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7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여호와의 사자(使者) 》
말 3:1~6
<구원받은 기쁨은 지금 누리자>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 오늘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가요?
☻ 깜박 잊고 있었다면, 오늘, 지금, 그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천국시민이 되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회(會)’를 만듭니다.
동창회를 만들고, 동우회, 친목계를 만들 듯이 크리스찬도 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회의 이름, 무엇입니까? ~~~ 교회(敎會)입니다.
교회의 멤버가 되어, 교회 안에서 기쁨을 나눕니다.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함께 예배합니다.
“예배하는 기쁨, 예배하는 감격을 함께 누리는 특권, 교회만이 지니는 행복입니다.”
교회에서 누리는 기쁨, 예배의 감격을 누리려면 ‘그냥’은 안 됩니다.
최소한의 노력은 기울여야 합니다.
_ 어떤 친목계에 회원으로 들어가면 그 친목계의 회칙을 숙지해야 합니다.
_ 친목계의 회칙을 숙지할 뿐 아니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그 친목계의 계원입니다.
하물며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멤버십을 획득했으니, 교회의 회칙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회칙은 성경책을 근거로 합니다.
교회의 회원 즉, 성도, 크리스찬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책, 쉽게 줄줄줄 읽혀지는 책이 아니지요?
그러나 교회의 멤버라면, 성도라면 성경을 늘 곁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려면 성경에서 쓰이는 용어를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에서 쓰이는 단어와 성경의 단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설교제목이 되었습니다.
“사자”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아마 “사자”하면 동물원 사자를 떠올릴 것입니다.
크리스찬은 맹수 사자도 기억하지만, 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이는 의미를 봐야 합니다.
☞ “여호와의 사자” 이 사자는 밀림이나 동물원 사자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죠?
<사자, 말라크>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성경에는 ‘사자’라는 단어가 꽤 많이 나옵니다.
그중에는 물론 수풀 속의 ‘사자’도 있습니다.(삿 14:5ff)
그러나 성경에서 ‘사자’는 매우 독특한 의미로 쓰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하나님이 보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특히 교회 성도에게 사자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자를 보내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자를 보내시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자를 학수고대합니다.
기도응답을 받는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사자를 기다린다는 뜻이죠!
“성도는 하나님의 사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자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맞이합니다.
1절에서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했습니다.
문맥을 보니, 이 사자는 일차적으로 ‘말라기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을 선지자를 자기 백성에게 파송하십니다.
1절 뒷부분에서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언약의 사자”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사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본문 1절에서 드러났습니다.
선지자도 ‘사자’ 예수님도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입니다.
그러면, 선지자와 예수님만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에, 보내는 사자를 앎으로써 은혜를 누리겠습니다!
<사자의 여러 모습>
① 천사를 사자로 보내는 하나님
하나님은 천군천사를 거느리시는 분입니다.
천사를 사자로 보내실 때가 있습니다.(창 19장)
소돔과 고모라가 극도로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파송하여 실태 조사를 하십니다.
천사를 롯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롯의 일가를 구출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킵니다.
② 사탄을 사자로 보내시는 하나님
욥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천상회의를 하십니다. 이 회의 사탄도 참석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이 회의석상에서 욥의 신앙을 자랑했습니다. 사탄은 반론을 폈습니다.
“하나님이 잘 해 주시니, 욥도 잘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러자 욥에게 사탄을 보냅니다.
“욥의 모든 소유물을 네 손에 맡긴다. 다만 욥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라!”
이 일은 욥이 시험에 든 사건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기도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③ 사람의 모습으로 오는 사자
구약시대 하나님이 사람에게 보내는 ‘사자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어떤 모습으로도 사자를 보내실 수 있지요!
구약시대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사자를 보냈습니다.
창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있는데 사람 셋이 나그네로 서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 셋을 집으로 맞아들여서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내년 이맘때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자’로서 파송한 일은 다수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도 사자가 나타납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여주인 사라가 혹독하게 다뤘습니다. 견디다 못해 모자가 가출합니다.
집을 나가 굶주리고 울고 있는데, 사자가 나타나지요?
“다시 집으로 들어가라, 너의 후손을 번성하게 해 주겠다.”라고 말합니다.(창 16:7이하)
<선지자, 제사장>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선지자를 파송하십니다.
말라기 선지자도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제사장도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입니다.
말 2: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울 왕도 선지자 반열에 있었습니다.(삼상 10:11)
다윗도 물론 선지자 반열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사자의 직분을 감당합니다.
☞ 하나님은 이렇게, 천사와 사람은 물론 필요하면 사탄까지 사자로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시고 나서 400년을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사자를 보내십니까? ~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침례 요한’을 사자로 보내십니다.
1절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하나님이 이렇게 사자를 보내십니다.
사자들이 하는 일이 뭐라고 선포합니까?
“~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
사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보낸 사자, 특히 사람으로서 보냄을 받은 자들의 사명은,
“~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사라, 하갈, 롯에게 현현한 사자들, 모두 주님의 길을 예비합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 이 사람들 역시 주님의 길을 예비합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결정판이 있습니다. 바로 ‘침례 요한’입니다.
<침례 요한과 예수님>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십니다.
사자들의 사명은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일”입니다.
침례요한에 이르러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일”이 메시아 예수의 길을 예비합니다.
그동안은 하나님의 길을 은밀하게, 섭리적으로 예비합니다.
그런데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독생자, 성자 하나님의 강림, 인카네이션을 예비합니다.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선지자 중에서 침례 요한이 결정적 인물입니다.
선지자의 역할은 모두 침례 요한을 향하여 달려왔습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침례 요한에 대하여 마태복음 11장 11절의 말씀을 하신 겁니다.
침례 요한이 하나님의 사자의 결정판으로 왔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 되어 이 땅에 왔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를 보내다가 하나님이 직접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 파송 드라마”
잘 들으셨지요?
하나님의 사자 파송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사건, 하나님의 사자 파송 드라마의 대단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특권을 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의 공동체 ‘교회’입니다. 거룩한 교회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한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자 파송>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교회의 성도에게 지상 명령을 합니다.
그 명령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자’로 삼고 특명을 내립니다. 너희는 가서
주님이 우리를 보내십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를 사자로 파송하시는 것, 반전입니다. 그렇지요?
신약시대,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 “우리는 주님의 파송을 받은 사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①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심부름을 시키시는가?”
_ 주님이 무엇을 누구에게 전달하라고 하시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_ 분명히 알지 못하면 어떻게 전달하겠습니까?
_ 먼저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② 주님이 보내신 곳으로 가서 전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주님으로부터 파송받은 ‘사자’ 이 이름이 크리스찬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개개인으로 자기 색깔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황의찬’으로서 ‘황의찬’으로 살아갈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보내신 심부름꾼, 특사, 엠배서더, 에인절, 킹, 메신저로서 살아갑니다.
내가 나로서 “네가 어떻게 하는 지 보자”하면서 꽁하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이 파송한 엠배서더, 에인절, 킹으로서 배달부로 살아갑니다.
지금 여러분의 행낭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주님이 전하라고 넣어주신 편지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텅 비어 있다면 게으른 심부름꾼입니다. 가득 차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내가 내 식견, 내 고집, 내 생각으로 살지 않습니다.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삽니다.
정녕, 우리가 주님이 파송한 엠배서더로 살아갈 때, 진짜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은 배달부로서 열심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충만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