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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희와의 결혼 -
기철이 영희를 만난 것은 1975년도 경이다.
기철은 의정부에서 태어나 의정부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학은 Y대학 토목과를 나왔다.
기철이 영희를 만난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도로공사에 입사하여 십여 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다.
그날 공무용 차를 가지고 혼자 현장 확인차 공사 현장에 출장을 갔다가 저녁때 돌아오는 길에서 E대학 앞을 지나는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뀐 것을 보고 좌회전하다가 미쳐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한 여학생을 못 보고 차로 받았다.
그 여학생이 영희다.
영희는 그때 대학교 국문학과 4학년으로 졸업논문 때문에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었다.
그날도 학교 도서관에서 졸업논문 자료를 수집하고 학교를 나오며 수집한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여 졸업논문을 쓸 것인가 하는 생각에 골몰하느라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뀐 것도 모르고 서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거의 다 건너가고 빨간불이 켜지기 직전 정신이 들어 부랴부랴 길을 건너다 갑자기 달려드는 차에 받혔다.
건널목에서 좌회전하려고 기다리던 기철도 퇴근 시간 전까지 사무실에 들어갈 욕심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건너가고 좌회전 신호가 들어오자 급히 차를 발진시켜 좌회전하다가 그때 뛰어 건너는 영희를 그만 받은 것이다.
차에 받힌 사람도 차로 받은 사람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차가 서 있다 출발을 해 속도가 높지 않아 사람이 많이 다친 것 같지 않지만, 받힌 사람은 땅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 한다.
사색이 된 기철이 급히 차를 세우고 차에서 뛰어나와 영희를 부축해 일으키며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건너고 신호가 바뀌어 건너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기철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선 영희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멍한 얼굴로 기철을 쳐다보며
“그래도 횡단보도에서는 주의를 하셔야죠.” 하며 입속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은 기철은 파란 불이 꺼져갈 때 뒤늦게 횡단보도로 들어선 자기는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쨌든 파란불이 꺼지자 횡단보도로 돌진한 자기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영희를 보니 그래도 정신은 있는 것 같아 조금 안심을 하고
“죄송합니다. 어서 내 차에 타십시오.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며 몹시 아파하는 영희를 부축하여 차에 태우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진찰 결과는 전치 4주일
받힌 대퇴부 뼈에 금이 가고 넘어지며 엉덩이뼈도 손상이 갔다는 것이다.
영희를 입원시키고 회사에 연락했다.
회사에서는 차가 보험에 들어있으니, 보험으로 처리하라고 했고 또 고맙게도 기철 소속한 담당계의 차석이 병원에 와 주었다.
차석은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모든 사고 처리 일을 도와주었다.
경찰은 큰 사고가 아니니 양자가 합의 처리 하라고 하고는 사건만 수습하고 돌아갔다.
사고 처리가 끝나고 차석은 돌아가고 기철은 영희에게로 가보았다.
영희네 집에서도 부모님들이 오시고 동생도 왔다.
처음에는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무척 놀라서 달려온 영희의 부모들은 영희가 생각보다는 많이 다치지 않아 마음이 놓였지만 사고를 내어 자기 딸을 다치게 한 기철을 보자 화가 난 어머니가 왜 주의를 하지 않아 사고를 냈느냐? 여자를 다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 만약 크게 다쳐 병신이라도 됐으면 어쩔번 했느냐? 만약 그랬더라면 책임을 지겠느냐? 며 따졌다.
이 말처럼 나중에 정말 기철이 영희를 책임지게 될 줄은 모르고.
기철은 몇 번이고 죄송하게 됐다고 사죄를 했다.
영희도 기철이 모든 사고 처리를 원만히 하고 또 많이 미안해하며 따지고 보면 파란불이 꺼지기 직전에 횡단보도에 들어선 자기에게도 잘못이 없지 않고 진찰 결과도 심하게 다친 것이 아니어서 치료 후 주의만 하면 별 탈이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도 있어 어머니께 심하게 꾸중을 당하는 기철이 안 돼 보였다.
그래서 어머니께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기철을 너무 닦달하지 마시라고 했다.
영희의 역성도 있고 또 시간도 지나서 어머니의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난 후 내일 다시 오겠다며 기철은 병실을 나섰다.
병실을 나서려는 기철에게 이제 병원에 안 와도 된다고 영희가 말했지만 사고를 낸 책임이 있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 기철은 대답을 했다.
어쩌면 이때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병원을 나서며 기철은 그런 생각을 했다.
