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 왕도(王道)와 패도(覇道) Ⅰ. 생각해보기 맹자(孟子), Mencius(BC 약 372~289년경)
B.C 371경 지금의 산둥성(山東省)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슬기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고대 중국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 한 사람으로 유교 사상가이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워 공자의 정통 유학을 이어받아 발전시켰고 공자 이후 현자로 불린다. 맹자의 중요한 사상은 도덕정치인 왕도정치이다. 왕도정치의 필요성에 대해 B.C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상을 주장하며 돌아다녔으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제후들은 나라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외교적 약삭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맹자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 판단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자 세상을 등지고 고향에 살면서 제자교육과 글을 지어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지냈다. 왕도와 패도 평화는 나라 안에 혼란이 없고 다른 나라의 침략이 없는 상태에 있을 때 가능하다. 평화가 유지되면 사회 구성원들은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다. 그러나 춘추시대 존왕양이(尊王攘夷,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 전국시대 약육강식(弱肉強食,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에게 먹힘)은 사회를 혼란에 빠지게 했다. 이때 맹자는 왕도와 패도정치라는 개념을 가지고 혼란한 시대를 이겨내고자 했다. 맹자는 인간의 삶이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 찬 아귀의 세상에 서 있다 해도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왕도와 패도정치를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하였다. 이 노력은 왕도와 패도로 나타났던 것이다. 왕도는 고대 선왕(先王, 어질고 덕이 뛰어난 임금의 덕행)과 같은 덕치에 의한 정치를, 패도는 무력을 앞세우고 권모술수와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는 정치를 말한다. 때문에 왕도를 가장 좋은 정치형태라 생각하여 당시 제후들의 덕이 없고 엄격한 법가에 의한 통치형태를 패도라 하여 몹시 싫어했다. 이후 유교에서도 패도정치를 부정하게 된다. 이러한 왕도는 지배자와 정치하는 사람은 백성을 살펴야하고 패도는 버려야 하며, 하늘의 명을 받아 백성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 사상으로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자리 잡는다. 어진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힘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많이 다르다. 임금이 백성을 힘으로 굴복시키려고 무력을 사용하고 공포정치를 편다면 백성들은 임금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게 된다. 맹자가 말했던 것과 같이 어진 마음을 가지고 백성들을 대한다면 자연히 사람들은 지도자를 존경하며, 따를 것이다. 제자백가(諸子百家) 중국 춘추전국시대(B.C 8세기∼BC 3세기)에 활약한 학자와 학파의 총칭으로 제자란 여러 학자들이란 뜻이고, 백가란 수많은 학파들을 의미한다. 곧 수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펼쳤던 것을 나타낸다. 한 대 이후 제자백가를 유가, 묵가, 법가, 도가, 명가, 병가, 종횡가, 농가, 음양가, 잡가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활동도 단지 사회 정치사상만이 아니라 지리나 농업, 문학 등 학술 활동 전반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중에서 공자의 유가가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인(仁)의 교의(敎義, 진리라고 믿는 가르침)를 수립하였고, 그 다음으로 묵적(墨翟 : 墨子)이 겸애(兼愛,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함)를 주창하여 묵가를 일으켰으며, 이윽고 노자·장자 등의 도가와 기타 제파가 나타나서 사상계는 제자백가 시대라고 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Ⅱ. 생각 확대하기 1. 백성을 위한 철학자 맹자는 “생계수단이 든든해야 마음도 든든해진다(恒有産 恒有心 항유산 항유심)”는 말과 함께, 통치자는 백성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하여 살아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백성들을 잘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과 도덕에 관한 계획, 적은 세금, 자유무역, 천연자원 보존, 노약자에 대한 대책 수립, 공정한 부의 분배 등을 주장했다. 또한 ‘백성이 있고 나라가 존재하며 나라가 있으므로 군주(君主)가 있다. 따라서 국가 근본은 백성(국민)이며 국가는 그 다음이고 군주의 존재는 제일 가벼운 존재인 것이다. 하늘은 백성의 눈을 통해 군주가 하는 일을 보고 있다. 백성의 귀를 통해 군주가 하는 것을 듣고 있다. 백성의 소리인 사회 여론의 민성(民聲)은 하늘의 소리인 천성(天聲)이다.’고 했다. 이는 하늘의 뜻도 국민의 의사에 기초한다는 생각이며 민의가 떠나면 군주도 그 지위를 보존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2. 성선설 공자는 인간의 덕목을 인(仁)이라 주장했고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사람의 성품을 알기 위해서는 현실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이념에 대한 개념을 각각의 속성으로 나누어 그 의미와 구성을 명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 중 덕성(德性)을 높일 수 있는 단서(端緖 : 端의 의미는 싹, 씨앗, 실마리)로 네 가지가 있다고 보았으며 이 단서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봤다.
