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구의 생명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위기에 처하여 있는 듯하다. 우리는 성경에서 인류가 전멸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 이것은 바벨론 제국이 모든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전멸의 위협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로마제국도 인류에게 종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악마적 실체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행위와 모든 생명을 결코 멸하시지 않겠다는 계약과 약속은 이러한 바벨론 제국의 위협을 배경으로 하여야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 새 생명공동체의 메시아적 비전과 약속도 로마제국의 죽임의 세력과 그 횡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벨론 제국은 메소포타미아의 강들을 치수하여 문명을 일으켰고 나아가서 인간과 생명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제국권력체제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벨탑으로 상징되었다. 바벨론 제국이 하나님에게 대적하여 생명에 대하여 절대적 지배권을 장악하는 죄악은 생명을 전멸의 위기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역사와 생명의 계약역사는 바벨론 제국과 같이 생명에 대한 절대지권을 형성하는 문명에 대하여 저항하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생명의 창조역사와 생명의 계약을 믿고 자연과 함께 생명의 주체를 세워나가는 것은 죽임과 죽음의 세력 그리고 그것을 생성하는 문명에 저항하는 것이 될 것이다. 새 생명의 정원에 대한 메시아적 비전과 약속은 로마의 군사적 그리고 경제적 횡포에 저항하고 메시아와 민족들의 생명의 주권을 짓밟는 로마제국의 악마적 권위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죽임의 제국문명은 성경에 지속적으로 재현되었다. 바로가 지배하던 에집트제국문명, 알렉산더대제가 지배하던 그리스제국문명, 시저가 지배하던 로마제국문명 등이 바빌론 문명과 종을 같이 하는 생명파괴의 문명이다. 이러한 제국문명은 정치사회학적으로 이러한 문명은 전 우주를 통치하는 전능한 권력체제를 형성한다. 대개 이러한 문명들은 치수문명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제국들이 홍수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무한한 토목과학기술을 개발하였고,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무한한 노동력을 일으켰고 치수를 위한 대형 토목공사를 프로젝트화 하였으며 이를 통제하고 경영하기 위하여 제왕의 권력을 절대화하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국은 인간의 생명을 지배하고 자연을 지배하는 절대권력체제를 형성하였단 것이다. 이런 절대권력체제를 잉태한 것이 곧 제국문명이 다.
인류역사이래 이런 역사는 지속되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산업문명(Industrial Civilization)이 다. 산업사회가 되기 전에는 농경사회 였다. 농경사회는 기본적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모든 생명이 자연과 공생하였다. 시공을 비롯하여 생명과 삶이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엮어 졌다. 인생과, 세계관, 우주관이 자연과의 공생관계에서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현대적 이성 즉 현대과학과 기술이 인위적으로 자연과 생명을 인위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하게 되었다. 나아가서 어떠한 자연과 생명의 현상이라도 인간의 합리적 연대이성에 의하여 타당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보편 타당한 진리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적 합리성은 과학과 기술로 전개되었고 과학과 기술은 자연과 생명을 분석하고 통제하며 제어하고 지배할 수 있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 요약하여 말하면 인간과 자연의 생명은 현대화학과 기술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과학과 기술의 범주를 벗어 나면 그것은 진리나 실용의 영역의 밖으로 축출되었다. 이런 현대적 논리의 근원적인 한계는 축소주의에 있다. 자연과 생명의 총체적인 측면이 무시되고 이들은 분리 분석되어 과학기술적 범주에 종속되게 된다. 이러한 명제아래에서 자연이나 사회나 인간이 이해되고 통제되었다. 이런 논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 물리학이며 물리학적 사고이다. 이런 물리학적 사고는 근원적으로 생명 및 생명학적 사고와 배치된다.
이러한 조직논리에 의하여 형성된 서구 산업사회는 근대 자본주의사회를 형성하고 그 핵심적인 요소가 근대적 시장이었다. 물론 산업사회이전에도 시장은 인간의 살림살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것은 간접적으로 자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와서는 과학과 기술이 생산과 분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이것은 자연을 <착취>하고 인간을 착취하는 생산양식과 시장경제적 유통양식을 창출하게 되었다. 여기에 결부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철학은 인간의 무한한 탐욕(Greed)을 정당화하게 되였다.