영희 정도라면 정말로 자기가 그녀의 장래를 책임져도 좋겠다고
하지만 영희에게는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철이 알 리가 없다.
상대는 종합병원 외과 레지던트인 이화영이라는 사람이다.
영희는 그 사람도 묘하게 만났다.
영희가 대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가을에 MT를 갔었는데 그때 현지에서 주선하여 S대학 남학생들과 미팅을 했다.
그 미팅에서 파트너였던 학생과 서로 호감을 가져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MT가 끝난 후 그 남학생에게서 에프터가 와서 몇 번을 만났었다.
그런데 하루는 오는 길에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때 선배인데 두 사람 사이에 시간이 좀 길어져야 하는 이야기가 있어 그 이야기를 마치고 오면 영희가 너무 기다릴 것 같아 영희를 만나는 자리에 모시고 왔다며 데리고 온 사람이 화영이다.
그러면 전화를 하고 다음에 만나면 되지 왜 선배를 데리고 오느냐는 영희의 핀잔에 그렇게라도 영희가 보고 싶어 그렇게 했다는 것이 그 남학생의 대답이다.
그렇게 만나 첫눈에 영희에게 반한 화영은 그 후배에게 어떻게 했는지 그다음부터 그 후배 학생이 영희를 만나러 올 때마다 같이 나오더니 언제부턴가 그 후배를 떼어버리고 화영이 혼자 영희를 만나러 나왔다.
화영이 혼자 온 첫날은 후배가 일이 있어 좀 늦는다고 못 자기 먼저 가서 영희를 잘 좀 대해주라고 했다는 화영이 말을 믿고 후배를 기다리며 같이 시간을 보냈지만, 후배는 끝내 오지 않았다.
두어 번 그런 일이 있고 영희가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아 화영에게 어째서 후배 학생은 안 오느냐고 묻자
“모르겠는데, 아마 영희에게서 흥미를 잃었나 보지.” 한다.
그 남학생과 화영이 어떤 밀약을 맺은 것 같은 생각에 불쾌하고 불안한 생각에 그 후부터는 영희가 화영이를 피했다.
그렇게 피하는 영희를 화영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고 찾아오고 하는 그의 태도가 진지하고 적극적이어서 처음에는 피하던 영희도 화영을 계속 만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화영의 알랑드롱 같은 외모와 적극적인 행동이 매력적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의사라는 직업 그것도 외과의라는 직업이 직장에 매어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은 직업이고(그래서인지 영희와 어는 정도 가까워지고 난 후에는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번 보기도 어려워지는 때가 있다.) 화영의 적극적인 성격도 어떤 때는 상대 기분이나 감정은 생각지 않는 독단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영희는 점점 다른 사람이 선호하는 화영의 의사라는 직업도 화영의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성격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으나 화영의 그 저돌적이고 독단적인 성격에 이끌리어 벗어나지 못하고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직업이 의사이고 가정형편도 상류층인 화영에게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고 화영의 적극적인 성격까지 좋은 점수를 주고 있다.
특히 영희 어머니는 싫다고 거절하는 영희 뜻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영희 앞세우고 화영이 몇 번 영희네 집을 다녀간 후부터는 화영을 사윗감으로 아니 이미 사위나 만찬가지로 대우해주고 있고 영희가 대학을 졸업하는 대로 결혼을 시키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어머니 때문에 아직 영희와 화영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한 화영은 영희가 다쳐서 입원한 날도 수술환자가 많아 바빠서 병원엘 못 왔고, 다음날 오후에 영희를 문병하러 왔다.
화영은 병실에 들어서며 같은 병실에 여러 사람이 있는 것도 무시하고 사가지고 온 꽃다발을 자기는 좋아하지만, 영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미꽃 다발을 영희에게 안기며 큰소리로
“자기! 나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어제는 수술환자가 많아서 올 수가 없었어. 자기가 다쳤다는 연락받고 나도 염려 많이 했어. 그런데 이 정도라니 다행이야.”
하고 마치 결혼한 부부처럼 말한다.
영희가
“다른 사람들이 봐요. 좀 조용조용 말해요”
하고 핀잔을 주어도
“그런데 정말 어느 정도 다친 거야. 많이 다친 것은 아니지? 우리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어때?”라며 큰 소리로 말하고
“아니에요. 그냥 여기 있겠어요.”라고 대답하는 영희에게
“그래? 그럼 자기 좋을 대로 해. 그렇지 않아도 마침 담당 의사가 내가 잘 아는 사람이야. 그래서 자기 잘 보아주라고 부탁했어. 그러니까 잘 보아 줄 거야.”하고 생색을 낸다.
