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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그날따라 너무 피곤해서 저녁도 건너 뛴 채 캔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 맑은 기계음과 함께 쪽지가 도착했다는 이모티콘이 떴다 .
" 누구지 ? . "
폰을 열었다.
M 이라는 여자였다 .
잘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이어서 다시 쪽지의 문자가 길게 이어졌다
<혹시 저를 기억하시나요 ?
지난 주말에 번개 모임에서 뵌 것 같은데
기억하시는지요 .
드릴 말씀이 있어서 실례인 줄 알지만
이렇게 글을 보냅니다 >
ㅡ 지난번 토욜일이면 벌써 열흘이 지났는데 ?
누구더라 ? ㅡ 나는 아직 기억 속에서 그 여자의 모습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을 몇번이나 봐도 잘 기억을 못하는 습관도 습관이려니와 특히 여자 얼굴을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아내가 살아있을때 핀잔도 적지아니 받았다.
처가집 사촌들이나 친척이 아는 척을 하다가 민망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 M " 이라 기억을 더듬던 찰나에 그녀가 말했다.
" 저 그날 < 놀부> 님과 짝이 었잖아요 "
그때야 비로소 생각이 떠올랐다 .
베이지 색 상하에 검은 코트를 걸쳤던 그날 말이 별로 없던 여자. 눈에 띨만큼의 미모는 아니었지만 수수한 모습의 여자였다.
또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던 여자가 비로소 뇌리에서 바짝 튀어 나왔다
" 아 ~ 네 기억합니다 . 그런데 어쩐일로 ? "
" 여쭤보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 "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이인데 . 그래서 일단 통화를 하자 했다 .
그녀의 목소리는 매끈하였다. 그러나 튀지 않게 갈아 앉아있었다.
" 혹시 놀부님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으신가 해서요 "
놀부는 어떻게 재산을 모았는지 모르지만
카페 번개모임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인물이었다.
그날 모임이 자기 마음에 들면 1 차부터 2차 3차 까지 몽땅 쓰는 기분파에 지갑의 두께가 만만치 않음을 과시하고는 했다.
간혹 술에 취하면 자기의 재산에 대해 대놓고 자랑질을 하기도 한다만 그탓에 크게 환영받지 못하였다.
물론 속마음이야 알수가 없지만 ....
" 놀부님이요 ? 저도 잘 아는건 없지만 "
" 정말 돈이 많은가요 ?"
" 글쎄요 ! 들리는 소문에는 건물 몇 채에서 임대료 수입으로 살아 간다는 말만 들었어요"
" 네 ..... "
" 그런데 그런 걸 왜 물어보시는 거죠 ?"
" 아니예요 "
그러면서 그녀는 짧게 인사를 하고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 뭐 이런게 다 있어 !'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사정을 물어 보았겠지만 지 할 말만 툭 던지고 끊는 꼴이 영 기분이 아니었다.
사실 그즈음에 나는 어느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동갑네의 여자.
어떻게 그 여자의 마음을 내게 다가오게 할 것인가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카톡에 하루의 안부와 슬쩍슬쩍 내 마음을 보여주는 소극적인 접근이 전부였지만
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재혼은 언감생심이라 과감하게 질러 볼 마음조차 갖지 못하였다.
友情이라는 미명하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차였다 .
잠자리에 들려던 생각은 저멀리 달아났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파트 상가의 호프집으로 내려 갔다.
문 밖의 노천 테이블에 맥주 한 병을 시키고
저녁겸 닭날개를 시켰다.
시원스럽게 맥주 한 잔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은행나무 잎들이 우거져 초여름의 밤거리는
싱그러움으로 가득했다.
마을 버스 한 대가 손님들을 내려 놓았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이 아파트는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야 할 만큼의 거리였다.
삶에 지친 어깨들이 총총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간다 .
" 어 ! 이슬아 "
나는 큰 어깨 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여인을 향해 소리 질렀다 .
" 어머 . 아차 오라버니 "
" 이제 오는 길이냐 ? "
" 응. 오빠 또 한 잔 하는거유 ? "
" 이리와 맥주 한 잔 해라 "
" 됐어 "
" 아냐 . 내 할 말도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
나는 그녀를 옆자리에 앉히고 맥주 두병를 더 주문했다.
" 그래 . 장모님도 편안하시지 ?"
