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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의 향기♣ No2812
7월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연중 제1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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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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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m.youtube.com/watch?v=FpJPAs3zF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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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하루를 일 년처럼, 하루를 영원처럼 충만히 살아가셨습니다!>
짧게나마 유학을 끝내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감정이 참으로 비장했습니다. 수도회에서 이토록 좋은 배움의 기회를 주셨는데, 제 마음은 미약하지만 최선을 다해 청소년들을 위한 복음 선포에 매진해야겠다는 열정으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아마도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사제직을 준비하던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의 마음은 훨씬 더 했겠지요. 신학 과정을 통해 당신이 알게 되고 체험하게 된 이 좋은 주님을, 어서 빨리 고국의 양떼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신학 공부를 마무리한 그는 여러 차례 입국을 시도했지만, 당시 조선 땅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이었으므로 그때 마다 좌절을 반복했습니다. 그의 귀국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귀국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무슨 대역죄인도 아닌데, 신분도 감춘 채, 마치 간첩처럼 은밀히 다녀야했던 가시밭길 귀국이었습니다.
마치 야행성 들짐승처럼 체포의 위험을 피해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만 조용히 이동해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의 눈에 띌까봐 큰 길로는 못 다니고 숲이 무성한 산길로만 다녔습니다.
이동 중에 며칠씩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탈진해, 죽을 고비도 참 많이 넘겼습니다. 계속된 굶주림과 추위와 피로는 그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켰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한양에 도착했을 때, 그는 꼼짝달싹도 못할 지경이어서 2주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지낼 정도였습니다.
꿈에 그리던 고국에 입국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환영하기 위해 몰려나온 수많은 교우도, 예쁜 꽃다발도 아니었습니다. 박해자들의 매서운 눈빛과 번득이는 칼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친의 순교, 그로 인해 혹독한 가난의 고통을 겪고 계신 모친에 대한 소식이 그에게 전해졌습니다.
겨우 건강을 회복한 그는 조선에 성직자들을 모셔오기 위한 계획을 짜고, 교우들을 모아 또 다시 상해를 향한 험난한 여행길을 떠나게 됩니다. 순풍 하루 만에 만난 엄청난 폭풍우에 종선(從船)도 떼버리고, 돛대 두 개도 베어버렸으며, 식량마저 바다로 던져버렸습니다.
돛대도, 돛도, 키도 종선도 없이 기적처럼 황해를 건너가니, 이번에는 해적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기적처럼 상해에 도착한 그는 1845년 8월 17일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게 됩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신심 미사를 봉헌하면서 큰 감사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사목적 열정으로 충만했던 사제, 그토록 깊고 확고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우리 한국 천주교회 모든 성직자들의 모델이요 이정표, 수호자요 귀감인 것에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동시에 그분과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더 이상 혹독한 박해도, 생명의 위협도 없는 지극히 평화로운 이 시대, 복음 선포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이 시대, 별 열정 없이, 그저 적당히 살아가는 모습이 송구스러웠습니다.
살아생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지상에서 당신이 머물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사셨습니다. 하루를 일 년처럼, 하루를 영원처럼 충만히 살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순식간에 닥쳐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의 머릿속과 마음속은 기꺼이 박해를 받고 기쁘게 순교할 각오로 가득했습니다.
착한 목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지니셨던 활활 타오르던 사목적 열정과 어린 양떼를 향한 강렬한 사목적 사랑이 오늘 우리 한국 성직자들에게 선물로 주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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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복음묵상 동영상)
https://youtu.be/9z6WrGaDZ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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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으로 평안을 잃을 것인가?>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거행합니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은 그냥 고통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릴 적 마카오로 가며 수 없는 육체적 고생을 했고 공부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그러했으며, 부모와 가족의 순교로 마음고생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사제로 서품되어 조금은 편안하게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겠지만, 순교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 대로 김대건 신부님은 높은 벼슬과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는 회유를 뿌리치고 순교의 길을 택합니다. 한순간도 편안해 본 적이 없는 삶이었지만 마지막까지 편안함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힘들기만 하셨을까요? 마지막에 조금도 편안하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사실 그동안 충분히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요? 하루의 마지막도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을 때 잠이 잘 오는 것이 아닐까요? 종일 쉬고 놀고 방탕하게 살았다면 오히려 불안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편한 일과 힘든 일, 두 개가 앞에 놓여 있다면 항상 좁고 험하고 힘든 일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사실 편할 때 더 고통스럽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행복해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위해 피를 흘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해받는 시기에 더 신앙이 강해집니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는 지금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먼 나라 이야기를 넘어서서 ‘왜 그 고생하며 신앙생활을 한 거야?’라며 의아해합니다. 고통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도 가톨릭 국가로서 영국의 심한 박해를 450여 년 받으면서도 신앙을 잘 지켰지만, 소득이 높아지며 편안해진 지금은 다른 유럽 국가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낙태법도 허용되었고 젊은이들은 성당을 떠났습니다. 삶도 신앙도 편안해지려고 하면 죽습니다.
