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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 러시아의 애니메이션
hanjy9713
2023.09.10. 01:05조회 18
러시아의 애니메이션
요약 러시아 애니메이션은 국가의 주도와 관리하에 시작되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전파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작가들은 국가의 검열과 작가주의의 긴장 관계 속에서도 러시아의 정취와 작가의 개성이 살아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었다. 1990년대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러시아 애니메이션은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탄생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대중 예술로 사랑받아온 인형극의 전통을 계승해 일찌감치 인형 애니메이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라디슬라스 스타레비치(Ladislas Starevich, 개명전: 블라디슬라프 스타레비치Vladislav Starevich, Владисла́в Алекса́ндрович Старе́вич)가 만든 <아름다운 류카니다 혹은 사슴벌레 전쟁(Прекрасная Люканида или война рогачей и усачей, The Beautiful Leukanida)>(1910)은 러시아 최초의 애니메이션인 동시에 세계 최초의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레비치는 스톱모션 촬영 기법을 통해 의인화한 곤충들의 전쟁과 고통을 유려하게 묘사했는데, 당시 일부 관객은 이 작품을 살아 있는 사슴벌레를 훈련시켜 찍은 것으로 오인하기도 했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후, 레닌은 영화를 혁명 전파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1919년 모스크바에 국립영화학교(Всесоюзны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институт кинематографии, All-Union State Institute of Cinematography)가 설립되어 영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의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러시아의 신경제정책으로 인해 국가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국가적 지원 아래 영화제작과 이론적 탐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애니메이션은 정치적 이념을 전달하기 위한 포스터나 캐리커처를 이용한 것이 특징으로, 지가 베르토프(Дзига Вертов, Dziga Vertov)의 작품에서 잘 나타난다. 베르토프는 ‘키노 글라즈(Кино глаза, Kino Glaz)’ 그룹을 결성해 사실주의적 실사영화를 제작했으며, 카메라의 고속 회전, 역회전을 비롯해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실험하고 개발했다. 베르토프의 <소비에트의 장난감(Советские игрушки, Soviet Toys)>(1924)은 그림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으로는 러시아 최초의 작품으로 인정된다.
<소비에트의 장난감>에서 부르주아를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장면
애니메이션이 정치적 선동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와중에도 알렉산드르 부시킨(Александр Бушкин, Alexander Buschkin), 이반 이바노브바노(Ива́н Петро́вич Ивано́в-Вано́, Ivan Ivanov-Vano),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Алексеев, Alexandre Alexeieff)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초창기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기술혁신을 이끌었다.
특히 알렉세예프는 무소륵스키(Мусоргский, Musorgski)의 음악에 맞춰 핀 스크린 기법으로 만든 <민둥산의 밤(Ночь на лысой горе, Night on Bare Mountain)>(1933)으로 주목받았다. 핀 스크린 기법은 수천 개의 기다란 핀을 앞뒤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사각의 틀에 꽂아 원하는 형상을 만드는 것으로, 핀의 움직임과 조명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독특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향과 새로운 모색
러시아 애니메이션이 예술적 잠재력을 실험하며 독자적 토대를 닦아가는 와중인 1933년, 모스크바의 최신식 극장에서 미국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다. 일반 관객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작가들 역시 셀 애니메이션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깊이 있는 화면에 매료되었고, 스탈린은 “소비에트의 미키 마우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1936년, 당시 유럽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소유즈멀트 필름 스튜디오(Союзмультфильм, Soyuzmultfilm Studio)’가 모스크바에 설립되었다. 소유즈멀트 필름 스튜디오는 교육적, 인도주의적 내용을 담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위주로 활발히 제작을 이어갔다. 그러나 디즈니사의 셀 애니메이션 방식이 도입되고 작업 방식이 분업화되면서,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정취와 개성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알렉산드르 추시코(Алекса́ндр Луки́ч Пту́шко, Aleksandr Ptushko)는 인형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합성한 <신 걸리버(Новый Гулливер, The New Gulliver)>(1935)를 발표해 스타레비치가 선보인 인형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이어갔다.
