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4일 주일 묵상 (나 1:1-8)
[믿음에 진입한자(getting in),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staying in) 주를 가까이 하게 하소서!]
1.시작 기도
아버지, 오늘도 영원에서 허락된 한시적인 날을 맞이합니다.
이는 생명을 주시는 은혜의 날이오니 아버지의 성실을 힘입어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케 하사 새영과 새마음이 되게 하소서.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고 마음에 굳은 살을 제거하사 부드럽게 하소서.
아들을 힘입어 가오니 거룩한 지성소에서 아버지 집에 이르러 구원을 노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본문 내용
니느웨에 대한 경고의 이 말씀은 엘고스 사람 나훔에게 임한 계시이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신다.
그는 자기를 거스르는 모든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신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나. 그의 권능은 크시다. 그는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신다.
그는 그의 능력을 회오리바람과 광풍 안에서 나타내신다. 구름은 그의 발 아래의 티끌이다.
그의 명령으로 바다가 마른 땅이 되며, 강들은 사라진다.
바산과 갈멜의 푸른 초장이 쇠하며 레바논의 푸른 숲이 시든다.
그의 현존으로 인해(in his presence) 산들이 진동하고 작은 산들이 녹아내리며, 땅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멸하여진다.
그의 격노한 진노 앞에서 누가 능히 견딜 수 있는가? 그의 불타는 진노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의 현존으로(in his presence) 산들이 깨어져 먼지가 된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피할 피난처이시다. 그는 그를 신뢰하는 이들에게 가까우시다.
그러나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의 적들을 쓸어버리신다. 그는 자기 대적들을 흑암 속으로 쫓아내신다.
니느웨는 요나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에 반응하여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이 금식하고 베옷을 입으며 악한 길에서 떠났다. 그들을 멸망하기로 했으나 영적으로 어두워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그들을 아끼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지 않고 기다려주셨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후 그들은 다시 악한 길로 가서 여호와를 대적하였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나훔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주신다.
나훔을 통해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설명하신다.
이는 그들이 한때 회개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영적으로 어두움 속에 있음을 말해준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 자기를 거스르며 대적하는 모든 자에게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지만 그의 권능은 크시기에 벌받을 자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회오리바람과 광풍과 바다를 마른땅이 되게 하며 강들을 말려버린다.
이렇게 자신을 나타냄으로 인해 산들이 진동하고 녹아내리며 땅이 흔들리고 사람들은 멸해진다.
하나님의 현존은 곧 사람과 피조세계에 대한 진노의 심판으로 나타나 살아남을 자가 없다.
그런데 한가지 희망이 있다.
그 속에서도 여호와를 신뢰하여 여호와께 피하는 자에게 여호와는 선하셔서 피할 피난처가 되어주신다.
그러나 여전히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들은 흑암 속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만물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며 만물 위에 존재하시며 활동하시고 생성하신다.
하나님은 언약백성 이스라엘과 유다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온 세계 만민에게 있음을 니느웨 백성에 대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통해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
그 복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복이다.
그 복은 창세전 약속인 영생을 주시기 위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성취되었다.
창세전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아버지 품속에 있던 독생자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아버지의 명령인 영생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 죄의 종노릇하며 저주받은 비참한 운명을 안고 사는 모든 인간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전략이시다.
멸망받을 운명이나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시다.
회개하여 돌이킨 자들은 이제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십자가 사건에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믿음에 진입한 자(getting in)는 지속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staying in)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사가 사건을 통해 죄의 세력은 무력화 되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성취된 종말의 시대가 도래되었다.
그러나 아직 죄의 세력이 실재하는 불완전한 시대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 죄의 종노릇하며 사망을 삯으로 받는 실존됨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날마다 말씀 앞에 머물러 십자가 사건에 연합해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어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 하나님이 가까이 하는 자가 된다.
새언약의 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현현하신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떠는 자를 주께서 가까이 하시며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 품에 안아주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벌받을 자, 악인을 그대로 두시지 아니하시며 반드시 멸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이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이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
3. 나의 묵상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다.
허무한 인생을 의미있게 살고 보란듯한 내 인생을 얻기 위해 예수를 믿고 교회안에 있었다.