‘쓰레기로 2층까지 꽉 찬 트레시 홈’이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이층집 천장까지 쓰레기로 꽉 찬 이 모습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집주인은 왜 쓰레기를 모으는 것일까요? 모두 다 필요하다 생각하니 모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모든 이상한 행위 뒤에는 항상 ‘죄책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집주인의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여 아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쓰레기를 치울 때 아들은 필요한 것들인데 왜 치우느냐고 짜증 섞인 말까지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고생하면서 성장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때가 되었으면 밖으로 떠밀고 혼자 힘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부모가 해야 할 자녀에 대한 의무일 것입니다. 세상에 왜 이런 고통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고통 없이는 어떠한 성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양팔은 잃었지만 삶은 잃지 않았다’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전기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분이 계십니다. 자신이 만든 의수로 자신이 만든 자전거에 폐지를 싣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루를 열심히 일해도 버는 돈은 5천 원 이하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표정은 매우 밝습니다. 집에만 있으라는 말을 뒤로하고 뭐라도 하고 있다는 보람 때문입니다. 그분을 보며 주위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분은 말합니다. “난 팔을 잃었지 의지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따님도 이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같이 다닙니다.
덧글로 달린 몇 개의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팔 두 손 멀쩡하여 지금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이 두 팔 두 손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힘들다고 엄살떨고 있는 나를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존경합니다.”(Eugene Johns)
“땀 흘려 번 돈 4800원에 저렇게 환히 웃을 수도 있는 모습이 새삼 날 부끄럽게 한다.”(미또)
“아저씨는 대기업의 CEO보다, 빌 게이츠보다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한 어떤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죄송하고요 감사합니다.”(한휴머)
이분이 인터뷰하실 때 뒤에 성모상이 보였는데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런 분이 현시대의 김대건 신부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주선에서 오랜 시간 있으면 건강이 좋을까요? 그곳은 기압이 낮아서 몸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육이 약해지고 골밀도도 약해져서 우주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몸이 망가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힘들지만, 땅을 딛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야 근육도 생기고 뼈도 튼튼해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약해집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제일 힘드셨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편안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과 싸워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되시었습니다. 편안함에 물들지 맙시다. 마치 개구리가 들어있는 물을 조금씩 가열하면 개구리는 뜨거워지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처럼 편안함은 우리를 알지도 못하게 죽입니다. 자꾸 몸을 불편하게 해야 하고 운동해야 합니다.
신앙도 고난 속에서 더 성장합니다. 하늘에서는 이 세상에서 성장시킨 신앙만큼 상을 받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이나 다른 순교자들을 안됐다고 보지 말고 부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6개월간의 긴 여정 끝에 마카오에 도착해서 세 명의 조선 신학생이 놀랐던 것은 건물이나 전례의 완벽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롭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만약 지금 교회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면 우리 사회 분위기가 편안함을 선택하여 죽어가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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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한국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울술라 사이에서 출생하셨다. 6살 때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시 남곡리의 골배마실로 이사를 하고 1836년 은이 공소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해 12월 모방 나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니 16세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조국에 몰래 입국하였다가 다시 4월에 주교와 신부를 영입하기 위하여 10여 일의 항해 후 상해에 도착한다.
1845년 8월17일 상해 근처 김가항에서 페레올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 되니 한국교회 최초의 사제가 되었고 그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해 10월 12일 주교와 신부를 모시고 충청도 나바위에 무사히 입국하였다. 8개월 동안 국내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1846년 6월 5일 몰래 출항하려다 황해의 순위도 부근에서 체포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군문 효수 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26세에 불과하였다. 1925년 비오 11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에서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복음: 마태 10,17-22: 박해를 각오하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싸움을 준비시키신다. 그분 때문에 신앙 때문에 제자들은 부당한 대우와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신다. 이것은 선을 위해 악을 참고 견딜 때 승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이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지 따져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대로 순종하였다. 그들이 순종한 것은 어떤 무서운 일이 닥친다 해도, 그것을 견디어낼 수 있는 더 많은 은총을 받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17절)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일인 양, 회당에서 그들을 채찍질 할 것이다. 기도와 찬양을 바치고 성경을 읽는 그곳에서 사도들을 처벌할 것이다. 사실 사도들이 겪은 고통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9-20절)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위안을 주시는 말씀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셨다. 즉 사도들은 하느님의 영 없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21절) 한 집안의 가족들이 서로 다툴 것이다. 이것은 꼭 가족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부모와 친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사람들이 일치하고 있었지만, 이 믿음 때문에 사악한 믿음과 충돌한다는 뜻이다. 그 사악한 믿음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 앞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아마 이러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시작은 많이 하지만 끝에까지 가는 이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없다.
