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민들의 K-라면 이야기
2022/05/31
매년 전 세계에서 약 1,000억개 이상의 다양한 라면이 생산된다고 한다. 중국에서 415억개, 인도네시아 125억개, 인도 67억개, 일본에서 56억개, 미국에서 46억개를 각각 소비한다고 한다.
컵에 담긴 라면의 중량은 3.03oz(86g)이다. 길이 약 65cm의 면발 75가닥이 있다. 한 줄로 이으면 대략 50m 정도 된다. 몇 년전 통계에 의하면 한해 한인 한사람이 먹은 라면은 84개, 총 38억개가 소비되었다. 38억개의 라면을 차곡차곡 쌓으면 에베레스트(8,848m) 높이와 비슷하고, 38억개의 라면 면발을 일렬종대로 엮으면 지구와 달의 거리인 38만4,800Km의 563배에 해당하는 불가사의한 길이가 된다.
‘닭고기 맛’ 라면이 처음 개발 된 때가 1958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일본은 모든 생산시설이 파괴되어 심각한 식량기근에 시달렸다. 극심한 식량란으로 다수의 일본인들이 토란줄기까지 먹으면서 굶주림을 견뎌내던 때였다.
전승국 미국에서 잉여생산 밀가루가 무상 원조되자 안도 모모후쿠가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으며, 맛있고, 보존이 쉽고, 안전하며, 가격 또한 저렴한 국민 먹거리를 고민하다 구황음식(Famine Food)을 개발했다. 면을 기름에 튀겨 건조하는 ‘순간 유열건조법’으로 끓였을 때 원래의 부드러운 상태로 복원될 수 있게 되면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었고, 식품회사 닛신의 ‘치킨 라면’ 의 효시가 되었다.
한국에는 삼양식품의 전중윤씨로부터 1963년 소개되었고, 6.25 전쟁 이후 국민 대다수가 극심한 식량 기근을 당하고 있을 때, 절대기아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젓가락을 포크보다 더 편하게 사용하는 국수 문화권인 중국, 라멘 종주국 일본, 베트남, 또 다른 인구대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에서 다양한 종류와 맛을 선사하는 라면들이 생산되어 아시안 뿐만 아니라 이젠 전 세계에서 호평받는 국제 인스턴트 음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편리성, 신속성, 경제성 때문에 각광받고 있는 인스턴트 라면은 라티노 노동자들에게 최고 사랑받는 식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닝닝한 일본산 닛신 라면은 분명 뒷전이다. 매콤하면서도 국물맛이 진한 한국산 컵라면에 온수를 넣고 삶은 계란까지 넣어 식사를 대신하면 타코나 부리또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따뜻하고 맛있는 엄마표 꼬미다(Comida, 음식)가 된다.
K-라면은 음식 한류의 한몫을 톡톡히 차지하고 있다. 한국산 라면 마니아로 변모하고 있는 것은 비단 라티노들 뿐만 아니다. 볼티모어 시, 펜실베니아 애비뉴 황량한 거리에 찬바람을 맞으며 배회하는 흑인 커뮤니티의 가난한 이웃들에게도 외로움을 달래 줄 ‘소울 푸드’가 된다.
굿스푼 무료 급식소가 펼쳐지는 수요일 아침, 봉사자들은 펄펄 끓는 온수를 컵라면에 담고 찐계란과 쌀밥을 담아 빵, 바나나, 토마토와 함께 배식을 한다. 둥그런 라면 용기 속에 성경의 진리를 담고, 그 위에 따뜻한 정과 사랑으로 면을 담으면 소외된 마음, 적개심으로 끓어올랐던 분노와 갈등이 용해되어 화해와 친분을 북돋우는 특별한 케미가 생성된다.
식자원이든, 에너지든 어느 한 나라에 편중되어 권력화, 독점, 독식되는 것은 분쟁의 시초가 된다. ‘먹는 것이 넉넉해야 세상이 평온하다’는 말은, 요즘처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도시빈민들의 의식주가 극도로 위협을 당하는 때에 더욱 마음에 새겨야할 금언이다.
<미주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