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데스크에서
[데스크에서] 공감 능력 없는 공직자들
이위재 기자
입력 2022.11.12 05:14
https://www.chosun.com/opinion/desk/2022/11/12/ED3CNVZB6JHPPJJDCCEA6SC4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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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시인 릴케 작품엔 이런 구절이 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면 그건 나 때문이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이유 없이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다른 사람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끼고 미안해하는 감정. 공감(共感)이라 부른다. 학자들은 인간에게 공감이란 능력이 있었기에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와,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이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2022.10.31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에 마련된 애도 공간에 다녀온 많은 시민은 “(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추모 글을 쓰고 국화꽃을 놓았다. 자기들 잘못도 아닌데 그랬다. 이런 게 이웃의 비극을 공감하는 평범한 사람들 모습이다.
이 정부 고위 인사나 정치인들은 어땠나. 책임자들은 한참 늦게 사과했다. 그나마 떠밀려 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늦게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진심이 아니란 낙인이 찍혔다. 정말 잘못했다 느끼면 곧바로 사과가 나오는 게 인지상정.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마련이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당시 서울시장은 “머리 숙여 500만 시민에게 사과를 드립니다...유가족과 이재민, 상처를 입은 시민들에게 거듭 사과를 올리며 시민 여러분 단죄를 기다리는 심정 간절합니다. 피와 눈물 어린 충정으로 사과 올립니다”라고 했다.
이 정부는 왜 사과에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 한 법조계 인사는 “법조인이 많아 그렇다”고 했다. 법조인들은 사과를 하면 혐의를 시인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간주돼 불리해지기 때문이란다. 변호사들은 고객이 사고를 내도 먼저 사과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요즘 정부 고위 인사들 발언을 보면 그런 지침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법정에서야 책임을 인정하는 게 불리할지 모르겠지만 정치에선 그 반대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하는 요구는 후진적이다. 사람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다음엔 어떻게 할 건가”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과거 숱한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책임을 통감하고 자리에서 물러난 공직자들은 ‘후진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헌법에도 나와 있듯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의 고난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다. 국민에게 큰 피해가 생겼으면 무한 책임을 느끼란 취지를 담고 있다. 적어도 국민 눈에 그렇게 보이게 행동하란 의미다. 그래서 사퇴한 것이다. 이번 사고 후 많은 공직자들이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는데, 비서실장이 안 하느니만 못한 발언을 보태는 걸 보면 참담하다.
공감의 배신, 공감의 역설이란 말도 있다. 공감이 외집단이 아닌 내집단, 그러니까 자기편에게만 향하면 어떤 경우에는 차별과 혐오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 편 아픔에는 공감하지만 상대편 아픔에는 무감각, 무관심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정부 많은 인사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