영광스러운 것은 어떤 좋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끝맺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 끝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우리의 마지막을 생각하라고 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시는 이유이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신앙을 묵상하고 항구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인간의 본 모습을 잘 깨닫고, 알고 사랑한 분이시며,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한 죽기까지 효애를 드린 분이시다. 끝까지 항구한 분이시다. 우리도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같은 항구한 믿음과 온갖 박해도 이길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을 청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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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광주대교구 최종훈 토마스 신부님]
가끔 삶의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적응된 일에만 익숙해져 쉽게 판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실망스러워 절망하기도 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더라도 피곤하고 힘든 과정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를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상처받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였을 때,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하였을 때,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이들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실망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또한 그 길을 가고자 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사제로 살아 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러한 장벽과 걸림돌에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길을 잃고 헤매야 할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또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그런 실망과 후회를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하고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는 삶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넘어지고 채찍질당하며,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견디어 내라.’, ‘걱정하지 마라.’ 하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늘 걱정이 앞섭니다.
십사 년 전 오늘, 저는 이 길에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어떠한 사제가 되겠다는 다짐이나 창대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던 첫 마음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이 닥치더라도 당당히 맞서 나아가려 합니다. 견디기 쉽지 않을 때마다 첫 마음을 기억하며 예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첫 마음으로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내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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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신앙인들이 신앙인이기 때문에 겪는 고난과 시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에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1베드 4,12-14)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로 해석할 수 있는 말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과 시련이 이해가 안 될 때도 많고, “왜 꼭 이래야 하나?” 라는 의문을 품을 때도 많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겪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라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뒤를 따라가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설명으로 ‘고난에 대한 모든 의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어떻든 고난은 과정일 뿐이고, 모든 고난을 참고 견디면 영광을 얻게 된다는 믿음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고난과 모욕 자체가 기쁜 일도 아니고, 행복한 일도 아닙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참 기쁨과 행복’을 향해서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 기쁨과 행복에 대한 희망으로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들은 그렇게 믿음과 희망으로 고난을 감수했습니다. “(최고의회는)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사도 5,40-42) 사도들이 매질과 모욕을 당한 것을 기뻐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라는 말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당한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 신앙을 지킴으로써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격이 있음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라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사도들이 박해에 굴하지 않고 복음 선포를 계속했다는 점입니다. 박해, 고난, 모욕을 참고 견딘다는 말은, 그런 일을 겪어도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신앙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인내’입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17-22)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박해하더라도 신앙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채찍질’ 같은 육체적인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배교를 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았는데, 우리는 “그것도 못 참아서 신앙을 버리는가?” 라고 비난하기 전에, “내가 그런 일을 당할 때, 과연 나는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라는 말씀은, 박해가 오히려 신앙을 증언하는 기회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신앙을 증언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혹독한 고문을 당해도, 사형을 당해도, 신앙을 버리지 않은 순교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앙을 증언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박해와 고난과 시련을 ‘사람의 힘만으로’ 물리치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성령)께서 일러 주실 것이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약속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견디기 힘들고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들이 많습니다. 종교박해는 그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고난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니 주님의 힘에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의(성령의) 도움을 받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가족의 박해를 예고하는 말씀과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정신적인 박해를 예고하는 말씀이기도 하고, 그 박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표현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정신적인 박해’가 ‘육체적인 고문’보다 더 고통스러울 때가 많고, 그래서 신앙을 지키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 될 때가 많습니다. (정말로 극복하기 어려운 박해는 ‘사랑’으로 포장된 충고나 조언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유혹’입니다. “너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라는 충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유혹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또는 유혹이나 박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박해에서 구출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끝까지’는 ‘죽을 때까지’입니다. 이 말씀 바로 뒤에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마태 10,23ㄱ).” 라는 말씀이 이어지는데, 박해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괜히 일부러 박해를 자초하지는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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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사제 모임이 있어서 길을 떠났습니다. 하늘의 구름도 보고, 푸른 산도 보았습니다. 신부님들을 만난다는 기쁨이 있어서인지 가는 길이 즐거웠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있기에 아무런 걱정 없이 갔습니다. 이제 다리를 건너면 곧 목적지였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공사 중이었습니다. 