이런 서구사업사회의 세계적인 전개과정이 세계적 산업문명을 형성하게 되었다. 서구산업사회는 비 산업사회를 시장의 확대, 그리고 식민통치를 통하여, 현대화개발전략을 통하여 그리고 군사적인 지배를 통하여 전세계적으로 전개되었고 오늘의 지구화라는 산업문명의 세계화라는 역사적 시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과정을 설명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제 결과론적으로 오늘 서구산업문명의 세계화가 가져 다 준 결과를 지구화의 틀 안에서 이해하여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생명계를 총체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산업경제체제 (Regime of Industrial Economy)이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산업경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체제를 막론하고 무한한 성장의 궤도를 질주하였다. 특별히 현대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자본주의적 현대화 산업전략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무한 성장이었다. 그 결과 자연자원의 고갈, 생태계의 오염과 파괴라는 인류사상 초유의 위기가 도래하였다. 생명환경의 오염을 비롯하여 지구의 온난화 등 생태계의 파괴는 통제할 수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지구상의 생명을 총체적으로 전멸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져왔다.
현금의 산업경제체제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동시에 세계 산업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권력은 다국적 기업으로서 그 통제가 불가능하고 이를 지원하는 서방국가 들이나 국제기구 들도 그들을 통제하기란 불가능한 형편이다. 소위 개발 도상에 있는 국가들도 이런 지구적 산업경제체제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와 지구상의 생태계는 지속적으로 그 생명이 전면적인 파괴의 위협을 경험하고 있다.
두 번째로 산업문명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인류와 지구는 인간의 욕심(Greed)과 인위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하여 그 생명의 총체적 전멸(Total Destruction)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20세기의 산업문명의 발전은 노동계급의 총체전인 저항을 가져왔다. 더구나 1차 2차 세계대전을 가져왔다. 그전에는 자연재해에 의하여 동물이 전멸하는 이야기만이 있었다. 20세기에 와서 두 차례 세계전쟁을 경험하면서 인류는 가공할 만한 무기 즉 핵무기를 개발하고 실전 배치하였다. 이것이 최초로 인간이 생명을 전멸할 수 있는 인위적 위기를 만들어 낸 사건이었다. 2 차 세계대전은 산업문명의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핵에너지를 개발하였고 이 핵무기는 전면전 (Total War)라는 전략과 함께 인류와 지구의 전멸을 위협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어떤 이들은 냉전체제의 해체(?)로 이런 위협이 살아지거나 줄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가 현실이다. 세계의 지정학적 구도가 양극체제로 분할 되었을 때는 소위 공포의 균형 (Balance of Terror)에 의하여 상호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으나 현재와 같이 하나의 세력이 세계를 지배하는 단일적 지정학적 구도에서는 어떠한 통제도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형성 된 것이다. 나아가서 장거리 유도탄의 무한한 발전, 전자기술에 의한 전술적 전략적 우주공간의 통제는 지구상에 생명의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여기에다가 오늘 지구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지구적 정치권력은 국내에서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있지만 실제는 독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군사적 지정학적 힘을 토대로 하여 노골적인 독재를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오늘의 전쟁은 전멸 전 (Omni-cidal War)라고 칭하였다.
세 번째로 생명계를 위협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생명공학적 통제와 조작 (Biotech Control and Manipulation) 이다. 오늘 초국적 생명산업체 들은 생명공학적 기술을 고도로 발전시켜 식량을 공급하고 의료기술과 물자(약품)를 공급하여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그들은 인류를 기아와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모든 질병과 결함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환상적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생명공학과 생명산업이 인류의 생명뿐 아니라 생명계 전체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며 기형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생명산업과 그 아래에서 연구되고 개발되고 있는 생명공학은 철저히 세계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체주의적 통제아래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찍이 미국에서 시작된 유전자조작에 의한 우생학 (Eugenics)은 나치독일에 의하여 실험되었고 이것은 정치 이데올로기로 변화되어 수백만의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비극을 낳았다.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을 조작하려면 인간 위에 있는 절대권력을 상정하게 마련이다.
