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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2차산업, 3차산업이 위주가 된 사회이며 이제 제 4차 산업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이 현대사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중에 “우리가 농사를 지은 것이 없는데 무슨 추수감사주일입니까?”라고 물어보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농부든, 농부가 아니든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어떤 것을 심고 가꾸고 거두는 농사의 원리가 적용되는 생활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자식을 키우고 뒷바라지하는 일을 우리는 ‘자식농사’라고 합니다. 우리는 농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가꾸듯 각자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 것은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생활처럼 일 년의 삶을 되돌아보며 지금까지 베풀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또한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며 인도하시고 복내려주실 것을 기대하며 감사하는 날이 바로 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드리는 추수감사주일예배는 우리가 직접 농사를 지어 추수했든 추수하지 않았든, 살아온 삶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결실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주일을 주신 목적이요,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가질 믿음의 자세입니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저와 여러분 중에 감사할 일이 많은 분도 계시지만 어쩌면 생각하기조차 싫은 아픔과 고통의 일을 경험하고 힘든 상황속에서 살아가시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는 항상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뜻이 있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일을 기뻐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많은 것을 얻었든 잃었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감사할 일이 많든 적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평탄하게 살게 하고 복을 받게 하고 성공하게 하도록 만드시는 지름길입니다. 감사는 사탄 마귀를 이기는 무기이고 불행을 이겨내는 약입니다.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치료제입니다. 일상에서 항상 감사가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넘치고 아름다운 마음이 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평안한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감사해야 할 것인지를 깨닫고 이 추수감사주일 저와 여러분이 감사를 회복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은혜가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를 회복하기 위해 첫째로, 나의 비천함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36편 23절입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 자신들은 외모나, 학벌과 지적 능력이나, 재물의 부요함이나, 쌓아온 경력과 지위 면에서 등, 어떤 한 부분에서는 스스로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재능이든, 실력이든 상관없지만, 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우리들은 어느 한 사람 예외 없이 비천한 존재들입니다. 비천하다는 것은,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나는 내려 갈 곳 없는 밑바닥 인생입니다. 나는 버려져도 마땅한 아주 보잘 것 없는 폐품입니다.” 라는 자기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없이 비천하다”는 이 사실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운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비교 대상을 자신보다 낮은 사람, 못난 사람, 부족한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은 우월하다고 생각하기에 궁극적 비천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속담중에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3자가 옆에서 보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똑같은데 서로 자기가 더 낫다, 자기가 더 대단하다 싸웁니다. 이럴 때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을 쓰죠.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인간이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미련한 존재, 비천한 존재, 지렁이와 같은 존재인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욥기 25장 4~6절입니다.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우리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비천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앞에서 우리는 나의 나약함, 나의 비천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기고 고백하라는 것은, 굴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빌립보서 2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 즉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셨지만 스스로 비천한 존재인 인간으로 가장 낮은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죽음까지 순종하며 자신을 비천한 상태로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를 지극히 높은 곳에 올리시고, 모든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시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낮아짐과 높아짐을 신학용어로 ‘비천과 승귀의 사역’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아지시고 비천하게 되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되셨다는 겁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11절을 우리 같이 교독하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정말 비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비천한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존귀하게 되었을 따름이지 우리는 정말 우리 스스로 뭔가를 해낼 수 없는 나약하고 미련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 우리에게 생명주신 예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지금 현실에서도 나는 아직 비천하고 나약하기에 불평과 원망이 앞서고 있다면 지금 이 시간 비천과 나약의 환경에서 건져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를 회복하기 위해 둘째로, 나를 위기에서 건지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36편 24절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어쩔 수 없이 동료들과 경쟁하는 사회이기에 항상 대립과 견제, 시기와 질투가 상존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 우리 나라를 시끄럽게 하며 떠들썩거리게 만든 국가연중행사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는데 이 대학입시를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대학입시를 통해 학교 친구들은 서로 경쟁하고 치열한 다툼을 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이나 졸업하고 다시 시험을 치는 재수생, N수생들 모두 원하는 대학교,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서로 좀 더 높은 등급의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하며 서로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경쟁하고 있는 수험생들 서로가 궁극적인 적들일까요? 이렇게 승진과 진급을 위해 경쟁하는 동료들이 궁극적인 원수들일까요? 근원적으로 따지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항상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는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나를 유혹하고 올무에 넘어지게 만드는 존재, 세상의 공중권세잡은 자 사탄마귀가 우리의 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의 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과 우리의 마음을 이용하여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는 사탄마귀가 원천적인 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어쩌면 우리가 상대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세력인 사탄마귀는 우리가 가진 인간적 능력으로는 대적이 불가능합니다. 사탄마귀는 우리를 능가해서 우리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강력한 적입니다. 이런 적을 우리 힘으로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시며 대적을 물리쳐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우리와 함께 할 때 우리는 세상의 유혹, 세상의 미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대적들이 우리를 속이며 우리를 미혹할 때에도 넘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닌 세상에 휩쓸려 가거나 원치 않는 곳으로 이끌려 갈 때 “개처럼 끌려 다닌다”는 말을 하죠. 