순간 난감했습니다. 차분하게 검색하면 좋을 것인데 성격이 급해서 그냥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착한 내비게이션은 30분 후에 같은 다리 앞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약속 시간은 가까워지는데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구름도 보이지 않고, 푸른 숲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다리를 막고 일하는 사람에게 다른 길이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친절하게 다른 다리를 안내 해 주었습니다. 예전에는 지도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때는 다리가 막혔어도 길을 잘 찾아 다녔습니다. 지도에는 다른 길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내비게이션을 보고 다니기 때문에 이런 돌발 상황에서는 길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요즘 가톨릭평화신문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15살 어린 나이에 사제가 되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났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없고, 지도도 없고, 차량도 없었습니다. 조선에서 중국을 거쳐 마카오까지 가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강을 건넜고, 만주벌판을 지났습니다. 누가 두 신학생의 길을 밝혀 주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 사무엘을 불러주셨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다윗에게 기름을 발라 주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자렛의 여인 마리아를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부르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의 길을 지켜 주셨습니다. 한분은 최초의 사제요,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한분은 조선 팔도의 착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한 교우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부님들은 결혼하지 않아서 그렇지 직업으로 치면 정말 좋은 직업입니다. 존경받지요, 먹고 살 걱정하지 않지요, 여행도 편하게 다니지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 신자들의 눈에 사제들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 생각을 했습니다. 단적인 예지만, 사제들이 겸손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사제들이 가난하게 살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사제들이 자신들의 직무에 헌신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순교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사제들이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주일날 성당에 못 나올 일이 많아지고, 바쁜 사회의 일로 기도 시간은 늘 뒤로 미루어지고, 미사 시간에 늦기도 하고, 신부님의 강론 시간에는 주보를 보거나, 자거나, 딴생각하고, 신부님의 강복이 있기도 전에 무엇이 그리 바쁜지 일어나야 하고, 용하다는 점쟁이, 철학관, 무슨 도령이라는 곳에 가서 자신의 앞날을 알아보고 싶고, 실제로 가서 복채도 내고, 교회에서 하는 일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뒤로 빠지고, 양심을 속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목숨 바쳐 지킨 신앙의 선조들이 보시면 하도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올 행동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지는 않나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편안하고 쉬운 길보다는 어렵고 힘든 길 그러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길은 때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줍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그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키워주고 그러한 끈기는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희망을 낳습니다. 또한, 그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께서 걸어가신 신앙의 길, 희생의 길, 순교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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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류동렬 펠릭스 신부님]
<사랑이 채워진 삶>
신부가 된지 얼마 안 지나서 그런지 아직은 신부로 사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지난 24일 서품식의 감동은 물론이고, 첫 미사며, 다른 신부님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집전했던 미사며, 성사들이 여전히 제게는 큰 기쁨이고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부로 살게 될 제 남은 인생이 언제나 행복과 감동으로 가득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신부로 산다는 것이 녹녹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강론이 어렵고 힘든 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고, 각종 성사와 사목활동이 제게 큰 무게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강론, 성사집전, 각종 사목활동이 신부에게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이는 비단 사제인 저에게만 다가오는 문제가 아니라,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볼 법한 일입니다. 처음 성당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느꼈던 감동들, 고해성사 이후 하느님과 가까워졌다는 느낌들을 통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습관적으로 성당을 왔다 갔다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보면, 주일미사조차도 짐이며, 숙제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은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신앙인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고, 행위에만 빠져 지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제들이 성사를 집전하고, 강론을 하고 사목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미사를 꼬박꼬박 참여하는 것 역시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 삶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규칙을 지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엄격함이라기보다, 규칙의 동기인 사랑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우리에게 이러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신부님께서는 모진 고문과 형벌 속에서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걱정하지 않으시고, 그들 앞에 서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찾아올 것이 ‘죽음’이라는 어둠임을 아시면서도 당신께 주어진 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기에 죽음까지도 담대히 받아들이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의 원천과 동기가 하느님의 사랑에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록 내 몸이 조금 귀찮고 불편할지라도, 때로는 그것이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김대건 신부님처럼 피를 흘리는 순교는 아닐지라도, 하느님과 함께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땀의 순교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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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신대원 요셉 신부님]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에 충청도에서 태어나셨고, 15세인 1836년에 중국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845년 8월 17일에 사제서품을 받으셨으며, 1846년 9월 16일에 순교하시고, 1925년 7월 5일에 복자위에 오르셨으며, 1984년 5월 6일에 시성되셨습니다.
비록 그분의 생애는 짧았었지만, 그분이 한국천주교회에 끼친 신앙적 유산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성인으로 받들어 모실만큼 위대하였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그분의 삶을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받도록 하였습니까? 그것은 그분이 자신의 온 생애를 전적으로 주님께 의탁하신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곧 그분이 위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을 이 땅에 보내주신 ‘주님만이 홀로 위대하시다.’라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파견하시면서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주일에 주님께 들은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라고 하신 말씀과 대조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하신 것과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신 말씀은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심하라’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를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방해한다거나 훼방을 놓는다거나 이간질한다거나 혹은 모진 박해를 가해서 주님과의 일치의 끈을 끊어버리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입니다.