생명의 유전자공학적 조작은 갖가지 생물체에 적용되어 왔다. 이런 조작의 결과는 예측불허의 상황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양심적인 과학자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모라토리움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공학의 연구는 생명산업체와 국기기관에 의하여 그 시작과 과정과 결과가 통제됨으로 책임 있게 제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본주의 시장과 지정학적 고려가 최우선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유전자공학은 생화학적 무기와 전략개발과 직결되어 있다. 핵무기만 하더라도 생명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는 종말론적인 위력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생화학적 무기는 유전자공학과 같은 기술로 생명을 훨씬 더 처참하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령 인간을 멸종시킬 수 있는 균 전쟁(Germ Warfare)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무기체계는 장거리 유도탄에 생화학무기를 장착하여 적진에 투하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생명계에 주는 타격은 핵무기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위기는 세계적인 것임과 동시에 우리민족이 살고 있는 한반도에 사실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실존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주변에는 미국을 축으로 하면서 강대국간의 미사일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 한반도의 경제성장전략은 위험 수위를 훨씬 남는 공해와 환경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토양은 갖가지 오염물질을 비롯하여 화학 비료, 화학약품에 의하여 그 독소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식량, 외국에서 수입되는 식량이 어떤 것인가를 과학적으로 철저히 조사한다면 놀랄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은 감히 짐작할 수 있다. 화학 물질에 의하여 오염된 것은 얼마며 유전자공학적 조작이 된 것은 얼마일까? 또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보살핀다는 의료체계는 어떤 것 일가? 촛국적 식량회사, 초국적 제약회사는 과연 우리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가? 이들은 분명히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를 빙자하여 이윤을 극대화한 데 급급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다는 판단에 이르면 우리는 주검의 문명 속에서 살고 있음이 분명하여 진다. 이러한 문명적 상황은 오늘 전개되고 있는 지구화의 과정에서 더욱 역동적으로 전개되고있다.이것은지구시장으로나타나고지구시장은경제적전체주의(Economic Totalitarianism)를 전개시키고 있다. 이것은 지구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정치경제는 이류사회에 기아 그리고 빈곤과 질병 즉 주검을 강요하는 체제이고 지구의 생명계를 파괴하는 체제라는 것을 말한다.
지구시장의 전체주의는 금융투기를 통하여 절대금권을 휘두르고 있으며, 지구를 무한 경쟁사회로 몰아 부치면서 통제할 수 없는 폭력의 소용돌이를 사회마다 야기 시키며, 문화를 상품화하여 문화의 사막화과정을 전개하면서 인간의 정신적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 오늘의 전체주의적 지구 시장은 죽이는 문화를 재생산하고 있다. 오늘의 지구적 시장은 문화를 피폐하게 할 뿐 만 아니라 소위 문화전쟁 (Cultural War)을 유발 시켜 생명을 파괴하고 생명력을 고갈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지구적 상황에서 너무 비관적으로 죽음과 죽임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여 본다. 오늘 인류의 문명은 고도로 발달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직도 생명계는 완전히 파괴된 것이 아니고 건재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논한 생명에 대한 전멸적이고 총체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위협은 확실히 존재하고 그것은 더욱 심각하여 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오늘의 현대적 학문과 기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생명학을 논하게 하였다.
생명학을 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주검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주검의 문제를 논하는 일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자연적으로 주검을 경험한다. 모든 개체생명 자연적으로 종말을 가진다. 그러나 생명은 그 자연적 종결뿐 아니라 자연적 또는 인위적 재해에 의하여 또는 인위적 요인 때문에 주검을 경험한다. 따라서 생명은 주검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은 새로운 생명문화, 아니 생명문명의 단초를 얻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자고로 생명의 한계 즉 주검을 넘어서 생명을 연장하려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장수하려는 염원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자연적 한계를 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장수의 비결을 찾는 다. 인간이 장수의 비결을 찾으려는 염원을 가진 것은 인간생명의 비자연적인 종결을 초월하려는 측면과 자연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여튼 인간은 자기의 자연적 수명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염원을 가진 존재이다. 이점에서 인간의 생명이 좀 특이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주제를 특별히 인위적인 생명파괴와 연관하여 다루어야 한다.