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화영은 기분이 좋이 않았다.
다음날 오후 어머니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는 기철이 문병 오는 시간에 맞추어 영희에게 갔다.
아직 기철은 오지 않았다.
기철이 올 시간쯤 돼서 나타난 화영을 보고 영희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기철이 화영을 보고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여.
잠시 후 기철이 병실에 들어섰다.
기철을 본 화영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화영을 본 기철도 처음에는 당황하는 것 같더니 평소와 같이 영희가 부탁하여 수집한 논문자료를 영희에게 주고는 오늘은 손님이 계시니 일찍 가겠노라고 인사를 했다.
자료를 받고 가려는 기철에게 영희가 무어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그것을 본 화영이
“지금 당신들 무엇 하는 거야?”
하고 대뜸 반말을 한다.
영희와 기철이 동시에 화영을 쳐다본다.
화영은 기철을 보며
“특히 당신! 사고를 내서 사람을 다치게 했으면 미안하게 생각하고 구구로 가만히 있을 것이지 병실엔 왜 자주 드나들어? 왜? 여자가 괜찮아 보이니까 한 번 꾀어 보고 싶다는 이야기야? 그런 생각이라면 접으시지 영희는 곧 나와 결혼할 사람이야.”
하고 의사라는 교양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안하무인격으로 말을 하며 언성을 높인다.
그 말을 들은 기철은 하도 어이가 없어 대구도 하지 않고 병실을 나왔다.
화영의 그 안하무인격인 말에 무어라고 대구 하는 것이 오히려 욕이 될 것 같아서이다.
병실을 나가는 기철을 따라 나온 화영은 기철의 뒤에다 대고
“다시는 병원에 얼씬도 하지 마라. 만약 또다시 병원에 나타나면 가만히 두지 않겠어.”
하고 협박까지 한다.
아직은 거동이 불편해서 침대에 앉아있는 영희는 화영의 행동에 당혹감을 느끼고 기철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창피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철을 쫓아 나갔다가 다시 병실로 들어오는 화영을 보고
“화영씨! 너무하는 것 아니에요? 자세한 사정도 모르면서. 기철씨는 내가 부탁해서 오는 거예요.”
하고 항의를 한다.
“무어가 너무해? 저런 놈은 처음부터 싹을 잘라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힘들어지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싹을 잘라요? 화영씨가 너무 오버 하는 것 아니에요?”
“영희는 순수하게 저 녀석을 대할지 몰라도 저 녀석은 분명히 흑심을 품고 있어 영희를 어떻게 해보려는.”
“내가 무슨 물건이에요. 어떻게 해보게. 나도 내 마음에 따라 행동해요. 누구 마음대로 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란 말이에요.”
영희는 은연중에 화영에 대한 불만을 표한다.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영희의 불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말이지만 화영은 그 말을 무시한다.
아니 이해하지 못하는 적인지 모른다.
부유한 가정에서 귀여움만 받고 멋대로 자란 독자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그만큼 모자란 모양이다.
화영이 다녀간 후에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을 본 어머니가
“너 왜 그러니? 이 서방 마음 좀 맞추어 주지.”
“내가 무슨 다른 사람 비위나 맞추어 주는 사람인가.”
“이 서방 너 많이 좋아하잖아? 그러면 됐지. 무엇이 문제야?”
“나는 화영씨 싫어요?”
“화영이 만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네가 복이 겨워서 그래.”
“어머니는 저 사람 잘 몰라서 그래요.”
“모르긴 무얼 몰라 늘 보는데.”
하며 어머니의 언성이 다소 높아진다.
“그렇게 좋으면 어머니가 데리고 사세요. 나는 저 사람 싫으니.”
영희의 언성도 높아진다.
“너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하는 거냐? 나보고 데리고 살라니. 그리고 화영이가 어디가 어때서 그래. 잘생겼겠다. 직업 좋겠다. 돈 많겠다. 너 좋아하겠다. 정말 네가 복에 겨워서 그래.”
