을 보면..
양 극이 있으면서 모두가 있는 자석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생긴다' 는 유전문에서 생긴 게 된다.
곧 무명이 있으면 양 극단을 포함한 자석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어서 나오는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멸한다' 는 멸문에서는 무명이 없으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게 사라진다는 것이니..
영원설이나 단멸론, 불가지론 또는 우리 민족의 영혼설은 무명에서 생긴 것으로..
무명을 멸하면 그런 모든 것은.. 극단을 포함한 자석 전체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을 멸문이 보여준다.
그러므로 12연기법은
무명이 있으면 양 극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
무명을 멸하면 그렇게 생겼던 게 존재가 아니므로 그냥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른 중도는 12연기법에서 멸문으로
두 극단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무명이 있으면 생기는 것과 무명 없음을 바르게 살피고..
그런 가운데 무명 멸하는 길을 중도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다섯 사문에게 처음 설한 법을 전하는 <초전법륜경>에서..
법을 바르게 이해한 사문이 "고제가 바로 멸제로군요!" 했다는 것은..
우리가 고해라 부르는 이 세계가 바른 눈으로 바뀌면 바로 열반 세계로 보인다는 게 아닌가..
허.. 참..
그럼에도 잘 알 수가 없으니..
귀가 아프고.. 눈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구나..
오늘 공부하면서..
기독교의 영원설이나 과학의 단멸론은 12연기법 유전문 세계에서 벌어지는 연극이요,
불교의 무아는 12연기법 멸문이구나.
이라는 것만 알아도 훌륭한 수확이 있다고 하겠다.()^^.
이것이 추석 선물이 되면 얼마나 좋을꼬?^^().
첫댓글 한 박스 한우 갈비가 아무리 좋은 추석 선물이라 해도..
소화 기능이 떨어져 소화시킬 능력이 없는 이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선물 아닌가?^^
어디선가.. 이 글을 보고..
"심봤다!" 하는 소릴 듣고 싶은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