예수집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보란듯한 믿음의 명문가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 하였다.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당위성을 알고 QT를 하며 열심을 내었으나 정작 나의 죄인됨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 죄의 세력 아래에 갇힌 채 죄의 종으로 사는 자임을 알지 못하였다.
교회의 전통을 따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교회봉사에 성실한 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이라 여기던 무지한 자였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물으며 세월이 유수처럼 지났다.
말씀을 들을 때는 돌이키지만 여전히 세상 속에서 악을 행하는 자였다.
그런 나를 공의대로 심판하셨다.
티끌과 재 가운데 누워 왜 나만 당하는 고난이냐며 부르짖었다.
잃어버린 내 인생을 돌려달라고 소리치며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자였다.
그 속에서 목마르며 주린 자가 되었다.
그 목마름의 끝에 생수의 복음을 들고 오신 주님을 만났다.
다시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의 말씀이 진리로 계시되었다.
말씀 앞에 나가보니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신음하고 있는 나의 실존을 발견했다.
십자가 사건에 연합한 적이 없는 자, 나는 여전히 죄의 종으로 살고 있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기뻐하였어도 그대로 내 인생을 사는 자,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자였다.
말씀의 빛 앞에 드러난 나의 죄와 어둠을 고백하고 십자가에 연합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었다.
그런 나를 아들 안에서 안으시며 가까이 하신다.
구원의 잔치상에 앉게 하시며 아버지의 기쁨에 참여하는 은혜를 주신다.
어제는 예수집에 추도예배가 있었다.
예수집의 원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25년이 넘는다.
그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예수를 믿은 처음신자였고 마을에 교회를 세우셨다.
그로 인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든 가족과 친척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동네에서 ‘예수집’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말년에 진리를 찾아 이단에까지 가셨고 간암을 얻고 돌아가셨다.
그 할아버지가 남기신 ‘진리는 귀하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부르면서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가 찾고자 하던 ‘진리’, 좁은문 좁은길로 가는 진리를 이제 알게 되었는데....아직도 예수집 사람들은 진리를 모른다.
이들을 위해 내가 빚진 자가 되었다.
가장 연약한 자인 나, 이방인이었던 나에게 먼저 이 진리를 알게 하시고 구원하신 것은 아직도 온전한 복음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모른 채 어둠 속에 있는 저들에게 복음을 알게 하는 사명이 나에게 있음이다.
주일을 맞이한다.
온 성도들이 모여 함께 예배하는 날이다.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며 영이신 하나님과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아가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한다.
4.묵상 기도
아버지, 회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죄를 깨닫고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이 회개인데....죄가 무엇인지도 몰랐나이다.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 죄의 종노릇하는 실존인 나를 알지 못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연합하는 믿음이 없었나이다.
그러면서 예수를 믿는다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나이다.
무지한 소경되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채 썩어질 세상의 보란듯한 삶을 구하는 패역한 자였나이다.
그런 나를 공의대로 심판하셨나이다.
티끌과 재 가운데 누워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목마르고 주리게 하셨나이다.
무엇을 해도 만족함이 없는 비참한 삶 속에 때가 되어 주님이 오셨나이다.
다시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의 복음이 진리로 계시되었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사건에 연합하는 믿음은 내가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 죄의 종노릇하고 있음을 아는 데에서 시작되었나이다.
아버지, 주의 은혜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고 악한 길에서 떠나는 믿음을 주셨나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이나 그런 나를 위해 아들을 이미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부어지니 비로소 악한 길에서 떠나 아버지 품으로 오는 자 되었나이다.
아버지, 제가 무엇이기에 그리 하십니까?
어무것도 아닌 자에게 행하신 주의 사랑으로 인해 날마다 감격합니다.
죄인으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되어 사는 길, 참으로 좁은 길이나 주께서 앞장서 가시니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갑니다.
오늘 주일입니다.
온 성도들이 함께모여 예배하는 귀한 시간 주께서 함께 하소서.
찬양대에 함께하시며 찬양의 가사들이 나의 고백이 되어 살아있는 고백이 되게 하소서.
공의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하게 하소서.
오늘 교제 모임에 함께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