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26
17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18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20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22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23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24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25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26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중풍병자와 같이 있는 사람들
35여 년 전 내가 박사공부를 할 때에 어느 날 많이 피곤하였지만 중요한 시험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잔뜩 긴장하고 시험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손이 움직여지지 않더니 급기야 오른팔이 완전히 굳어지고 갑자기 글자가 보이지 않게 되고 앞이 캄캄해지더니 도대체 쓰고 싶은 글자의 한 획도 그을 수도 없고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볼펜을 잡은 손이 굳어지면서 왼손으로 눌러야 겨우 한 글자를 쓸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중도에 포기하고 병원에 가는 길에 손을 꼼지락거려 보았는데 조금 움직여지고 정신이 도는 것 같아서 손끝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내고 병원을 갔더니 혈압이 220-180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풍이 왔다고 응급으로 치료를 받고 밤이 지나서야 겨우 마비 증세가 서서히 풀려서 손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6개월 동안 약을 바꾸어가면서 치료하고 조절해서 근 35년 가까이 혈압 약과 협심증 약을 아침저녁으로 매일 먹어야 합니다. 중풍은 정말로 무서운 병으로 중풍이 오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여지는 신체가 정말 야속하였는데 그래도 나는 혈압상승의 일시적인 마비 증세였고 뇌출혈이나 뇌일혈이 아니어서 바로 회복되었고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갑자기 차거나 새벽 찬 바람을 제일 조심하라고 의사 선생님은 늘 충고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주 조심하는데 중풍은 정말 고치기 어려운 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나도 여차했으면 지금쯤 반신불수가 되어 고통스럽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힘들게 중풍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이나 어른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많은 생각에 머물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 받기 위하여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됩니다.
첫째 부류의 사람은 중풍을 앓아서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중풍을 앓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손가락하나 움직일 수 없고 모든 신경이 전달되지 못하고 끊어져 있거나 막혀 있어서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과의 연결 통로를 모두 차단당한 사람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세상의 모든 유혹의 수렁에 빠져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오늘 복음에서 묘사하는 중풍병자입니다. 육신은 살아있어도 영혼과 동떨어져 암흑에 살고 있다면 중증의 중풍환자인 것입니다. 나도 구사일생으로 이렇게 살고 있지만 중증의 중풍환자인지 모릅니다. 주님과의 통로인 말씀과 은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암흑의 세상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주님을 배반하고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평상에 들려서 나아서 돌아가는 사람이 바로 나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중풍환자를 주님 곁에 가까이 데리고 가서 낫게 해 주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둘러싸고 기득권을 주장하고 주님의 은총을 독차지 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기적인 독점욕은 잠시 길을 내줄 생각을 하지 않고 가련한 중풍병자에 대하여 별 관심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귓전에 흘리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 안에 제자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나도 그 사람들 속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내가 누리는 은총에만 신경을 쓰고 말씀을 전하고, 선교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며, 이웃 사랑에 아주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부류의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평상에 뉘인 채 기와 지붕을 뜯어내면서 예수님께 인도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십니다. 그들의 그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 그들의 믿음과 신념은 우리의 사표입니다. ‘양궁난장(良弓難張)’이란 말이 있는데 <좋은 활은 당기기가 어렵다.>라는 말입니다. 좋은 활은 강하므로 쉽게 당길 수 없으나 당길 수만 있다면 화살은 먼 곳까지 날아서 깊이 박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국시대의 사상가 묵자의 명언입니다. 그는 차별이 없는 인간애를 겸애설(兼愛說)에 두고 있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양궁난장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넷째 부류의 사람들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흠잡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나도 그 사람들의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내 가치기준이나 생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다른 사람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평가하는데 급급하고 겸손과 사랑을 모르는 철면피와 같은 사람입니다.
다섯째 부류의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 바로 신기해하면서 입을 벌리고 놀라며 사람들에게 떠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한 때는 기득권을 주장한 사람들이었고, 주님을 의심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주님을 증거 하는 사람들로 변한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아기 예수님이 더욱 가까이 오심을 깨어 준비하는 대림 2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느 부류의 사람인지 마음을 정리하여 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35,1-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며
승냥이들이 살던 곳에는 풀 대신 갈대와 왕골이 자라리라.
8 그곳에 큰길이 생겨 ‘거룩한 길’이라 불리리니 부정한 자는 그곳을 지나지 못하리라.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앞장서 가시니 바보들도 길을 잃지 않으리라.
9 거기에는 사자도 없고 맹수도 들어서지 못하리라. 그런 것들을 볼 수 없으리라.
구원받은 이들만 그곳을 걸어가고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축일12월 11일 성 다마소 1세 (Damasus I)
신분 : 교황
활동 연도 : 305?-384년
같은 이름 : 다마수스, 다마쑤스
에스파냐 혈통을 가진 성 다마수스(또는 다마소)는 아마도 로마에서 태어난 듯하고, 사제였던 자신의 부친 교회에서 부제가 되었다가, 366년의 치열한 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교황 선출에서 패배한 반대파는 우르시누스(Ursinus)를 대립교황으로 옹립하는 비극을 맛보아야 했다. 결국 이 분쟁은 반대파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 것으로 끝났다. 즉 우르시누스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로부터 유배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평정되었으나, 성 다마수스 교황을 반대하는 무리들은 그의 재임 기간 동안에 늘 도전하였다. 그의 선출은 로마 교회회의에서 무혐의로 판정되었다.
성 다마수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강력한 반대자였고, 381년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 대리자를 파견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단죄하는 교황청 교서를 수락케 하였으며, 성령은 신성이 없다는 마케도니우스(Macedonius)의 교리를 단죄하였다. 재임 기간 중에 그는 동서방의 황제이던 테오도시우스 1세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종교로 선언토록 하여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성서학자이던 성 다마수스는 성경의 정경을 발표하였고, 374년의 로마 교회회의를 통하여 올바른 성경을 명시하는 업적을 쌓았다. 유명한 성서학자인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그의 비서였다. 그래서 성 다마수스는 성 히에로니무스에게 성경 주석을 비롯하여 불가타 성경 번역을 부탁하였다.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이룩한 일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또한 그는 로마가 교회 중의 최고 교회임을 선언하였고, 많은 성당을 건축하고 카타콤바와 순교자들의 무덤을 복원하여 그곳을 순례하는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도록 격려하였다. 위대한 교황이었던 그는 사후 자신이 아르데아티나(Ardeatina) 가도에 건축한 성당에 묻혔다가 후에 산 로렌초 인 다마소(San Lorenzo in Damaso)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다마소 1세 (Damasus I)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