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5.水. 비
몽돌해변 굴금(해식동굴)에서.
“저, 여보세요. 영감님. 여보세요!”
“......”
“여보세요, 예? 여보세요. 내 말이 안 들리세요?”
“......”
“어어, 큰일 났네. 어이 대교 님. 이리 좀 와 봐요. 저기 굴 안쪽에 웬 영감님 한 분이 앉아 있는데 말이지요. 불러도 대답이 없고 반응이 없거든요. 혹시 앉은 채로 기절해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 번 더 불러봐야겠네. 여보세요, 영감님!”
“허참, 그 녀석. 아, 엄청 시끄러워 선정禪定에 들어있지를 못하겠네. 아 이 녀석아, 너는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느냐? 목소리가 꼭 돼지 멱따는 소리 같구나. 이놈아, 영감님이라니 나다 나!”
“예? 나라니요. 혹시 저를 아세요?”
“허어 그 녀석. 봄비를 쫄딱 맞으며 황금산을 건너오더니 우중풍경雨中風景에 넋이 빠진 모양이구나. 울림아, 정신 차려라!”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아이구 마니나... 부처님 아니세요?”
“흐흥, 울림아 이제야 정신이 좀 돌아오느냐? 그래. 나다.”
“아니 부처님. 이렇게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몰아치는데 여기 굴금에는 웬일이세요?”
“오냐, 비오는 봄 바다가 보고 싶어 아침 일찍 이곳 황금산을 둘러보고 몽돌해변을 산책하는데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더구나. 그래서 잠시 금굴에서 비를 그으며 선정禪定에 들어있는 중이었느니라.”
“하아, 그러셨구나.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웬 영감님이 이곳을 지나시다 비와 추위를 피해 굴금에 들어와 추위와 허기 때문에 앉은 채로 혼절해있는 줄 알았걸랑요.”
“호오, 그러했느냐? 그럼 혼절한 사람을 구해주려고 그러했겠구나. 그 뜻은 가상하다만 그렇다고 귀에 입을 딱 갖다 대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느냐. 귀청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느니라. 다음에 혹여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좀 부드럽게 부르려무나.”
“예, 알겠습니다. 부처님. 저어 부처님, 그런데요 여기 황금산에는 혹시 절이 없나요?”
“글쎄다, 그런데 이 부근 지명이 당진인 걸로 봐서 중국과 교역이 많았던 곳이었을 터이니 왜 절이 없었겠느냐. 세월에 묻히고 인연이 다해서 지금은 그 흔적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겠지.”
“그렇지요, 부처님. 꼭 바닷가 이런 굴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전설이 있더라고요. 동해 홍련암도 그렇고요, 강화 보문사도 그렇거든요. 이런 굴에서 원효스님이나 의상대사께서 수행을 하시다 관세음보살님을 친견을 한 후 그 옆에 절을 지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황금산에 절이 있었다면 이곳 굴금도 딱 그런 전설이 어울릴 만한 곳 같아서요.”
“호오, 그렇느냐. 네놈의 상상력은 참 기특하기도 하구나. 그렇다면 이곳 굴금은 부처인 내가 직접 선정禪定에 들었던 곳이니 네놈이 이곳 황금산에 시주를 해서 절을 한 채 짓도록 해보려무나. 그리하면 굴금의 전설이 세상에 유래가 없는, 부처님이 직접 선정禪定에 들었던 인연으로 절이 지어진 곳이 될 것 같구나.”
“아하, 부처님. 정말 멋진 아이디어이긴 한데요. 하지만 안 돼요~, 안 돼~. 부처님 생각해 보세요. 절이 말이지요. 생각보다 건축비가 엄청 많이 들거든요. 보통 주택이 평당 350만원에서 400만원가량 들고요, 한옥이 평당 7,800만원 정도 들거든요. 그런데 절은요, 평당 1000만원이 훨씬 더 든단 말이에요. 나무 기둥도 두리기둥을 써야지요. 조각해야지요, 또 단청 입혀야지요. 어휴, 그 많은 돈을 언제 벌고, 언제 시주를 받고 하겠어요? 그런데다가 돈만 있다고 옛날처럼 황금산 아무데나 말뚝 박고 터를 정할 수도 없잖아요. 이곳은 아마 그린벨트로 묶여 있을 텐데 종교부지로 지정을 해서 그린벨트 해제를 하려면 서산 군청과 이런저런 관공서에 들어 다녀야 하고요. 그게 맨입으로 되나요? 또 녹지보호, 환경훼손 등등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혹시 있으면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설득해야하고요 아~ 안 돼요, 안 돼~”
“호오, 그렇기도 하겠구나. 허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되고 안 되고는 네놈이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의상대사 말씀 가운데 이런 말이 있지 않느냐.”
‘一中一切 多中一 일중일체 다중일
一卽一切 多卽一 일즉일체 다즉일
一微塵中 含十方 일미진중 함시방
一切塵中 亦如是 일체진중 역여시’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며
티끌같이 작은 속에도 우주가 있고
낱낱의 티끌마다 우주가 들어 있다’
“황금산에 떡하니 몇만 평을 차지하고 우람하게 솟아 있는 눈에 보이는 절만 절이 아니라 네놈의 찰나刹那의 생각, 네놈의 가슴 한켠에 들어 있는 절도 절이 아니겠느냐? 내 눈에는 황금산에 자라나는 산천초목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에도 모두 절이 한 채씩 들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네놈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울림아! 굴금 밖에 잿빛 하늘에서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봄비를 보아라.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며, 티끌 같이 작은 속에도 우주가 있다 하지 않았느냐!”
“예, 부처님.”
(- 몽돌해변 굴금(해식동굴)에서. -)
첫댓글 황금산과 굴금의 황금이 긴울림님 눈에만 보이게 해주시면 . . ㅎ ㅎ
비바람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찾아 들어간 동굴속의 그 편안하고 따듯했던 느낌이 참 좋았어요.
상상을 뛰어넘는 멋진 후기 즐겁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자연의 신비로움은 늘 우리들의 마음의 상상력을 키우나 봐요 ....
어느곳을 보아도 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