“어머니가 그러시니까 그 사람이 나를 우습게 보는 거예요. 어쨌든 나는 그 사람 싫으니, 어머니도 생각을 접으세요.”
한편 병원을 나온 기철은 영희가 어떻게 그렇게 교양 없는 사람과 장래를 약속한 사이가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걱정스러웠다.
다음 날 영희가 기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는 많이 당황했죠? 미안해요. 그리고 화영씨가 한 말에 개의치 마세요. 어쩌다 사귀게 되고 집에서도 그 남자와 결혼을 시키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마세요.”하고
그리고는 전화가 끝난 후 자기가 왜 기철에게 그런 전화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혹 자기가 기철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영희의 전화를 받은 기철은 용기가 났다.
자기만 영희에게 호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화로 영희가 자기에게 어느 정도는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다음 날 그러니까 이틀 후 저녁에 다시 안개꽃을 사들고 영희를 찾았다.
영희는 반갑게 맞아 주었고 둘이는 다만 지난번에 주고받은 논문자료와 논문작성에 대하여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상한 연대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 후 화영이 찾아오는 시간을 대강 짐작하는 영희가 시간을 조정하여 기철의 방문시간을 정해 두 사람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영희의 퇴원도 얼마 남지 않은 때 어머니를 통해 영희와 기철 사이에 만남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던 화영이 병원을 찾아와 영희에게 퇴원 후에는 기철을 절대 만나지 말라고 한다.
“내가 기철씨 만나는 것을 왜 화영씨가 간섭해요?”
영희의 음성이 날카롭다.
“영희는 내 여자야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만나는데 내가 간섭을 안 해.”
“언제 내가 화영씨 여자가 됐어요?”
“이거 왜 이래, 부모님들과 다 약속이 된 것 영희도 알잖아?”
“알긴 내가 무얼 알아요. 그건 화영씨 요구에 어머니가 허락하신 거지 나는 그런 약속한 적 없어요.”
여자가 이런 정도 이야기를 하면 무엇인 문제인지 알아야 할 것이나 화영의 독선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차리지도 알아차리려고도 하지 못하고
“부모님이 약속했으면 된 것이지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해.” 한다.
“그러면 부모님들과 결혼하세요. 나는 화영씨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그것 봐 전에는 그런 소리 안 하더니 기철인가 무언가 하는 놈 만나더니 마음이 변했잖아. 그러니까 그 자식 만나지 말란 말이야.”
화영의 언성이 높아진다.
“쓸데없는 궤변 늘어놓지 마세요. 전에 언제 내가 화영씨와 결혼한다고 한 적 있어요?”
“그럼 왜 그동안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데, 가만히 있었어?”
“그동안 화영씨 자존심을 생각해서 화영씨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어머니에게는 여러 번 말했어요. 그리고 오늘 이렇게 화영씨에게 내 생각을 확실히 말했으니 이제는 더 이상 결혼 이야기는 하지마세요.”
말로 영희를 설득할 수 없고 더 이상 이야기를 길게 해봐야 영희의 감정을 건드려 자기가 손해라는 생각을 한 화영은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영희와의 일로 화가 난 화영은 기철에게 분풀이하려는 생각으로 전화를 해 만나자고 했다.
“무슨 일로 만나자는 겁니까?”
생뚱맞은 화영의 전화에 기철이 볼멘소리다.
“만나보면 알아.”
“당신과 나 초면인데 그렇게 반말해도 됩니까?”
“말하는 것 가지고 꼬투리 잡지 말고 만나기나 해. 내가 반말하는 것이 아니꼬우면 너도 반말해. 그러면 되잖아.”
“참! 대단한 분이군요. 세상을 그렇게 멋대로 삽니까?”
“남 세상 사는 것 걱정하지 말고 만나자면 만나기나 해.”
“나는 당신을 만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금 하세요.”
“좋아!. 만나기 싫다면 말하지. 지금 나 만나기 싫어하는 것같이 영희도 만나기 싫어했으면 좋겠어. 마지막 경고야. 당신 다시는 영희 만나지 마라. 알아들어?”
