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거 북벽,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 2012년 7월 19일(목), 맑음, 융프라우는 구름
- 스위스, 인터라켄(Interlaken), 융프라우(Jungfrau)
오늘은 융프라우에 오른다. 아침 일찍부터 서둔다. 8시 5분. 기차를 타고 우선 라우터부르넨
(Lauterbrunnen)으로 가서 이 마을의 상징처럼 그림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폭포를 보고난 다
음 클라이네 샤이덱(Kleine Scheidegg)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하기로 한다. 우리나라 설악산 장
수대 닮은 계류를 오래 지난다. 하늘벽까지 똑 닮았다.
가물어서일까? 장대한 라우터부르넨 폭포가 수량이 줄어 가늘다. 이슬로 날리는 물보라가 차
다. 라우터부르넨 폭포는 가까이서 보기보다는 클라이네 샤이덱 행 기차에서 멀리 창밖으로
보는 모습이 더 장관이다. 기차는 고지 오르느라 힘이 드는지 가다 멈추고 숨 고른다.
융프라우의 가파르고 거대한 슬랩이 나타난다. 그 위는 두터운 빙하다. 골골이 빙하 녹은 물
이 폭포로 떨어진다. 뮌히의 슬랩도 융프라우 자락에 못지않다. 나의 관심은 과연 저기를 어
떻게 오를까 이다. 눈으로 샅샅이 루트를 더듬어 본다.
클라이네 샤이텍. 다시 융프라우 오르내리는 기차로 환승한다. 고지에서는 철로와 기차구조
가 달라 터닝 포인트마다 환승한다.
저기가 아이거(Eiger, 3,970m) 북벽이다. 유럽 알프스의 3대 북벽(다른 둘은 그랑 조라스와 마
터호른이다)중 가장 악명 높은 곳인 아이거 북벽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클라
이네 샤이텍이다. 아이거를 떠올리면 숙연해진다. 유명한 등반가만 골라 숱한 목숨을 앗아갔
다. 특히 76년 전 바로 오늘이다. 1936년 7월 19일 이 여름날 독일 등반가인 안데를 힌터슈토
이서와 토니 쿠르츠, 오스트리아 등반가인 빌리 앙거러의 사투는 처절했다.
그들의 사투는 책으로 나왔고 영화로도 나왔다. 영화는 ‘노스 페이스(North Face, 원제
Northern Wand)로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바 있다. 독일 영화다. 그때도 오늘처럼 멀쩡한 날이
었는데 날씨가 급변하여 눈사태까지 겹쳤다. 탈출. 구르츠가 유일한 생존자가 될까 힘껏 박수
칠 준비했는데 두 개의 자일을 연결한 매듭이 카라비너 통과하지 못하여 구조대는 불과 5m
떨어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불행의 전조(前兆)였던
힌터슈토이서 트래버스 구간은 이때의 등반가인 힌터슈토이서의 이름을 땄다.
1. 라우터부르넨 시내에 있는 폭포

2. 클라이네 샤이덱 오르는 기차에서 바라본 라우터부르넨

3. 클라이네 샤이덱 가는 길에서

4. 융프라우 북사면

5. 융프라우 후위봉들

6. 융프라우 자락

7. 뮌히 북사면

8. 아이거

9. 아이거

‘아이거 빙벽(The Eiger Sanction, 1975)’이란 영화에서다. 양광 가득한 저 식당 테라스에서 클
린트 이스트우드가 미간에 내 천(川)자 그리며 눈 가늘게 뜨고 아이거 북벽을 주시하던 모습
이 선하다. 어쭙잖게 흉내내본다.
굴속을 오르는 기차는 아이거 반드(Eiger Wand)역과 아이스메르(Eismeer)역에서 각각 5분간
정차한다. 굴을 뚫어 창을 냈다. 전망대다. 팔 뻗으면 북벽이 손에 닿을 듯하다.
‘유럽의 꼭대기’라는 융프라우요흐다. 요흐(Joch)는 어깨라는 뜻. 융프라우는 해발 4,158m인
데 우리는 3,454m까지만 오를 수 있다. 금년이 이곳까지 굴을 뚫어 철도를 개통한 지 꼭 100
년이 되는 해다. 정확히는 1912년 2월 21일 개통하였다.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1주일씩 각국
의 주일(week)을 정했다. 우리나라도 8월 중순에 한 주일을 차지했다.
조급한 마음에 서둘렀더니 어질어질하다. 확실히 고소(高所)다. 잠시 쉬며 진정시킨다. 유리
창 두른 스핑스 전망대에서 창밖의 설원을 둘러보는데 향긋한 냄새가 풍긴다. 전망대 여기저
기서 눈에 익은 농심 컵라면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서울에서 미리
쿠폰을 받아오면 여기에서 컵라면을 무료로 준단다. 우리 가족은 쿠폰을 챙기지 못했다. 입맛
만 다신다.
계단 올라 밖으로 나간다. 융프라우 가까이 간다. 몽블랑에서 워낙 진하게 감격했던 터라 유
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알레츠 빙하(Aletschgletscher)조차 덤덤하다. 일기는
순식만변(瞬息萬變)한다. 곁의 뮌히(Monch, 4,107m)가 갑자기 사납게 보인다. 바람이 일고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 때문인가? 눈이 새하얗지 않고 군데군데 거무튀튀하거나 바랬다. 금
세 추워 달달 떤다.
얼음궁전 돌고 내린다. 하산. 이번에는 그린델발트 쪽으로 간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3시.
싸 간 빵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먹을 틈이 없었다. 유스호스텔 식탁에서 늦은 점심밥 먹는다.
10. 아이스메르 역 전망대에서

11. 융프라우 바로 아래 알레츠 빙하

12. 융프라우

12-1. 융프라우

13. 뮌히

14. 아이거 북벽

15. 아이거 북벽

16. 아이거 연봉인 Wetterhorn(3,701m)

17. 왼쪽부터 아이거 연봉인 Wetterhorn(3,701m)과 Schreckhorn(4,078m)

첫댓글 마치 홍보용 카렌다 사진을 보는 것 같네여..
풍경사진 중간에 지나는 금발의 여인이라도
어쩌다 보였으면 좋겠네여~ㅎ
김전무님 말씀이 딱 맞네요^^ 좋은 작품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