“그 자기 소리 좀 빼요. 남이 보면 우리가 부분 줄 알겠어요.”
하는 영희의 말에
“부분 줄 알면 어때 곧 결혼할 텐데.”
아랑곳하지 않는 화영의 말에 영희가 얼굴을 찡그리며 무어라고 또 핀잔을 주려고 하는데 그때 밖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 들어오시는 영희 어머니를 보고 화영이
“어머니! 저 왔습니다. 영희 사고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하고 인사를 하고 어머니도
“오! 이 서방 왔어? 어제는 무척 바빴나 보지? 병원에 못 올 걸 보니.”
“네! 수술환자가 밀렸었어요.”
“그랬어. 하여튼 잘 왔어. 영희가 4주 진단을 받았는데 자네가 좀 알아봐 정말 4주면 영희가 퇴원할 수 있는지.”
“벌써 알아봤어요. 4주 후면 퇴원해도 된답니다. 마침 주치의가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부탁도 했어요. 후유증 생기지 않도록 잘 좀 치료해 달라고.”
“그래? 잘했군. 역시 우리 사위야.”
어머니는 화영이의 이런 태도가 시원시원해 좋아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며 영희는 ‘사위는 무슨?’ 하며 실소를 머금었다.
화영이 그렇게 다녀간 저녁에 기철이 병원엘 들렀다.
장미가 몇 송이 들어있는 안개꽃 다발과 병원에서 주는 밥이 맛이 없을 거라며 생선 초밥을 사가지고.
공교롭게도 안개꽃은 영희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고 초밥도 영희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다.
그리곤 다시 영희에게도 또 어머니에게도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다.
문병을 하고 나온 기철은 담당 의사를 만나서 치료 후 후유증이 없는지도 물어보고 보험료가 높아지더라도 치료가 잘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음 날 아침 회진 때 담당 의사가
“홍영희씨는 애인이 많은가 봐요. 어제는 치료를 잘해달라고 부탁하는 청년이 두 사람이나 다녀갔어. 복이 많은 아가씨더군.”
하고 농담을 한다.
그 말을 들은 영희는 한 사람은 화영이가 분명한데 또 한 사람은 누굴까? 하다 혹시 기철씨! 하는 생각이 들며 이상하게 가슴에 작은 파동이 치는 것을 느낀다.
그 후로 기철은 퇴근하는 길에 거의 매일 병원엘 들린다.
병원이 마침 기철의 퇴근 하는 길에 있어 들리기가 쉽고 한편으로는 사고자의 책임감 같은 것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영희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그러다 사고가 나는 바람에 자료수집도 안 되고 병원이라 글을 쓸 수 없어 졸업논문이 늦어져 걱정하는 영희의 말을 듣게 되고 사고의 책임이 자기에게 있으니 자기가 아는 것은 없어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후로 틈나는 대로 영희의 부탁을 받아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서 가져다주고 자기의 노트-북도 가져다 빌려주었다.
그리고 논문작성에 대하여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어 영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영희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어 논문도 국문학에 관한 것이었는데 토목 하는 사람이 어떻게 문학을 그렇게 많이 아느냐는 영희의 질문에 학교 다닐 때 책을 좀 많이 본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기철은 지금도 한 달에 두 세 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다.
거의 매일 문병을 오는 기철을 보며 영희 어머니는 마음이 불안했다.
남녀가 자주 만나면 정이 들게 되는데 저러다가 영희가 기철에게 마음을 뺏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기철이 문병 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영희가 졸업논문 때문에 기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여 ‘그러면 화영의 도움을 받으라.’라고 했다 ‘화영씨가 레지던트로 바쁜 것을 엄마는 모르냐?’ 또 ‘외과 의사인 화영이 문학을 알겠냐?’는 영희의 공박에
“기철인가 하는 청년은 토목을 한다며 문학엔 더 문외한이지 않아?”
“그래도 기철씨는 학생 때 책을 많이 읽어 문학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아요. 어떤 면은 나보다도 나아요.” 하는 것이 영희의 대답이다.
그래서 화영에게 연락하여 기철이 영희의 논문을 핑계로 매일 병원에 오고 있어 잘못하면 영희의 마음이 흔들릴 수가 있으니 화영이도 시간이 나는 대로 자주 병원에 자주 들르라고 권했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감사합니다. 성원에 감사하며 정중히 인사 드립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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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