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627호]
요리사가 된 시인
김승하
그는 한때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신념을 갖고 열심히 시를 쓴 적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에게는
칼보다 강한 이 펜으로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와 함께 만년필을 선물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펜을 믿지 않는다.
그가 다시 펜 대신 칼을 잡았을 때
칼보다 더 강한 것이 밥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꿈꾸고 가슴속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들,
이제는 차갑게 식어 냉동된 언어들
양념도 없이 요리하고 있다.
하얗게 얼어붙어 서리 낀 이미지들,
뜨겁게 달아오른 팬 위에 쏟아 붓고 있다.
- 『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달아실, 2018)
*
김승하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려고 주말 강릉을 다녀왔습니다.
강릉의 시인들과도 모처럼 술잔을 나눌 수 있었고... 모처럼 곰치국으로 해장도 했습니다.^^
김승하 시인은 현직 요리사입니다.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 신념을 갖고 열심히 시를” 썼던, 시인을 꿈꾸었던, 그가 신념도 꿈도 포기한 채 요리사가 되었는데....그렇게 <요리사가 된 시인>이었는데....
그는 왜 다시 시를 쓰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는 왜 다시 <시인이 된 요리사>로 방향을 선회한 것일까요?
칼은 무사에게 주어지면 죽임의 무기가 되고 요리사에게 주어지면 살림의 도구가 되지요.
밥을 벌어먹기 위해 시를 버리고 칼을 들었던 사내가 마침내 한 손에는 칼을 쥐고 한 손에는 다시 펜을 든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칼’을 갈며 동시에 ‘시’를 갈았던 것이고, 요리를 하고 ‘밥’을 지으면서 동시에 ‘시’를 지었던 것은 아닐까요?
내년이면 육십의 나이에 접어드는 한 사내가 젊은 날부터 꿈꾸고 품고 삭혔던 시가 한 권의 시집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이기까지 38년이 걸린 셈입니다.
김승하 형! 다시 한번 시집 상재를 축하드립니다.^^
추신. 김진묵 선생의 클래식음악이야기...이번주 토요일 오전 11시입니다... 서둘러 신청 바랍니다.... 클래식음악이 여러분의 가을을 더 가을답게 만들어드릴 겁니다.^^
2018. 10. 22.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김승하시인이 운영하는 식당은 어디일까요.
아무도 모르게 한번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