이 작품은 러시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공산주의적 시각에서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을 재해석해 자본주의 세계를 비판적으로 풍자했다. 추시코 이외에도 이바노브바노, 므스티슬라프 파셴코(Мстислав Пащенко, Mstislav Paschenko)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향에서 벗어나 러시아적 민족성과 정서를 구현한 작품으로 국제적 주목을 끌었다.
<신 걸리버>의 한 장면
한 남자아이가 꿈속에서 걸리버가 되어 자본주의적 불평등과 착취에 시달리는 릴리펏 왕국에 머물게 되는 이야기이다.
■ 해빙기
1953년 스탈린의 죽음 이후 ‘해빙기’를 맞게 되자,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약화되고 문화계 전반에 창작의 자유가 확대되었다. 이 시기의 러시아 애니메이션 역시 국가적 억압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동화와 구비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애니메이션의 초창기부터 적극적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온 이바노브바노는 러시아의 음악과 문학을 바탕으로 한 작품 <열두 달(Двенадцать месяцев, The Twelve Months)>(1956)을 만들었다.
레프 아타마노프(Лев Атаманов, Lev Atamanov)는 각각 인도의 민담과 안데르센 동화를 원작으로 한 <황금 산양(Золота́я антило́па, The Golden Antelope)>(1954)과 <눈의 여왕(Сне́жная короле́ва, The Snow Queen)>(1957)으로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파셴코는 스포츠 애니메이션인 <이상한 시합(Необыкновенный матч, An Extraordinary Match)>(1955)에서 역동적 장면과 빠른 템포를 선보이며 스포츠 코미디 애니메이션 장르의 인기를 견인했다.
<눈의 여왕>의 한 장면
일본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는 애니메이션에 회의를 느끼던 시기에 이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아 계속 애니메이션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 작가주의의 대두와 유리 노르시테인
‘해빙기’를 거치며 러시아의 예술은 교조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과 일상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나 1964년, 흐루쇼프(Никита Сергеевич, Nikita Khrushchyov) 정권이 실각하고 브레즈네프(Леони́д Ильи́ч Бре́жнев, Leonid Brezhnev) 시대로 이어지면서 다시 예술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었다. 그 결과, 1960~1970년대 러시아 애니메이션은 검열을 피해 은유적, 시적 표현 속에 주제 의식을 숨기는 한편, 다양한 캐릭터의 내면적 심리를 예리하게 표현하는 경향을 보였다.
표도르 키트루크(Фёдор Хитру́к, Fyodor Khitruk)는 <어느 범죄자의 이야기(Исто́рия одного́ преступле́ния, The Story of a Crime)>(1962), <필름, 필름, 필름(Фильм, фильм, фильм, Film, film, film)>(1969), <섬(О́стро, Island)>(1974) 등의 작품에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그 밖에 보리스 스테판체프(Борис Степанцев, Boris Stepancev), 안드레이 흐르자노프스키(Андрей Хржановский, Andrei Khrzhanovsky), 니콜라이 세레브랴코프(Николай Серебряков, Nikolay Serebryakov)가 새로운 기법과 참신한 묘사로 두각을 나타냈다.
<섬>의 한 장면
섬에 고립된 한 개인을 통해 인간과 문명의 관계를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한편, 애니메이션 시리즈물로는 동화를 각색한 <브레멘 음악대(Бременские музыканты, Musicians of Bremen)>(1973)와 <아기곰 푸우(Винни-Пух, Winnie the Pooh)> 삼부작(1969, 1971, 1972), <야, 기다려!(Ну, погоди!, Just you wait!)>(1969~1986) 등 소유즈멀트 필름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아기곰 푸우>의 한 장면
키투르크가 감독한 작품으로, 디즈니사가 만든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확연히 다른 감성을 보여준다.