사단(四端)과 함께 군자가 행하여야 하는 네 가지 품성으로 인(仁)·의(義)·예(禮)·지(智)가 있다. 성선설의 성(性)은 선(善)으로 통하고, 공자의 인(仁)사상은 선함이 성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사상은 훗날 예를 지키는 질서로 자리를 잡아가며, 성의 실천은 정치사상으로 바뀌게 된다. 순자의 성악설과 다른 사상으로 유교는 이러한 성선설을 도덕실천의 목표로 정하여 계승 발전시킨다. 이념 이데올로기는 희랍어 idea(관념 觀念, 이념 理念)와 logik(논리 論理, 과학 科學)의 합성어로 ‘idea’는 어떤 구체적인 현상에 대한 관념과 이상적인 것이며 ‘logik’ 은 어떤 대상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 인식, 즉 과학의 의미를 가진 ‘관념의 과학’, ‘이상의 과학’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 의미로 관념 형태·이념·사상·기본적 사고 양식·허위의식 등을 나타내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삶의 전체적 방향을 제시해 주는 한편, 보편적으로 추구해야할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무엇이고, 현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제시해 준다. 즉, 이데올로기는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어떠한 목표를 추구하며,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는 일종의 행동지향적인 세계관(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인 트라시였다. 품성 맹자의 4덕 외에도 천지자연의 4덕인 원(元, 으뜸)ㆍ형(亨, 형통)ㆍ이(利, 이로움)ㆍ정(貞, 곧음)이 있고 여성이 갖추어야 하는 4덕으로 마음씨ㆍ말씨ㆍ맵씨ㆍ솜씨의 품성이 있으며, 인륜의 4덕인 효(孝, 효도)ㆍ제(悌, 공경)ㆍ충(忠, 충성)ㆍ 신(信, 신의)과 불교 열반의 4덕인 상(常, 항상)ㆍ낙(樂, 기쁨)ㆍ아(我, 나)ㆍ정(淨, 깨끗함)등이 있다. 서양에서의 4덕은 예지(叡知), 용기(勇氣), 절제(節制), 정의(正義)가 있다.
참고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 국보 1호) 완공: 1398년(태조 7년 2월) - 남쪽은 예(禮)이며 숭례문(崇禮門)이라 했으니 예의를 높이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도성의 문 현판은 모두 가로로 씌어 있으나, 숭례문은 세로로 씌어 있다. 이것은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기 위한 것이다. 관악산이 불꽃모양을 한 화산(火山)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복궁에 화재가 나기 쉽다고 생각했다. 현판 글씨는 양녕대군이 썼다.