반대로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자녀로서 ‘기쁘고 떳떳하게’ 말할 것을 말하고 행동할 것은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바로 ‘조심해야 할 순간’에 철저하게 조심하신 분이시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순간’에 두려워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김대건 신부님은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실 날을 손꼽으면서 조선교구의 모든 교우들에게 옥중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벗들이여,....(중략)...하느님의 은혜로 세상에 왔고, 또 하느님의 더 큰 은혜로 세례를 받은 덕으로 그분 교회의 신자가 되어 우리는 참으로 귀중한 이름(세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교회에 들어 온 것이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배교자가 되어 하느님께 배은망덕한 죄인이 될 것인데, 그분의 은혜가 풍성한 만큼 이 배은망덕은 더 미움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농부를 보십시오. 적당한 때에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하면서 자신의 추위와 더위와 고생에 대해서는 크게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중략)... 재앙으로 인하여 겁을 내지 마시고,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뒷걸음을 치지 말며.... 비록 우리가 여럿일지라도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애덕을 잊지 마시고, 서로 참고 도우며,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실 때를 기다리십시오......”
김대건 신부님의 이 말씀은 오늘 주님의 말씀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 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하느님과 이간질 시키고, 훼방 놓고,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외에는 모든 것을 김대건 신부님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 온전히 우리 자신을 바쳐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례를 받아 세례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올바른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마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대축일 잘 보내시고 주님 안에서 언제나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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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이형국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찬미 예수님,
가끔 나서는 뒷산 산책길에 만나는 나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신비로우리만큼 아름다운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거리는 아름다운 날개 짓이나 한지 같은 날개의 곱고도 오묘한 색깔, 잡아도 없는 듯 여리고 가벼운 나비의 모습은 누구나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런 나비가 애벌레가 변해서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가 이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을 보면서 애벌레의 징그러운 모습을 연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잘 연상되지 않는 이 사실에서, 우리는 너무도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게 됩니다. 사실 움직임조차 흉하고 징그러운 애벌레가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의 나비로 바뀌는 그 변화는 결코 그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깜깜하고 흉한 꼬치 속에 갇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면서까지 애벌레는 처절한 몸부림을 치지만, 끝끝내 참는다면 마침내는 아름다운 새 생명으로 태어나 그 인고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 바로 나비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것입니다.
신앙의 박해가 풍미했던 1836년. 이러한 교훈을 삶으로 보여준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꽃 같은 열다섯의 나이로 당시로는 낯설고 머나먼 땅, 마카오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 하나로 사제의 꿈을 품고 떠난 젊은이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기후도 음식도 문화도 맞지 않는 그 이국땅, 어쩌면 영영 살아서는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 약속된 것 하나 없는 그 땅에로 미련 없이 떠난 젊은이였습니다. 풍토병에도 걸리고, 영양실조에도 걸리고, 풍랑도 만나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습니다.
무엇보다도 9년이라는 기나긴 인고의 세월 끝에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채 1년도 되기 전에 결국 그 젊은이는 신앙의 박해 앞에서 참수형으로 새남터의 한 줌 이슬로 남게 되는 불운의 한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그 젊은이의 삶을 보고 아무도 불운의 삶이라고 기억하지만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세상의 미움과 박해 앞에서도 끝까지 참는 사람이었기에 구원과 승리의 화관을 쓰신 아름다운 순교자요, 수많은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과 신앙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새 생명을 얻게 된 젊은이라고 기억합니다.
그 젊은이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대축일로 기억하는 한국의 최초의 사제이자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입니다.