그녀에게 맥주를 따르며 농담을 던졌다.
" 어머. 다른 사람 들어요 "
하며 그녀는 눈을 홀기며 나의 손등을 꼬집었다
" 어때 ! 너의 엄니가 내 엄니 아니냐 ! 하하하"
홀홀 단신 고아였던 남편을 만나 연애끝에 집안 부모의 반대도 불구하고 살림을 차려 나갔던 꽤나 대찼던 여자.
성실했던 남편을 따라 이 도시 저 도시 옮겨 다니다 첫 딸이 태어난지 얼마후에 병으로 죽었다 한다 .
두 부부가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 거기다 고아였던 남편이 핏줄 하나 보내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이후에 남편 뒷바라지에
또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
언젠가 한 동네 사는 까닭에 술 한잔 하며 털어 놓던 그녀의 과거는 장편 소설 한 편을 써도 모자랄 정도였다.
실성한 남편을 제 정신 찾게 한후 다시 서른이 넘어 아들을 갖게 되었지만 아들이 태어나는 날 남편은 교통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한다.
기뻐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운명이었다
남편 친구 몇이 변두리 공동묘지에 묻고 돌아 오던 날 그녀는 산부인과에서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세상이 까맣게 보이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어찌 하늘은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이리도 혹독하게 하시는지, 원망만 가득했다.
살아야 할 이유조차 남지 않았지만 그녀의 품에는 남편이 남겨 준 핏덩이가 있었다.
남편을 사랑하고 살았듯이 아들 하나가 그에게는 빛이요 생명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부모의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과 가끔씩 찾아왔던 친정이지만 어머니는 그녀와 아이를 따듯하게 받아드렸다.
하지만 성정이 꼬장꼬장했던 그녀의 부친은 그녀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 그 근처에 세를 얻어 아들을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일을 시작했다.
글자 그대로 닥치는대로 일을 하였다
조금씩 펴가는 살림이 그녀에게 행복이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아직 멀기만 하였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였다.
그날따라 식당일이 일찍 끝났다.
주인은 기분이 좋은지 한 시간이나 일찍 문을 닫았다.
덕분에 일찍 아이를 데리러 친정으로 찾아갔다.
자다 깬 아들이 눈을 비비며 그녀의 품에 안겼다.
그런데 아이의 옷이 늘 입던 허름한 옷이 아니고 꽤나 이름이 있는 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
" 엄마. 이거 할아버지가 사 주셨어 "
어머니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처음엔 아니 지금껏 그녀를 제대로 보아주지 않아도 아들을 무척 아끼고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 그녀의 부친은 손자에게 비밀로 할 것을 당부하면서 이것저것 사주거나 함께 놀아 주었다.
어쩔 수 없는 피붙이의 정이라고는 하나 부친의 가슴은 얼마나 타실까 생각하니 그녀의 가슴 또한 먹먹하게 끓어 올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론 학교엘 가야 할 일이 있으면 흰머리에 염색을 하고 꼭 양복을 입고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조금이라도 아이와 딸의 마음에 모자람이 없게 하고 싶어서였다.
아들이 제법 커서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아이는 할아버지 집에 들르는 일이 뜸하였다.
명절이면 남편의 제사를 모시고 성묘를 다녀와서 친가에 들를 때면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그녀를 제대로 보려 하지 않으셨다.
그저 헛기침만 하면서 당신의 방으로 들어가시거나 밖으로 나가셨다.
그녀는 미안하기도 하였고 이젠 화를 풀으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서운함도 있었다.
" 웬 노인네 고집은 ..... 쯧쯧 "
어머니는 혀를 차셨다.
그러다 덜컥 아버지가 병이 들으셨다.
추석이 지나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조금 체하신 것 같다고 하였다.
계속 통증이 이어지자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하였다
췌장암이 깊었다고 했다
여태껏 병원 신세 안 질만큼 건강하셨는데.
남들 다하는 담배도 안 하시고 술이라야 몇 잔 정도로 흥에 겨워 하셨던 분이었는데...
그녀는 기둥이 하나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칠십이 눈앞인데. 아직 정정하신데....그리고 . 아직 받고 싶은 사랑이 남았는데.~
큰 병원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하였다.
' 그냥 집에 계시면서 드시고 싶은 것 하시고 싶은것 하게 해 드리라' 고 말하는 의사가 죽일 만큼 미웠다.