흥인지문(興仁門 동대문 : 보물 1호) 완공: 1397년(태조 6년 4월) - 동쪽은 인(仁)이니 흥인문(興仁門)이며, 어진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원래 이름은 흥인문이다. 문 이름에 갈지(之)자를 넣은 것은 동대문이 위치한 낙산의 지형이 낮아 갈지(之)자를 넣어 약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또 흥인지문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둘렀다. 지금도 볼 수 있는 이 옹성은 적들을 효과적으로 막아 내기 위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건축적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돈의문(敦義門/서대문) 현재는 없는 문이다. 처음 세워진 것은 1396년(태조 5년)이다. - 서쪽은 의(義)이니 돈의문(敦義門)이라 했으며, 이는 의리를 도탑게 해야 함을 나타낸다. 돈의문은 시대에 따라 서전문, 신문, 새문으로 불리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대문으로 불러왔다. 조선시대 5백년 간 중국과 통하는 관문이었다. 1915년 일제에 의해 헐리고 말아 지금은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숙정문 숙청문(肅淸門/弘智門 북대문 : 사적10호)이라고도 부른다. 평상시에는 닫혀있던 문으로 건립은 1395년(태조 4년)이다. - 북쪽은 지(智)이니 홍지문(弘智門)이라 하였으며, 지혜를 널리 닦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북쪽문은 지자를 빼고 청(淸)자를 넣어 숙청문이라고 하였다. 북쪽문은 지형이 험난하여 사실상 사람이 왕래할 수 없었으며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항상 닫혀 있었던 문이었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보신각(普信閣) 중앙은 신(信)으로 보신각이라 하였다. 신은 믿음으로 믿음의 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짐을 나타내고 있다
Ⅲ. 생각 정리하기 1. 맹자의 혁명 사상 왕조에는 자자손손 물려받는 통치자의 성(姓)이 있다. 그러나 덕을 잃어 하늘의 명을 거역하게 되면 전(前) 왕조를 중도에 그만두게 하는데 이는 하늘의 명에 따라 그만두게 하는 것이므로 혁명이라 한다. 이렇게 하여 왕조가 바뀌면 통치자의 성은 바뀌게 된다. 혁명으로 옛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 다른 성(他姓)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것을 방벌(放伐)이라 하며, 선양(禪讓, 양위讓位, 선위禪位) 즉, 임금의 자리를 평화적으로 물려주는 것은 천명에 따른 정당한 것이 된다. 맹자는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으로 혁명론을 말한다. 도덕적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정명(正名)을 실현하지 못할 경우 임금을 갈아치울 수 있어야 한다. ‘천자가 포학하여 하늘과 백성의 신망을 잃었는데 그 지위에 연연하고 있을 때 새로 천명을 받은 사람이 무력으로 포학무도한 천자를 타도하는 것도 허락된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왕조의 시작인 역성혁명(易姓革命)의 가능성을 말했다.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무너뜨린 은주혁명(殷周革命)이 일어난다. 1392년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 왕씨(王氏)를 무너뜨리고 이씨(李氏) 조선을 세운 이성계(李成桂)의 혁명도 이에 해당한다. 방벌(放伐) 덕을 잃은 군주는 토벌해 쫓아내야 한다는 옛 중국의 역세易世 혁명관革命觀. 정명론(正名論) 명칭이 실제에 맞도록 바로잡으려는 주장이나 보통 정명론은 인륜상(人倫上)의 이름으로 도덕적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바로 세우려는 주장을 말한다. 공자의 『논어』에는 “반드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바로 서지 못하면, 말이 올바르지 못하고, 말이 올바르지 못하면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등이 나온다. 또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본분을 밝히는 『춘추』도 공자가 쓴 책이라고 한다. 이러한 윤리적인 정명론에 관련하여 다시 논리적으로 온갖 일의 빠짐없는 도덕적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바로 할 것을 논한 사람은 『순자荀子』로 「정명편正名篇」에서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명론은 세상의 안정을 위해 강조되었다. 2. 왕도 정치와 패도 정치 왕도정치는 덕치를 말하며, 패도정치는 무력에 의존하여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즉 왕도정치는 인(仁), 의(義), 정(正)의 덕을 조화시킨 인정(仁政)을 행하는 정치라면, 패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리와 원칙을 무시하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힘에 의한 무력의 정치이다. 3. 맹자(孟子)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증자가 제자 자양에게 “자네 용기를 좋아하나? 내가 일찍이 공자 선생님에게서 큰 용기에 관해서 들은 적이 있다. ‘만약 스스로 반성해서 옳지 못하면 비록 상대가 헐렁한 막옷을 걸친 친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반성해서 옳다면 비록 상대가 천 만 명일지라도 내 소신대로 떳떳이 나아가겠노라!’”