오늘은 인고의 노력으로 찬연한 아름다운 새 생명을 얻게 되는 나비와 같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그 숭고한 삶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러한 오늘 우리 또한 예수님 사랑에 힘입어, 참으로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인고의 시간을 통해 참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함을 절실하게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안일함에 젖어 그 어떠한 고통도 피해가려고만 노력하는 사람의 신앙은 더 이상 나비처럼 변하지 못하는 애벌레 신앙이요, 이미 죽은 신앙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편리와 쉽게 타협하는 우리들입니다. 당장의 욕심에 신앙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어내기 쉬운 우리들입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쉽게 하느님을 원망하는 우리들입니다. 작은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고 포기하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마치 애벌레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처럼 어떠한 세상 유혹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내일에 대한 희망만 있다면, 우리는 그 숱한 삶의 어려움을 딛고 다시 한 번 아름답게 태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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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양주분회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대축일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충남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3남매 중 맏아들이셨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사위의 밀고로 체포되어, 아들을 국경을 넘겨 보낸 국사범으로서 온갖 잔악한 형벌을 받은 후에 서소문 밖에서 목 잘려 순교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열다섯 살 때, 곧 1836년에 고국을 떠나 중국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셨습니다. 그 후에 여러 차례 입국하고자 시도했다가 실패했으며, 마침내 1845년 1월에 온갖 고생을 겪고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셨습니다. 그러나 전교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몸이 불편한 중에도 온갖 고초를 겪으며 다시 상해로 가셔야만했고, 1845년 8월 17일에는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밤낮으로 열심히 사목하던 중 체포되셨습니다. 그는 모진 문초를 받으면서도,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고통을 참으라는 편지로 격려를 하셨습니다. 1846년 9월 16일, 사제품을 받은 지 1년 1개월 만에 스물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참수의 거룩한 순교의 빨마를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1949년에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정되셨고, 1984년 5월 6일에 성인으로 시성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 때문에” 모진 핍박과 수난 속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 하셨습니다. 참으로 살 때나 죽을 때나 오로지 “예수님 때문에”만 살고, “예수님 때문에”만 죽으셨습니다. 마치 사도 바오로의 고백에서처럼,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성인의 “옥중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이처럼 성인께서는 참으로 “예수님 때문에” 고문을 받으셨고, “예수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성인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랑으로, 오로지 예수님께 희망을 거셨습니다. 그렇기에 핍박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까지 드리셨습니다. 참으로, 성인께서는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시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하셨다.’(로마 5,2-3)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렇게 십자가에서 아버지를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증거는 단지 십자가에서만 있었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공생활을 통한 일상적인 삶 전부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증거의 삶이,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증거”, 곧 우리의 “순교” 역시 우리의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연속되는 죽음 속에 자리 잡아야 할 일입니다. 곧 일상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의 뜻에는 스스로 죽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서, 매순간을 “순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2고린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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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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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10,18)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큰 날입니다. 7월5일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1925년 복자품에 오르신 날입니다.
저의 고향이 미리내 성지와 가까운 곳이라서, 저는 종종 미리내 성지를 방문할 수 있었고, 그래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숨결을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리내 성지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 사제품을 주신 조선 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님과 새남터에서 미리내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시신을 모셔온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자리 잡고 있는 거룩한 땅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1년 1개월이라는 짧은 사제의 길을 걸으셨지만, 저의 증조부 이문영 베드로께서 박해를 피해 와 정착한 지금의 한덕골 성지도 방문하신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도 분명 미사를 드리셨을 것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45년 8월17일 중국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으시고, 이듬해인 1846년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배교의 협박과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 내셨습니다. 천주교를 버리라는 관장의 말에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천주교가 참된 종교이므로 받듭니다. 천주교는 내게 천주 공경하기를 가르치고, 또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내게 배교하라는 말은 쓸데없는 말입니다. 결코 나는 우리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23번째 편지에서)
환난도 자랑으로 여기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순교로 끝까지 걸어가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본받아 우리도 나에게 주어진 신앙과 십자가를 끝까지 지켜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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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가까이>
마태오 9,18-26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시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가까이>
그분께서
나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계시기를
바란다면
그분께
내가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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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두 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1845년 8월17일에 상해근교의 김가항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이때는 서품식이 요즘처럼 성대하지 않았습니다. 쪽배를 타고 그곳까지 간 11명만이 참석한 조촐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한국천주교 사상 가장 뜻깊은 날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사제품에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진정 빛나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될 만큼 명실공히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탄생 200주년을 맞은 신부님의 마음을 헤아렸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서품을 받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15세에 영세 입교하시고 신학생으로 뽑혀 멀리 산 설고 물 설은 마카오로 떠난 그날부터 겪은 고초를 생각하며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겠습니까? 우리는 상상할 뿐이지 말로써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서품을 받으면서 그날 모든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신부님이 사제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금의 환양이요. 개선장군같은 환영입니까? 아닙니다. 박해의 칼, 체포와 죽음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사제가 된다는 것은 어려움도 있지만 교회 내에서는 영광스럽고, 소중한 품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신분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가 되었을 때는 사회적으로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목숨을 바치는 순교정신,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일이었습니다. 명실 공히 십자가를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것을 잘 아시면서도 바로 그 믿음과 순교정신으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한국 신자공동체가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땅의 복음화와 구원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도 좋다고 생각하신 분입니다.
신부님은 자신을 위해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동포를 위해, 조국을 위해 세상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1845년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양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수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황해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37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시절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구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주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는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입니다.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는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 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 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17-2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1-4).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 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나도 사람인데’‘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날 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어떤 신자분이 성경을 읽으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성경을 펴서 첫눈에 들어오는 한 줄을 읽고 말씀대로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 말씀이 마태오 복음 27장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 읽겠다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루카복음 10장 3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중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너무 기가 막혀 삼 세번이다 하면서 다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7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우리 신자분들 중에는 오늘의 운세를 보듯, 점을 치듯 성경을 읽는 분이 계십니다. 말씀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되는대로 눈이 가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나는 듣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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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순교영성의 시대>
-신망애(信望愛) 향주삼덕-
오늘 우리는 한국순교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성인을 생각할 때마다 늘 함께 살아 계신 듯 신선한 감동을 느낍니다. 25세 꽃다운 짧은 인생을 사셨지만 보통 사람의 몇배를 참으로 충만한 삶을 사신 순교 성인입니다. 성인보다 거의 3배를 살아가고 있는 저를 더욱 분발케 하는 순교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입니다.