물론 생명의 자연적 조건과 인위적인 조건을 구분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동시에 생명과 주검의 조건이 아무리 자연적이라고 하더라도 인위적인 요인을 배제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모든 생명과 주검은 인위적인 조건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중요시하려는 것은 현금 지구적 차원에서 주검의 세력 즉 생명파괴의 세력을 다루려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파괴의 세력을 극복하고 이것을 통제하며 나아가서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생명운동의 목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생명파괴는 홍수, 지진, 기아, 흉년, 질병과 같은 자연재해에 의하여 이루어 졌다. 특별히 인간 생명은 질병, 기아와 빈곤에 의하여 파괴되어 왔다. 인간사회와 자연 속의 생명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의 모순과 갈등에 의하여 파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인간은 인간의 생명은 물론 우주의 생명계를 총체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파괴할 인위적인 세력과 의지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는 생명을 위한 문명의 단초를 찾기 위하여 이러한 생명파괴의 세력들을 총체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최근 (인류와 자연)의 생명은 지구화(Globalization)라는 과정 속에서 생명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생명학에서는 오늘의 상황을 체계적으로 다음과 같은 구도로 보기 시작하였다. 세계자본이 지구시장을 통합하고 지배하는 과정에서 식량체제(Food system), 건강체제(Health system) 생태체제(Eco-system), 정치경제체제(Political economy), 문화체제(Culture system), 종교체제(Religious system)등 반생명의 총합적 소용돌이를 야기시키고 있다. 세계자본은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체제(Technocracy)를 장악한 초국적 기업을 지구시장의 엔진으로 삼고 있다. 생명운동은 반생명의 세력 즉 주검의 세력을 극복하기 위한 이론과 전문적 실천방법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생명의 잔존과 보전 (Survival and Preservation of Life), 생명의 존속가능성 (Sustainability of Life), 생명의 안전보장 (Security of Life), 생명의 풍요로움 (Quality of life), 생명의 존엄성 (Dignity of Life) 의 주제가 생명연구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안다.
생명의 잔존은 생명의 가치 중에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낮은 차원의 것이다. 이 가치는 생명자체를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의 질서에서 잔존시키고 보전하는 논리를 기초로 한다. 이 논리는 생명의 개체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근대국가는 이 생명의 잔존이라는 목표를 기본적인 것으로 설정하였다. 예를 들면 토마스 홉스(Thomas Hobbs)의 국가론이 그런 것이다. 이 논리는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가안보이데올로기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국가간의 전쟁도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한다. 오늘 지구적 시장의 전체주의는 인간을 기아와 빈고 그리고 질병에서 행방 시킨다는 인간 중심적이고 잔존 중심적인 이데올로기 즉 인간잔존의 이데올로기를 전개시키면서 주임의 세력을 확장시카고 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내용이고 신 사회다윈주의의 실체이다.
1. 생명의 문명을 위한 이론적 연구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기서 生命學을 제청하고 그 연구의 일반적 성격을 규명할 것이다. 이러한 생명학의 규명은 지구화에 종속된 그리고 지구적 경제 전체주의에 봉사하는 현대적 학문에 대한 대안적 학문이어야 할 것이다. 생명은 가치이기 때문에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을 표방하는 학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생명학(The Study of Life)은 생명에 대한 총합적이고 통전적인 배움, 성찰과 연구활동을 의미한다. .생명과 모든 것은 하나를 이룬다. 선순화는 "우주는 생명의 자궁이다"는 명제를 전개하였다. 생명은 우주 삼라만상 안에서 살고 우주는 생명의 몸(體)이다. 생명은 원론적으로 말하면 개체로 분할될 수 없다. 우선 생명은 생명과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유전자로 분할될 수 없다. 인간생명과 자연생명도 구분될 수 없다. 생명은 상호연관성과 공생성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생명은 총합적(Integrally)으로 통전적(Holistically)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근대적 사고는 생물과 무생물을 분리하여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 예를 들면 생물학에서 태양광선은 물리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엄밀히 따지면 무생물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유기물/무기물의 구분은 분석적일 뿐이고 구체적으로는 총합(Integration)되어 있다
동양철학이나 그리스의 철학에서도 우주는 유기적 총체이다. 仙道를 비롯하여 道學, 佛敎哲學, 儒學(朱子學), 東學의 생명관은 우주적이다. 생명은 우주적 실체이다. 따라서 생명과 자연은 구분될 수 없다. 인간의 생명도 이 우주적 생명계와 일체가 되어 있다. 서구 근대 자연과학에서 보는 우주는 객체화되어 있고 생명적 주체를 상실하고 있다.
우리는 생명을 자연과학적 시각에서 보는 것을 지양하고 인문사회과학적으로 즉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생명과학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오히려 생명과학을 총체적 생명학에 통합하려는 것이다.