공손추가 맹자에게 묻는다. “선생님 감히 묻자옵건대 ‘호연지기’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맹자 왈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기(氣)를 이루고 있는 품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다. 곧게 키우고 해를 끼치게 함이 없으면 곧 그 기운은 천지간 가득 차게 된다. 또 그것은 인의(仁義)ㆍ도덕(道德)과 짝지어 길러지게 되는 것인데, 만약 이렇지 못하면 시들어 버리게 된다. 이 호연지기는 의(義)가 쌓여 스스로 내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지, 외형적으로 어쩌다가 의리에 맞는 행동을 하나 했다고 해서 억지로 취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행동이 내 양심에 비추어 기뻐할 만한 것이 못 될 때에도 그것은 곧 시들어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호연지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면적으로 의를 쌓도록 노력해야 한다. 꼭 필요로 하는 그러한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고 또 억지로 키우려 해서도 안 된다. 예를 들면 송나라 사람과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기 집 논에 심은 모가 잘 자라지 않는 것을 근심하여 한 뿌리 한 뿌리씩 뽑아 올렸다. 그리고 피곤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서 그 가족들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고생을 많이 하여 피곤하다. 내가 우리 논의 모를 잘 자라게 해 놓고 왔다’ 이에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보니 논의 모들이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보라! 천하에는 이처럼 모를 억지로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자가 적으니라. 그러므로 호연지기를 키우는 일이 무익하다고 여겨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은 바로 모를 심고도 김을 매주지 않는 자와 같고, 또 호연지기를 하루아침에 키울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모를 뽑는 자와 같다. 이런 것들은 한갓 무익(無益)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害)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인격(人格)이 추구하는 최고의 기상(氣像)을 갖춘 사람을 말하며, 공적이 아니고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꾀어서 그릇된 마음을 품거나 그릇된 행동을 하게 하거나 힘으로 으르고 협박함에도 굴하지 않는 참된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기본 덕목은 의(義)를 가지고 있다. 의는 매일 언제나 옳은 일을 추구하는 집의(集義, 마음속에 쌓아둔 의)에 의해 형성되는 도덕적 기개를 말한다. 이는 부동심(不動心)의 경지로 진취적 기상이 바탕에 있는 마음이다. 이런 사람은 욕심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어떤 유혹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참된 용기를 지닌 사람으로 대장부인 것이다. 소인(小人)이란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와 유혹에 끌려 다니면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사단(四端)을 무시하고 방치하여 자포자기(自暴自棄)상태에 있는 도량이 좁고 품성이 거친 사람을 말한다. 때문에 우리는 대장부가 되기 위한 실천 조건으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야 한다. 대장부에는 남녀 모두 포함되는 개념이다. 하늘과 땅에 부끄러움이 없고, 부귀도 마음을 흐리게 하지 못하고, 빈천도 정조를 변화시킬 수 없으며, 무력도 뜻을 꺾지 못하니 ‘스스로 반성해서 옳다면 비록 상대가 천 만 명일지라도 내 소신대로 떳떳이 나아가겠노라(自反而宿 자반이숙 雖千萬 수천만 吾往矣 오왕의)’. 기상(氣像) 사람이 타고난 올곧은 마음씨와 겉으로 드러난 의용儀容 -몸을 가지는 태도態度. 또는 차린 모습. 의표儀表. 의형儀形 4. 여민동락(與民同樂) 정치 인(仁)과 의(義)를 바탕으로 한 정치, 덕(德)으로 다스리는 정치를 말하며 덕치(德治)라고 한다. 