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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이즈
너바나를 기억하는가? 자살한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의 노래를 들으며 밤새워 춤을 춰 본 적이 있는가? 눈물 흘린 적이 있는가?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쓸쓸한 삶을 따라간다. 그의 부인이었던 코트니 러브가 리드 보컬로 있는 그룹 [홀]은 여전히 새 앨범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제 다시는 그의 새로운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커트 코베인 그리고 너바나의 삶과 노래를 영화로 옮긴 사람은 [아이다호][엘레펀트]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이다.
커트 코베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이다호]의 리버 피닉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너무나 큰 아쉬움이 몰려 왔다. 이제 다시는 그들의 새로운 작업을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큰 것이었다. 91년 발표된 그들의 엘범 [NEVERMIND]는 한국에서 서태지가 그랫떤 것처럼 90년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대표한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을 우상처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배반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가령 서른도 되기 전에 마약 중독으로 파리의 한 호텔에서 숨진 풍운아 [도어스]의 짐 모리슨을 다룬 올리버 스톤 감독의 [도어스]처럼,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스타 뮤지션의 일대기를 연대기적으로 따라가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스타의 단순한 전기영화는 아니다.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이 살아있던 마지막 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커트 코베인이라는 매력적인 소재가 줄 수 있는 후광을 모두 걷어버렸다. 일반적이고 도식적인 내러티브를 벗어난 구스 반 산트의 선택은 죽음에 이르는 한 뮤지션의 외롭고 쓸쓸한 내면을 형상화하려는 목적을 충실하게 구현한다. [라스트 데이즈]는 왜 한 남자가 죽음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누구도 정확하게 그 대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1994년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을 중심으로 한 너바나는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락 음악계에서 그들은 살아있는 신화였다. 대중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성공의 정점에 있던 그때, 왜 커트 코베인은 죽음을 선택했을까?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다음 작품에 거는 사람들의 높은 기대가 중압감을 준 것일까? 아니면 부인 커트니 러브나 다른 멤버와의 불화가 원인이었을까?
운동화를 신고 붉은 바지에 하얀 셔츠 하나만을 입은 블레이크(마이클 피트 분)가 숲 속을 거니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혼자 있다. 무슨 소리인지 연결되지 앟는 단어, 문장을 입 속으로 웅얼거리면서 숲 속을 산책하고 계곡 물 속으로 들어가고 모닥불을 피워 몸을 말린 뒤 숲 한 가운데 있는 커다란 집으로 돌아오지만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단절되어 있다. 그 집에는 다른 멤버들이 함께 머물고 있지먼 그는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그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유럽 투어 등 순회공연에 대한 매니저의 설명이 이어진다.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을 형상화하기 위해 구스 반 산트 감독은 관습적인 내러티브를 버리고 쓸쓸하고 외로운 벙식으로 좁근한다. 블레이크가 놓여 있는 공간은 최고의 락스타가 머물고 있는 집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허름하다. 비버리 힐스의 호화스러운 저택과는 거리가 멀다. 벽의 회칠은 군데 군데 벗겨져 있고, 가구들은 낡고 망가져 있다. 집은 크지만 그 속에 있는 인물을 더욱 외롭게 한다.
1991년 게펜 레이블에서 나온 앨범 네버마인드(Nevermind)는 90년대적 감성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유일한 앨범이다. 그로부터 3년뒤인 1994년 4월, 자신의 집 온실에서 머리에 엽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며 세상을 마감한 커트 코베인의 전기적 삶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라스트 데이스]는 그러나 연대기적 접근으로는 불가능한 내면의 쓸쓸함과 고독함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구스 반 산트의 진정한 영화찍기는, 초기 [드럭스토어 카우보이](1989년)나 [아이다호](1991년)의 놀라운 성공 이후 헐리우드 제작자의 손길을 거쳐 세상에 내놓은 [투 다이 포](1995년) [파인딩 포레스트[(2000년가 초기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들었다는 처절한 자기 반성에 의해 시작된다.
[게리](2002년)부터 시작된 구스 반 산트의 새로운 영화찍기는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엘리펀트](2003년)에 이어 [라스트 데이스](2005년)에서 더욱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고집하는 TV 사이즈의 화면이 일부의 주장대로 제작자인 HBO의 홈비디오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면 비디오 시장 자체가 와이드 화면으로 바뀌어지고 있고 DVD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추세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가로 세로 화면비율이 16:9에서 2.35:1까지 점점 가로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역행하는 그의 4:3 사이즈의 화면비율은 폐쇄적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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