1.1. 생명학은 생명의 총합성과 통전성을 밝힌다.더구나 생명은 인간의 생명과 자연의 생명은 깊히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몸과 자연과 우주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과 마챤가지다. 인간의 식생활이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의 건강과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주체적이고 자연은 객체인 관계가 아니고 인간과 자연은 생명의 실체를 지탱하기 위하여 불가분리의 통전적인 동반관계를 가진다. 身土不二라는 생각이 비근한 예이다. 산업문명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설정하고 자연을 정복하여야 인간생명이 존속 될 수 있다는 명제를 전개하여 왔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생명의 정원으로 여기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과 공생의 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산업사회의 과학과 기술은 공생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을 객관화사고 적대화하여 정복함으로 인간의 잔존을 지키려고 하였다.
1.2. 생명학은 생명에 대한 근대철학과 과학의 분석적 축소주의 (Reductionism) 를 배격한다. 이것은 계몽주의철학에 근거한 과학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다. 인간주체를 중심으로 하고 자연과 그 생명까지도 객체화 하는 것이 근대 과학정신이 다. 여기서 인간의 주체는 합리적인 주체요, 수학적 주체요, 과학적 주체인 것이다. 이 인간의 주체는 수리논리적으로 자연을 객체화하여 인식을 형성한다. 이것을 기초로 하여 근대 과학기술체제(Technocracy)를 형성한다. 이것이 오늘 근대 산업사회의 근간과 지배원리를 형성한다.
1.3. 생명학은 생명에 대한 분리주의적/ 파편주의 적 전문화 (specialization)를 배격한다. 오늘의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생명과 모든 것을 근대적인 합리성을 토대로 하여 사물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물의 연관성은 물론 생명자체를 분야별로 분리하고 파편화 한다. 이것은 전문화라는 학문적 과학적 경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의 총체적 연관성을 훼손하고 파괴한다. 예를 들면 인간은 유전자 또는 유전자의 연합(Combination)이 아니다는 명제를 생각하여 볼 수 있다.
1.4. 생명학은 생명의 주체성/개방성과 생명체의 공생적/동활적(Koinonia) 연관성을 밝히려 한다.생명학은 열린 통전성을 성찰한다. 생명의 주체성은 그 성격이 결정론적이 아니고 개방적이며 자유로우며 창조적이다. 생명은 창조적 과정을 주체적으로 창출하여 나아간다. 그리고 생명은 개체적 실체에서 완결되지 않고 상호공존적 공생적/동활적 실체이다. 따라서 생명은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이고 총체적 통전적이다. 생명은 닫혀있지 않고 열려 있다. 생명은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열려 있다.
1.5. 생명학은 생명의 삶과 살림의 지혜를 추구한다.
생명이 공생적임으로 생명은 자체가 살아가는 주체요 동시에 생명을 살리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것이 주체의 역동성이고 공생성이다. 생명은 인간사회관계나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있어서 지배와 피지배, 주체와 객체의 종속성을 지양하고 공생성, 상생성을 지향한다.
2. 생명학은 생명파괴의 현장경험에서 출발한다.
2.1. 생명학은 민중학에서 출발한다. 민중의 생명파괴는 억압적 정치경제세력에 의하여 자행된다. 자고로 전제적 정치경제, 제국주의적 지배, 식민주의적 통치등의 정치권력이 생명파괴의 원흉이었다. 이런 정치권력은 지배집단의 생존, 번영, 해방을 명분으로 하는 일종의 생명 이데올로기를 형성하여왔다. 이런 생명파괴의 세력은 민중학에서 노출된다. 산업사회의 정치경제 속에서 민중학은 특별히 민중의 사회경제적 수난을 중요시한다. 산업경제속에서 일차적으로 농경사회와 농민은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이것은 한국의 근대식민지 역사와 60년대 본격화된 한국의 산업화와 현대화과정에서 뚜렷하여 졌다.
우리는 농경사회가 특별히 생명파괴의 집중적 현장임을 인식하고 있다. 민중농민의 희생은 농경사회를 산업사회에 종속 시켰을 뿐 아니라 농업생산을 화학제품과 유전가공학적 조작을 통하여 변조, 지배하고, 농촌경제를 지구시장의 포악한 논리에 통합하여 빈곤과 기아를 강요하여 왔다. 이렇게 생산된 농산품을 통하여 그리고 가공과정에서 오염된 식품을 유통하여 인간생명을 비롯한 동식물의 생명을 위협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생태계의 생명을 총체적으로 오염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생명 학의 가장 중요한 현장이 될 것이다.
