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 개경의 저잣거리를 상상해보자. 가죽을 다루는 장인이 있다. 그의 손은 거칠다.
하지만 거칠기만 한 손은 아니다.
칼날에 베이고 바늘에 찔리며 단련된, 수많은 상처와 굳은살 속에 장인의 정신이 깃든 손이다.
그는 가죽을 무두질하고, 자르고, 꿰매어 신발을 만든다.
왕실에 들어가는 신발도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다. 사람들은 그를 갓바치라 불렀다.
그것은 당당한 이름이었다. 가죽을 뜻하는 옛말 갓에 전문 기술자를 뜻하는 -바치가 붙은 말.
오늘날로 치면 명장(名匠)이나 마이스터처럼 최고 기술자를 가리키는 호칭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말은 그대로인데,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치'가 뜻하던 것
'-바치'는 원래 특정 기술이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갖바치는 가죽 장인이고, 옥바치는 옥을 다루는 장인이다.
매바치는 매사냥을 전문으로 하던 사람을 뜻했다. 이 말들에는 비하의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인정이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사(師)'와 비슷하다. 요리사, 미용사, 약사.
우리는 이 말에서 천함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성을 떠올린다.
고려 시대 사람들에게 '-바치'도 비슷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매바치는 그저 사냥꾼이 아니었다.
고려는 몽골의 영향으로 매사냥이 유행했다.
매를 기르고 훈련하는 일을 전담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까지 따로 두었다.
국가가 나서서 기술을 관리할 만큼, 그 기술에 값을 매겼다는 뜻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바치'의 뒷부분이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아치라 불렸다가 장사치가 되었다. 벼슬을 가진 사람은 벼슬아치가 되었다.
다만 이 '-아치'가 정확히 '-바치'에서 갈라져 나온 말인지, 몽골어 계통의 별개 접미사가 들어와
자리 잡은 것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두 접미사 모두 시간이 지나며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원래 전문성을 나타내던 말이 점점 비하의 뉘앙스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바뀌면 말의 뜻도 함께 변한다.
조선이 바꾼 것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 운영의 중심 원리로 삼았다.
성리학은 질서를 중요하게 여겼다. 문제는 그 질서가 사람의 직업에도 위계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사농공상. 선비가 가장 위에 있었다. 농민이 그 아래였다. 기술자는 더 아래였다.
상인은 맨 끝이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물건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사람들이 사회를 움직였지만, 평가받는 기준은 생산성과
전문성이 아니라 신분과 학문이었다.
가죽 장인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선비보다 아래였다. 도공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청자를
만들어도 양반보다 아래였다. 상인은 막대한 재산을 모아도 존경받지 못했다.
사회가 그렇게 생각하면 언어도 그렇게 변한다. 갖바치는 점점 천하게 여겨지는 기술자의 이름이
되었고, 장사치는 돈만 밝히는 사람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말이 뒤틀린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말이 아니라 사회가 먼저 뒤틀린 것이었다. 언어는 차별을 배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언어가 차별을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어는 차별을 전파한다. 오늘날에도 누군가를 "장사치 같다"고 말하면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정치인"보다 "정치꾼"이 더 교활하게 느껴진다. 사업가보다 장사꾼이 천박하게 들린다
우리는 이런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러나 사실 이 자연스러움 자체가 역사의 결과다.
수백 년 동안 특정 직업을 낮게 보아온 사회의 시선이 말 속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을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말이 사람을 만든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듣는 말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된다.
언어는 차별을 기록할 뿐 아니라 차별을 학습시킨다. 고려와 조선 사이에서
갖바치라는 단어는 고려와 조선의 차이를 보여주는 작은 화석이다.
고려는 기술과 공예가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던 사회였다. 물론 장인들의 신분 자체는
대체로 낮았다. 하지만 그 기술에 대해 국가는 인정했다.
팔만대장경을 새긴 각수들, 고려청자를 빚은 도공들, 나전칠기를 만든 장인들은
국가의 자산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학문과 명분이 기술보다 높은 가치를 얻었다.
