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민국 교육을 디자인하는 일을 맡기셨다.
2019년 6월 23일
사내초등학교 교사 서기성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되지 않은 교육은 모조품이다. 선악과와 같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하나님이 없는 교육은 모조품 교육이다. 모조품이 나쁜 것은 진짜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차라리 가짜라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면 손이나 대지 않을 텐데, 뭐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손을 댔더니 잘못된 것을 먹어서 다 토해내야 하는 것과 같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에는 그런 유사품들이 많이 있다. 정말 그럴듯하기에 이것이 교육의 길이고 답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가짜보다 더 나쁜 유사품이다.
1. 양평 혁신지구 워크숍을 다녀와서.
교육청에서 양평으로 혁신지구 워크숍을 다녀왔다. 양평은 경기도에서 알아주는 혁신교육지구라고 한다. 강사인 교장 선생님은 작은학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교과서 없이 7년 동안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프로젝트 학습을 한다고 한다.
교사들이 자신이 만든 교육과정으로 수업을 하기에, 교과서 중심의 수업보다는 동기부여도 되고 아이들도 흥미가 많은 수업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배움을 삶으로 연결시킨다는 모토와 학생이 교육과정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는 생각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인 것 같다. 공동체에 대한 생각도 가치 공동체에서 전문적학습공동체, 책임공동체로 나가는 거라고 할 때 뭔가 그럴 듯 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신다. 그게 모조품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하셨다. 교육은 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과 배움이 함께 있는 것이다. 가치관에 대한 교육, 인성에 대한 교육은 더욱 그러하다. 경험주의나 구성주의처럼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이나 진리를 탐구하고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면 안 된다. 그것은 모조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지 인간들이 협의해서 만들어 내는 진리가 아니다. 이것이 인본주의다. 이런 교육에 길들여져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이 토의해서 합의를 해야 하는 수준으로 생각하게 된다.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복음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는 초대교회와 같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음으로 단번에 운명공동체, 생명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유사품 공동체는 공동체가 단계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선악과의 미혹일 뿐이다.
요즘 혁신학교 쪽에서 아이들의 민주성을 기른다고 다모임을 하고 거기에서 교사까지 한 표를 행사해서 공동체의 문제를 결정한다고 한다. 장점이 있겠지만 모조품인 것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는 민주주의로 한 적이 없다. 투표해서 한 적이 없다. 모세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었을 때 하나님은 지도자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셨다. 영성이 있는 지도자, 하나님에 대해 깨어 있는 지도자 한 사람을 통해서 공동체 전체를 끌어가신다. 다윗도 마찬가지고, 초대교회 12사도도 마찬가지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공동체 전체가 떡을 떼고 교제했다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의 말씀으로 공동체 전체가 구심점을 가지고 움직였다. 진정으로 공동체가 잘 될 수 있는 길은 정확하게 전체를 알고 있고, 비전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가 끌어가는 것이다. 밥을 뭐 먹을까를 결정하는 것은 투표로 해도 되는 일이지만, 서울을 가야 하는데 부산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99명이 서울 가는 길을 모르면 서울 가본 길을 아는 1명의 말을 듣고 그 길로 가야 한다.
민주시민을 기른다고 옳고 그름의 가치관까지 민주적으로 하는 것이 사사기 시대에 자기 소견대로 행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만들 수가 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의 기준을 잃어버리니, 사람 숫자만큼 철학과 가치관이 등장하고 그것이 진리인양 혼미를 준다.
아이들을 참된 행복과 소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치관을 교육하는 것이다.
2. 따숨-초등학급경영연구회를 다녀와서
현재 초등학교 교실이 어디에 문제가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답을 찾는 시간이었다.
근원적인 답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나 수업 이론이 아니라 성령님 자체가 모든 답이시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경험이나 방법을 성령님 자체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러기에 매 순간의 상황 상황마다 전혀 다른 해결책이 나올 수가 있다. 가르치는데 있어서도 그러하고 상담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원리와 방법을 적용하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전적인 성령님에 대한 의뢰이다. 의뢰할 때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신다. 성령님을 의뢰하면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맞게 최고의 것으로 끌어주신다.
기본생활습관이 될 때까지 365일, 무한반복해서 지도하라는 것은 문제반이 었던 그 반이 변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기본생활습관이 안 되어있는데 학습이나 프로그램이 적용될 수가 없다. 예전에서 경험있는 선생님들은 공부보다 생활지도가 먼저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었다. 그런데 이런 진리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기준을 잃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인격적인것처럼 생각을 하는 시대가 되었고, 그것이 인권이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결과는 교실붕괴다. 아이들이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있어서 할 말이 없는 현상이 보편적이 되었고, 기본생활습관을 잡지 못한 대가를 교사는 혹독히 치르게 되었다. 인사하는 것, 줄서는 것, 심지어는 안내장 하나 놓는 것까지 배려를 담아서 지도하는 것을 무한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더라도 타협하지 말고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강사 선생님이 경직되게 지도한 것이 아니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사랑이 있고, 함께 놀아주고, 먹어주고 하면서 친구처럼 마음을 열어 주니 아이들도 마음을 열고 전적으로 선생님을 신뢰하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관심이 없는 선생님을 안다. 사랑이 없이 무미건조하게 대하는 선생님을 안다. 그런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마음을 여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3. 인격적인 것의 의미
집에 방문한 한 선생님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인격적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이다. 그 선생님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인격이라는 말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도 찾아보니 ‘사람으로서의 품격’이라고 정의 되어 있었다.
인격적이라는 말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을 마치 강압이나 비인격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가치관이 만연되어있다. 학교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인격적이라는 원래 의미가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것이라면, 내가 원하고 선택하려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품격에 맞는 것인지를 확인해 봐야 한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인격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품격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품격에 맞지 않은 것이 오히려 비인격적인 것이다.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말을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는 것으로 속으면 안 되겠다.
4. 중고등부 예배를 다녀와서
딸 때문에 중고등부 예배를 드리려고 마음을 정하고 갔다. 그동안 뭔가 틈을 만들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 회개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갔다. 중고등부에서 하라고 하는대로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거기에서 어제들은 내용과 연결되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교육의 길을 찾고 있는 내게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답을 찾게 된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의 두 가지 성품이다. 거룩과 사랑. 공의와 사랑, 공평과 사랑. 아이들을 지도함에 있어서도 이 두 가지가 같이 움직여야 한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을 될 때까지 지도하고, 공평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공의가 어떤 것인지 거룩이 어떤 것인지를 지도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소통으로, 그 아이의 마음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같이 움직여야 한다. 두 가지를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공의, 거룩, 공평이 사라졌다. 기준과 법, 교권이 무너지니 교실 붕괴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육철학이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다는 것이 놀랍다. 알았으면 아이들을 대하는 모든 틀에서 인본적인 것을 들어내고,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민국 교육을 디자인하는 일을 맡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