여민동락은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이다. 장포와 맹자의 대화 원문 梁惠王章句下 양혜왕장구하 莊暴見孟子曰 暴見於王 王語暴以好樂 暴未有以對也 曰好樂何如 孟子曰 王之好樂甚 則齊國其庶幾乎 장폭견맹자왈 폭현어왕 왕어폭이호락 폭미유이대야 왈호락하여 맹자왈 왕지호락심 칙제국기서기호 他日見於王曰 王嘗語莊子以好樂 有諸 타일현어왕왈 왕상어장자이호락 유제 王變乎色曰 寡人非能好先王之樂也 直好世俗之樂耳 왕변호색왈 과인비능호선왕지락야 직호세속지락이 曰 王之好樂甚 則齊其庶幾乎 今之樂由古之樂也 왈 왕지호락심 칙제기서기호 금지락유고지락야 曰 可得聞與 왈 가득문여 曰 獨樂樂與人樂樂孰樂 曰不若與人 왈 독락락여인락락숙락 왈부약여인 曰 與少樂樂與衆樂樂孰樂 曰不若與衆 왈 여소락락여중락락숙락 왈부약여중 해석 莊暴見孟子曰 暴見於王 王語暴以好樂 暴未有以對也 曰好樂何如 孟子曰 王之好樂甚 則齊國其庶幾乎 장폭견맹자왈 폭현어왕 왕어폭이호락 폭미유이대야 왈호락하여 맹자왈 왕지호락심 칙제국기서기호 제나라의 장포가 맹자에게 말하기를 “제가 왕을 뵈었더니 왕께서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暴)는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왕께서)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라고 하였다. 맹자께서 대답하기를 “왕께서 음악을 매우 좋아하면 제나라는 거의 다스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他日見於王曰 王嘗語莊子以好樂 有諸 타일현어왕왈 왕상어장자이호락 유제 얼마 후, 맹자가 왕을 만나 이야기하였다. “왕께서 장자에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王變乎色曰 寡人非能好先王之樂也 直好世俗之樂耳 왕변호색왈 과인비능호선왕지락야 직호세속지락이 왕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는 선왕의 음악을 능히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세속음악을 듣기 좋아합니다.” 라고 하였다. 曰 王之好樂甚 則齊其庶幾乎 今之樂由古之樂也 왈 왕지호락심 칙제기서기호 금지락유고지락야 曰 可得聞與 왈 가득문여 맹자가 “왕께서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시면, 제나라가 태평을 누릴 것입니다. 오늘 음악은 옛날 음악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라고 하자 왕이 “그 까닭을 들을 수 있을까요?” 라고 하였다. 曰 獨樂樂與人樂樂孰樂 曰不若與人 왈 독락락여인락락숙락 왈부약여인 曰 與少樂樂與衆樂樂孰樂 曰不若與衆 왈 여소락락여중락락숙락 왈부약여중 맹자께서 말하기를 “혼자서 음악을 즐기는 것과 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 중 어느 편이 즐겁습니까?” 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남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맹자께서 말하기를 “적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라고 하니 왕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 臣請爲王言樂 今王鼓樂於此 百姓聞王鐘鼓之聲 管之音 擧疾首蹙 而相告曰 吾王之好鼓樂 夫何使我至於此極也 父子不相見 兄弟妻子離散 신청위왕언락 금왕고락어차 백성문왕종고지성 관지음 거질수축 이상고왈 오왕지호고락 부하사아지어차극야 부자불상견 형제처자리산 今王田獵於此 百姓聞王車馬之音 見羽之美 擧疾首蹙 而相告曰 吾王之好田獵 夫何使我至於此極也 父子不相見 兄弟妻子離散 此無他 不與民同樂也 금왕전렵어차 백성문왕차마지음 견우지미 거질수축 이상고왈 오왕지호전렵 부하사아지어차극야 부자불상견 형제처자리산 차무타 불여민동락야 今王鼓樂於此 百姓聞王鐘鼓之聲 管之音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鼓樂也 금왕고락어차 백성문왕종고지성 관지음 거흔흔연유희색이상고왈 오왕서기무질병여 하이능고락야 今王田獵於此 百姓聞王車馬之音 見羽之美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田獵也 此無他 與民同樂也 금왕전렵어차 백성문왕차마지음 견우지미 거흔흔연유희색이상고왈 오왕서기무질병여 하이능전렵야 차무타 여민동락야 今王與百姓同樂 則王矣 금왕여백성동락 칙왕의 해석 臣請爲王言樂 今王鼓樂於此 百姓聞王鐘鼓之聲 管之音 擧疾首蹙 而相告曰 吾王之好鼓樂 夫何使我至於此極也 父子不相見 兄弟妻子離散 신청위왕언락 금왕고락어차 백성문왕종고지성 관지음 거질수축 이상고왈 오왕지호고락 부하사아지어차극야 부자불상견 형제처자리산 맹자께서 말하기를 “그럼 제가 왕께 음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왕의 종소리와 북소리 그리고 피리소리를 듣고 모두 머리가 아파 눈살을 찡그리며 서로 말합니다. ‘우리 왕께서는 북소리도 즐기시는군. 