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두 개의 창문이 있는 손바닥만한 방안 한낮의 햇볕 내려 쪼이니 밝고도 따뜻하다. 집에 벽은 있으나 책만 그득하고 낡은 베잠방이 하나 걸친 이 몸 예전 술심부름하던 성비와 짝이 되었네. 차 반 사발 마시고 향 한 가치 피워두고, 벼슬 버리고 묻혀 살며 천지고금을 마음대로 넘나든다. 사람들은 누추한 방에서 어떻게 사나 하지만 내 둘러보니 신선 사는 곳이 바로 여기로다. 마음과 몸이 편안한데 누가 더럽다 하는가. 군자가 사는 곳을 어찌 누추하다 하는가.”
허균의 글이다. 지난 겨울 포교일선에서 나온 지 15년만에 처음으로 아침햇살 받으며 작은 공간의 창문을 바라보며 시원스레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공간의 방 하나를 얻었다. 그것도 도시공원법에 저촉되어서 밤에 간신히 공사해, 방 하나와 법사 스님 모실 수 있고 얼굴 씻고 할 수 있는 세면장까지 얻었으니 홍복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여름은 억수같이 1년 내내 비가 오는 속에서도 백고좌 12회 법회는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1년에 족히 법랍 30년 이상 되신 종파를 초월한 각계의 사회 복지 참선 계율 교학 제 분야의 대선사님과 강백 스님들을 모셔 21인 33인 7인 백고좌(100일 동안 100명의 스님을 모시는 법회) 법회를 12회 연속했으니 족히 1년에 150분의 큰스님. 14년 동안 매년 했으니 즐겁다. 1500여분의 스님들을 모셔 청법의 인연을 천막법당에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으니 정말 지난 세월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방사 하나 변변치 못하고 쉴 수 있는 공간 없어도 변함없이 천리를 멀다않고 오셔서 중생들에게 감로 법문을 들려주신 큰스님들께 그저 고개숙일 따름이다. 지난 겨울 방사 하나 만들다 도시공원법에 걸려 검찰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벌금이 지나치게 많이 나와 재판을 청구, 법원에 가서 판사에게 “무슨 공원법인지 이런 법이 조선 천지 어디 있냐”고 되레 반문했다. 주호영 변호사가 재판 후 “스님, 절에 가면 부처님 다음으로 스님이 대장이지만, 재판정에는 판사가 왕인데 어찌 그리 잘했다고 큰소리를 칩니까. 내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아 변론하는데 혼났습니다” 라고 하면서 제발 이제는 이런 장소에 나오면서 복장도 여법하게 하시고 제대로 된 신발 신고 나오라는 소리를 듣고 돌아오며 혼자 웃었다.
목탁치고 경 읽고 부처님 공부밖에 모르던 사람이 불교계의 권익에 반한 악법에 대처하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18번의 벌금과 산림법 위반으로 15일간의 형무소 생활, 12번의 무허가라는 명목의 철거진행 속에서도, 꿋꿋하게 변함없이 믿고 따르고 의지한 눈물나는 신심의 결정체인 신도님들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법왕사가 있을 수 없었다.
도심 속 최고의 요지와 편리한 교통중심지에 5000평 광장의 주차장, 5000여평의 사찰, 앞은 신천강이 흐르고 뒷산은 임금이 난다는 비슬산 자락이 휘감고 멀리 바라보이는 팔공산 동봉을 두고, 승속이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에 우뚝 솟은 법왕사. 지금도 연건평 3000여평의 대작불사는 멈추지 않고 있다.
15년을 하루같이 매일 500배 정진한 신도님들과 지난달 말까지 49명의 스님들이 배출된 곳. 법왕사는 백고좌 법회를 계속적으로 열 것이며, 전 종파를 초월하고 세계의 고승석학들을 모시는 자리로 만들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첫댓글 전 대구 살지만 아직 법왕사를 못 가봣습니다 ,한번 가오고싶군요_()_
저도 한번 가보구 싶습니다
저도한번 가봐야겠네요 산사음악회도 한다던되요 좋은밥되세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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