새삼 삶은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 살았는가, 즉 삶의 양이 아닌 삶의 질에 대해 묻게 됩니다. 성일 축일 때 마다 불렀던 아름답고 비장悲壯한 성가 287장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최민순 작사, 이문근 작곡)’도 생각납니다.
“서라벌 옛터전에 연꽃이 이울어라, 선비네 흰옷자락 어둠에 짙어갈제
진리의 찬란한 빛 그몸에 담뿍안고, 한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여.
동지사 오가던길 삼천리 트였건만, 복음의 사도앞에 닫혀있던 조국의 문
겨레의 잠깨우려 애타신 그의넋이, 이역의 별빛아래 외로이 슬펐어라.”
4절까지중 2절까지만 인용했지만 전부가 구구절절 감동입니다. 올해는 한국천주교회에 참 각별한 날입니다. 바로 성인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천주교회는 2020년11월29일-2021년11월27일까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친필 메시지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사랑하는 한국의 국민에게 진심어린 인사를 보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고, 성모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20년10월23일 프란치스코)-
마침 7월2일자 한겨레 22쪽 ‘교황이라는 제왕적 칭호’라는 강우일 칼럼중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관한 감동적인 내용 일부를 인용합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은 서울 도착 후 한국주교회의 본부를 방문하고 주교단 전체와 만났다. 방문 기념 서명을 부탁하려고 가로세로 40cn 정도의 두꺼운 서명판을 준비하여 드렸다. 교종께 서명판을 돌려받았는데 서명이 안보였다. 제대로 의사 전달이 안 되었나 싶어 서명을 해주시라고 다시 부탁드렸다.
교종은 잘 보라고 했다. 서명판을 다시 살펴보니 아래쪽에 깨알같이 “프란치스코”라고 쓰여 있었다. 놀라서 다른 주교들에게 그 서명판을 보이자 모두 “와!-”하고 감동과 경탄의 환호가 터졌다.
그래서 나는 프란치스코 교종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런 분에게 여전히 교황이라는 제왕적 칭호를 습관적으로 붙이는 것은 역사를 올바로 성찰하지 않고 프란치스코 그분의 인품과 삶의 행적을 무시하고 욕되게 하는 것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는 물론 모든 성인들은 우리의 영원한 회개의 표지, 희망의 표지, 구원의 표지, 우리 삶의 좌표가 됩니다.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을 줍니다. 늘 강조하지만 기념, 기억할뿐 아니라 우리 또한 성인이 되어 순교영성을 살라고 있는 순교성인 축일입니다. 사실 믿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순교영성의 시대입니다. 어떻게 순교영성을 살아야 합니까?
첫째, 믿음의 삶입니다.
양상과 정도의 차이일뿐 계속되는 ‘주님의 전사’로서의 영적전쟁의 삶입니다. 주님의 전사는 바로 믿음의 전사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믿음의 전사들인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이 강조하는 바도 믿음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습니다. 어떤 박해의 힘든 상황중에도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우리에게 일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하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십니다.
이어 주님은 참으로 어떤 역경중에도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뎌내는, 버텨내는 인내의 믿음입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이깁니다. 궁극의 승리는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둘째 희망의 삶입니다.
희망이 있어 인내의 믿음입니다. 희망의 전사로 사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희망이 아닙니다. 주님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꿈이자 비전이자 희망의 별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샘솟는 내적 힘의 원천입니다. 희망이야말로 영혼의 명약입니다. 잘 먹고 운동 잘 해서 건강이 아니라 희망이 생생해야 온전한 건강입니다. 온갖 시련 중에도 희망의 빛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무한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셋째 사랑의 삶입니다.
사랑의 전사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부어집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바로 하느님은 우리 사랑의 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수맥水脈’에서 샘솟는 우리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런 하느님 주신 사랑이 있어 한결같은 지칠줄 모르는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역대기 하권의 요아스 임금과 유대의 대신들을 이런 사랑을 잃어 하느님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이들은 예언자들의 증언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급기야 즈카르야 예언자까지 살해합니다. 즈카르야가 두려움 없이 이들을 질책할 수 있었던 것도, 의연히 순교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사랑의 힘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새삼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이다.’ 말이 생각납니다. 사랑의 순교요 사랑의 성체입니다. 그러니 평생을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로, 즉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모두 한결같이 신망애 향주삼덕의 순교영성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끝으로 순교영성을 요약한 제 좌우명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찬미받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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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알타반의 말씀 사랑♡
2021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는 가운데 맞이하는 축일인 오늘, 미사의 말씀은 증거자의 소명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 10,18)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당신을 따르려면 박해를 각오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들이 스승을 만나 들어선 길이 꽃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존 체제의 한계를 뚫고 열린 새로운 길은 반감과 배척을 숙명처럼 넘어야 하지요. 열광 만큼이나 모질고 사나운 기득권자들의 저항을 온전히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사실 적대세력 앞에 서는 순간은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두려움으로 자지러져 있을 수만은 없지요. 복음을 선포하는 이는 기회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호의적인 이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나 칼날 앞에 섰을 때나 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의 영이십니다.
