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가 간만에 가슴 떨리는 차를
돈 안되는 차를 내놓은 혼다의 손내는 ?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시 저의 본분으로 돌아가 일본차 소식을 전합니다. 가볍게 최근 일본차 중 주목 받고 있는 한 모델을 훑어보는 시간입니다. 요즘 일본차들이 다시 재미있어지려고 하거든요. 환율이 그들에게 유리해져서 일본차 업체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는 이유도 있고, 그러는 가운데 기폭제가 될 동경모터쇼가 열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런 흐름 가운데, 혼다의 부활을 알리는 이런 차가 최근에 공개됐습니다
혼다 S660 컨셉트
동경모터쇼에서 공개할 S660컨셉트라는 모델입니다. 이름 그대로 컨셉트카이지만 약간의 꾸밈만을 더한 사실상의 양산모델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시판은 내년 하반기 예상. 여기에서 값비싸 보이는 몇 가지 치장성격의 부품들(카본 같은)만 빼고 거의 이대로 나올 겁니다.
이 차가 놀라운 이유는 요사이 고리타분하게 흘러가는 자동차 시장에서 신선한 ‘경차 컨버터블’이기 때문입니다. 네. 경차입니다. 1991년도에 선보였던 비트의 후속모델이죠.
혼다 비트. 1991년
비트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일본 경차규격 차체 안에 미드십 뒷바퀴굴림 레이아웃을 구겨 넣은 컨버터블이었어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 경차에 컨버터블, 요즘처럼 재미없는 자동차시장에선 참으로 보기 힘든 조합이죠.
그래서 S660의 소식이 더욱 반갑습니다. 한동안 돈 되는 (북미용)세단이나 (내수용)미니밴 따위만 만들고, 또한 그들 성장의 기폭제였던 F1마저 철수해버린 혼다. 최근 혼다를 보면 전통적인 팬들마저 ‘저들 왜 저러나?’싶을 만큼 회사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그걸.
신형 NSX와
S660으로 만회해 보려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혼다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또한 뜨거웠던 때도 1세대 NSX와 비트를 동시에 출시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혼다는 아마 그때의 영광을 재현해보려는 것 같아요. 이번 동경모터쇼에 저 두 대의 후속모델을 동시에 공개하면서 말이죠.
그럼, S660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엔진스펙은 (혼다에서 밝힌 바는 없지만) 배기량 660cc에 최고출력 64마력입니다. 일본 경차규격상 엔진배기량은 660cc이하, 출력은 64마력 이하니까요. 게다가 이 차 이름부터 660이니 틀림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혼다에서 밝힌 내용인데요, 3기통 터보엔진을 사용할 예정이고, 이 엔진을 선대모델인 비트와 마찬가지로 미드십 레이아웃으로 싣는답니다. 미드십 엔진에 앞바퀴를 굴릴 일은 없으므로 당연히 MR(미드십 후륜구동)이 되겠죠.
컨셉트카 이야기이니 시판차종에서는 FR이나 FF로 바뀔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요즘 들어 자동차회사들이 ‘희망고문 컨셉트카’를 자제하는 추세거든요. 양산차에 적용하지 않을 내용들로 허황되게 꾸민 컨셉트카가 줄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모터쇼가 재미없어지기도 했지만 대신 화려했던 컨셉트카와 전혀 다른, 실망스런 양산차가 나오는 경우도 보기 드물어졌습니다. S660의 양산형도 MR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죠. 아니,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의 표현보다는 훨씬 많은 확률로 MR이 될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일본 자동차기사들로부터 흘러나온 내용입니다. 차 값을 올리는 이 모든 내용(터보엔진, 미드십 후륜구동, 컨버터블)을 갖고도 판매가를 최고 250만 엔 이하로 묶겠다고 합니다.
굳이 이런 차를 경차규격으로 만드는 건, 꼭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가격을 위한 경차가 아니라, 경차만이 가진 물리적 이점 때문에 만드는 거죠. 그 이점이란, 작고 가볍다는 것.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난 차를 만들기 유리합니다. 가격 따위 경차에서 완전히 벗어나도 살 사람들은 살 만큼 매력적인 차를 만들 수 있는 구성이란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수익이 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가격표를 들고 나왔습니다. 경차딱지를 붙이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겠다는 혼다의 의지로 보입니다. ‘모두에게 스포츠카의 즐거움을’이 S660의 모토거든요. 가격을 높게 부를 수 없었을 겁니다.