그녀는 그날로 일하던 식당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병 구완을 시작하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버지를 살려 내리라고....
늦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지나면서 아버지의 병세는 깊어가기만 하였다
" 순이야. 이리 오너라 "
기나긴 겨울이 거의 지나고 창밖에는 햇살이
조금씩 따스함을 느끼게 할 때였다.
" 예전에 다복이 아비가 나를 찾아왔었다
하룻밤이 지나도록 현관문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지.
네 엄마가 결국 집으로 들였단다.
그때 처음 다복이 아비 얼굴을 봤지.
성실하고 반듯한 게 심지가 굳어 보였어.
그래서 내가 그랬어
' 자네가 자리가 잡히고 한 가정을 꾸리면 그때 내가 자네를 내 아들로 드릴 것'이라고.
그리고 네 어미가 자주 들러서 소식을 전해 받고는 나도 한편으로 마음이 놓였단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버지의 깡마른 손을 붙잡았다.
" 인연도 하늘이 정하는지 너희들의 인연이 거기까지 있을 때, 나 역시 하늘이 무너졌단다.
다행히 다복이 가 제 애비를 닮아서 내 늙은 삶의 위안이었지만. 너에게 정말 미안하구나.
사랑한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말 한마디 못한 내가 밉기만 하구나.
순아! 이 애비를 용서해다오! "
그녀는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오열을 입술을 악물며 참고 있었지만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얼굴을 만져 주었다
아주 깡마른 손으로 , 서투른 손짓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겨울이 끝나고 첫 목련이 필 즈음. 그녀의 아버지는 평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나갔다.
그녀는 평생 순한 양 같은 어미의 삶을 살아온 모친과 집을 합쳤다.
그간의 병 구완으로 들어 간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이곳 싱글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다복이 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쯤이었다.
그녀 혼자 벌어서 집안을 끌어 가는 동안 그녀의 주변에서 별 일이 없었겠나?
짓궂은 남자들의 유혹과 때론 무지한 행동. 소위 성희롱 추행에 가까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아버지와 남편. 오늘을 살게 해주는 어머니와 심지 굳은 아들이 지켜주고 있었다.
마음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한다.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여자
그녀의 이름 은 < 한 순이 >이다
어쩌다 한 번 싱글 카페의 번개에 왔다가
집 동네가 같다는 이유로 한 오빠를 알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나다
" 다복이는 잘 지낸데 ?"
" 응. 벌써 중사 계급을 달았어 "
그녀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자랑스럽게 떠오른다.
다복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공군 기술병으로 입대를 하였다.
" 안 봐도 다복 아버지 인상을 알 것 같애.
자넨 이 세상에서 제일 복 받은 여자여
" 응 ~ 나도 그렇게 생각해 "
맥주 탓도 있지만 주름진 그녀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며칠후 놀부 한테 전화가 왔다.
" 어떻게 생각해 ? "
" 뭘요 ?"
" M 말이야. 지난 번개 끝나고 같이 잤거든 "
나는 그만 웃음이 나왔다
" 어떱디까 ? 하하하 "
" 응 . 그냥 "
" 능력도 좋으셔 "
" 글쎄 고민이야 . 어떻게 해야 할지 "
" 뭐 서로 원하는 만큼 채워가시면서 지내시는 것도 나쁠건 없겠는데요 "
" 그래 ? 나중에 따로 술 한 잔 함세 "
나는 그 이후로 몇 군데 싱글 카페에서 <놀부>라는 닉을 사용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물론 <놀부마누라> 라는 닉도 찾아 보지 못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 ~^^*
마음 안에 있지요.
잘 어울리며 살아간다면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실제는 없지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녜요 .
되레 제가 미안하네요 ~^^*
편안한 밤 되세요
아하
단편소설이네요
싱글 아파트의 한 이슬씨
내용을 보니 재미가 있네요
단편소설 치고는 딱 어울리는
부분입니다 싱글 아파트의 소재를
가지고 한 이슬을 주인공으로
삼는 이야기속이 너무
재미가 있었네요
아차님의 귀한 단편소설
너무 재미가 있네요
제가 원래 소설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차님의 소설이 더 재미가 있네요
싱글 아파트에서 일어난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쓰시니
정말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