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길자 시인의 시조 「산다함은」은 삶의 끈기와 내면적 성숙을 한 편의 서정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조는 마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생의 흔적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듯한, 잔잔한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초장에서 ‘자그만 불씨 한 점’을 ‘가슴에 품은 채로’ 살아가는 모습은 삶의 지속성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불씨’라는 이미지는 사그라들지 않는 의지, 소멸하지 않는 희망의 상징으로 기능하며, 생의 본질적 열정과 그 끈질김을 드러낸다. 동시에, ‘자그만’이라는 수식어는 그 불씨가 미약하면서도 꺼지지 않는, 그러면서도 오히려 강한 생명력의 원천임을 암시한다. 이는 ‘감정이입’의 기법을 통해 시적 자아가 느끼는 생의 고단함과 그 안에 담긴 희망을 독자가 함께 느끼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어지는 중장에서는 ‘엉킨 실 풀어 감듯 해진 세월 깁다 보면’이라는 비유적 표현이 등장한다. 이 구절은 마치 인생의 복잡하고 엉켜 있는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정을 실타래를 푸는 행위에 비유함으로써, 시간이 흐르며 상처를 보듬고 삶을 재구성하는 인간의 노력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엉킨 실’과 ‘해진 세월’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손상, 즉 삶의 불가피한 고통과 상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그 실을 풀고 깁는 과정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재정립하는 ‘내면적 순례’의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종장에서는 ‘볼 붉은 홍시 한 알이 가을볕에 수줍다’는 이미지로 전환되며, 이 시조가 말하고자 하는 삶의 궁극적 아름다움과 성숙이 드러난다. ‘홍시’는 가을의 결실로, 성숙과 완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여정의 마지막에 얻어지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암시한다. 특히 ‘수줍다’는 표현은 이러한 성숙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가치임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이는 ‘낯설게 하기’의 기법을 통해 일상 속에서 흔히 지나치기 쉬운 자연의 풍경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는 시적 장치로 작용한다. 이 시조는 인생의 시간성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시적 자아’가 지닌 고유의 감수성과 정서를 일관된 리듬과 운율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다소 아쉬운 점은 이러한 상징적 이미지들이 지나치게 명료하여 독자에게 충분한 ‘해석의 여백’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작품이 독자와의 ‘미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정서적 파토스의 심도가 약간 희석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므로 조금 더 내면적 갈등의 요소나 이미지의 다층적 해석 가능성을 추가하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진길자의 「산다함은」은 삶의 인내와 성숙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과 단순한 듯하지만 깊이 있는 표현이 독자로 하여금 시적 감동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리뷰: 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