2.2. 생명 학은 여성학에서 출발한다. 생명파괴의 주된 세력중의 하나는 가부장제와 같은 남성지배 세력이다. 이 남성주의 이데올로기는 지배적 정치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가령 가부장주의는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의 내부에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은 오늘 생명잉태하고 인간생명을 사랑하고 부양하는 처지에서 생명에 대한 의학적 조작과 이에 밀접하게 연결된 생태계의 희생을 가장 예리하게 감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생명의 희생을 다루는 생태여성학 또는 생명여성학에서 생명학이 다루어 진다.
2.3. 생명학은 자연생명파괴의 현장에서 출발한다. 생명은 자연을 정복하는 근대과학기술주의적 사고에 의하여 조작되고 파괴되고 있다. 이 근대 과학 기술주의적 사고는 생명정복의 최첨단적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과학기술주의는 지배적 시장경제질서나 지배적 정치권력의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의 세계를 제패하는 군사체제도 이 과학기술주의적 요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주의는 자연정복에서 생명의 근원적인 파괴를 자행할 수 있는 요인으로 부각되어 있다. 이런 생태계의 파괴를 극복하기 위하여 생명보전운동, 환경운동 등이 일고 있다. 우리는 이런 운동의 맥락에서 생명학이 논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사화, 정보통신사회가 전개하고 있는 지구적 지정학적 지배(Geo-political Hegemony)는 군사적으로 생명을 총체적으로 공멸 시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은 생명학의 결정적 현장이다.
2.4. 생명학은 약소민족학으로부터 출발한다. 민족은 생명체의 중요한 총합적 단위이다. 따라서 생명학은 민족사를 민족생명사의 측면에서 보고 민족해방을 생명해방의 중요한 계기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민족문화의 주체성이나 고유성은 생명의 기본적인 요체가 되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전개과정에서 현대문화는 민족들의 전통문화를 파괴하여 민족들의 생명의 틀을 붕괴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지구적 전개과정에서 민족공동체는 서구 산업문명에 종속되고 전통적 생명의 지혜가 배제되고 압살되었다. 민족들 특히 약소 민족들의 저항운동과 문화운동에서 우리는 생명학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2.5. 생명학은 모든 해방적 학문을 상호 연관시킨다. 신학의 예를 든다면 생명학의 틀에서 민중학과 여성학은 만난다. 해방신학은 생명의 사회경제적 해방을, 민중신학은 민중의 민중생명의 해방을, 여성신학은 여성생명의 해방을, 흑인신학은 흑인생명의 해방을, 민족신학은 민족생명해방의 신학을 논하게 된다. 종교학, 철학, 인문학, 사회과학, 생명과학등 모든 학문이 총합적으로 상호연관 되어 생명학이 이루어 질 것이다. 생명학의 틀은 생명의 성장과 지속과 생명의 온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생명의 집 (몸, 가정, 공동체, 생태계, 우주)을 근간으로 하며 정치경제, 문화, 종교의 체계를 상호연관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연구한다. 지구화의 맥락속에서 생명학은 생명의 우주학: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 생명의 지정학: 평화연구, 생명의 정치경제학 (經世濟民論), 생명의 정치학: 참여정치, 생명의 사회학: 생명안전보장, 생명의 문화학: 생명문화, 생명의 종교학: 생명종교등을 연관, 병합, 통합하면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3. 생명학은 주체성, 개방성, 공생성은 창조성으로 결합된다.
생명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주체적 실체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생명을 그 주체로 한다. 소위 무생물도 환경도 생명과의 연관성속에서 주체적 실체가 된다. 생명은 객체화 될 수 없다.. 다만 근대적 사고 즉 서구 과학기술적 사고는 합리성으로 정리되는 시공을 근간으로 하여 사물을 이해하여 생물, 무생물을 추상적으로 객관화한다. 이것은 생명학의 기본 명제이다.
