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625호]
사루비아
신현정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
어릴 때 등하굣길 꿀물을 빨아먹곤 했던 꽃이 있습니다. 친구들끼리 그저 꿀꽃, 꿀꽃이라고 불렀던 꽃. 꿀꽃 핀 개울 건너편에는 속칭 미아리 텍사스라 불리던 사창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누나들이 참 많이 살았습니다. 그 누나들이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눈물에 젖은 장미들이 웃음을 파는 거리 / 사람들의 비웃음도 자장가 삼아 / 흩어진 머리 다듬고서 내일을 꿈꾼다오 / 그 언젠가 찾아가리 해 돋는 집으로 / 꽃피는 마을 내 고향에 어머님 곁으로 / 햇빛 없는 뒷골목에 꽃은 시들어 / 외로운 사연 넘쳐 흘러 설움도 많다오 ♬”
김상국의 「해돋는 집」이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그 뜻을 알게 된 그 무렵, 그 누나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된 그 무렵, 비로소 꿀꽃이 아니라 사루비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루비아를 볼 때마다 텍사스 햇빛 없는 뒷골목 홍등이 아련해지고, 홍등을 볼 때마다 붉은 사루비아가 아련해지는 까닭입니다.
2009년 10월 16일. '바보사막'이라 불렸던 신현정 시인이 돌아가셨습니다. 곧 기일이 돌아오겠네요. 그분이 남긴 유고시가 바로 「사루비아」입니다.
생전에 선생께서는 엉뚱발랄 유쾌통괘 그런 시편들로 독자들을 달래고 위로해주었는데, 병상 중에 쓰신 「사루비아」만큼은 선생 특유의 유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루비아에게 수혈을 부탁한다는 대목에서는 선생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져 아픈 시입니다.
사루비아 붉게 핀 시월이 자꾸만 뜨겁게 붉어지는 까닭입니다.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허수경 시인과 신현정 시인 두 분이 만나셨을 텐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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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8.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한 두달 일정을 주셔요.다래가 변변하지 않아 쓰리 잡을 하기에,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올 해 가기전 춘천에서 쐬주 한잔 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다래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