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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식의 하나님을 알면 신실한 신앙인으로 변합니다.(삼상2:1-11)
2023, 10/15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2:1-11절 말씀으로“지식의 하나님을 알면 신실한 신앙인으로 변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들녘에는 가을이 무르 익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사과가 왜 이리 비싼지 하나에 만원할 정도로 금값인데, 태풍도 매년 똑같이 올라왔고, 비도 적당히 왔고, 일조량도 예년과 비슷한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이리 비싸야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갑니다.
경기도, 물가도 좋아져야 하는데 러시아에 이어 하마스까지 전쟁을 일으켜서 좀 걱정이 됩니다. 지금 세계정세가 급변하지만 세계역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믿고 믿음으로 하루하루 주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지식의 하나님도 믿음이 있어야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3절)
둘째로, 지식의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해야합니다.(3절)
셋째로, 지식의 하나님을 알면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괜찮습니다.(4-5절)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하나님이 계시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다보니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이 무한하셔서 인류역사와 각 사람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어야 이런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대지만 우리의 지식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서 이 작은 지식으로 하나님 앞에 교만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하는데, 이걸 깨달으면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적응하며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바로 알고 온전히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지식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지식의 하나님도 믿음이 있어야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3절)
본문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아멘.
여러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자연과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자연을 통해서 아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성경을 통해서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3절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본다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측량 불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달하시고, 기억하시고, 옳고 그름과, 정의와 부정의를 정확하게 판단하시며, 그것을 집행하시는 전무후무한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런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아담과 하와부터 지금 우리들까지 모든 인류의 인생들을 설계하시고, 그 인생 전체를 주관하시며 인도해가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수천 년 인류역사에서 오고가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사건 사고들을 총체적으로 조율하시고 이끌어가심을 우리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나도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통찰하시고, 브닌나와 한나 사이에 올바르게 판단하시어 아들을 주심으로 구원하신 것을 보면서 한나가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신다."고 고백합니다.
브닌나는 한나에게 상당한 고통을 가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브닌나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떻게 핍박했는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한나와 처지가 비슷했던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겪었던 것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는데, 창16:4-5절에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을 볼 때 브닌나가 한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여기서도 사래는 한나와 똑같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그 행동을 달아보신다.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나와 사래가 이런 지식의 하나님을 고백한 때가 언제입니까? 그녀에게 믿음이 생기고 나서부터입니다. 사무엘을 얻기 전에는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반신반의하다가 사무엘을 얻고 나서 믿음이 견고해져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기드온도 사사로 부름받기 전에는 믿음이 견고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사사로 부를 때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한 말인데,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삿6:13)
그러니까 미디안을 비롯한 대적들이 쳐들어와 추수한 것들을 다 약탈해가는 것은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도와주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냐고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그 지식은 신앙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나 지혜가 우리의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나가 언제 하나님이 지식의 하나님이란 것을 알았을까요? 진즉 알고 있었지만 기드온처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보니 그냥 지식으로 그치고 만 것입니다. 우리 또한 내 믿음 없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어리석게도 하나님이 우리의 사정을 모르시거나, 알아도 방관하신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신지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도 성경을 많이 읽는데, 그러나 도울 김용욱처럼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믿음이 없으면 그들의 신지식은 허공을 치는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많이 아는 것보다 전적으로 믿는 믿음이 더 필요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내 삶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을 얻고 난 후 믿음을 회복한 한나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을 가슴으로 깨닫고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고 감탄하듯이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한나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판단하고 계십니다. 역대상 28:9절에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한마디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나도 믿음이 회복되었을 때 하나님을‘지식의 하나님’으로 찬양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이 부족하거나 없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갈 수 있도록 힘쓰고 애써야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많이 아는 것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내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믿음이 필요한데, 지식은 믿음을 불러오고, 믿음은 그 지식을 능력으로 바꾸어줍니다. 그러므로 지식도 믿음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어서 날마다 은혜 안에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지식의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해야합니다.(3절)
본문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아멘.