3.1. 생명학은 생명의 창조성을 연구하고 이는 생명파괴세력의 극복과정에 대한 연구를 내포한다. 생명은 자연의 법(Natural Law or Scientific Law)에 따라 결정론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생명은 진화론적인 차원에서도 돌연변이를 통하여 변이한다. 생명이 총합적으로 즉 인문사회 과학적인 차원에서 이해된다면 생명의 창조적 주체성을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 창조적이 아니면 죽음의 세력에게 숙명적으로 종속되고 말 것이다. 나아가서 생명은 새로운 생명의 질서를 향하여 도약한다. 그리하여 새 생명이라는 비전을 형성할 수 있다.
3.2. 생명학은 생명의 해방적 주체를 통찰한다. 생명은 자연의 법칙이나 철학적 숙명론이나 과학적 명제에 종속될 수 없다. 생명이 주체라는 말은 생명은 자유로운 주체, 속박에서 해방되려는 주체임을 말한다. 지금까지 해방은 인간중시의 사회적 역사적 차원에서만 논의되었다. 이제는 총합적인 생명의 차원에서 해방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의 해방은 시회경제적, 정치적, 지정학적 차원 뿐 아니라 우주적 차원(Cosmic Liberation)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3.3. 생명학은 생명의 창조적 주체임으로 그 미래의 지평이 열려 있음을 탐구한다. 생명은 생물학적 차원에서도 결정론적인 논의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생명(살림살이)의 차원에서도 결정론적으로 이해 될 수 없다. 더구나 생명학은 생명의 문화적, 철학적, 종교적 차원에서는 영원한 정신세계에로 열려진 지평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생명이 생명되는 실체는 바로 이 영원에로 열려진 지평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3.4. 생명학은 생명의 공생적-집합적-통전적 주체를 탐구한다. 생명이 인간생명이 공동체적인 실체임이 생명학에서 규명될 뿐 아니라 생명은 우주생명질서와 공생(Conviviality)함은 탐구할 것이다. 인간생명은 동식물의 생명과 공생하고 소위 무생물이라고 하는 우주적 실체를 생명의 틀 안에 통합하게 될 것이다. 동양사상이나 근대 이전의 사상체계에서는 이 진리는 자명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근대이후의 서구의 과학을 배격하자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발견들을 구조하여 생명의 직조(Matrix of Life)안에 통합하자는 것이다.
4.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은 본래 통전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면 주자학과 희랍철학의 성격을 통찰하면 분명하여 진다. 그러나 근대이후 동양과 서양의 만남은 서양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대조적으로, 분리주의적으로, 심지어는 모순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근대 서양과학의 인식론적 구조설정, 과학기술체제의 형성, 정치경제적 지배 등이 결합되면서 심화되었다. 아놀드 토인비의 동서양의 문명의 충돌론이나 사무엘 헌팅튼의 문명충돌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4.1. 생명을 위한 동서양문명의 융합과 통전이 요청된다.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대립대조, 모순갈등의 관계는 생명사상의 통전적 실체를 훼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근대서양사상의 일방적인 지배와 전개를 지속시킴으로써 반 생명적 과정이 촉진될 것이다. 생명학은 동서양을 통전적 융합하는 길을 모색한다.
4.2. 동서양의 통전적 융합은 생명의 주체성, 개방성, 공생성을 해방하는 것이어야 한다. 동서양의 생명문화와 생명사상이 통전적으로 융합되어 생명억압적이고 생명파괴적인 용인들을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동양사상은 생명억압적기고 전근대적인 전통주의로 치부되었다. 이것은 서구편향적인 일방적 평가이다. 물론 동양문명에도 생명억압적이고 생명파괴적인 요인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생명학은 동서양의 생명사상과 문명을 통전적으로 융합하여 생명해방의 길을 개척할 것이다.
4.3. 생명의 공생성에 대하여서 근대 서구과학사상은 생명개체간의 모순, 대립 그리고 갈등을 강조하는 적자 생존적 진화론을 전개하였다. 동시에 동양사상은 일원론적 총체론을 강조하면서 권위주의적 통합을 전개하는 측면도 있었다. 우리는 생명학이 동서양의 생명사상이 통전적으로 융합되어 새로운 생명사상과 생명문명으로 전개되는 데 공헌하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5. 농촌운동은 생명문명의 기반이다.
