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천연 세제, 잿물
인간이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빨래의 역사도 함께 시작되었다. 원시시대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컸으나 문화가 발달하면서 몸을 깨끗이 하여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옷을 빨았다. 또한, 더러운 옷이 면역력을 저하하고 신체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빨래는 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처음에는 물속에서 천을 흔들거나 손으로 비비고 발로 밟는 방법을 사용했다.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는 돌이나 방망이로 두드려 빨았다. 그 후 세탁을 도와주는 물질을 발견하면서 물만 사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세제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 빨래에 쓰인 천연 세제가 ‘잿물’이다.
잿물은 나무를 태운 재에 물을 부어 침전시킨 후 걸러서 얻은 물을 뜻한다. 탄산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강한 염기성을 띄기 때문에 빨래 때의 주성분인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다. 잿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루 밑바닥에 짚, 떨어진 삿갓 등을 넣고 그 위에 재를 넣는다. 그 후 물을 부어 아래로 흘러내리는 잿물을 받으면 된다.
처음에 흘러내리는 첫물은 대개 불그스름하고 그 성분이 강하여 빨래를 삶는 데 사용하였다. 나중에 흘러내리는 맑은 잿물인 훗물은 뒤에 애벌빨래에 쓰였다. 잿물은 짚을 태운 재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지역에 따라서 강원도는 잠초재, 충청도는 뽕나무재, 경기도는 콩깍지 재를 사용했다고 한다. 세탁물의 종류에 따라서도 달리 쓰였다.
조선시대 여인의 생활 지식이 수록된 『규합총서』에 의하면 묵은 때는 특히 콩깍지 잿물을 사용하면 잘 빠진다고 한다.
과학의 힘으로 개발된 세탁 세제
의·식·주 수준이 향상되면 생활용품의 기능이 강화되고 종류가 다양해진다. 세탁 또한 마찬가지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비누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었고, 그러면서 기존의 삶고 두드리는 것에서 판을 사용하여 비벼 빠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석유 화학계인 합성세제가 출시되었고, 전기세탁기가 대중에게 보급됨에 따라 직접 손으로 빠는 사람은 점차 사라지고 기계로 세탁하게 되었다. 옷감의 성질, 오염의 종류 등에 따라 용도에 맞는 다양한 세탁 세제가 개발되면서 빨래는 더욱 손쉬워졌다.
재를 시루에 안치고 물을 부어 우려낸 잿물이 강한 염기성을 띄어 단백질을 제거했던 것은 현대에 들어와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세제의 성분인 수산화나트륨과 같은 성질이다. 하지만 분명 오늘날의 세제와 잿물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서 차이를 보인다. 잿물이 시중의 화학 세제보다 물을 적게 오염시키는 것은 물론 식물의 거름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 환경에 미치는 피해가 적다.
오늘날의 세제는 자연정화가 되지 않아 하천에 축적되어 물을 오염시키고, 수중 생물에게 해를 입히는 제품이 다수다. 오염을 제거하는 본래의 임무를 다 한 뒤 환경과 어우러졌던 선조들의 천연 세제를 발판 삼아, 생활 속 편리함은 물론 자연과의 공생도 생각할 수 있는 현명한 지혜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글‧차경주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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