70년대 러시아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작가는 단연 유리 노르시테인(Ю́рий Норште́йн, Yuri Norstein)이다. 이바노브바노의 뒤를 이어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계승한 거장으로, 절지 애니메이션, 인형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제작 기법을 독창적으로 구사해 의식과 무의식의 접점을 탐구했다.
노르시테인은 스승인 이바노브바노와 공동 감독한 <케르제네츠의 전투(Сеча при Керженце, The Battle of Kerzhenets)>(1970년)에서 케르제네츠 성을 지키려는 러시아 군대의 투쟁을 혁신적인 절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박력 있게 묘사했다.
이후, 민담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여우와 산토끼(Лиса и заяц, The Fox and the Hare)>(1973), <왜가리와 학(Ца́пля и жура́вль, The Heron and the Crane)>(1974)을 발표한 데 이어, <안개 속의 고슴도치(Ёжик в тума́не, Hedgehog in the Fog)>(1975)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조화를 통해 심리적 리듬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안개 속의 고슴도치>의 한 장면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아기 고슴도치의 불안감을 정감 있게 그려냈다. 절지 애니메이션 기법의 정교하고 깊이 있는 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노르시테인의 대표작 <이야기 속의 이야기(Ска́зка ска́зок, Tale of Tales)>(1979)는 기억, 현실, 꿈이 미로와 같이 얽혀 있는 인간의 내면을 시적 영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뚜렷한 서사 구조 없이 절지 애니메이션과 콜라주 기법을 독창적으로 활용하면서 반복, 과장, 은유, 환치, 병치를 통해 이미지를 전개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릴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빠지지 않고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장면들
아래쪽의 아기 늑대는 노르시테인 감독의 유년 시절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해석되기도 한다.
1980년대에는 1970년대의 미학적, 기술적 성취를 바탕으로 실험적인 기법이 다양하게 탐구되면서 조형적 표현 양식이 확대되었다. 이 시기에는 스타니슬라프 소콜로프(Станислав Соколов, Stanislav Sokolov)와 알렉산드르 페트로프(Александр Петров, Alexandr Petrov)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특히 페트로프는 <암소(Корова, The Cow)>(1989)에서 유리 위에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페인트 온 글라스(Paint on glass) 기법을 통해 독특한 질감을 표현했다.
■ 사회적 격변과 새로운 모색
1990년대에 들어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자 애니메이션 산업은 문화적,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에 국가의 지원을 받던 국립 기관인 소유즈멀트 필름 스튜디오가 해체되고 개인 스튜디오의 난립이 이어졌다. 러시아 애니메이션은 기존의 이념적 통제에서 벗어나 시장경제 체제의 파고를 맞이하며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했다.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반영하듯, 이 시기의 작품에는 대체로 실존의 부조리에 대한 위기감과 내면적 상실감이 짙게 배어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페트로프의 <인어(Русалка, The Mermaid)>(1996)와 <노인과 바다(Старик и море, The Old Man and the Sea)>(1999), 소콜로프의 <태풍(Буря, The Tempest)>(1992)과 <겨울 이야기(Зимняя сказка, The Winter's Tale)>(1994) 등이 꼽힌다.
<노인과 바다>의 장면들
페인트 온 글라스 기법의 작품으로 인간의 심미적 의지와 자연의 섭리를 은유적,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2000년대에 들어 러시아 애니메이션은 다소 회복세에 들어선다. 러시아의 영웅 서사시에 기반을 둔 작품 <알로샤 포포비치와 투가린 즈메이(Алё́ша Попо́вич и Змей Горыныч, Alyosha Popovich and Tugarin Zmey)>(2004)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후속작이 연달아 제작되었고, 2006년에는 러시아 최초의 CG 애니메이션 <특별한(Особенный, Special)>이 개봉되었다.
2009년부터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아동용 애니메이션 <마샤와 곰(Маша и Медведь, Masha and the Bear)> 시리즈는 큰 인기를 끌면서 해외로 수출되어 2015년 미국 넷플릭스(Netflix)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러시아의 애니메이션 (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신홍주, 한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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