예언자는 주님의 목소리입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부족한 자신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예언자가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게 되면 그만 침묵합니다. 말보다 더욱 진한 피로써 주님을 증거하고 소리의 역할을 끝마친 뒤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지요.
제1독서는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힌" 즈카르야의 순교를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2역대 24,20)
당시 임금인 요아스는 여호야다 사제가 아탈야의 유다 왕족 살육에서 건져내어 7세까지 숨겨서 기른 뒤 왕위를 되찾아주고 보필해 준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여호야다 사제가 죽은 뒤 하느님을 배척하고 우상에게 돌아섰지요.
즈카르야는 바로 그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입니다. 그가 전한 이 말씀은 그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지요. 하느님은 그들이 다시 당신께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셨기에 요아스 임금에게 누구보다 충성스러웠던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의 입에 당신 말씀을 담아 보내셨지요.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2역대 24,32)
하지만 우상에게 꽂힌 임금은 하느님을 배반하고 한 인간의 고귀했던 충정조차 외면합니다. 이렇게 즈카르야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구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 못지않게 "환난" 역시 자랑거리라고 이야기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4-5)
스스로 주님의 새로운 길을 박해하던 자였던 사도는 주님의 제자가 된 뒤, 자신에게 닥치는 환난들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아울러 믿음의 동료들에게도 '환난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인내와 수양을 키워 결국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힘주어 증언합니다. 결국 이 희망이 구원과 이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견디라고 하십니다. 이 "끝"에 다다르기까지 실제적인 고통과 어려움들을 겪어야 하지요. 어쩌면 이 "끝"이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기에 희망일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명예와 욕망과 목숨까지 바쳐 다다른 "끝"은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와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예로서 지금 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에게 구원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앞당겨 누리는 진복의 삶으로 허락됩니다. 이런 까닭에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이는 환난 중에서도 기쁘고 고통 중에서도 충만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직이 주어졌습니다. 이 소명은 주님을 따르는 길이 마냥 '좋은 게 좋은 거'로 희희낙락할 수만은 없다는 걸 실감하게 해 줍니다. 그래도 예언자는 인간적 걱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설령 반대받는 표적이 되더라도 자기 안에 계신 아버지의 영께서 말씀하시도록 믿음을 부여잡고 견디며, 주님과의 일치의 기쁨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 구원을 누리고 있기에 예언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자라도록 목숨을 바쳐 양분이 되어 주신 김대건 신부님께 한국 교회의 모든 신자들, 특히 모든 사제들을 맡겨 드리며, 우리 모두가 주님의 예언직을 충실히 수행하는 증거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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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시녀회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www.youtube.com/watch?v=bRqQ9N-pzy0&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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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걱정하지 마라."(마태 10, 19)
성직자의
생명은
치열함과
열정에 있다.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삶에 있다.
청춘이
아팠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피와 눈물이
한국 성직자들의
밑거름이다.
부끄러운
시간들을
비추어주는
은총의
첫사제이시다.
이 땅의
첫사제는
끝까지
사제직에
충실하셨다.
새로운 길은
아프다.
뿌리내리는
진통이 매섭다.
쪼개지고
부서지며
푸른 정신이
되셨다.
사제 정신을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뼈아프게
반성한다.
좋은 성직자는
먼저
좋은 사람이다.
외롭고 지칠때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다.
몸집만
커져버린
우리교회의
현실이다.
더 뜨겁게
살아가야 할
성직자들의
삶이다.
기도를
떼어놓고
첫사제를
말 할 수 없다.
오늘도 나는
당신을 죽이며
살고있는
부끄러운
삶이다.
사제직은
멈출 수 없다.
부단한
자기 혁신이
필요한 삶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회가 있고
사제가 있다.
아름다운 삶을
첫사제처럼
치열하게
살아야 할
우리는 이 땅의
가톨릭 사제이다.
안정된 길이 아닌
십자가의
치열한 길이다.
사제는
사제다워야
한다.
첫사제시여
사제의 삶을
비추어주소서.
축복처럼
은총처럼
김대건 안드레아
첫사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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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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