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놈일기/김종호
잔뼈가 굵은 곳
가지만 남은 산사나무
매듭 매듭 곧지 못한,
눈도 얹힐 자리 없이
꽝 말라버린
그곳에 내가 있어
떨어도 떨어도
머리칼날 세우고 달라붙는
도께비 바늘,
시린 겨울날
물속에 손 담그고 발 담그고
미련스럽도록 파랗게 질린 손등을 어르며
개구리
한 두 마리 올리고,
그곳에 내가 박혀 있어.
밤 새도록
흥건한 개벌 같은 논바닥
숨구멍이라도 밟으면 열리는듯
소 처럼 논을 삶고,
그곳에 내가 녹아 있어.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왠지 마음이 허전합니다.
가는 세월 탓인가?
아니면 저 찬란한 단풍 때문인가?
언제인가 반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아
반장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전화도 되지 않는 곳이라 직접 가야 했습니다.
그를 보내 놓고
저는 학교 담 옆에 서서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을씨년스런 11월 초였습니다.
그런 저를 어느 학생이 교실에서 내다 보고 있었습니다.
몹시 안쓰러웠나 봅니다.
그 때 그 학생은 선생의 길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답니다.
그 학생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들 때문에 몹시 힘 들었던 93년.
수업 도중 창문을 물끄러미 내다 보는 제 모습이 몹시도 안쓰러웠나 봅니다.
하긴 그 당시 망연자실한 채 산을 보았습니다.
그게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모양입니다.
용기를 가지라는 그녀의 편지가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간자율 학습시 제 모습을 보고 시집을 보내준 여학생.
다리 다쳐 서서 수업하는 제게 시집을 보내준 여학생.
몹시 쓸쓸해 보인다며 책을 보내준 많은 제자들.
참 궁상맞고 청승 맞게 보였나 봅니다.
불쌍하게 보였나 봅니다.
불쌍이라는 말은 不雙 즉 쌍이 아닌 혼자라는 뜻이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학생들 눈에 제가 불쌍하게 보였나 봅니다.
자칭 국보라는 양주동 박사는 꼭 학기가 끝나고 시험을 볼 때면
강의에 대한 감상을 쓰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까다로운 그가 최고의 점수를 준 학생은
왠지 교정을 내려다 보는 국보선생도 몹시 쓸쓸하게 보인다고 쓴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못난 선생이었습니다.
학생에게 용기를 주어야 할 선생이 도리어 학생에게 위로를 받다니.
궁상 맞고,
참 청승 맞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왠지 더 추워 집니다.
이 시인을 생각하면 왠지 추워 보입니다.
누군가가 그의 곁을 떠나 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 많이 갔습니다.
제 마음 어딘가에 사랑 한 점 심어두고 아주 먼길을 떠나갔습니다.
그와
따뜻한 차 한잔 같이 먹고 싶습니다.
산사 차 한잔을.
첫댓글 올해는 산사나무에 열매가 아주 실하게 달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 온 산사나무. 시골 집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정미소(지금은 폐가) 옆에 산사나무가 있습니다. 그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지 않은 산사나무. 키도 그 키고 덩치도 그 덩치로만 보입니다. 산사나무, 언제 보아도 마음 아픈 나무입니다. 첫 시집을 낼 때, 제가 가장 사랑했던 시가 위의 시입니다.
애잔한 글입니다. 음악까정 더해져서.. 커피나 한 잔 마셔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