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순수한 소녀 모습을 그려 봅니다 젊은 날 무악산님의 모습 야무지게 생기셨습니다 날렵하시고 ㅎㅎ
정동진 기차역 저 때가 언제지요? 제가 17세 때던가 정동진 산성우리라는 곳에 광산이 있어 오빠 둘이 그 곳에 일하러 갔지요 빨래를 가져오고 가져가고 저 역을 통해서 오갔지요 지금도 그 얘기 하면 작은 오빠는 "말마라 내 그넘으 동네 이가 갈린다마" 합니다 저그들만 고생 했을까요 나도 버스타고 기차타고 ㅎ 영동 고속도로가 뚫히지 않았던 시절 온통 산으로 덮힌 정동진 어둑한 사진 배경에 그 시절 작은 역을 떠올려 봅니다
그시절 오지 탐험 여행을 다녔습니다. 무주구천동 부터 시작해서 북한 코앞에 백령도까지 가보았지요. 이민 생활로 그 유명한 정동진 해맞이를 보지 못해서 잇해전 정월 초하룻날 해맞이를 갔었습니다. 사북에서 탄부생활 하다가 도회지로 이사온 분을 사귀게 되어서 30여년전 사북탄광 폐광도 다녀오고요. 그곳에 정선 카지노가 들어섯다길래 4.5년전 갔더니 완전 딴세상이 되었더군요. 산골 오빠들 에게 빨래도 받아오고 찬거리도 해서 가져다 드리고.... 그런 추억도 이젠 아름다운 낭만이 되었을것 입니다.
첫댓글 혹시 그동네가 파로호 깊숙이 자리잡은
비수구미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젊은 날의 肖像입니다
https://youtu.be/xghAVM-XVsE?si=x-XOU359pnEasXeY
PLAY
위에 올리신 글을 보았습니다.
제가 갔던곳은 파로호 굽이굽이 반나절 정도를
걸어갔던 곳이었습니다.
세상이 개발되고 관광화 되니까 어쩜 그곳이
비수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맙습니다.
무악 산님
지난 삶의 이야기
그리고
사진이
세월을 말해줍니다.
그시절 참 많은곳의 오지를 찿아 다녀왔습니다.
백령도 까지 가보았지요.
고맙습니다.
무장공비~
아주 옛날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간
시간여행 같습니다.
참 순박했던 산골소녀^^
그래서 그런 인적없는 깊은 산중에 갈려면
무장공비 에 대항할수있는 강력한 살상도구를
만들어서 가지고 가야 안심이 되었지요.
세상 살다살다 그리 순진했던 처녀는 그후로
보지 못한거 같습니다^^.
젊은시절 모험심이 대단하셨네요
그시절 화천은 인적이 드문 오지였을텐데요
산세도 험하고 인적도 없는 깊은 산중 대담한 모습이었네요
그 시절엔 무전여행 이라는 것도 유행하였고
평야지대 에서 태어난 저는 깊은산중의 신비로운
풍경 들이 보고 싶어서 중무장을 하고서
나홀로 여행을 다녀보곤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버릇이 남아있긴 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추억속의 시간 여행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저사진 없어졌는데 구글에서 추억속사진
어쩌고 해서 클릭해보니 구글에 보관된거
찾았습니다.
참 그 소녀 순박하기도 했네요.
당시 단단히 무장하시고 다니셨으니 대단하십니다.
무악산님의 오랜 추억의 한 페이지를 함께 넘겨보고 갑니다.
생긴 모습도 순수하였고 양갈래로 땋아내린
그리 길지 않은머리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혼자서 오지 여행을 다니려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 하기위하여 그시절엔 그랬던것 같습니다.
참 돌아볼수록 그리운 젋음의 추억이었습니다.
졸졸 따라 다니면서도 말 한마디 못했던 그 수줍던 아가씨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가 궁금해집니다
지금쯤 그 수줍던 산골소녀도 이젠 60중반
할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껏 그소녀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그 소녀가 자신을 좋아하는 줄
행복한 착각을 하셨겠군요.
산골에 살 때 저도
저 정도로 순박했지요.
길가던 아저씨가 "꼬마야."부르면 도망가던 생각이 나네요.
카메라를 들이 대니까 뒤돌아서 도망쳐
버려서 사진 한장 못찍어 주었네요.
저사진도 자동으로 놓고 혼자서 찍은 거입니다.
소녀의 어머니. 오빠.혼자살던 남자...이렇게
셋은 항상 산으로 송이를 따러 갔는데
벌이가 좋다고 합니다.
이곳 농촌에도 책도 보내주고 하셔요.
소싯적 추억의 한페이지
무서울것 없던 시절 모험심이 대단합니다
나홀로 오지여행 다니는것을 참 좋아하였
습니다.
지금도 그 버릇이 남아있긴 합니다.
그시절 하늘을 날아 다닐것 같은 젊음 ^^.
오지의 순수한 소녀 모습을 그려 봅니다
젊은 날 무악산님의 모습 야무지게 생기셨습니다
날렵하시고 ㅎㅎ
정동진 기차역 저 때가 언제지요?
제가 17세 때던가 정동진 산성우리라는 곳에
광산이 있어 오빠 둘이 그 곳에 일하러 갔지요
빨래를 가져오고 가져가고 저 역을 통해서
오갔지요 지금도 그 얘기 하면 작은 오빠는
"말마라 내 그넘으 동네 이가 갈린다마" 합니다
저그들만 고생 했을까요 나도 버스타고 기차타고 ㅎ
영동 고속도로가 뚫히지 않았던 시절 온통 산으로 덮힌
정동진 어둑한 사진 배경에 그 시절 작은 역을
떠올려 봅니다
그시절 오지 탐험 여행을 다녔습니다.
무주구천동 부터 시작해서
북한 코앞에 백령도까지 가보았지요.
이민 생활로 그 유명한 정동진 해맞이를 보지
못해서 잇해전 정월 초하룻날 해맞이를
갔었습니다.
사북에서 탄부생활 하다가 도회지로 이사온
분을 사귀게 되어서 30여년전 사북탄광 폐광도
다녀오고요.
그곳에 정선 카지노가 들어섯다길래 4.5년전
갔더니 완전 딴세상이 되었더군요.
산골 오빠들 에게 빨래도 받아오고 찬거리도
해서 가져다 드리고....
그런 추억도 이젠 아름다운 낭만이 되었을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