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본다 - 인도소풍 / 문인수
새벽 차가운 거리에
人道 여기 저기에 웬 누더기 이불들이 시꺼멓게,
뭉게뭉게 널려 있습니다.
저 한 군데
이불자락이 자꾸 꼼지락거리더니 아,
젖먹이 아기 하나가 앙금앙금 기어 나오는군요.
노란 물똥을 조금 쨀겨 놓고
제 자리로 얼른 기어듭니다.
너무도 참 자발적 동작이어서
‘서식’이란 말이 뇌리에
거미처럼 달라붙었다 퍼뜩 떨어집니다.
아기가 단숨에 기어든 이 바닥은 사실
이역만리 보다 멀어서
그 어떤 여행으로도 나는 가 닿을 수 없고요,
멀어서인지 잠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굴곡을 안에서 묶는 오랜 이불속 사정이
그나마 한 자루 그득하게 꿈틀거리며
먹구름, 먹구름 흘러갑니다.
빨래궁전 - 인도소풍 / 문인수
야므나강변 작은 촌락 한 움막집에, 그 집 빨랫줄 위로
옛날 옛적 사랑 많이 받은 왕비의 화려한 무덤, 타즈마할 궁전이
원경으로 보입니다. 궁의 둥근 지붕이 거대한 비누방울처럼,
분홍 엷은 나비처럼 아련하게 사뿐 얹혀 있고요 빨래가,
원색의 낡고 초라한 옷가지들이 젖어 축 처진 채 널려 있습니다.
족보에도 없는, 이 무슨 경계일까요. 오색 대리석으로 지어 졌으나
죽음은 그 어떤 역사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이 가볍고 가벼워서
짐이 없는데요, 삶이란 또 몇 벌의 누더기에도 당장 저토록
고단하고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때, 어린 새댁이 하얗게 웃으며
얼른 움막 속으로 숨어 버렸는데요, 개똥밭에 굴러도 역시 이승에
땡깁니다. 오래 내 마음을 끄는 그녀의 남루한 빨래궁전 쪽,
저 검고 깊은 눈이 전적으로 아름답습니다
말라붙은 손 - 인도소풍 / 문인수
땔감으로 쓰는, 건디기라는 쇠똥덩어리가 있습니다.
쇠똥에 찰흙과 지푸라기 같은 걸 잘 섞은 다음
커다란 쟁반 만하게 주물러 널어 말려 쓰는데요,
이 일은 주로 여인네들이 합니다.
그러니 이 쇠똥덩어리 마다엔 어김없이
눈 깊어 안타까운 그늘,
그 무표정한 얼굴의 야윈 손자국이 낭자하게
말라붙어 있지요.
현지의 어느 작은 마을 호텔 앞에서 그날 새벽
할 일 없는 한 사내와 손짓 발짓
상통하며 이 건디기불을 피워 봤는데요, 나는
문득 함께 못 온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돈 번다고 혼자 고생만 하는
늙은 아내의 월급 봉투에도 물론 이런 손자국
무수히 말라붙어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매운 연기를 피해 이리 저리 고개 돌리며 자꾸
이 사내와 함께 찔끔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