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도 심수봉이 MBC 대학가요제에 "그때 그 사람" 이란 곡으로 출전했을 당시에는 완전 무명이었으며, 약간 촌스러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면서 구성지게 "그때 그 사람"을 불러 무척 인상 깊었었는데 아쉽게도 입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가요제에서는 별로 주목 받지도, 입상하지도 못했지만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그때 그 사람"은 대학가요제가 끝난 이후 더 큰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멜로디가 무척 애처롭고 감미로운 곡 "그때 그사람"은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고, 그 이듬해 79년 MBC 10 가수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심수봉은 자신이 직접 작곡한 "젊은 태양"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무궁화" "백만송이 장미" 그리고 "비나리"까지들을 발표하면서 우리 가요계를 주름 잡게 되었으며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 행진을 지속시켜 나갔습니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그녀가 발표한 곡들이 "방송금지곡"으로 묶이는 시련을 겪기도 했으며 1979년 10월 26일의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심수봉은 한동안 무대에 설 수가 없기도 하였습니다.심수봉의 새 노래를 듣기 위해 1984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러한 그 당시 신군부와의 악연을 떨쳐 버리고 심수봉의 새 노래를 듣기 위해 1984년까지 기다린 후에 발표한 노래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심수봉만의 색깔을 담았고 역시나 어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심수봉만의 감정과 심수봉만의 음악을 온전히 담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그녀가 직접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어지는 신군부와의 악연으로 심수봉은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듬해 발표한 "신곡 2집"의 타이틀곡 "무궁화"가 신군부의 눈에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적 노래로 엉뚱하게 해석되어, 금지곡의 철퇴를 맞은 것 이죠.
1987년 신곡 "사랑 밖엔 난 몰라"를 발표하며 재차 자신의 독보적인 가치를 입증했지만 그녀는 1980년대 내내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 아래 서보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 한편에서는 트로트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주현미와 문희옥이 뿌린 뉴 트로트의 간드러지는 맛에 빠져 듬에 따라 그녀의 노래는 많이 희석되어 졌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녀의 노래를 가슴에 품고 있는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20세기 가장 뛰어났던 한국 뮤지션 중 한사람인 심수봉 님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생각하며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클래식기타로 연주 해 봅니다.
첫댓글 님의 연주가 너무 멋집니다. 큰 박수를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멋진 편곡입니다
한가하실때 악보 함 올려주실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