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대학 서클 선배와, 당시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가락시장 횟집골목을 찾았습니다.
선배가 주고 싶은 책이 있다기에 고마워서 밥이나 먹자고 했다가 기왕에 선생님까지 모셨습니다.
시장에는 십 오륙년 되는 단골 아주머니가 계십니다. 냄새도 나고, 너저분하기도 하지만 돈도 덜 들고 사람 사는 맛, 생선 맛 때문에 체면을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은 곧 잘 그 곳으로 데리고 간답니다.
거나하게 몇 순배 돈 후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영정으로 쓸 초상화를 찾으러 시청 앞에 가셔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덧 붙여 살아 있을 때 미리 준비해야 할 몇 가지도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가 없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씀 드렸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기 전에 그 분 들께 고마웠다는 인사를 해야 하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이야 술을 한 잔 하든지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해 둘 수 있지만 찾을 길이 없는 사람 들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글로 남기면 언젠가, 어쩌다 제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을 까 생각되는데 그 게 잘 안됩니다."
선생님은 메모책을 꺼내 적고 계셨습니다.
벌써, 아니 벌써,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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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모 역시 2년 전인가? 써두었던 겁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없고 지난 것만 꺼집어 내어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어제 밤, 그 선생님을 모시고 후배 부친상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7일에는 친구분들과 2박 예정으로 목포에 가시고, 그 다음 주에는 단풍맞이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신다고 합니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녀야 하는거야"
양재동에서 좌석버스로 갈아타는데 몇 대를 그냥 보내십니다.
왜 안 타시느냐고 여쭈었더니
"빈 자리가 없는데 늙은이가 서 있으면 젊은 사람 들이 불편해 해" 하십니다.
선생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행동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대학 3학년 때 봉사 모임 회장을 맡고 있을 때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잠시 포즈를 취했습니다.
3년 전인가?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 눈구경 가시자고 태백행 기차로 모셨습니다.
배낭에 기차에서 먹을 김밥 두 줄과 캔맥주 캔커피 2개 씩, 과자도 조금 넣고.
이른 아침 청량리역에서 출발, 태백역에 내렸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표를 끊었습니다.
차표는 제가 샀으니 식사는 굳이 당신이 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역 바로 앞 손님이 하나도 없는 썰렁한 국밥집에서 술도 한잔 했습니다.
맛있게 먹었고 식당 아주머니와 정담도 나누었습니다.
사진은 그 아주머니께서 찍어 주신겁니다.
사십여 년 사이에 이렇게 모습이 변했습니다.
첫댓글 훈훈한 삶의 이야기가 너무 좋습니다. 정말 많이 변하셨네요.ㅎㅎㅎ
그렇죠? 세월이 참 무섭습니다.
파인님의 멋진 청년시절이네요~~ 참 아름다운 사제지간의 모습도...^^ 청춘은 너무 빨리 지나가나 봅니다.
어제 연습실에서 처음 만 분(전에 두 달 나오시다 그저께부터 다시 나오신다는)이 자꾸 나이를 물어요. 흔히 서른 아홉에서 묶어 둔지 오래다고 말해 버리지만 그냥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하고보니 참, 그렇더군요. 기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