한나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지식의 하나님 앞에서 절대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을 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한나가 왜 교만한 말, 오만한 말을 언급했는지는 브닌나와의 관계를 볼 때 조금은 짐작이 되는데, 그만큼 브닌나가 아이를 낳았다고 기고만장하여 본부인인 한나를 무시하고 안하무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인은 교만하면 절대 안 됩니다. 왜 그래야할까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무한하여 우리가 그분의 눈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교만은 만 악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교만한 자들은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입술은 우리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이렇게 말하지만(시12:4)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시12:3)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 수많은 곳에서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지와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여러분!!!‘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잘 모르거나 정확하지 않음에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떠벌리는 사람을 조소하는 말입니다.
사실 지식이 적은 사람은 지식이 더 많은 사람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앞에서도 그럴진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는 어떨까요?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가진 지식과 지혜는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한대신데 그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교만을 떨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내 죄를 자복하며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잠3:34절에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겸손하고 인격적인 분을 만나면 정말 존경스럽고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반면에 교만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찌뿌려집니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조금만 성공하고, 쥐꼬리만한 권력만 있어도 드러내길 좋아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잘난 체를 합니다. 이기적이고, 내 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어서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데, 이런 사람은 사실 예수 믿는 것과도 잘 안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신앙인은 겸손해야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라고 하나님이 괜히 말씀하셨겠습니까?(잠16:18) 교만과 거짓은 사단의 본질이라 하나님의 대적이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 살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하고 오만한 것을 경계하고, 겸손하여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무정하지 말고, 긍휼함으로 형제들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사66: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정녕 지식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에 확신을 갖고,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며, 그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자동으로 겸손해집니다.
오직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아시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셋째로, 상황은 언제든 바뀐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합니다.(4-5절)
본문 4-5절 말씀함께 읽겠습니다.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자는 쇠약하도다."아멘.
‘영고성쇠(榮枯盛衰)’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인생이나 사물의 번성함과 쇠락함이 서로 바뀐다는 뜻인데, 우리 인생살이를 설명하는 말로써는 딱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고성쇠에 어울릴만한 게 바로 오늘 본 절 말씀인데 현대어성경에 "강한 사람들에게서는 지닌 무기도 빼앗아 부러뜨리지만 약하고 기죽은 사람들에게는 새 힘을 주신다. 부자들은 밥먹기 위하여 품을 팔아야하고 가난한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울며 탄식하지 않아도 영영 굶주림을 잊고 잔치하게 되었다. 자식이 없던 여인은 일곱아들을 낳지만 자식이 많던 여인은 한 자식도 남기지 못하고 신음하다가 죽는다."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이를 낳지 못해 한없는 수치와 모욕을 겪던 한나는 영광의 자리에 오른 반면, 아들을 낳고 기고만장하여 한나를 핍박했던 브닌나는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을 노래로 표현한 것인데 이게 바로 영고성쇠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조금만 잘되고 잘나가면 교만해지고, 조금만 안 되고 실패하면 낙심하고 절망할까요? 하나님께서 역사와 인생의 주관이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고성쇠만 알아도 안 그럴 뗀데 잠27:1절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모르는 지극히 유한한 존재입니다. 당장 1초 후의 일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부유한 사람은 내가 가진 재물에 날개가 달려있음을 알고 가난한사람처럼 처신해야합니다. 사도바울도 고전7:30-31절에서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이렇게 말씀했고, 야고보도 4:9절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 것은 이처럼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행복하고 화려해도 뒤돌아보면 순간적이고 찰나적으로 언젠가는 사라지고 없어질 것들입니다.
옛말에 권불십년(權不十年) 십년 가는 권력이 없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성도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의연하게 살고,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과 형제들을 사랑해야합니다.
세상의 사소한 것에 마음 뺏기지 말고, 오직 주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그것은 날아가는 화살과 같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또 영고성쇠란 말처럼 부침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성공할수록 더욱 겸손하고, 반대로 아무리 실패해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것 또한 이 세상 부귀영화만큼이나 짧은 것이니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좋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영고성쇠를 수시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면서 날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