어떤 영상뉴스를 보니 개를 차에 매어서 끌고 다닌 사람의 영상이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그 영상을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정말 개만도 못한 인간이네”라며 비난합니다. 개는 차에 매달려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이 끌려다가 죽고 맙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사탄 마귀가 마치 차에 매달아 개를 끌고다닌 어떤 사람처럼 우리를 세상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속에서 그렇게 무참하게 끌려다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참으로 슬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며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우리를 건지시려고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의 대적자 사탄은 우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에 가장 많이 가장 크게 감사할 제목은 “대적자 사탄에게 개처럼 힘없이 끌려다니던 이 죄인을 건져 내어 주신 나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탄에게 끌려다니던 부끄러운 나의 옛 모습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말씀을 기준 삼아서, 찬양과 기도와 감사의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십자가 구원의 능력으로 대적자를 물리쳐 주셔서, 비참하게 끌려다니는 종의 생활을 끝내게 하시고, 영생복락을 누리는 소망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신 “나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께 무한 감사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추수감사주일”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감사밖에 없음을 깨닫고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역대하 20장 22,2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역대하 20장의 전체 내용을 보면 여호사밧 왕 때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수많은 병력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둘러싸면서 이스라엘은 멸망의 위기가 최고조로 달하게 됩니다. 이런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여호사밧 왕은 이스라엘 군대 앞에 성가대를 세우고 전쟁터에 나갑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며 감사찬송을 부르게 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고 그 역경과 죽음의 검은 폭풍 앞에서 오직 감사와 찬송을 부르니까 모압, 암몬, 마온 연합군들이 자기들끼리 칼과 창으로 서로 찌르고 죽이고 짓밟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사밧의 이스라엘군대는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감사찬송만으로 큰 승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경험하게 만듭니다. 적들을 물리치는 것이 우리의 힘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위기의 순간이 되면 하나님을 먼저 찾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더욱 감사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를 회복하기 위해 셋째,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36편 25절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한국교회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주일의 유래는 미국에서부터 기원합니다. 미국 추수감사절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청교도인들이 인디언들과 함께 하나님께 첫 감사 예배를 드린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호 배를 타고 종교 박해를 피해 1620년 미 대륙을 향해 떠나 60여일 만에 도착했던 것부터 시작됩니다. 미국대륙에 도착했으나 전혀 생소한 환경과 갑작스러운 피난생활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첫 정착인 중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자 우호적인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그 해 가을 곡식을 거두게 되었고 청교도들은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풍성한 추수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씨앗을 나눠주고 경작에 도움을 주었던 토착민 인디언들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전혀 먹을 것을 찾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먹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였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올 한 해 지난 시간동안 여러분에게는 어떤 감사의 조건이 있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좋은 말들로 감사의 글들을 남겼지만 성경 고린도전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 현재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모습까지 하나님께서 다 인도하셨고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이렇게 살아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심어린 감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내가 가진 불평거리를 찾아 자신의 삶을 욕하고 자신의 주변 사람을 욕하며 이런 인생이라며 저주하기 바쁘지 않습니까? 이런 남편, 이런 아내, 이런 부모, 이런 형제, 이런 가정이라고 모든 게 싫다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그건 자신의 삶을 저주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하셨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하셨고 모든 것이 은혜였다고 고백하는 것이 진심어린 감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부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빠짐없이, 그리고 진심으로 기뻐함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감사의 태도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어떤 것을 감사해야 하나? 고민하지 마세요. 우리 삶의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나를 살아있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시고,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려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함으로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 중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998년 미국 듀크 대학 병원의 ‘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이라는 두 의사가 실험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매일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리가 1분간 기뻐하여 웃고 감사하면 우리 신체에 24시간의 면역체가 생기고, 우리가 1분간 화를 내면 6시간 동안의 면역체계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시편 136편에는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라는 말씀이 26절의 모든 구절에 빠짐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36편 내용 전체는 오로지 감사밖에 없습니다. 감사 또 감사입니다. 시편 136편의 시편 기자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사라는 것이 우리 삶의 내용 전체를 드리는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감사, 총체적인 감사, 일용할 양식 주심에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시라는 뜻입니다. 추수감사주일,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새기며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시며 함께 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은 1년의 수확을 거두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예배드리는 날이지만 이 속에 특별한 영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이 추수감사주일은 하나님의 마지막 날 심판의 때를 예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며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인생도 언젠가 반드시 추수할 때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 년 농사를 결산하며 추수하듯이 우리의 삶의 농사를 하나님께서 추수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 모든 농작물들이 추수 때가 되면 다 추수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 인류의 역사도 언젠가 다 하나님께서 거두어가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 인류의 역사가 추수되어질 때 인생과 인류는 심판의 때를 맞이할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면서 나는 정말 하나님의 추수 때에 어떤 존재로 영광올려드리고 감사의 예물이 될 것인지를 묵상하며 추수 감사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이 예배를 통해 우리가 추수의 열매가 되는 인생이 되기를 다짐하시고 또한 올 한 해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은혜의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