“경차가 2천500만 원인데 지금 저렴하다는 거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건 경차이기 이전에 MR컨버터블입니다. 뼈대부터 다른 차에 적용할 수 없는 전용플렛폼에다가 그에 따라 수 많은 부품들 또한 전용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게다가 이 녀석은 수제작이니 더 비쌀 수 밖에. 결국 로터스는 파산 직전
고작 1.8리터짜리 코롤라 엔진 싣고 편의장비라고는 전혀 없는 로터스 엘리스가 에쿠스보다 비싼 이유도 이런 탓이지요. 그런 차를 원화 2천500만 원 이하에 팔겠다는 건 솔직히 S660으로 돈 벌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모터의 도움을 받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이질감 없이 수퍼카적 퍼포먼스를 뽑아내는데 어려움을 겪어, 개발기간이 길어졌다는 뒷이야기
지금 엄청난 개발비를 쏟아 부어 만들고 있는 NSX도 따지고 보면 혼다의 지갑을 채워줄 모델은 아닙니다. 손해나 안 보면 다행인 차종이죠. 그렇다면 지금 혼다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그리고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두 모델이 모두 투자대비 수익이 가장 낮은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정말 돈 벌 생각이 없는 멍청이일까요?
‘돈 벌 생각이 없다’ 이건 경영학적으로는 확실히 멍청한 짓일지 모릅니다. 빈카운터(BEAN COUNTER_주판만 두드릴 줄 아는, 지식과 이론에만 능한 구시대적 경영자를 일컫는 말)들은 듣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킬 듯한 짓이죠.
그러나 그 빈카운터들이 미국 빅3를 몰락의 길로 이끌었고, 한동안 토요타와 혼다라는 회사를 망가뜨려왔습니다. 주판만 두드리며 원가절감을 시도하고, 주판만 두드리며 가격책정을 하고, 주판만 두드리며 교과서 같은 딱딱한 차를 만들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대단히 축약적 표현이지만 이런 일련의 흐름은 엄연히 존재했던 사실입니다.
이쯤에서 생각해 봅니다. 자동차가 기존 공산품과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요. 태블릿, 핸드폰, 오디오, 카메라 등등. 보통의 제품들은 그 제품이 가져다 주는 단순 명쾌한 결과물(통화, 소리, 이미지 등)에 따라 제품의 가치와 만족도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내뿜는 결과물이란 매우 복합적인데다가 딱히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닙니다.
운전의 즐거움, 짜릿함, 이동의 편리함, 가슴을 흥분시키는 디자인 등. 자동차 자체가 우리 몸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제품이라 그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단순한 경영학적 차원과, 교과서 같은 제품개발프로세스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물건인 것 같고요.
물론 모든 차가 그럴 수도, 그래서도 안 됩니다. 다만, 적어도 한 회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마스코트적인 모델에는 경영진부터 개발자를 거쳐, 시장의 자동차마니아들에게까지도 통하는 일련의 열정 같은 게 담겨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동안 ‘그러지 못했던’ 혼다는 그래서 신형 NSX와 비트 후속모델 S660 컨셉트를 개발하며 회사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것 같습니다. 돈 벌지 못하는 차종이라 해도, 회계학적으로는 손해라도 쳐도, 너무 이런 것만 쫓느라 잃어버렸던, 그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다시 얻고자 함이죠.
S660에는 세계최고의 기술도, 최첨단 기능도, 엄청난 럭셔리도, 페라리를 이기는 파워트레인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를 접한 모든 이들을 설레게 만드는 무언가를 느낍니다. 그게 바로 이 차의 핵심이자 한동안 뜸했던 혼다의 저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혼다가 자동차 마니아들을 다시 뜨겁게 하려 합니다. 일본의 다른 회사들로부터도 재미난 모델 개발소식이 솔솔 들려옵니다. 이런 걸 보면 경쟁사들도 자극 받나 봅니다. 과연 재미났던 일본차 전성기시대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어쨌든 우리로서는 즐거운 구경거리임에 틀림 없습니다. 신나는 날들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공 날라리 카디자이너출신 글쟁이 김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