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각광 받는 감독은 김인식 한화 감독이다. 올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령탑을 맡아 우리 나라를 4강에 올린 뒤 김인식 감독은 일약 국민감독이 되었다. 그의 리더십은 '믿음의 야구'라는 표현으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가장 과소평가되고 있는 감독은 김재박 현대 감독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4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나머지 현역 감독 7명의 우승 횟수를 합한 것(김인식 2회, 강병철 선동열 각 1회)과 같은 수다. 현대 유니콘스 감독을 올해까지 11년째 하고 있다. 게다가 2000년대 이후 현대 구단은 재정난에 시달려 꾸준히 주요 선수를 다른 구단에 빼앗겼다. 그런 상황에서 김 감독은 2002~2003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여태까지 해태 외에 어떤 팀도 해내지 못했다)을 해냈고 올해도 팀을 4강권 내에 유지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김재박 감독은 김인식 감독만큼 일반의 지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김재박 감독이 주목을 덜 받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수원에 자리잡은 현대라는 팀이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인기가 없다. 그리고 김 감독 자신이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고, 기자들과 따로 만남을 자주 갖는 편도 아니어서 자기 어필을 할 기회가 적다. 과거 김응용 감독처럼 덕아웃 기물을 두들겨 대는 등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김재박 감독이 업적에 비해 인기가 적은 것은 어느 정도 본인의 책임이라 하겠다.
그런데 김재박 감독은 상당히 억울한 오명을 안고 있다.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는 것이다. 이기기 위해 보내기번트 같은 '치사한' 작전을 (남보다) 자주 구사한다는 게 '안티 김재박'들의 주장이다. 아무래도 현대의 성적이 좋을 때 김 감독은 다른 팀 팬들로부터 이런 야유를 많이 받는다.
보내기 번트 등 작전을 자주 구사하는 이른바 '스몰볼'이 왜 치사한 것인지부터 논란이 되어야 겠지만 그건 그대로 인정하기로 해보자. 작전 빈도를 줄이고 선수에게 맡기는 게 선진야구, 혹은 팬을 위한 야구라는 생각을 김경문 두산 감독을 비롯한 일부 현역 감독조차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재박 비판자들이 알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기록이 있다.
현대 유니콘스 투수들은 7월1일까지 올시즌 65경기에서 고의볼넷을 단 1개도 내주지 않았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김재박 감독은 상대 타자를 거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현대 투수가 강하기 때문일까? 팀 방어율 1위(3.08)를 달리고 있는 두산은 6개의 고의볼넷을 기록 중이다. 방어율 2위 삼성도 4번 상대를 걸렀다. 믿음의 야구를 한다는 김인식 감독의 한화도 7차례 고의볼넷을 허용했다. 극단적으로 롯데 포수 강민호는 18번이나 일어난 채로 공을 받았다. 현대만 0번이다.
우연일까. 2년 전인 2004년. 현대 투수들은 한시즌 133경기를 치르는 동안 역시 한 번도 고의로 볼넷을 내주지 않았다. 나머지 7개 구단은 총 156번, 평균 22번 정도씩 고의볼넷을 내줬다. 현대 외에 가장 고의볼넷을 적게 내준 팀이 기아였는데 역시 13번이나 기록했다. 현대는 지난해(2005년)에도 고의볼넷을 2번 밖에 내주지 않았다.
김재박 감독은 이에 대해 "기록 되지 않는 고의볼넷이 많을 것이다"라고 웃어넘긴 바 있다. 포수가 앉은 채로 공을 받는데, 투수가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으로 던져 승부를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건 다른 팀도 마찬가지다. 김재박 감독이 다른 감독보다 고의볼넷 지시를 덜 내린 건 분명하다. 그래도 그가 비겁하고 치사하다 할 수 있을까.
김재박 감독이 번트를 많이 지시하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올해 현대는 희생번트 72개로 롯데(58개)를 멀찌감치 제치며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현대는 2004년에도 111개로 SK(105개)보다 앞서며 최다를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엔 SK가 희생번트를 더 많이 댔다. 또 김 감독이 희생번트 외에 다른 공격 작전을 선호하는 것도 틀림없다.
삼성은 과거 이승엽-마해영-양준혁 등의 방망이에 의지하는 이른바 '뻥' 야구를 했다. 그러나 이들이 떠나거나 쇠약해지고 선동열 감독이 오면서 이 팀은 작은 야구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지난해 우승했고 올해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의 야구가 재미없어졌나?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재박 감독이 이기기 위해 '치사한' 방법 쓰기를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현대의 고의볼넷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야구 스타일이 스몰볼인 건 틀림없지만, 이는 선동열 삼성 감독, 조범현 SK 감독, 양상문 전 롯데 감독 등도 마찬가지다.
김 감독은 올해로 현대와 계약기간이 끝났다. 그의 향후 거취는 핫 이슈다. 현대 외에 LG가 그에게 관심을 크게 보이고 있을 것이다. 삼성 한화 두산 기아 정도 외에는 모두 김재박 감독의 새 직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야구판에서 그의 주가는 아주 높다. 야구팬들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야구인들은 그의 가치를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11년째 한팀의 감독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김재박 감독의 가치는 충분히 설명 됩니다. 양승호 감독대행이 잘해주고는 있지만, 김재박 감독이 우리팀 맡았으면 좋겠을 감독인건 변함 없네요.
요즘 김인식 감독도 투수 운영때문에 욕 엄청 먹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