그런데 우리를 어찌 이런 극한까지 가도록 한다는 말인가? 부모와 자식이 서로 보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서로 떨어져 있는데.’ 今王田獵於此 百姓聞王車馬之音 見羽之美 擧疾首蹙 而相告曰 吾王之好田獵 夫何使我至於此極也 父子不相見 兄弟妻子離散 此無他 不與民同樂也 금왕전렵어차 백성문왕차마지음 견우지미 거질수축 이상고왈 오왕지호전렵 부하사아지어차극야 부자불상견 형제처자리산 차무타 불여민동락야 지금 왕이 사냥을 한다고 합시다. 백성이 왕의 마차와 말(馬) 소리를 듣고, 깃발이 아름답게 나부끼는 것을 보며 모두 머리가 아파 찡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의 왕은 사냥을 좋아하시는구나. 그러면서 우리를 어찌 이런 극한까지 가도록 한다는 말인가? 부모와 자식은 서로 보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서로 떨어져 있는데.’이것은 다름 아니라 백성과 같이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今王鼓樂於此 百姓聞王鐘鼓之聲 管之音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鼓樂也 금왕고락어차 백성문왕종고지성 관지음 거흔흔연유희색이상고왈 오왕서기무질병여 하이능고락야 지금 왕께서 음악을 연주 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왕의 종소리와 북소리 그리고 피리소리를 듣고 즐거운 표정으로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왕께서는 요즈음도 병이 없이 무사하신 모양이군. 어찌 저리도 음악에 능하실까?’ 今王田獵於此 百姓聞王車馬之音 見羽之美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田獵也 此無他 與民同樂也 금왕전렵어차 백성문왕차마지음 견우지미 거흔흔연유희색이상고왈 오왕서기무질병여 하이능전렵야 차무타 여민동락야 지금 왕이 사냥을 한다고 합시다. 백성이 왕의 마차와 말소리를 듣고, 깃발이 아름답게 나부끼는 것을 보며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왕께서는 요즈음도 병이 없이 무사하신 모양이군. 어쩌면 저렇게 사냥에 능하실까?’이것은 다름 아니라 백성과 함께 즐기기 때문입니다. 今王與百姓同樂 則王矣 금왕여백성동락 칙왕의 지금 왕께서 백성과 함께 즐기신다면,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왕이 자신만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기 위해 백성들의 몸과 마음에 괴로움과 아픈 고통을 주면 백성들은 그 모습에 대항하여 반항하려는 마음을 키워 등을 돌리겠지만,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어 가지려는 덕 있는 왕에게는 백성들도 함께 기뻐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고사(故事)는 『맹자』의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 하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상이 여민동락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항상 백성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통치 자세에 대한 것이다. 여민해락(與民偕樂)도 같은 뜻이다. Ⅳ. 생각 찾아보기 1. 패도로 다스리는 큰 나라이지만 왕도로 다스리는 작은 나라보다 못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찾아보고 왕도와 패도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2. 왕이 자신만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기 위해 백성들의 몸과 마음에 괴로움과 아픈 고통을 주면 백성들은 그 모습에 대항하여 반항하려는 마음을 키워 등을 돌리겠지만,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어 가지려는 덕 있는 왕에게는 백성들도 함께 기뻐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여민동락은 항상 백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통치자의 이상적인 통치 자세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는 말이다.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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