손으로 만드는 사람보다 글을 읽는 사람이 더 존중받았다.
그 변화가 직업의 위상을 바꾸었고, 직업의 위상이 언어를 바꾸었다.
갖바치라는 말 하나에 두 시대가 겹쳐 들어 있는 이유다.
사라진 바치들
오늘날 우리는 갖바치라는 말을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옥바치도, 매바치도. 대부분의
'-바치'들은 사전 속으로 들어갔다. 그 직업들이 변했고, 그 삶의 방식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살아남은 말들이 있다. 사람을 낮춰 부를 때 쓰는 표현들이다.
벼슬아치. 장사치.
존중의 의미를 담은 말들은 사라졌는데, 멸시의 의미를 담은 말들은 살아남았다.
어쩌면 이것 역시 언어가 선택한 역사의 기록인지 모른다.
갖바치는 왜 사라졌을까.
시대가 더 이상 그 이름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장사치와 벼슬아치는 왜 살아남았을까.
정치와 장사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여전히 탐욕과 기만의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언어는 언제나 시대의 힘을 품고 있다.
어떤 말은 존중받고, 어떤 말은 조롱받는다. 어떤 말은 살아남고, 어떤 말은 사라진다.
그 과정은 우연이 아니다.
갖바치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단순히 오래된 직업 이름을 보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높이고 누구를 낮추었는지, 어떤 노동을 귀하게 여기고 어떤 노동을 천하게 여겼는지,
한 사회가 품고 있던 가치의 서열표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열표는 놀랍게도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첫댓글 <오늘의 팝송> Rag Doll / Frankie Valli & The Four seasons
Rag Doll은 1964년 발표해 그해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사회적 신분 차이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는 소녀에 대한
연민을 노래했다.
이곡을 부른 Frankie Valli 와 The Four seasons는 196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던 로큰롤밴드였다.
이들의 큰 성공요인 중 하나는 리드보컬이었던 Frankie Valli의 독특한 가성창법이다. BeeGees의 가성창법도 Frankie
Valli의 창법을 모방한 것이다.
Four seasons의 멤버들은 돈도 배운 것도 가능성도 없는 뉴저지 출신의 이태리계 불량소년들이었다. 이들이 큰 성공을
거둔 뒤 멤버들간의 갈등으로 헤어지는 이야기는 2014년 'Jersey boys'란 영화로 만들어졌다.https://youtu.be/X2zPhOirjhI
PLAY
말의 화석에 대한 자세한 글 잘 읽고 갑니다. ^^*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수피님.
기성화 가 나오기전 시골 동네 읍내에도 양화점 두어개는 있었지요
기술자의 손으로 완성된 구두들이 반짝거리며 진열되어 있던 유리
안을 보는 게 황홀했지요 귀한 시대에 각광 받았던 기술자들 을
꼽아 보면 택시 운전사 양장점 구두방 미장원 당시엔 대접 받았다고
봅니다 오늘도 비온 뒤님 글을 읽으며 먼 역사 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대상을 생각해봅니다.
맞습니다. 반세기전만해도 양화점이 많았지만
어느새 다 없어졌습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값싼 기성화의 보급,
소비 트렌드의 변화, 그리고 젊은이들도 힘들게 기술을 배우려하지
않아 저절로 사라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운선님.
시대에 따라 장인에 대한 예우나 기준이 달라지나 봅니다
옛날에 딴다라 직업이 지금은 스타가 되는 것처럼요
예술의 본래 의미는
삶을 가꾸는 방법(기술)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문으로 삼는 선비들에게 특귄을 부여했지 않나 싶습니다
본분을 잃은 사대부의 책임도 있겠지만 그 보다 큰 것은 사회구조
라고 봅니다
공감합니다.
성리학의 사농공상을 교조적으로 해석한 것이 기술 천시의 문제를 낳은 것 같습니다.
성리학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사회적 위계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틀로 사용한
조선선비들의 해석 방식이 문제가 아니었나 갱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광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