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교만에서 영적 겸손으로
최근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구원의 길은 다양하다는 주장을 종교 다원주의라고 합니다. 모던시대가 지나가고 후기모던시대 즉, 포스트 모던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포스트 모던이란 ‘백인 이후, 남성 이후, 기독교 이후’를 특징으로 한다고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지금까지는 백인이 주도하고, 가부장적 권위로써 남성이 헤게모니를 쥐고, 기독교가 주류종교로서 이끌었지만 이제는 이 셋이 뒤로 물러서고 유색인종, 여성, 다양한 종교가 주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이후’를 강하게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첫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빼어나게 훌륭한 인물로 단정할 뿐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을 간과합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 행위의 죄만을 죄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죄는 행위로 드러나기 이전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분위기는 치열한 경쟁이 지배합니다. 친구와 함께 같은 대학 입시를 치르게 되면 상대가 떨어져야 내가 합격합니다. 이 생각이 죄입니다. 곧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 말하기를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싸움 구경, 불 구경이라고 합니다. 당사자들은 얼마나 애통합니까, 그러나 구경하는 이들은 흥미롭게 봅니다. 인류의 보편적 죄성입니다.
로마시대 기독교를 핍박할 때, 기독교인을 원형 경기장에 풀어놓고 수일간 굶주린 사자를 집어넣어 물어뜯게 했습니다. 이것을 로마시민에게 구경거리로 제공했습니다. 지금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비리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 다른 사건을 의도적으로 터뜨려 국민의 시선을 돌립니다. 광주민주항쟁으로 대학생들의 움직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전두환 정권은 “국풍 81”이라는 대학생 축제를 기획하여 젊은이들의 관심을 옆길로 돌렸습니다. 이것이 모두 인간의 죄악성을 이용한 것입니다.
“한 다리가 천리” 한국 속담입니다. 나의 직계 자녀가 당한 불행과 한 다리 건너 4촌이 당한 불행은 비교할 수 없을만치 멀다는 뜻입니다. 사촌이 땅 사면 배아픈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영정 교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엄청나게 큰 죄라는 것을 깨달을 때, ‘영적 겸손’이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고백한 것은 바로 이 점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영적 교만의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로서 영적 교만에서 겸손으로 이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