5.1. 문명의 효시는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문화창조에서 출발하였다. 이것이 농경문화를 형성하였고 농촌공동체(마을)를 구성하였다. 인간의 문명은 농경문화에서 산업문명으로 전개되면서 총체적으로 자연을 정복하기 시작하였다. 산업문명이 자연정복형에서 생명보전형으로 전환되기 위하여서는 산업사회가 농경사회를 대치하거나 지배하면 안될 것이다. 이것은 산업사회가 변혁되고 전환되어 농경사회의 기반을 강화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생명을 가꾸는 산업사회를 일구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농경사회가 생명문화의 호시라고 하여 이를 낭만화 할 수는 없다. 농경사회도 인간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탐욕에 의하여 지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업사회를 전면적으로 변혁하는 일을 필요하지만 산업사회를 전면적으로 배격할 수는 없다.
5.2. 생명문명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 농경사회와 농경문화는 기본 파라다임이다. 농경문화는 독자적인 지혜를 보유하고 있으며 신비에 가까울 만큼 정교하고 심오한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정보체계를 가지고 있다. 현대과학과 기술은 이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과학 기술은 생명을 가꾸는 지혜보다는 시장의 논리의 지배에 따라 대량생산, 이윤을 위한 생산에 종속되어 왔다. 그리하여 농경사회, 농경문화를 생명중심에서 생명 상품화의 하부구조로 전락하는 데 종사하였다. 오늘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과 정보통신체제는 생명문화의 정반대인 생명조작에 까지 이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보통신체제가 "생명산업"을 통하여 생명을 근원적으로 파괴하여 가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에 저항할 뿐 아니라 '생명의 신비"를 탐구하여 생명을 보전하고 가꾸는 새로운 정보체제, 통신체제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것은 생명을 근본적으로 존중하는 농경문화를 파라다임으로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5.3. 농경사회에서 기반과 그 파라다임의 찾는 생명문화와 생명문명은 산업사회와 정보사회의 세계관과 생명관을 변혁시켜서 생명의 공생공존을 우주적으로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혁운동은 일차적으로 죽음의 세력에 생명운동을 통하여 저항하고 그 세력을 체제화한 산업사회를 변혁하여 야 할 것이다. 또한 생명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농경사회문화와 문명의 역사와 현장에서 차원 높은 지혜와 그 실천이 요청된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공동체로서의 농경사회는 중요한 생명운동, 아니 생명문명운동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4. 최근 우리나라와 세계적으로 환경운동이 일고 있으며 각양의 생명운동이 일고 있다. 아주 희망적이고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생명운동은 문제중심의 부분, 또는 부문운동이 될 수 없다. 생명운동은 비록 농경경문화가 그 효시가 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총체적이고 통전적이며 총합적인 운동이다. 그것은 생명의 실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생명공동체운동은 농경사회를 기틀로 하여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총체적으로 포괄하여 생명공동체로 일구는 생명문화, 문명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5.5. 최근 전세계적으로 전개되는 지구화를 극복하면서 이것은 동시에 만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시장체제로 구현된 인간의 <탐욕>과 그 세력을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지구시장은 인간의 식량체제, 의료체제를 비롯하여 정치경제체제, 정보통신체제를 시장의 이윤극대화 논리와 세력에 종속 시켰고, 문화와 종교까지도 이체제의 시녀가 되게 하고 있다. 여기에 대응하여 <유기농>과 같은 생명농업, 대안의료 체제로서의 <생명의료>를 위한 생명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생명문명을 위한 대안적 문명운동이라는 총체적이고 거시적 차원에서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5.6. 따라서 기독교의 선교는 기본적으로 생명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며, 그 핵심은 농촌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촌교회는 생명선교의 기지이다. 농촌선교는 농촌사회 뿐만 아니라 온 인간사회는 물론 우주적 (거시적, 미시적) 차원에서 생명선교의 효시가 되고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선교의 혁명적 전환이다. 아마도 기독교가 생명종교라는 명제를 획기적으로 새롭게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맺는 말
우리는 생명을 위한 문명의 단초를 찾기 위하여 生命學이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갈 것이다. 그러나 생명학 연구는 생명운동을 위한 이론적이고 전문적인 학문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학은 단순히 생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세력에 대한 연구를 하여야 할 것이며 죽음의 세력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생명학이 지구화의 맥락 속에서 전개되는 경제적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생명의 정치경제, 생명의 문화와 종교, 생명의 지정학, 생명의 우주론까지를 연구하여 “생명의 정원”의 비전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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