“화영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오기가 생기네요.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너 그러다 혼날 줄 알아. 내가 점잖게 말할 때 듣는 것이 좋아.”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해서 영희씨의 마음을 얻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너 그렇게 자신 있어?”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제안을 하겠습니까?”
“너 무얼 믿고 그렇게 까불어.”
“그러는 당신은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이것은 기철에게 화풀이하려다 기철에게 놀림을 당하는 꼴이 됐다.
화가 뻗친 화영이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마지막 경고라는 것 명심해”
하고 전화를 끊었다.
병원에 입원한지 4주가 되어 영희는 거의 완쾌 돼 무리하지 않으면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퇴원을 했다.
순간의 실수로 사고를 내기는 했지만, 그동안 기철이 보여준 성실성과 착한 마음 그리고 친근감을 주는 기철의 모습에 영희의 마음이 얼마간 끌려간 것이 사실이다.
퇴원 후에도 영희의 졸업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고 마지막 정리를 하는 단계이고 병원에 있는 동안 기철의 수집해 준 자료를 보며 마지막 정리를 하여야 하기에 기철의 도움이 더 필요하게 되어 영희와 기철은 거의 매일 저녁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둘의 사이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아니 어쩌면 논문은 핑계이고 만나고 싶고 같이 있고 싶었다는 것이 더 옳을지 모르지만
토요일 늦은 오후 그날도 영희의 논문을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버스에서 내려 큰길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낮 선 청년 둘이 앞을 가로 막는다.
기철이 피해서 지나가려고 하자 한 사람이 기철의 어깨를 툭 치며
“네가 박기철이냐?”
당황한 기철이 서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얏 마! 네가 박기철이냐고 묻잖아.”
이번에 다른 한 명이 기철의 어깨를 치며 묻는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무얼 왜 그래.”
하며 한 놈이 주먹으로 배를 때린다.
갑짝스런 공격으로 배를 맞은 기철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배를 안고 주저앉는다.
“만나지 말라면 만나지 말아야지. 왜 말을 안 듣고 매일 남의 애인을 만나고 다녀.”
하고 다른 놈이 주저앉은 기철에게 발길질을 하고 두 놈이 번갈아 가며 때린다.
기철은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두 놈에게 늘씬하게 두들겨 맞았다.
기철은 아침 마다 조깅을 하고 주말에는 틈나는 대로 등산을 해서 신체적으로는 건강한 사람이나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격투기는 전연 몰라 일대일로 싸워도 당할 수 없는 처지인데 두 놈이 공격하니 대항하거나 피하지 못하고 그냥 맞기만 했다.
그날따라 두 놈에게 그렇게 맞고 있는데 통행하는 사람도 없다.
두 놈은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철을 때리고는 다시 영희를 만나고 다니면 다음에는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놓겠다는 공갈을 치고 사라졌다.
맞은 곳이 아파 그 들이 사라지고도 한참을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다 힘겹게 일어나 또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던 기철은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일주일은 입원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 여기저기가 찢기고 눈두덩이 멍들고 입술이 터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 기철을 보고 부모님이 놀라서 어찌 된 일이야고 물었지만, 사실대로 말하기가 어려워 오후에 친구들과 산에 갔다가 발을 헛디뎌 굴러서 다쳤다고 거짓말을 했다.
평소에 산을 자주 가는 기철인지라 부모님은 그 말을 곧이들으시고 주의를 하지 그랬냐며 걱정을 하신다.
그리고 월요일 마스크와 선 그라스로 다친 곳을 가리고 출근해서 직장에서도 왜 그렇게 다쳤느냐고 묻는 말에 친구들과 산에 갔다가 굴러서 다쳤다고 같은 대답을 했다.
기철은 말을 들은 계장이 큰일 날 뻔했다며 몸이 아프면 하루 이틀 쉬라고 권하는 것을 괜찮다며 계속 출근을 했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어디 좀 다녀 오느라고 몇 칠 글을 못 올렸습니다
계속하겠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