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일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아름다운 용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넘치도록 많은 은혜를 주시는데 우리는 그 은혜의 원천을 알지 못한 채 살지요. 가끔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항상 그렇게 생각하였는데 사는 동안 많은 쓴 경험을 해보고, 어이없는 아픔을 겪고서야 조금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의 원천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외국으로 어려서 입양되어 간 젊은이들이 친 부모를 찾아서 고국을 찾고 “나를 버렸지만 부모님을 찾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말을 들을 때 부모가 얼마나 어려운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또한 “아름다운 용서”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용서를 청하는 부모와, 그리고 그 부모를 받아들이고 형제를 얼싸안는 모습을 볼 때에 나도 목 놓아 울곤 합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용서에 진실한 용서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모를 자기 스스로 용서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할 때면 '분명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신 것이야' 하고 중얼거리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용서를 청하는 부모도 자신을 변명하기보다 “내가 잘못한 것을 크게 뉘우친다.”고 말합니다.
푼수와 같은 내게 피정 강의를 해 달라고 할 때면, 나는 강의안을 만들거나 쓰지 않습니다. 아니 쓸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강의 전에 은총을 기도합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그 시간을 이끌어 주시기만을 기도로 청하고 어색하게 강의를 시작하지만 놀랍게도 주님께서 푼수와 같은 나를 이끄시어 당신의 시간을 채워주십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말로 전하고, 그리고 감정을 움직이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강의 중에 울고, 웃기도하고, 가슴을 치며 호소도 합니다. 부끄러워 할 수 없는 말도 거침없이 토해 주시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말로 열정적으로 고해하게도 하십니다.
내가 간직한 모든 것을 토해 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토(吐)한다는 것은 입(口)이 땅(土)에 닿아야 합니다. 그래야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할 수 있습니다. 토하기 위해서 뻣뻣이 서서 토할 수 없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목을 땅에 닿도록 숙여야 합니다. 그것은 겸손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토해내도록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은총으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래서 피정에 강의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은총이 가득히 내게 머물기 때문이며, 그 모든 것의 원천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사람들은 놀랍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라고 고향 사람들은 놀랍니다. 지혜와 기적의 원천이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하느님이시니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지혜와 기적의 힘을 가지고 계신 것인데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목수의 아들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통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금구무결'(金甌無缺)이란 말은 '조금도 흠이 없는 황금으로 만든 단지와 같아서 완전하고 결점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바로 금구무결하신 분이시지요. 우리가 다른 사람이 잘되면 시기를 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특히 고향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가난하고 초라한 생활을 하던 목수의 아들이었던 옛날의 겉모양만을 기억하고 그렇게 봅니다.
어느 대학의 총장이 자신의 차 아반테(1500cc)를 직접 몰고 총장회의에 참석하려고 학교를 찾았을 때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차량정리를 하는 사람이 달려오더니 멀리 떨어져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라고 구박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운동장에 차를 주차하려고 한다고 하였더니 주차요금을 내라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총장회의에 참석하러 왔다고 말하였더니 왜 함부로 총장을 파느냐고 심하게 구박을 해서 신분증을 보여주었더니 비로소 태도가 돌변하더랍니다. 요즘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프로그램이 아주 인기가 있습니다. 가수가 노래를 잘하면 그만인 것을 외모로 판단하는 편견을 없애려고 기획한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많은 것을 잘못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신 예수님은 대접을 받지 못해서 섭섭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지금도 주님의 엄청난 표징을 보고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까워하십니다. 안목도 없고, 진실도 모르는 우리의 무지를 답답해하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보지 못하고 단점이나 찾으려고 하고, 사사건건 트집이나 잡으려 하는 밴댕이 창새기(창자의 충청도 사투리)와 같은 우리를 불쌍히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시고자 애를 쓰십니다. 우리도 이제 마음을 열어 진리의 성령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서 주님을 올바로 보고 알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