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다섯째 / 김정자
나이 들어 십 년이란 기간은 참 짧다. 물리적인 시간이야 젊을 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지만 심정적으로는 절반도 안 된다. 내리막길의 가속도까지 더하면 눈 몇 번 깜박할 새다. 좁아진 그 간격을 요즘에 흐뭇하게 바라보는 일이 있다.
내 집 창으로, 큰 길에서 오르막 차도의 인도를 따라 오는 사람이 가뭇하게 보인다. 걸음이 보통이하로 느리다. 우리 집에서도 전화를 받고 한 사람이 허리를 펴며 나갔다. 나는 십층 창 아래로 눈을 떼지 않은 채 아파트 입구의 벤치에 오랫동안 시선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나 의자에 앉더니 뭔지 모를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동안 그랬다.
위로는 오빠, 아래로는 여동생이 나는 있다. 거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살다보니 일 년에 두어 번 볼까말까 하다. 가까이 살지 않아 만남이 적으니 젊었을 때보다는 사이가 소원해진다.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얼굴 마주 보고 정 나누는 것만 할까. 자주 못 보니 할 이야기도 많지 않아 자연히 연락하는 횟수도 줄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며 산다. 온 나라가 전염병으로 움직이는 것조차도 민폐일 수 있던 때라 서로 더 조심했다. 더욱이 반려자가 코로나 시기부터 병원을 들락거리니 그때부터 비대면이 철저하게 몸에 뱄다. 구순 노령인 어머니에게 나는 두 형제만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오빠와 동생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만 크다. 나는 둘째다.
고목의 느티나무 아래 두 남자가 그림이다. 엉거주춤 벤치에 허리를 기대고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구순을 앞둔, 칠순을 지난, 노인 둘. 들으나마나 건강과 집안에 관한 이야기 일 테지만 멀리서 보니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갖고 있던 물건을 서로 주고받은 뒤 한 사람은 왔던 길을 따라 등을 보이며 느릿느릿 걸어간다. 넘어가는 서녘의 해가 키 크고 살집 없는 등에 따스하게 얹힌다. 그 뒷모습을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도 기어이 몸을 돌린다. 한동안 창가에 기대서서 나는 그들을 쫓았다. 바로 시숙과 남편이다.
남편은 오 남매 중 막내이고 시숙은 첫째이다. 나이 차이가 십삼 년이라 내가 보기에도 만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가운데 형은 돌아가시고 남자 형제라야 둘만 남았다. 평생 크게 떨어진 적 없이 근처에 사는 덕분에 오며가며 살았다. 연륜이 쌓이고, 둘 다 아팠던 시기도 있는 만큼 무덤덤한 성격의 남편인데도 나이 들수록 형제간에 정과 연민이 드나보다. 예전에는 맏형은 부모님 맏잡이라 했는데... 형님을 애틋해하는 마음이 느껴질 때면 내가 괜히 흐뭇하다. 어릴 적에 먹었던 된장에 박은 콩잎이나 고추 장아찌를 두 사람 다 좋아한다. 짜게 먹으면 안 되지만 입맛 없어 할 때는 눈감아준다. 수수한 전통 음식이 눈에 띄면 그들 생각이 먼저 나 망설임 없이 사오곤 한다. 나이 들수록 예전에 먹던 것을 찾는, 식성이 비슷한 것만 봐도 피 진한 형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형제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이 더 있다. 어릴 적엔 세대차이가 났을 법 하지만 지금, 즐겨 듣는 음악은 같아 보인다. 동생에게 mp3를 사 주고 흘러 간 노래를 녹음하여 준다. 때때로 다시 녹음해 준다며 받아가기도 돌려주기도 한다. 요즘의 레퍼토리를 엿들어 보면 올드 팝도 칸초네도 가곡도 흘러나온다. 놀랍게 동요 ‘반달’도 있었다. 법대 나오셔서 공직에 계셨던 시숙은 노래도 잘 하고 음악에 식견이 있다는 것을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어느 날, 일어나자마자 들리던 ‘미아리~ 눈물고개에~~~’는 아침부터 기분을 가라앉혔다. 너무 슬퍼 청승맞게 들리던 그 노래말고는 아침이든 저녁이든 그들의 노래 취향을 환영해마지 않는다. 오늘 돌려받은 mp3에 또 어떤 곡들이 첨가됐을까. 좋아하는 것이 있는, 젊지 않은 두 남자를 이즘에 격하게 응원한다. 두 남자의 마음은 늙지 않았다.
남편과 시숙은 뒤늦게 만난 절친 같다. 시숙의 연세가 아흔에 가까우니 친구나 지인들은 아프거나 거의 세상을 떠나 점심 한 끼 같이 할 사람이 없다 한다. 다행히 외로운 빈자리를 동생이 채워주고 형님에게 마음으로 기대니 말은 않지만 서로 좋은 사이다. 형제가 나들이도 가끔 한다. 지난번에는 남자끼리 기장시장 구경을 갔다 오더니 자갈치시장도 갔단다. 야구 광팬들이라 가까운 시일에 야구장 가자는 약속도 했다 한다. 예전 몸의 남편은 아니지만 형님 모시고 갔다 온다는 말만으로도 안심이고 기껍다. 그런 모습들이 감사하고 또 보기에 좋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유병장수시대라고 말을 한다. 오래 사는 것이 목표이던 시대는 지났다. 무병이나 유병이나 장수를 할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살 것인가. 눈앞에 닥치는 일들을 우리는 잊고, 미루고 있지 않는가. 답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답 근처에라도 가야 한다. 개인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고민도 필요하다. 시숙의 일상, 무료한 남편의 하루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세대가 당면한 문제고 나의 일이다. 밥만 먹고,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삶은 아니다. 늙어서 잘 살아내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잉여 같은 시간이 괴롭지 않고 또한 민폐인 삶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들어 세월의 틈이 짧아진 덕분에, 거리가 가깝지 않았던 첫째와 다섯째가 때때로 의지하며 걷는다. 여생의 시간이 편안하고 천천히 그들을 지켜주면 좋겠다. 둘째인 내 자리도 건너편에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