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걸음은 7월인데 갑자기 한 여름에서 가을로 성큼 들어선 듯 서늘해진 날씨에 아직도 여름 골프복으로 지내고 있는 지인 아빠의 가을 골프를 준비해 주기 위해 나섰다. 러시아는 추워서 그런지 골프가 대중화되지 않았고 치는 기간도 짧아서 골프 용품을 파는 곳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전언이 있었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내 주장을 가지고 구글과 얀덱스(러시아 웹)에 'golf goods shop' 을 검색해 보았다. 역시 많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곳이 있다고 나온다. 걸을만한 거리길래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켜고 걷다 보니 벌써 몇 번째 들러 식사를 한 hite(한국 음식점) 뒷편으로 들어가라고 나온다. 긴가민가하며 이곳인지 저곳인지 헷갈려 하며 헤메다 겨우 찾아 들어 갔더니 왠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러시아는 전혀 상가 같지 않은 곳에도 가게들이 있길래 구글이 가리키는 단지 깊숙한 곳 까지 들어가 보았다. 구글에 Online 이라고 써 있더니 offline 매장은 없이 집에서 온라인 샾만 운영하는 곳이었나 보다. 오늘 목적은 못 이뤘지만 동네의 작은 길이 또 연결되어 생명을 부여 받았다.
HITE 식당 건물은 공장 건물이었지 싶은 기다란 붉은 벽돌 건물로 두 개의 높은 굴뚝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저 뒤 안쪽엔 뭐가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오늘의 걸음으로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되어 잠시 흥분했었다. 안에 들어와 보니 이곳은 예전에 굉장히 큰 공장이었을 것 같다. 부지도 넓고 골목 골목 붉은 벽돌 건물이 옛스러움을 간직한 채 리모델링 되어 상가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이 구석을 누가 알고 찾아 들어올까 싶었지만 러시아 사람들에겐 명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직은 미완 인것인지 덜 활성화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이 멋지게 나올 붉은 벽돌 건물이라 피팅 모델을 데리고 사진 찍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카페에 몇몇 테이블을 차지하고 햇빛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 더 활발하게 상권이 형성되어 볼거리, 즐길거리가 조금 더 채워진다면 명소가 될 듯한데 경기가 안 좋은 코로나 시절이라 조금 아쉬운 맘이 들었다.
뷰가 괜찮을듯 보이는 레스토랑에 베란다 자리가 좋아 보이길래 들어가 커피와 케잌을 주문했다. 케잌은 살 찔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조금 망설여졌지만 스타터는 무엇으로 하겠냐는 웨이터의 질문에 쫌 시켜줘야하나 싶어서 무슨 케잌이 있냐니까 메뉴를 보여주며 두 가지를 추천 한댄다. 하나는 먹어 본 케잌이길래 다른 것을 시켰다. 그리고 화장실을 찾았더니 안내해준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들어선 식당 내부를 보고 엄청난 크기에 깜짝 놀라며 누군가 방문한다면 여기도 괜찮겠다 싶어 나오면서 사진을 찍어야겠다 생각하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에 남자가 있어서 남자 화장실 문을 열었나 싶어 문을 닫고 두리번 거렸다. 나를 본 쉐프가 쳐다보고 들어가라고 손짓해 준다. 다시 문을 열었다. 남자가 나오면서 뭐라뭐라 한다. 아마 같이 쓰는 곳이라는 뜻인듯 하다.
화장실을 나오며 눈이 마주친 쉐프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제스처를 보냈더니 왜 안되겠냐는 듯 한 제스처를 보내준다. 공장을 개조한 곳이라 그런지 정말 크다.
자리로 돌아와 앉아 오늘의 장황한 이야기들을 메모장에 두드리고 있는데 조용히 흐르는 음악 뒤로 옆 건물에서 들려오는 공사 소음이 언젠가였을 그 때, 온갖 기계 소음과 기름 냄새, 물건을 운반하는 트럭의 엔진 소리,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질러대는 소리, 작업 반장들의 고함 소리가 내 귀에 겹쳐 들리게 했다. 옆 테이블의 작은 여자아이의 금발 머리가 햇빛에 빛나고 알아듣지 못하는 수다와 웃음소리가 음악 소리와 함께 바람에 흩날리는 오후 나는 추워 떨며 카페에 앉아있다. 커피와 함께 나온 것은 케잌이 아니라 러시아 식 아이스 크림이었다. 피니쉬냐고 물으며 다가온 웨이터에게 나는 숏 뽜좔스타(счёт пожалуйста)를 외치며 차갑게 식은 커피를 털어 넣었다.
첫댓글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글로 표현 할 줄 알고, 즐길수 있고, 그리고 날 다시 그곳으로 같이 데려가 주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나두~^^
같이 데려갈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