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김해 무척산 관광예술원으로 갔었다.
주차장에는 먼저 놀러 온 차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차를 한 켠에 세우려고 먼저 주차해둔 차 옆으로 차를 붙였다.
차를 후진하여 주차하려고 엔진을 정지하고 잠시 앉아 있던 중에
내 옆에 붙어 있던 차가 앞으로 쑤욱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분명히 옆에 주차해 둔 차였는데 사람이 타고 있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찰나 '쿵"하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차 문을 열고 나와봤더니
내 차가 뒤로 약간 미끄러져 주차장 가에 세워놓은 원두막 기둥에 범퍼가 받친 것이다.
주차장 바닥이 약간 경사져 있어서 후진 기어가 들어가 잇는 상태에서 엔진을 정지했기 때문에
차는 중력에 의해 낮은 곳으로 굴렀던 것이다.
몇년전 내가 안락동 살 때 원동IC에서 도시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신호를 대기하고 있던중이었다.
어떤 중년여성이 운전하고 있던 차가 갑자기 뒤로 미끄러져 뒷쪽에 대기하고 있던 차와 충돌했다.
차에서 내린 여자가 다짜고짜로 뒷차 운전자를 보고 자기차를 받았다고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질렀다.
뒷차 운전자는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가만이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 봐요, 아주머니! 당신 차가
뒤로 미끄러진 것 아니예요"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 여자도 '차 사고가 났을 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나 보다.
사람이나 개미나 벌과 같은 동물들은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인 동물은 관계속에서 살아가므로 혼자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홀로 살아가는 은둔형이나 외톨이족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내가 있으면 상대방도 있고 경쟁사회에서는 상대방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관계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상대성이라면 사람들은 대개 아인슈타인의 '성대성 이론'을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흔히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임을 밝힌 이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물리법칙이
언제 어디서나 같다라는 것을 확인시킨 이론이다. 법칙이란 게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면 어찌 법칙이랄 수 있겠는가.
일부 사람들은 관측된 계(control volume)에 따라서 길이와 시간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잘못 해석하여 관측하는 사람에 따라서
물리법칙이 달라지거나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은 정지상태의 관찰자건 등속 혹은 가속도로 운동하는 상태의 관찰자건 똑 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런측면에서 보면 상대성 이론은 그 말처럼 상대적인 이론은 아니다. 오히려 절대성에 가까운 보편적 원리가 바탕이라고 해야 옳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경기에서 야구를 잘하는 사람은 프로선수가 되어 추신수선수처럼 엄청난 돈을 받고 메이저리그팀에 들어간다.
어느 팀의 선수들이건 세계에서 내놔라 하는 선수들이다.
그 선수들도 팀끼리 대결을 하면 반드시 이기는 팀이 나오고 지는 팀도 나온다.
또 어떤 팀은 어느 팀에는 강하고 어느 팀에는 약한 징크스를 보여 주기도 한다.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어제 중간고사 시험이 있었다.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출석점수,수업준비및 수업태도,레포트, 질의응답 등
다양하게 점수를 부여한다.
교양과목이나 기초과목은 학사지침에 아예 상대평가를 하도록 되어 있다.
지난 학기때인가 서울대 어느 학과에서 대부분이 A학점을 받았다고 신문에 난 적이 있다.
서울대외의 다른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서 학점을 좋게 주는 경향이 있어 기업에서도 학점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요새는 학점세탁이라는 제도까지 생겨났으니 학점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다.
따라서 교수들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사이를 오락가락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